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속신부 [한] 在俗神父 [라] sacerdos secularis [영] secular priest [관련] 교구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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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세례파 [한] 再洗禮派 [라] anabaptistae [영] anabaptists

그리스어(ana+baptiso, 재세례)에서 유래. 4세기에는 이단자나 또는 박해 때 배교했던 성직자에 의해 세례 받은 자는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자를 지칭하였고, 보통은 16세기에 유아세례(幼兒洗禮)의 타당성을 부정하는 종교개혁의 분파를 가리킨다. 이들은 자녀가 자주적으로 성사의 중요성을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 세례를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 유아세례를 받은 이는 재세례를 통해서 비로소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성서를 강조하고 원시 그리스도교의 상태로의 복귀를 역설, 천년왕국의 임박을 믿거나 평화론자가 되기도 하였으며, 국가를 신뢰하지 않았다. 이들은 루터(M. Luther), 츠빙글리(H. Zwingli), 칼빈(J. Calvin)으로부터 모두 비난을 받았으며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쪽에서의 박해로 1만여명이 사망하였다. 재세례파의 주요 분파(分派)는 다음과 같다.

① 1521년 비텐베르크(Wittenberg)에서 출현한 뮌처(Thomas Munzer, 1490?∼1525)와 츠비카우(Zwickau)예언자들 : 구약성서에 기반을 둔 혁명사상을 지닌 뮌처는 농민전쟁(1525년)에 적극적으로 참가. ② 스위스형제단 : 1525년 취리히에서 신자 상호간의 세례를 교회의 친교의 기반으로 강조하며 무저항주의, 정치참여 금지 등을 설교, 스위스 계곡, 라이란트(Rheinland), 독일 서남부 등에 펴졌다. ③ 후터트(Hutterites) : 스위스 형제단의 일파, 후터(Jacob Hutter, ?∼1536)의 지휘 아래 모라비아(Moravia)에 재산의 공유에 기반을 둔 정착촌을 세운 공동체. ④ 호프만(Melchior Hoffmann, 1498∼1543)에게 영향을 받은 재세례파 : 주로 북서 독일 및 북부 저지대에 전파되었고 그리스도 가현설(假現說)과 같은 비정통 그리스도론과 천년지복의 희망을 가르침. ⑤ 1533∼1535년 사이 뮌스터(Munster)의 은거자들 : 성인(聖人)들의 교회를 설립하려고 했으며 좌익운동에 일부다처제, 관심이 첨가됨. ⑥ 메논파(Mennonites) : 시모니스(Menno Simonis, 1492∼1559)에 의해 네덜란드와 프리슬랜드에서 조직. 스위스 형제회와 관점이 유사하며 평화주의 및 무저항주의가 강조됨. 전세계로 퍼져 이 파의 신자는 현재 40만 명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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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권 [한] 財産權 [영] rights of property

재산권이란 재산적 가치 있는 물건을 사용, 수익,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여기서 재산이란 함은 인간의 수요에 합당한 물건으로서 효용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재산이기 위해서는 ① 물질성, ② 전용성(轉用性), ③ 양적 유한성, ④ 효율성(效率性)의 네 가지 조건을 가질 것을 필요로 한다. 위의 요건 중에서 오늘날 특히 중요한 것은 4번째의 효용성이며 물질성은 반드시 필요한 요건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물질이 아니면서 재산적 가치가 있는 것이 많이 있다. 예컨대 상표권, 특허권, 신용, 뛰어난 학문적 소양 등도 재산적 가치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전용성은 인간의 생활에 유용한 것으로 용도 변경할 수 있는 성질을 말하며, 유한성이란 경제학에서의 회귀성과 같은 개념이며, 효용성이란 인간에게 유용하게 쓰이며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것을 말한다. 재산은 그 형태에 따라 유체재산, 무체재산으로 나눌 수 있고, 가동 여부에 따라 동산, 부동산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재산은 우리 인류 역사의 경제제도의 변천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계몽주의사상의 발흥과 함께 재산은 생명, 자유에 대한 권리와 함께 절대 불가침의 것으로서 보호를 받게 되었다. 오늘날의 재산권은 크게 사용권, 수익권, 처분권, 소유권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사용권이란 재산적 가치 있는 물건을 그 용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고, 수익권은 그 재산으로부터 과실(果實)을 취득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며, 처분권은 재산권을 다른 사람에게 팔거나, 양도하거나 포기하거나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소유권은 이들 사용 · 수익 · 처분권 등을 모두 포함한다.

