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는 강원도 명주군 주문진읍 교항리(江原道 溟洲郡 注文津邑 橋項里). 1923년 이길윤(방지거) 신부가 경성(京城)교구 부주교의 명으로 당시 강릉군 신리면 교항리(江陵郡 新里面 橋項里, 현 명주군 주문진읍 교항리)에 가옥 1채를 매입, 수리하고 동년 11월 본당으로 정식 발족하였다. 당시의 관할공소는 강릉군 7개소, 양양군(襄陽郡) 2개소, 평창군(平創郡) 16개소, 정선군(旌善郡) 3개소, 영월군(寧越郡) 2개소 도합 30개소에 교우 300여명이 있었다. 그 후 교우들의 도시진출과 전교부진으로 1931년 6월 본당을 강릉읍으로 이전, 향후 20년간 주문진본당은 주문진공소로서 강릉본당에 속하고 있었다. 1951년 성 골롬바노회 소속의 3대 주임 버크(Patrick Burk, 元) 신부에 의해 강릉본당에서 분리 · 설정, 다시 주문진본당으로 발족하였다. 1953년 부임한 한국인 본당주임 윤예원(尹禮源, 토마스) 신부가 1954년 3월 130여평의 성당을 신축하였고, 다시 1957년 5대 주임 최창규(바르톨로메오) 신부에 의해 현 성당으로 개축되었으며, 1973년 10대 주임 우 엠마누엘 신부에 의해 현 사제관이 개축되었다. 현재 14대 주임 최병철(崔炳喆,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사목하고 있고(1983.7∼), 본당주보는 루르드의 성모, 신자는 1,114명(1984년 현재), 공소는 3개소이다.
주문모 [한] 周文謨
周文謨(1752∼1801). 한국에 입국한 최초의 외국인 신부. 순교자. 세례명 야고보. 포르투갈 이름은 벨로조(Vellozo). 중국 소주(蘇州)의 곤산(崑山)현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고모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글을 읽으며 과거(科擧)를 준비했으나 여러 번 낙방하고 20세에 결혼하였다. 그러나 결혼 3년만에 아내를 잃고는 홀로 살다가 장년(壯年)에 이르러 북경신학교에 들어가 신부가 되었다. 1793년 조선입국에 실패하고 병사한 중국인 오(吳) 신부[포르투갈 이름은 도스 레메디오스]의 뒤를 이어 조선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1794년 12월 3일 윤유일(尹有一)과 지황(池璜)의 안내를 받아 입국하여 서울 북촌(北村)[지금의 계동] 최인길(崔仁吉)의 집에 도착, 조선에서 최초로 성사를 집전하였다. 입국 후 6개월 동안은 아무 어려움 없이 성직을 수행했으나 신입교우 한영익(韓永益)의 밀고로 자신의 입국 사실과 거처가 알려져 체포령이 내리자 곧 강완숙(姜完淑)의 집으로 피신하였고, 이로 인해 윤유일과 지황이 체포되어 1795년 6월 28일 순교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체포의 위험 속에서도 열심히 전교에 힘을 쏟아 여주(驪州), 고산(高山), 공주(公州), 온양(溫陽), 내포(內浦), 남포(藍袍) 등 지방을 순회 전교하며, 교리연구회인 명도회를 조직하여 정약종(丁若鐘)을 회장에 임명하고 황사영(黃嗣永), 홍필주(洪弼周), 현계흠(玄啓欽), 홍익만(洪翼萬) 등을 명도회의 하부조직인 육회(六會)의 책임자로 임명하여 이들로 하여금 교리연구와 전교에 힘쓰게 하였다. 그뿐 아니라 바쁜 사목일정 중에서도 교리서 · 신심서의 저술활동을 벌여 ≪사순절과 부활절을 위한 안내서≫라는 고해지침서를 저술하였고, 또한 강완숙을 여회장에 임명하여 여교우들의 신앙 활성화를 도모하는 한편 강완숙의 안내를 받아 폐궁(廢宮)에 살고 있던 은언군(恩彦君)의 처 송(宋)씨와 며느리 신(申)씨를 입교시켰다. 이러한 열성적인 노력으로 1801년 조선 교회는 교우수 1만명을 헤아리는 교회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해 신유(辛酉)박해가 일어나자 중국으로 피신하려고 황해도 황주(黃州)까지 갔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와 4월 19일 의금부에 자현(自現), 5월 13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軍門梟首)형으로 순교하였다.
[참고문헌] 黃嗣永帛書 / 邪學懲義(영인본), 韓國敎會史硏究所, 1977 / 崔奭祐, 邪學懲義를 통해서 본 初期天主敎會, 敎會史硏究, 第2輯, 韓國敎會史硏究所, 1979.
주모경 [한] 主母經
‘주모’(主母)란, ≪한불자전≫(韓佛字典)에 따르면, ① 천주의 어머니 ② 지극히 성스러운 동정녀(童貞女)를 지칭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새우리말 큰사전≫(신기철 · 신용철 편저, 서울 삼성출판사, 1974)에는 천주교 용어로서 ① 천주와 마리아 또는 ② 예수와 마리아를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주모경’이라는 용어에 있어서는 ≪한불자전≫도 이를 천주와 성모 마리아의 경문으로 해석하여, ‘주(主)의 기도’(Our Father)와 성모송(聖母誦)을 말한다고 밝혔다. 옛날 말로는 ‘주의 기도’는 ‘천주경’(天主經)이라 했고, 성모송은 ‘성모경’(聖母經)이라 했으므로 두 가지를 합쳐서 주모경으로 호칭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주모 [한] 主母 [관련] 마리아
옛 한국 교회에서 성모 마리아를 부르던 말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라는 뜻에서 이렇게 불렀다.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말이다. (⇒) 마리아
주명 [한] 主命 [관련] 섭리
옛 한국 교회에서 사용하던 말로, 현재 사용되고 있는 섭리(攝理)라는 말과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었다. (⇒) 섭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