주교단 지상주의 [한] 主敎團至上主義 [라] Episcopalismus [영] Episcopalism

주교들이 세계도처에 산재해 있거나 공의회로 연합되어 있음을 막론하고 교회 내의 수위권이 교황 개인에게 있지 않고 주교단에게 있다는 주장이다. 역사를 통하여 이 주장은 다양한 형태를 띠어 왔는데 그 중에는 받아들일 수 없는 형태도 있다. 이 주장의 근거는 교회생활에 대한 고대 문헌과 신약성서이다. 그리스도는 주교단의 전신(前身)인 사도단을 창설했는데 베드로는 이의 단장으로 임명받아 독특한 권한을 갖는다. 그러므로 사도단의 권위는 베드로의 권위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후자에 의하여 보완된다. 사도시대 교부들의 저작에 의하면, 주교는 그 지위가 고립되거나 그 임무가 자신의 관할구역에 제한됨이 없이 교회 전체의 공동선에 기여하며 그 책임은 다른 주교들과의 친교 속에서 표현된다. 주교단 지상주의의 이론은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의 저서와 성 치프리아노 및 아우구스티노의 저서에서 이런 의미로 인용해 왔다.

역사상 교황의 수위권이 널리 인정된 중세에 주교단 지상주의의 일부 풍조는 교황의 권한과 주교들의 권한을 조화시켜 계승하지 못하였다. 여기에 교황의 아비뇽 유폐, 미모왕 필립과 바바리아의 루드비히의 충돌, 서방교회 대이교(大離敎) 등이 공의회 우위론의 발전을 촉진시켰고 원시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피사의 공의회를 비롯하여 수차의 공의회는 파리의 요한, 오캄의 윌리암 등 주교단 지상주의의 지지자들이 일으킨 사건기록을 누적시켰다. 이의 보급에 기여한 자는 프랑스의 갈리카니즘(Gallicanismus)이었다. 이들은 극단적인 교황지상주의(Ultramontanismus)에 반대하여 공의회 우위론과 교황의 교회법 종속을 주장하였다. 이들의 견해는 알마인(Almain)의 온건파에서 리처(Richer)의 강경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독일에서 주교단 지상주의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트리엔트 공의회와 베스트팔리아 강화조약 이후의 일이다. 공의회는 교황의 지위를 강화하는 한편 주교단의 근원이 하느님께 있음을 긍정했으나 양자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짓지 못하였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마레(Maret)와 다르브와(Darboy) 몬시뇰에 의해 대표되는 주교단 지상주의에 대하여 그들의 견해 일부를 받아들이면서 주교단의 근원이 하느님께 있음과 교황 무류성의 제한적인 인정, 주교들의 관할권 등을 규정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주교단 지상주의의 정통적인 요소를 새롭게 표현하고 이단적인 요소를 배척하였다. 즉 사도들의 직무는 하느님에 의하여 주교단에 계승되었고 주교 개인은 이에 종속된다는 것이다. 주교단의 조직은 창설자인 그리스도의 뜻에 따른 것이다. 이의 단장은 베드로의 직무를 행하는 교황이다. 이런 방식으로 교회는 공의회 원리를 수위권의 원리와 결합시켰다. 교회의 최고 권위는 교황을 포함한 주교단에 있으며 이 권위의 행사는 주교단에 의하여, 혹은 주교단의 단장인 신분으로서의 교황에 의해 행사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Joseph Lecuyer, Episcophalism, Sacramentum Mundi, vol.3, Barns & Oates, 1968 / 鄭鎭奭, 주교단과 수위권, 司牧, 46호 / 鄭夏權, 敎階制度의 起源, 司牧, 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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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단 [한] 主敎團 [라] collegium episcoporum [영] college of bishops