오늘날 사회가 복잡해지고 산업화 · 공업화해 감에 따라 개인의 재산이라 하더라도 절대 무제약인 것이 아니며, 어느 정도 사회적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즉 개인의 재산권의 행사는 다른 사회 공동체의 행복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사할 수 있다. 또한 오늘날 대기업 · 공사채기업 등이 산업화의 정책에 빙자하여 많은 사회구성원의 복지를 해치는 행위를 하는 것은 제약을 받아야 한다. 예를 들면 공해 배출 기업에 대한 여러 가지 규제를 들 수 있다.

구약성서에는 제7일(안식일)의 개념과 함께 제7년(안식년)의 관습이 있다(출애 23:10, 21:2). 그리고 50년마다 하인이며 채무자 등의 해방을 선포하고 가난한 자를 도우라고 하고 있다(레위 25:10.23). 또한 50년마다 농토의 소유권을 원소유자에게 되돌려주는 관습이 보인다. 신약성서에는 사물을 적절히 쓸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일용할 양식에 대한 희망이 기도의 내용이기도 하였으나(루가 9:3) 또한 부(富)의 위험을 깨우치고 있으면서도(마태 19:24) 정직한 이재(理財)를 칭찬하고도 있다(마태 25:14-30). 예수는 탐욕에 대하여 경계하고, 훌륭한 삶이란 곧 물질적 부가 아님을 깨우치셨다. 또한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부자가 스스로 그 재산을 버리고 오히려 영혼이 기쁨을 누리도록 권유하고도 있다(마태 19:21, 마르 10:17).

1891년 5월 15일 교황 레오 13세는 회칙 <레룸 노바룸>(Rerum novarum, 노동헌장)을 공표하였는데, 그는 이 회칙에서 “노동자들은 외롭고 아무런 보호도 없이 무자비하나 사용자들이 손에 넘어가서 끝도 없는 경쟁의 희생이 되었다”고 상기시키고, “소수의 대재벌이 무수한 노동자계급을 사실상 노예상태로 전락시켰다”고 개탄하였다. 모든 경제활동, 심지어 임금 계약까지도 도덕적 규준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권은 자연권으로서 국가가 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음을 천명하고, 무산노동계급에 가해지고 있는 불의 시정하기 위하여 공적 권위가 이에 간여해 줄 것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교황 비오 11세는 <콰드라제시모 안노>(Quadragesimo anno)를 공표하였는데, 그는 재산의 소유는 형평의 원칙에 입각해야 하며,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 노동자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하며, 그로 인하여 노동자들도 부지런히 일하고 저축하여 어느 정도의 재산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교황 요한 23세는 회칙 <마테르 에트 마지스트라>(Mater et Magistra, 어머니와 교사)를 통하여 특히 노동자들의 상태에 유의하고 노동계급의 사회적 안전을 위한 여러 보험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이러한 보험제도가 완비되어야 노동자들이 “미래를 고요한 마음으로 내다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참고문헌] New Catholic Encyclopedia, vol. 11, McGrawHill, 1967 / 레오 13세, Rerum novarum, 1891 / 요한 23세, 어머니와 교사, 1961 / 사회정의, 가톨릭출판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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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한] 再臨 [라] parusia Christi [영] second coming, second advent(of Christ) [그] pa

장래에 그리스도가 심판을 위해 다시 내림한다는 것을 지칭하며, ‘주님의 날’(1고린 1:8)이라고 말한다. “나는 당신들이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갑니다. 내가 가서 당신들이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돌아와서 당신들을 내가 있는 곳으로 데려 가겠습니다”(요한 14:3). 그리스도가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사도들에게 한 이 약속은, 그리스도의 강생과 구원의 위업의 완결이 될 것이다. “너희 곁을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던 그 모양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 1:11).

