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 [한] 精神分析 [영] psychoanalysis

실용(實用)심리학의 한 분야로서 정신분열(精神分裂) 현상을 진단, 치료, 예방하는 방법 또는 그 과정을 총괄하는 개념이다. 이것이 통상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고 여기에는 감정억압, 퇴행(退行), 반응형성(反應形成), 감정이입(感情移入)등이 포함된다.

정신분석을 시도한 학자들은 많으나 그 중에서도 유명한 학자로는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1939),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 그리고 융(Karl Gustav Jung, 1857∼1961)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중에서 특히 프로이드에 의하여 개발된 정신질환 치료방법만을 특정하여 정신분석이라고 하는 것이 다수설이다. 프로이드는 1900년 ≪꿈의 해석≫(The Interpretation of Dreams)을 세상에 내어 놓았지만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7년 뒤에야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브륄러(Bleuler)와 융의 흥미를 끌게 되었다. 1910년 국제정신분석협회가 설립된 이래 1964년 현재 30개 가까운 협회가 설립되었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본능을 크게 생존본능(生存本能)관 사망본능(死亡本能)으로 나누고 전자(前者)는 건설적 창조적인 것으로서 인간의 자기보존본능, 생식본능이 여기에 포함되고, 후자(後者)는 증오의 감정과 같이 파괴적인 성향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특히 인간의 생존본능 중에서 성(性) 본능을 중시하고, 그것을 발달단계에 따라 구강기(口腔期), 항문기(肛門期), 생식기기(生殖器期)로 나누고 각 단계마다 인간은 특이한 심리적 성향을 가진다고 보았다. 예컨대 주저하고 수줍어하는 성향이 구강기의 특징인데, 이 단계에서는 모든 관능적 즐거움을 입을 통하여 취한다고 보았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이러한 본능이 충족되지 못할 경우를 본능억압으로 보고, 이 억눌려 있는 심리상태는 개체 자신도 깨달지 못한 채 무의식의 세계에 머물러 있게 된다고 본다. 이 억압심리가 꿈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 꿈을 해석함으로써 그 억압심리를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프로이드의 연구 방법에 대하여는 비판적인 입장이 있다. 첫째는 프로이드의 소위 무의식의 세계란 관측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것, 둘째는 인간의 정신활동은 의식의 작용인데, 의식의 작용을 말하면서 어떻게 무의식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모순이라는 것이다. 위의 반론에 대하여는 물리학에서도 예컨대 전자장(電磁場)이나 에너지양자(量子) 같은 것은 인간이 실제 관측할 수 없는 것이라는 재반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프로이드는 종교를 사회진화의 한 과정으로 보고 원래 공리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본다. 프로이드는 신의 부재(不在), 무후생(無後生), 무계시(無啓示)를 가정(假定)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추종자들과는 달리 종교를 종국적으로 부인한 것일 아니었다. 그가 유년시의 신경증(神經症)을 극복하지 못한 것에서 종교신앙의 이유를 설명하고, 어른이 된 뒤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억압된 강박 신경증으로 잠재한다는 설명은 과장된 점이 없지 않다.

프로이드의 이론에 대해 가톨릭 교회는 질보그(Zilboorg)가 형성화한 이론인 ‘기계론적 심리 병행론의 오류’(fallacy of psychomechanistic parallelism)를 범하고 있다고 보았다. ‘병행론의 오류’란 두 가지의 행동모형이 동일한 요소행동(要素行動)을 현시(顯示)하거나 또는 두 가지의 다른 행동이 동일한 행동모형으로 귀착될 때에는 그것은 동일한 심리적 구조 때문이라고 가정하는 오류를 말한다. 프롬(Fromm)은 프로이드 자신이 이러한 종류의 추론(推論)이 무용함을 알고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프로이드 자신도 종교의 기원에 대한 그의 이론이 신의 부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또한 신의 존재에 대한 문제는 심리학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라 형이상학(形而上學)이 취급할 영역인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지금까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론에 대하여 찬 · 반 의사를 공식적으로 표시한 적은 없다. 1961년에 펴낸 신앙교리성성(Holy Office)의 문서는 가톨릭 사제는 정신분석을 시험하거나 이러한 치료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언명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참고문헌] The Encyclopedia of Philosophy, vol.15-16, Macmillan and Free Press, 1972 / New Catholic Encyclopedia, vol.11, MacGraw-Hill,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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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매 [한] 鄭順每

정순매(?∼1801). 순교자. 세례명 바르바라. 정광수(鄭光受)의 누이동생. 여주(驪州) 출신. 천주께 동정을 지키기를 맹세하였으나, 다시 사회에서는 그것이 남의 비난과 화제의 표적이었으므로, 정순매는 하는 수 없이 서울에서 사는 허(許)라는 사람과 혼인했었다고 속여 머리를 얻어, 신앙생활에 전심하였다.