교황을 단장으로 하고 주교들을 단원으로 하여 그리스도께서 교회 사목의 주체로 구성하신 단일한 단체. 주교단의 단체성(collegialitas)은 현대 신학자들에 의하여 재발견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열띤 토론을 거쳐 교회헌장 안에서 공적인 영예를 회복하게 된 주제이다. 단체를 뜻하는 라틴어 콜레지움(collegium)이 4∼5세기에는 주교들과 신부들로 구성된 공동체, 주교 공동체 및 사도 공동체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12세기 이후에 와서 주교의 권한 중 신품권(ordo)과 재치권(jurisdictio)의 구별이 지나쳐 양자를 분리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성직자는 신품성사로 인하여 성체인 그리스도의 몸(corpus verum)에 대한 관계가 성립하고, 주교와 교황의 재치권에 의한 임명으로 인하여 교회인 그리스도의 몸(corpus mysticum)에 대한 일정한 지위를 갖는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주교의 성성(成聖)을 신품성사와 재치권에 따른 결과로만 보게 되니 주교단의 단체성은 공허한 것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경향을 극복하고 주교단에 관한 고대의 개념을 회복한 성과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헌장(22항)과 교회법(336∼341조)에 반영되어 있다.

주교단은 전체 교회를 사목하는 주체이며, 교황과 수직적으로 일치하고 주교들 서로간에 수평적으로 결속하여 구성하는 법적이며 윤리적인 친교의 공동체이다. 주께서 시몬이란 한 사람을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시고 교회의 열쇠를 맡기셨으며(마태 16:18-19), 그를 당신의 양무리 전체의 목자로 세우셨고(요한 21:15-) 베드로에게 맡겨진 맺고 푸는 권한은 단장과 결합된 사도단에도 수여된 것이 확실하다(마태 18:18, 28:16-20). 그 사도단이 주교들 안에 영구히 존속하며 주교단은 사도단을 계승한 것이다. 주교단의 단체성이 지니는 의미는 교황을 단장으로 하는 주교단이 지역교회뿐 아니라 전체 교회를 대표하고 이에 대한 권한과 의무를 진다는 점에 있다. 누구나 성사적 성성과 주교단의 으뜸 및 그 구성원들과의 교계적 일치로 인하여 주교단의 일원이 됨으로써 이러한 권한과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체성은 교회의 본질에 속하는 성질이다”(Jeseph Ratizinger). 주교단이 세계 교회에 대하여 가지는 권한은 세계 공의회를 통하여 장엄하게 행사될 뿐 아니라 세계 각처에 있는 주교들의 일치된 행동에 의해서도 행사된다(교회법 337조). 세계 공의회나 단체적 행동으로써 행한 결정은 교황이 이를 인준하고 공포함으로써 효력을 갖는다(교회법 314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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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관 [한] 主敎冠 [라] mitra [영] miter

교황, 추기경, 대수도원장, 주교가 의식(儀式) 때에 착용하는 모자(冠). 속에는 두꺼운 종이 등을 넣었고 바깥에는 비단이나 린네르(linen, 麻布)로 된 2장의 뾰족한 천으로 덮여 있다. 물론 이 2장의 천 안쪽은 부드러운 한 장의 천으로 기워서 서로를 연결하고 있다. 보통 뒤편에는 2장의 장식용 띠(fringed lappets)가 드리워져 있다. 기도할 때에는 반드시 벗어야 한다. 주교관은 금빛 실로 장식한 관(golden miter), 장식관(precious miter), 장식하지 않은 관(simple miter)이 있고 이 세 가지 주교관은 의식의 장엄도(莊嚴度), 계절에 따라 사용되는 경우가 다르다. 장식하지 않은 관은 하얀 비단이나 린네르로 만들어져 있고 성 금요일과 장례식에 착용한다. 낮은 직위의 성직자는 백색 주교관만을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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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 [한] 主敎 [라] episcopus [영] bishop

1. 정의 : 하느님의 제정하심에 따라 성령을 받아 사도들의 지위를 계승하는 주교 즉 감목(監牧)은 교회 안에서 세워진 목자들로서 교리의 스승들이요 거룩한 예배의 사제들이며 통치의 봉사자들이다(교회법 375조 ①).

