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교구 [한] 濟州敎區

제주도 전역을 관할하는 교구. 주교좌 본당은 제주 중앙본당이며, 현 교구장은 김창렬(金昌烈, 바오로) 주교. 1971년 6월 28일 지목구로 설정된 뒤 1977년 3월 21일 정식교구로 승격되었다. 제주도에 처음으로 복음이 전해진 것은 1858년 베드로 펠릭스라는 한 사공에 의해서였다. 그는 1856년 폭풍으로 중국 광동(廣東)에까지 표류하던 중 영국배에 구조되어 홍콩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한국인 신학생을 만나 교리를 배워 입교한 뒤 1858년 제주도에 돌아와 가족, 친족, 친구 등 20여명을 입교시키고 집단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1866년 병인박해로 이 교우집단은 없어지게 되었고, 그 뒤 1899년 페이네(Peynet, 裵嘉錄) 신부가 파견되어 제주도읍 대조동과 서귀포 한논[大畓]에 본당을 창설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제주도에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1900년 라크루(Lacrouts, 具瑪瑟) 신부가 부임하여 전교에 힘쓴 결과 1901년 제주교난이 일어나기 전까지 교우수 242명, 예비자 700여명으로 발전했으나 이러한 비약적인 발전은 자연 제주도민과 마찰을 낳게 되어 결국 1901년 5월 제주교난이 일어나 700여명의 교우가 학살당하는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피해 속에서도 라크루 신부, 김양홍(金洋洪, 스테파노) 신부는 제주지역의 교회 재건을 위해 열심히 노력, 본당들을 재정비하고 1909년 제주읍내에 신성여학교(晨星女學校)[신성여자중고등학교의 전신]를 설립하여 교육사업을 전개하였다. 1915년 신부수의 부족으로 두 신부가 제주도를 떠나게 되자 제주지역은 목포본당 관할 공소로 격하되었다가 1924년 이필경(李弼景, 안드레아) 신부가 부임함으로써 다시 본당으로 재출발하게 되었고, 1933년부터는 전남지역에 진출한 아일랜드의 성 골룸바노회 선교사들이 부임하여 사목하기 시작하였다. 그 뒤 1937년 광주 지목구의 설정과 함께 대구교구에서 광주지목구로 편입되어 전교에 활기를 띠게 되었으나 광복 후 1948년 공산주의자들의 제주반란산건, 6.25전쟁 등으로 다시 정체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1950년 광주교구장에 임명된 헨리(Henry, 玄海) 주교의 열성적인 노력으로 1952년 신창본당, 1954년 한림(翰林)본당, 1958년 모슬포본당이 창설되고 이어 1961년 한림 금악면에 농촌소득증대를 위한 이시도로목장이 설립되어 개척농가 조성사업이 전개되었다. 1968년 동문본당, 1970년 광양본당이 창설되는 한편 1959년 순교복자 성직수도회, 1960년 성 골룸바노수녀회, 1978년 성체회 등이 제주도에 진출하게 되었다.

1971년 6월 21일 광주교구에서 분리되어 제주지목구로 설정되면서 제주도 전교에 공이 큰 광주교구장 헨리 대주교가 초대 교구장에 임명되었고, 1977년 3월 21일 다시 주교구로 승격되어 박정일(朴正一, 미카엘) 주교가 2대 교구장에 부임하였으며, 이어 1983년 11월 21 김창렬 신부가 3대 교구장에 임명되어 이듬해 1월 6일 주교로 성성되었다. 1983년말 제주교구의 교세는 다음과 같다. 신자수 1만 9,935명, 본당 12개소, 공소 21개소, 한국인 신부 9명, 외국인 신부 6명, 한국인 수사 2명, 한국인 수녀 28명, 외국인수녀 8명, 남자수도단체 1개, 여자수도단체 7개, 병원 1개소, 양로원 1개소, 유치원 2개소,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 주일학교 33개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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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관덕정 [한] 濟州觀德亭 [관련] 관덕정

⇒ 관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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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편 [한] 提正編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그라비나(Gravina, 賈宜睦, 1603∼1662)의 저술로 1659년 6권으로 간행되었다. 제1권에서는 하느님의 속성과 천지창조(天地創造)에 대해, 제2권에서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에 대해, 제3권에서는 상선벌악(賞善罰惡)에 대해, 제4권에서는 은총(恩寵)에 대해, 제5권에서는 신망애(信望愛) 3덕(三德)에 대해, 제6권에서는 칠성사(七聖事)와 교회의 계율에 대해 각각 논하고 있다. 1870년 토산만(土山灣)에서 재편집되어 3권으로 재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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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정전 [한] 第二正典 [라] deuterocanonicus [영] deuterocanonical

초대 그리스도교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신 · 구약성서의 일부를 말한다. 구약성서에서는 토비트, 유딧, 지혜서, 집회서, 바룩, 마케베오 상 · 하와 에스델(10:4-16 · 24), 다니엘서(3:24-90 · 13 · 14)의 일부분이 이에 해당된다. 또 신약성서에서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야곱의 편지, 베드로의 둘째 편지, 요한의 둘째 편지와 셋째 편지, 묵시록과 마르코의 복음서 중 16:9-20이 이에 해당된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들을 모두 정전(正典)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측에서는 구약성서의 제이정전과 마르코복음 16:9-20을 외경(外經)이라 하여 정전으로 인정치 않고 있다.

[참고문헌] H. Oppel, Kanon, Zur Bedeutungsgeschichte des Wortes und seiner lateimischen Entsprechungen, Leipzig 1937 / L. Wenger, Canon im den romischen Rechtsquellen und im den Papri: Eine Wortstudie, Philosophist, 1942 / K. Rahner, Inspiration in the Bible, tr. C.H. Hunkey, Now York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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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의실 [한] 祭衣室 [라] sacristia [영] sacristy

교회 전례에 쓰이는 제구(祭具)와 제의(祭衣)를 보관하고 성직자가 제의를 갈아입는 방. 지성소(sanctuary)에 접해 있으며 보통 한 쪽문은 지성소로 통해 있고 다른 쪽 문은 교회 주요부로 연결되어 있다. 제의실은 400년경에 시리아에 최초로 소개되어, 중세에 주임제단 뒷부분 혹은 양편에 지어졌다. 큰 수도원의 성당이나 대성당에는 고위 성직자와 하급 성직자, 평신도 시종(복사)을 위해 각기 독립된 제의실이 있었다. 제의실에는 제의를 넣어 둔 옷장과 벽장, 제의를 위한 탁자, 전례에 쓰이는 책들, 제구들, 손을 씻는 대야, 십자고상, 기도대 등이 있다. 초기시대에 제의실은 성체를 영구히 보관하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는데, 오늘날까지도 종종 성 금요일에서 성 토요일 전야까지는 감실을 비운 뒤 성체를 제의실에 보관하기도 한다. 제의실은 너무 작아서는 안 되고 채광이 잘 되면 그 안에 보관되는 물건들의 귀중함으로 인해 안전하게 보호되어야 한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전례 개혁을 실현했던, 추기경 성 가롤로 보로메오(St. Charles Borromeo, ?∼1584)는 제의실 설비에 관한 방대한 훈령을 썼는데 그 대부분은 능률과 편리함의 필요성을 지시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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