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국(1921∼1950?). 평양교구 소속 신부. 세례명은 바오로. 평양시 관후리(平壤市 舘後里)에서 출생. 동성상업학교 을조(東星商業學校乙組)[소신학교]와 덕원(德源)신학교에서 사제 수업을 마치고 1945년 12월 27일 사제서품을 받았다. 서품 후 평양교구장 비서 겸 교구 당가로 임명되어 일제 때 징발된 관후리 성당을 찾기 위해 북한 공산정권과 실무자로서 끈질기게 협상, 관후리 성당을 다시 찾았고, 1946년 6월부터 1948년 10월까지 기림리(箕林里)본당 주임신부를 겸임하였다. 1948년 10월 진남포(鎭南浦)본당 주임신부로 전임되어 사목하던 중 1950년 6월 24일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비밀리에 체포되었고 그 뒤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체포된 일부 젊은 성직자들과 함께 자강도(慈江道)[북한 공산정권이 평안북도 일부를 분할하여 설정한 도]의 금광에서 강제노동을 한다는 소식이 있으나 확인할 길은 없다.
조만과 [한] 早晩課 [관련] 만과 조과1
성무일도(聖務日禱)의 아침, 저녁 기도와는 별개의 기도로, 교우들이 아침과 저녁에 바치던 조과(早課)와 만과(晩課)를 통칭하여 부르는 말. ⇒ 조과1, 만과
조막달레나 [한] 趙∼
조막달레나(1807∼1839).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동정녀(童貞女). 성녀 이 가타리나의 딸. 시골에서 태어나 어려서 모친에게 천주교를 배워 입교하였다. 7, 8세 경 외교인 친척들의 천주교 반대로 외가(外家)에 가서 살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고, 18세 때 혼담이 오가자 수정(守貞)을 결심하고 상경, 교우들의 집을 전전하며 생활하였다. 그 후 5∼6년은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다시 고향에 내려가 모친을 봉양하며 외교인 아이들을 가르치고 죽어가는 어린이들에게 대세(代洗)를 주는 등 열심히 교회 일을 도왔다. 그러던 중 1838년 말 고향에서 사사로운 박해가 일어나자 모친, 두 동생과 함께 가산을 버리고 서울로 피신하여 조 바르바라라는 여교우집에 머무르고 있던 중 1839년 6월 모친 그리고 주인집 세 모녀(母女)와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모친과 함께 한차례의 신문과 주뢰형을 받고 별다른 형벌과 고문없이 포청 옥에 갇혔으나 옥이 워낙 비좁고 불결하여 체포된 지 3개월 째 되던 9월 어느 날 염병에 걸려 옥사(獄死)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조르게 [원] Sorge, Reinhard Johannes
Sorge, Reinhard Johannes(1892∼1916). 독일의 가톨릭 극작가. 시인. 종교적 · 표현주의적 희곡 ≪거지≫(Bettler, 1912)를 알려졌고, 가톨릭으로 개종 후 소수의 신비적 작품을 남기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하였다. ≪그대들 개심하여라≫, ≪하늘의 어머니≫ 등과 개종기(改宗記) ≪우리들의 길≫을 저서로 남겼다.
조력성총 [한] 助力聖寵 [라] gratia actualis [영] actual grace [관련] 도움의 은총
인간의 영혼 안에 머물러 있는 은총이 아니고, 인간행위의 어느 시점에 지능과 의지를 내적으로 비추고 움직여 줌으로써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도록 돕는 은총이라 하여 조력성총이라고 불렀으나, 오늘날에는 도움의 은총이란 용어가 이를 대신하여 애용되고 있다. (⇒) 도움의 은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