2. 명칭 : 신약성서에 주교를 일컫는 대표적인 단어로 그리스어 프레스비테로스(presbuteros)와 에피스코포스(episkopos)이며 공동번역에서는 ‘원로’(장로)와 ‘감독자’로 각각 번역되어 있다(디도 1:5-9 참조) epischopos(라틴어로 episcopus)는 ‘감독하는 자’, ‘관리자’, ‘지도자’ 등을 의미하며 그러한 직책을 가진 세속의 공직자를 지칭하는 용어였는데 초대 교회에서 ‘사도의 후계자’들을 뜻하는 용어로 채용되었다. presbuteros(라틴어 presbyter)는 유태인 공동체의 집단 지도자를 뜻하는 단어였으며,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태인들이 그들의 새로운 산앙공동체의 집단 지도자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이는 초대 교회에서 ‘사도의 후계자’를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다가 2세기말부터 ‘사도의 후계자의 보조자’를 뜻하였는데 오늘날에는 사제(司祭)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초대 교회에서는 주교를 파파(papa)라고도 불렀다. 이는 ‘아버지’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이며 원래 ‘사도의 후계자’와 자치 수도원의 원장들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5세기 이래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만을 지칭하는 용어로 한정되었다. 이밖에 주교를 가리키는 용어로는 ‘윗자리에서 지도하는 자’(antistites, praesules, principes, praepositi), ‘사제들 중 최상급자’(sacerdotes primi ordinis, summi sacerdotes, sacerdos Magnus), ‘다리 놓는 자’(pontifices), 목자(pastores), ‘가르치는 자’(doctores) 등이 있다.

처음에는 집단 지도체제였던 교회가 2세기부터 단일 지도체제로 되었는데 이때부터 사도의 후계자로서 지역단위 교회를 이끌어 나가는 이를 에피스코푸스(eposcopus)라고 부르는 것이 정식 호칭이 되었고, 마침내 교회법전의 공식용어로 쓰이게 되었다. 이를 일본에서는 사교(司敎), 중국과 한국에서는 주교 또는 감목이라 한다. ‘감독하는 목자’ 또는 ‘감목이며 목자’라는 뜻을 지닌 감목은 에피스코푸스를 적절히 번역한 단어이다. 이는 마테오 리치 신부시대(1600년경) 이후 중국과 한국에서 사용되어 왔으나 한국에서는 1960년 이후 사용례가 줄어들고 있다. 한편 ‘주교’라는 용어는 한국에서 약 400년간 사용해 왔으나 에피스코푸스를 나타내기에 부적합한 말이다.

3. 사도들의 후계자 선정 :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맡기신 사명은 세상 종말까지 지속될 것이다(마태 28:20). 그러기에 사도들은 자기들의 후계자를 선정하고 후계자를 끊임없이 이어가는 제도를 마련해 두었다(교회헌장 20). 사도들의 사명을 계승하여 수행한 여러 직무 가운데 두드러진 것은 집사와 원로와 감독이다. 집사(diaconos)는 ‘부제’(副祭)라고도 불리며 교회의 살림을 맡아보도록 사도들의 안수를 받아 선정된 사람의 직책을 후대에 계승한 것이다(사도 6:1-6). 원로와 감독은 지역교회를 지도하도록 사도들에 의하여 선정된 사람이다(사도 14:22, 15:2, 20:17, 1디모 4:14, 5:17, 디도 1:5, 1베드 5:1, 1요한 1:1). 성서에서 집사는 원로와 감독에 대하여 분명히 구별되나 원로와 감독 상호간의 구별은 뚜렷하지 않다. 즉 바울로는 원로들에게 고별 연설을 하면서 그들을 감독들이라 부르고(사도 20:17- 35), 디도에게 원로를 선정하라고 명하면서 감독의 자격 요건을 말하고 있다(디도 1:5-9). 더욱이 모든 성도와 감독과 부제에게 인사하면서 원로에 대한 언급이 없고(필립 1:1), 감독의 자격을 설명하고 나서(1디모 3:1-7) 원로에 대한 언급없이 부제의 자격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1디모 3:18-13).