1795년 오빠와 함께 서울로 이사하여 주문모(周文謨) 신부로부터 바르바라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는, 오빠 · 올케와 더불어 신앙을 굳게 지키며 전교에 힘썼다. 1801년 5월 8일(음 4월 6일) 체포되어 여자의 몸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혹독한 고문을 당했으나 끝내 배교치 않자, 여주감옥으로 이송되어 1801년 7월 4일(음 5월 24일) 읍민이 모두 보는 앞에서 참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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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일기 [한] 定山日記 [관련] 이도기

이도기(李道起, 바오로)의 순교전기(殉敎傳記). 충청도 정산(定山)에서 체포되어 1798년 6월 12일 순교하였기 때문에 정산일기[뎡산일기]라 한 것 같다. ≪정산일기≫는 원래 달레(Dallet)의 ≪한국천주교회사≫(Histoire de l’Eglise de Coree)에 수록된 것이 한글로 옮겨지면서 따로 필사본으로 전해진 것 같다. 모두 54면에 걸쳐 한글로 쓴 이 책의 크기는 18.8㎝×12.3㎝이고, 현재 남아 있는 ≪정산일기≫는 블랑(Blanc, 白圭三) 주교가 소장하고 있던 것이다. (⇒) 이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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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제 [한] 正副祭 [관련] 부제

차부제가 아닌 정식부제란 말. ⇒ 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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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본당 [한] 丁峰本堂

황해도 신계군 고면 정봉리(黃海道 新溪郡 古面 丁峰里)에 위치한 이 본당의 전신(前身)은 삼차동(三次洞)본당이다. 마식령산맥(馬息嶺山脈)을 경계로 강원도 이천군(伊川郡)에 인접한 신계지방의 공소들은 오랫동안 이천군 포내본당(浦內本堂, 1896년 설정) 부이수(Petrus Boyssou, 孫以變, 베드로) 신부의 관할 하에 있었다. 1928년 5월 신계지방 공소들은 포내본당으로부터 분리되어 삼차동(셋째골)에 본당이 설정되고(주보는 성모 마리아) 은율(殷栗)본당에서 전교하던 이보환(李普煥, 요셉) 신부가 초대 본당신부로 부임하였다. 이 신부는 부임 후 첫사업으로 자모학원(慈母學院)을 설립, 원장을 겸임하면서 매년 300여원의 경비를 들여 학원을 육성한 결과 1932년 신학기에는 전임교사 2명, 학생수 60여명의 규모 있는 초등교육기관으로 발전하였다. 1933년에 부임한 김원영(金元永, 아우구스티노) 신부는 삼차동이 본당소재지로서 부적합함을 깨닫고 1935년 거기서 30리 떨어진 장터인 정봉리로 본당을 이전, 그 해 가을에 기와집 성당건물이 신축 낙성외자 11월 제9대 서울교구장 라리보(Adrianus Larribeau, 元亭根) 주교 주례로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그 당시(1937년)의 총교세는 689명, 교무금 총액은 2만 7,000원으로, 황해도내 11개 본당 중 1인당 평균 교무금 액수가 가장 많았다. 한편, 1936년 가을 성직자 피정에 참석차 상경한 칠순 나이의 김원영 신부는 서울에서 병석에 눕게 되어 다시 정봉으로 귀임치 못한 채 10월 7일 주교관에서 별세하고 3대 이순성(李順成, 안드레아) 신부가 부임하였다. 이 신부는 일제 말기와 8.15광복 후 공산치하의 종교탄압 아래서 꾸준히 공소를 지키면서 사목활동을 해오다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지 10일 후인 7월 5일 정치보위부원에게 연행당하여 해주(海州)에 이송, 수감되어 있던 중 유엔군 북진으로 공산군이 패주하던 그 해 10월 5일 동해주(東海州) 해변 모래밭에서 수감자들이 생매장될 때 학살당한 것으로 짐작된다.

[참고문헌] 黃海道天主敎會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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