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합주의 [한] 集合主義 [영] collectivism [독] Kollektivismus

인간은 국가, 회사, 학교, 가족 등 한 개 이상의 집단에 속하여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데, 집합주의는 이러한 집단 안에서 개인의 생존을 지속시키려고 하는 주의이다. 집합주의는 ‘집단주의’(集團主義)라고도 번역된다. 집단이라는 것을 개인이 모여서 이룬 통일체라고 할 때, 사회는 자체 보존책을 강구하여, 개인에게 적응과 사회적인 기능 수행, 또는 희생까지를 요구하게 되며, 가치 있는 것을 모색하거나 그 의지를 개인에게 강요할 수도 있게 된다.

인간의 자기 인식은 동족 자체를 통하여 또는 협동적인 인격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개인의 의식이나 행동은, 그 집단이 갖고 있는, 일정한 규범이나 이상에 구속받고 양식화(樣式化)되어, 어떤 집단적인 통일적인 특성을 나타내게 된다. 집합주의는 원시부족과 고대의 제국(帝國)에 있어서 기본적인 형태가 되었다. 성서에는 원시적인 집합주의에 관한 시사가 여러 군데 나타나 있는데, 이 집합주의에 대한 항거는 특히 서방세계의 경우, 두 가지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는 히브리 예언자적인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소크라테스적인 관점이다. 위 두 가지 관점은 모두 그 바탕에 사회의 요청을 초월하는 개인적인 자유와 책임성을 특징으로 삼았다. 집합주의가 개인주의보다 우세한 위치를 차지했던 예는 로마제국과 중세기의 봉건제도에서 찾아보게 되지만, 근대사는 개인주의와 집합주의 쌍방에 다 함께 강점을 두어, 개인주의가 전통과 공동체에 뿌리박은 데서 인간을 해방한다 해서 세 가지의 중요한 새로운 형태의 집합주의를 가져왔다. 즉 ① 민족주의, ② 공산주의, ③ 나치즘 등이다.

근대적인 집합주의의 어떤 것은 전체주의적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 전체주의는 인간의 생활 속에다 전제정치를 확대하기 위하여 근대적 기술과 잔인성을 사용하는, 이른바 집합주의 즉 국가지상주의의 한 형태로 되었다. 그렇지만, 현대는 개인이나 사회나 그 건재성을 위하여는 집단적인 폭정으로부터의 자유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공동체적인 인간론은 인격적 관계에서만 사람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며, 개인은 집합주의, 혹은 개인주의 어느 한쪽 면에서만 이해되는 존재가 아니고, 쌍방에서 이해된 하나의 책임적인 자유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있다.

[참고문헌] J. Maritain, The Person and the Common Good, tr. J.J. Fitzgerald, New York 1947 / J. Messner, Social Ethics, tr. J.J. Doherty, St. Louis 1949 / H. Arendt,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New York 1951 / New Catholic Encyclopedia, The catholic Univ. of America, Washington, D.C.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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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설전진 [한] 集說詮眞

중국의 여러 사상을 해설 · 비판한 서적. 중국인 신부 황백록(黃伯祿, 1830∼1909)의 저술로 1879년 상해 자모당(慈母堂)에서 4책(冊)으로 초간되었고 1885년 중간되었다. 총 4책 367장(張)의 분량에 중국 유 · 불 · 선(儒 · 佛 · 仙)의 인물과 제(諸)사상 등이 모두 62개 조목에 걸쳐 해설 비판되어 있다. 본문에 앞서 ‘자서’(自序)와 ‘서’(序), 선유(先儒) 14명을 소개한 ‘선유성씨’(先儒姓氏), 본문에 인용된 232개의 서적을 열거한 ‘인용서목’(引用書目), 그리고 ‘범례’(凡例)와 62개 조목의 ‘목록’(目錄) 등이 차례로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본문은 62조목으로 되어 있는데 각 조목은 ‘인’(引)과 ‘변’(辨)으로 구성되어 있어, ‘인’에서는 해당조목에 대한 설명이, ‘변’에서는 해당 조목에 대한 비판이 서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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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 [한] Zimbabwe