4. 원로(장로)와 감독 : 그러나 원로와 감독이 동의어(同義語)인 것은 아니다. 유태인 출신의 그리스도 교인 공동체에는 유태교 전통에 따라 장로들이 집단적으로 교회를 지도한 반면, 이교도 출신의 그리스도 교인 공동체에는 그리스 · 로마적 제도의 영향으로 감독들이 단일 지도체제로 교회를 이끌어 나갔다. 당시의 관습상 일반적으로 장로는 신분을 가리키고 감독은 직책을 말한다. 그러므로 장로의 신분으로서 감독의 직책을 가질 수 있었다(1디모 1:17). 사도들과 사도의 보조자들은 지역교회에서 신앙 깊고 덕망 있는 신자들을 장로로 뽑았고 장로들 중 학덕이 뛰어난 사람에게 그곳 교회를 다스리는 감독직을 맡겼다. 1세기 후반에 사도들과 그 직제자들이 별세하기 시작하면서 장로단의 단장격인 감독의 권위가 커지고 마침내 이들이 사도들의 사목직을 계승하게 되었다.

5. 성령과 안수 : 감독과 장로와 부제는 민중에 의하여 선출되기도 하고(사도 6:3) 사도들이나 그 후계자들이 임명하기도 하였지만(디도 1:15), 언제나 성령의 은총을 주는 안수로써 그 직무를 수여받았고(1디모 1:18, 4:14, 5:22, 2디모 1:6, 디도 1:5), 성령께서 그들을 감독으로 세우셔서 당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다(사도 20:28, 1베드 5:2). 이 안수의 예식은 단순한 축복의 뜻만 가진 것이 아니고 실제로 성령의 은총을 주는 것으로 초대 교회에서부터 인정해 오고 있다. 트리엔트 공의회도 디모테오 후서 1장 6-7절을 신품성사의 근거로 명시하고 있다(Denz. 1766). 여기서 가톨릭 교회의 교계제도가 그리스도교 발전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고 예수님과 사도들에게서 유래하는 신품권(神品權)을 가진 제도임을 알 수 있다.

6. 사도들과 주교들 : 사도의 후계자인 주교들은 사도들의 모든 직능을 계승하지는 않는다. 사도의 직능 중에는 복음을 선포하여 교회의 토대를 구축하는 직능과 이 토대 위에서 교회를 사목하는 직무이다. 전자는 사도들 자신의 생애에 한정된 것이나 후자는 세상 종말까지 계승된다. 후자는 즉 사목직은 신앙교리를 권위 있게 가르치고(1고린 5:15-17, 1디모 3:2, 디도 1:9) 성사를 집전하며(1고린 11:33-34, 1디모 2:1-15) 신자공동체를 다스리는 일이다(1디모 3:5, 2디모 2:14, 4:1-5, 1베드 5:1-14, 교회헌장 20). 한편 주교는 개인적으로 어는 특정 사도의 후계자인 것이 아니다. 주교는 단체로서의 사도단을 계승하는 주교단에 속하여 있는 까닭에서만 사도의 계통을 잇는 것이다.

7. 교황과 주교 : 주교직 자체가 하나이요 갈림이 없는 것이 되도록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를 다른 사도들 위에 두시고 그 안에 신앙의 일치와 상호 교류의 볼 수 있는 원리와 기초를 마련하셨다(교회헌장 18, 19, 마태 16:18, 에페 2:20 참조). 주께서는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을 하나의 사도단으로 조직하셨다. 이와 같이 베드로의 계승자인 교황과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도 서로 결합되어 주교단을 이룬다(교회법 330조). 주교단 안에 사도단이 영구히 존속하므로 주교단은 단장과 더불어 세계 교회에 대한 최고전권의 주체이다. 그러나 단장 없이는 권한의 주체가 될 수 없고 단장의 동의 없이는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교회헌장 22, 교회법 336조).