재림의 때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열성적인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의 어떤 자는, 얼마 안 있어, 아마도 자기들의 생존 중에 그리스도는 다시 돌아오리라는 틀린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은 그리스도교 신자의 희망의 기초이며, 교회에 의해 항상 유지되어 왔다. 재림의 조짐으로서는 복음이 온 세상에 전해진다는 것, 그리스도교적인 신앙 및 생활로부터의 배치, 가(假)그리스도의 출현 등을 들 수 있고, 또한 그 직전의 조짐으로는 커다란 천지이변이 일어난다고 하고 있다(마태 24:29 이하).

재림에 관련하여, 바울로가 디도에게 준 편지에서 다름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정신을 차리고 바르고 경건하게 살게 해줍니다. 그리고 위대하신 하느님과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그 복된 희망의 날을 기다리게 해 줍니다”(디도 2: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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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본당 [한] 載寧本堂

황해도 재령군 재령을 문창리(文昌里)에 위치한 이 본당(주보는 성가광영)이 설정된 것은 1899년 5월이었고, 창설신부로는 그해 2월에 우리나라에 입국한 23세의 르각(Carolus Le Gac, 郭元良) 신부가 부임하였다. 르각 신부는 그 해 8월에 모성학교(慕聖學校)를 개설, 1900년에는 조그마한 성당을, 1901년에는 신부사옥을 건축하였다. 1905년 2대 멜리장(Petrus Melizan, 梅履霜) 신부가 부임, 16년간 재임했으나 교세 발전은 없었다. 1921년 3대 신성우(申聖雨, 마르코) 신부가 부임, 9년간 있으면서 산하 17개 공소(교우수 600명)를 관할하는 한편, 프랑스제 종(鐘)을 들여와 설치, 성당 부근의 야산을 매입, 개간하여 신종(新種)의 포도 · 사과 · 앵두나무 등을 심어 훌륭한 과수원을 조성하였다. 1930년 몇몇 교우들로 인한 불미한 사건 때문에 교구청으로부터 본당 폐지 결정이 내려 신 신부는 신천(信川)본당 창설신부로 전임, 재령본당은 공소로 격하되어 1930년부터 신천본당의 2대 이기준(李起俊, 토마스) 신부의 관할 하에 들어갔다. 1933년 2월 방유룡(方有龍, 레오) 신부가 재령본당 재건을 위해 4대 본당주임으로 부임, 청년학생들을 중심으로 본당을 새로 일으켰다. 1936년 5대 박정렬(朴貞烈, 바오로) 신부가 부임, 사제관 겸 강당을 신축하였다. 1940년 본당에서는 교우 의사가 경영하던 삼성의원(三省醫院)을 2만 9,000원에 인수하여 9월 1일 성심(聖心)의원이란 이름으로 개원하고 그 운영은 샤르트르 성 바오로회 수녀들에게 맡겼다. 박 신부는 1942년 12월에 병사하고, 1943년 6대 김경민(金景旻, 루도비코) 신부가 부임, 1946년에는 7대 양덕환(梁德煥, 안드레아) 신부가 부임하였다.

북괴당국의 교회에 대한 박해는 날로 가중되어, 1947년 7월에는 샤르트를 성 바오로회 수녀들이 더 이상 활동 할 수 없어 월남해서 서울 본원으로 돌아왔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 북괴군이 유엔군에게 쫓겨 후퇴하던 무렵인 그 해 10월 5일 양신부는 납치되어 해주(海州)감옥에 수감되어 있다가 유엔군의 입성 직전에 피살된 것으로 보이며 시체는 찾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黃海道天主敎會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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