남부 아프리카 내륙에 있는 영국연방 가맹 공화국. 정식명칭은 ‘짐바르웨 공화국’이다. 동쪽은 모잠비크, 남쪽은 남아프리카, 북쪽은 잠비아, 서쪽은 보츠와나와 국경을 접한다. 면적 39만 580㎢, 인구 약 754만명(1982년 추계)에 달한다. 전체인구 중 아프리카인이 약 96%, 백인 약 25만명, 아시아인 · 혼혈인이 약 3만명으로 추산된다. 원주민은 부시맨(Bushman)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약 600년 전에는 쇼나족의 모노모타파왕조가 풍부한 금광을 바탕으로 강력한 세력을 떨치면서 짐바브웨를 수도로 삼고 번영을 누렸다. 탐험가 리빙스턴이 빅토리아 폭포를 발견한 1885년경부터 영국과 접촉이 시작되었고 영국보호령 등을 거쳐 1980년 짐바브웨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가톨릭 신자수는 1982년 현재 약 69만명, 본당은 128여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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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한] 嫉妬 [라] invidia [영] envy

죄원(罪源, capital sins)의 하나인데, 한국 천주교회 용어로는 죄원을 ‘칠죄종’(七罪宗)이라 지칭하여 본죄(本罪) 즉 우리 자신이 지은 죄의 일곱 가지 근원을 가리키며, ‘질투’도 그 중의 하나이다. 다른 사람의 우수함, 행운, 성공에 대해 슬퍼하거나 불만을 느끼는 ‘이웃사랑’에 대한 배반죄이다.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은 자신에게서 빼앗아간 것이라고 보든지, 어떤 부정이 저질러진 것이라고 느끼든지 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질투에 있어 기본적인 것은, 무언가 자신에게서 빼앗아갔다는 느낌이다. 따라서, 질투는 단순히 타인이 재능이나 재산을 소유하고 있음을 슬퍼하는 것만이 아니고, 확실히 자기가 타인과 동일하게 되고자 하거나, 타인을 앞지르려고 하는 야심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성공이 자기에게 재난을 초래하는 경우는 실지로 있을 수 있는 일이므로, 타인의 행복을 슬퍼하는 일이 모두 죄스러운 질투가 된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이기심과 냉혹에서 빚어지는 슬픔이 죄악이다(1고린 10:24, 13:4-6, 갈라 15:26, 1베드 2:1). 다른 사람을 앞지르려고 하는 야심은 칭찬하여 마땅한 경쟁심(emulation)이다.

질투의 어원은 라틴어 ‘invidia’ 또는 ‘invidere’이며, 그 뜻은 ‘곁눈질로 보다’ 또는 ‘의심쩍은 눈으로 보다’이다. 악마의 질투에 의해서 이 세상에 죄와 죽음이 왔고, 질투로부터 최초의 살해가 시작되었다. 즉 그리스도 유태인에 의하여 살해된 것이다(마태 27:18). 질투는 파괴하는 한에 있어서, 인간의 이기심의 가장 비열한 형식이다. 질투가 애덕(愛德, charity)에 반하는 죄이며, 그 자체가 중죄이지만, 질투의 기본에 완전히 동의했느냐의 여부, 또는 질투의 대상의 대소에 따라서 경중의 차가 있다. 가장 무거운 대죄(大罪)는 타인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초자연의 선물, 곧 완덕(完德)을 슬퍼하는 일이다. 사실상 그다지 중대하지 않은 선(善)에 대한 질투는 단순한 소죄(小罪)에 불과하다. 부도덕한 또는 부정한 계획과 희망이 실패함을 기뻐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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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송 [원] Gilson, Etienne Henri

Gilson, Etienne Henri(1884∼1976). 프랑스의 스콜라적 가톨릭 철학자. 파리 태생. 릴(Lille) 스트라스부르, 소르본의 각 대학교수를 거쳐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중세학 연구소장으로 있었다. 그는 항상 철학사가이자 가톨릭 철학자로서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매우 광범한 영역에 걸쳐 사실의 정확한 인정과 개개의 사상의 내적인 이해에 주력하였다. 특히 중세철학이 진정하고 높은 철학적 가치를 지녔음을 밝히는 동시에 근세철학이 중세철학에 의해 얼마나 규제당하고 있는가를 보여 준 것은 주목할 만하다. 주요저서로 ≪Le thomisme≫(1920), ≪tudes de philosophie medievale≫(1921), ≪La philosophie au moyen age≫(2권, 1922), ≪La philosophie de saint Bonaventure≫(1924), ≪Saint Thomas d’Aquin≫(1925), ≪L’esprit de la philosophie medievale≫(1932), ≪Christianisme et philosophie≫(1939), ≪realisme thomiste et critique de la connaisance≫(1939), ≪God and Philosophy≫(1941), ≪L’Etre et l’essence≫(19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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