8. 주교단 : 주교단은 신품권과 교도권과 협의의 사목권에 있어서 사도단을 계승한 단체이며 그 안에 사도단이 존속하므로 전체 교회에 대하여 권한을 가지고 의무를 진다(교회헌장 22, 주교교령 4, 교회법 336조). 주교는 성사적 서품을 받고 주교단의 단장 및 그 단원들과의 교계적 친교로써 주교단의 단원이 된다(교회헌장 22, 주교교령 4). 주교는 안수와 성성(成聖)의 예절로써 성령의 은총을 받고 거룩한 인호가 박히며 성화하고 가르치고 다스리는 임무를 받는다(교회헌장 21). 다만 이 임무는 본질적으로 주교단의 단장 및 단원들과의 교계적 친교안에서만 행사될 수 있다(교회법 375조 ②).

9. 주교의 권리와 의무 : 지역교회의 사목 책임을 맡은 주교는 교황의 권위 밑에서 정상적으로 직접 교회를 돌보는 목자로서 교도직(敎導職)과 사제직(司祭職)과 사목직(司牧職)을 수행함으로써 주의 이름으로 자기 양들을 양육한다(주교교령 11). 교도직을 통해서 주교는 만민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성령의 힘으로 그들을 신앙에로 불러들이거나 그들의 신앙을 더욱 굳게 한다. 또 그리스도를 알기에 필요한 모든 진리를 가르친다. 그리고 하느님을 현양하고 그로써 영원한 행복을 얻도록 하느님께서 제시하신 길도 가르친다(주교교령 12). 사제직을 통하여 주교는 담당 지역교회를 상화시켜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교회 전체의 의의가 빛나게 한다. 신품성사의 충만을 지니며 하느님 신비의 으뜸 관리자이자 전례생활의 감독자요 수호자이다(주교교령 15). 사목직을 통하여 주교는 자기 양들을 알고 양들도 목자를 알도록 하고 참 아버지로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양떼를 보살핀다. 이러한 사목적 노력에 있어서 신자들도 적절히 교회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 신비체 건설에 능동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평신도들의 의무와 권리를 인정한다(주교교령 16).

10. 교구장 주교와 명의(名義)주교 : 교구의 사목을 맡고 있는 주교를 교구장주교(episcopus dioecesanus)라고 하고 그 외는 명의주교(episcopus titularis)라고 한다(교회법 376조). 예를 들면 교황대사, 부(副)주교, 보좌(補佐)주교는 모두 명의주교이다. 명의주교가 생기게 된 것은, 7∼8세기 및 13세기에 중동과 소아시아 및 아프리카와 스페인이 이슬람교도들의 지배아래 들어가자 그곳 주교들이 서방 교회의 주교들에게 피난가서 보좌주교가 되는 동시에 광복의 그날을 고대하며 과거의 교구 명칭을 고수한데서 비롯한다. 그 명칭은 후임 보좌주교들이 계승하여 왔는데 광복의 꿈은 십자군 원정 때 잠시 이루어졌을 뿐이다. 이러한 보좌주교를 ‘미신자들에 대한 주교’(episcopus in partibus infidelium)라고 불렀으나 교황 레오 13세는 이를 ‘명의주교’로 개칭하였다(1882년). ‘명의’란 지금은 소멸되었으나 과거에 존재했던 교구의 이름이다. 따라서 명의주교는 그 명의로 되어 있는 교구에 대하여 아무런 실질적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역대 교황은 명의주교의 제도를 응용하여 전교지방의 대목구장(代牧區長, Vicarius Apostolicus), 관리구장(管理區長, Administrator Apostolicus), 교황청 근무의 고위 성직자, 교황대사 등을 임명하였다.

11. 교구장 계승권이 있는 보좌주교와 없는 보좌주교 : 계승권이 있는 보좌주교와 계승권이 없는 보좌주교는 교구장 주교를 보필하는 명의주교란 점에서 같으나 전자는 교구장 계승권을 지니고 후자는 지니지 못한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교회법 403조). 계승권이 있는 보좌주교는 주교좌의 공석이 있을 때 즉시 교구장주교가 되므로(교회법 409조 ①) 박해시대에는 계승권이 있는 보좌주교를 임명해두는 것이 상례였다. 한국 천주교회 초기의 조선대목구(代牧區) 시대에는 모든 교구장이 계승권이 있는 보좌주교를 거닌 분들이다. 이와 달리 계승권이 없는 보좌주교는 주교좌의 공석이 있어도 관할권자가 달리 정하지 않는 한, 새 교구장 주교가 법적 취임을 할 때까지 전임교구장 재임시에 총대리나 감목대리로서 가지고 있었던 권한만 보존한다. 또 교구장 직무 대행직에 지명되지 않은 계승권이 없는 보좌주교는 법률상 부여된 자기 권리를 교구장 직무 대행의 권위 아래 행사한다(교회법 409조 ③).

12. 교구과 관구: 유일한 가톨릭 교회는 다양한 지역 단위 교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역 교회들은 주로 교구이다(교회법 368조). 교구는 주교가 사제단의 협력을 받아 사목하는 하느님 백성의 일부이다(교회법 369조). 교구장 주교는 교황의 임명이나 인준을 받은 자로서(교회법 377조 ①). 만 75세 된 교구장 주교는 사표를 제출한다(교회법 401조 ①). 인접 교구들의 지역적 사정에 따라 공동사목 활동을 증진시키고 교구장 주교들의 상호결속을 돈독히 하기 위하여 일정 지역을 관구로 통합한다(교회법 481조 ①). 관구의 설정, 폐지, 변경은 교회 최상권자의 권한에 속한다(교회법 481조 ③). 관구장 주교는 담당 관구의 대주교(Archiepiscopus)요 지휘자이다. 관구 산하 교구들에 대하여 신앙과 교회의 규율이 정확히 준수되도록 감독하고 혹시 남용이 있으면 이를 교황에게 보고하는 의무와 관구 관한 주교가 법정 순시를 게을리 하는 경우 이를 대신하는 권한 및 교구장 직무 대행이 법정 기일 안에 선출되지 않을 때 이를 임명하는 권한을 갖는다. 통상적으로 그 밖의 통할권은 가지지 않는다. 다만 관구 내 모든 성당에서 그 성당의 본 교구장처럼 전례를 집전할 수 있다(교회법 436조 ①, ③). 총대 주교(Patriarcha)난 수석 주교(Primas)의 칭호는 라틴 교회에서는 명예 특권 외에는 아무런 통할권도 수반되지 않는다(교회법 438조). (鄭鎭奭)

[참고문헌] K. Rahner, Bishops: Their Status and Function, tr. E. Quinn, London 1974 / H.W. Beyer, epischopos, TWNT Ⅱ, 1935 / F.C. Baur, Uber den Ursprung des Episcopats in der chrislichen Kirche, 1838 / H. Kung, Structure of the Church, 1965 / J. Lecuyer, tudes sur la collegialite episcopale, 1964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1981 / 鄭鎭奭, 敎階制度史,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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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한] 主 [라] Dominus [영] The Lord [관련] 야훼

하느님의 칭호로서 성서에서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약성서에서 주 혹은 스승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아돈(adon)은 왕, 남편 등 우월한 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했으나 이스라엘의 전통에서 하느님의 경칭으로, 또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인 야훼 대신으로 사용되었다. 하느님의 경칭으로 사용된 경우 그것은 하느님의 권력과 지배의 최고성을 표현하였는데 그 예로는 ‘주’(출애 23:17, 이사 1:24, 시편 4:13) ‘온 세상의 주권자’(미가 4:13) ‘모든 주인들의 주님’(시편 136) 등을 들 수 있다. 저작가 예언자 시대에 이 경칭은 야훼의 거룩한 이름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서 아모스서에 19번, 에제키엘서에 122번이나 나온다. 예루살렘도 솔로몬 궁정도 폐허가 되고(기원전 586년) 근동으로 이산된 상황에서 유태인은 회당(synagogue)에서 성서를 읽고 시편을 노래하였는데 야훼라는 하느님의 이름을 너무나 성스럽게 여긴 나머지 감히 부르지 못하여 아도나이(adonay, 나의 주님)라는 명칭으로 대신하였다. 유배기 이후 야훼라는 이름에 대한 존경은 엄격하여 이 시대의 작품인 욥기, 전도서, 에스텔기, 역대기, 시편의 제2, 제3결집에는 ‘야훼’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아도나이라는 이름조차 부르기가 황송하여 하늘, 하늘의 아버지, 그 이름 등으로 하느님을 부르기에 이르렀다. 기원전 2세기의 히브리어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역은 아도나이를 기리오스(주, kyrios, 호격은 kyrie),로, 라틴어 번역본에는 도미누스(주)로 각각 번역되었다. 이러한 호칭의 대체현상에서 신약성서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기리오스’가 지닌 의미가 특히 중요하다.

신약성서에서는 하느님 또는 예수 그리스도 대신에 호칭 ‘주’가 쓰여졌다. 바울로와 예수 자신은 창조주 성부를 ‘하늘과 땅의 주인’(마태 11:25, 사도 17:24)이라 불렀다. 하느님에 대한 명칭으로서 ‘주’는 ‘야훼’ 대신 쓴 경우가 가장 많은 데 정관사를 쓴 경우(마르 5:19, 루가 1:6 등)로 쓰지 않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부른 경우(마르 13:20, 사도 7:49 등)가 있다. ‘주의 천사’(마태 1:20), 주님의 영광(루가 2:9), 주님의 종(루가 1:38) 등의 표현에는 야훼 대신 쓴 경우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에는 예수가 주라고 불린 것은 꼭 한번 뿐이다. 4복음서에서 호격인 ‘기리에’가 가끔 쓰여지나 이는 단순히 ‘선생님’을 의미하였다. 루가는 ‘주(okupios)’를 15번이나 썼지만 이 사용법은 복음 전승상 후기시대 즉 성신강림 오래 후에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지상생활을 회고하면서 예수를 호칭하던 데에서 비롯한다고 보는 것이 보통이다. 4복음서에서 예수를 ‘주’라 부르는 것은 주로 부활 후의 사건을 서술할 때이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요한 20:28)이라는 토마스의 대답은 부활하신 사람의 아들을 주님으로 긍정하는 외침이며 요한복음의 교의가 절정에 이르는 대목이다. 부활 이전의 예수는 ‘스승’, ‘선생님’으로 불려졌고 부활하신 후 비로소 주님이라 불려진 것이다.

성 바오로에 의하면, 예수님이 주님의 지위를 획득하신 것은 자신을 낮추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므로 하느님께서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기 때문이다(필립 2:8-9). 여기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 이름은 ‘예수’가 아니라 야훼를 대신하여 부르는 ‘주님’이다. 부활로써 예수님은 죄와 죽음의 승리자요 세상의 왕자가 되었으므로 부활 이전의 사람의 아들 메시아, 선생님, 예언자 등의 호칭은 하느님에 대하여 높이 올려지신 새로운 차원에서는 어울릴 수 없었고 강생 이전에 성부와 함께 누리시던 영광을 적절히 표현하기 위해서는 주님이라 불러 마땅했던 것이다. 부활의 빛을 받아 제자들은 그분이 진실로 주님이시며 구약성서에서 야훼에 관하여 언급된 구절이 그분에게 적용된다고 이해하게 되었다(사도 2:34-36와 시편 110, 1고린 10:9, 민수 21:5, 사도 1:14-41). (⇒) 야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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