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한] 創世紀 [라] Liber Genesis [영] Book of Genesis

구약성서의 모세5경 중의 제1서. ‘율법’에 속한다. ‘창세기’란 명칭은 그리스어역 구약성서인 ≪셉투아진타≫(Septuaginta)의 “이것이 천지창조의 유래이다”(창세 2:4)에서 온 것이다. 히브리어 성서에서는 이 책의 첫마디 ‘처음에’를 그 명칭으로 쓰고 있다.

1. 편집 : 창세기는 단순히 자료를 모은 것이 아니고 거기에는 통일성 있는 의도를 엿볼 수 있으며 전체 이야기가 일정한 기획에 의하여 구성돼 있다. ① 천지창조의 유래(2:4, 이것은 원래 1:1에 놓였던 것), ② 아담의 전기(5:1), ③ 노아의 전기(6:9), ④ 셈, 함, 야벳의 전기(10:1), ⑤ 셈의 전기(11:10), ⑥ 데라의 아들(아브라함)의 전기(11:27), ⑦ 이시마엘의 전기(25:12), ⑧ 이사악의 전기(25:19), ⑨ 에사오의 전기(36:1), ⑩ 야곱의 전기(37:2). 편자(編者)는 천지창조에서 시작하여 인류초기의 역사로부터 여러 민족의 기원(起源)에까지 이르고, 독자의 주의를 서서히 이스라엘로 집중시켜 간다. 여러 국민은 점차 이야기 속에서 제외되어 오직 계보(系譜)만이 남겨진다. 이리하여 제10장에서 많은 계보를 소개한 후에 노아의 자손은 셈의 혈통을 제외하고(11:1 이하), 나머지는 모조리 제외하고 만다. 25장 12∼18절에서 이시마엘은 사라져 버리고 이사악만이 남는다. 36장 이하에서 에사오와 그의 자손의 기사는 버려지고 오직 야곱과 그의 자손만인 남는다. 창세기에서 이렇게 빼고 남기는 것은 편집자의 의도에서 나온 것이며, 거기에 이스라엘 민족의 선민사상(選民思想)을 엿볼 수 있다.

2. 내용 : 이 책은 1, 2부 50장으로 나뉘어 있으며, 제1부 만물의 기원(1:1-11:9)은, ① 천지의 창조와 안식일제도(1:1-2:4a), ② 낙원의 창조와 상실(23:4b-3:24), ③ 문명의 개시와 타락(4:1-6:4), ④ 노아와 그의 시대(6:5-9:29), ⑤ 여러 민족의 기원, 그 흩어짐과 언어의 혼란(10:1-11 · 9)으로 되어 있다. 제2부 성조(聖祖)들의 역사(11:10-15-26)는, ① 아브라함의 전기(11:10-25:28), ② 이사악과 야곱의 전기(25:19-36:43), ③ 요셉의 전기(37:1-50:26)로 되어 있다.

3. 역사성 : 이 책의 원시사(原始史)에는 인류 최고(最古)의 시대부터의 전승(傳承)이 포함되어 있다. 낙원이나 대홍수와 유사한 전설이 다른 민족들에게도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역사적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에 타민족의 원시시대 전설과는 그 신비적 다신론적 특질의 결여, 그 보편주의 및 윤리적 성격에 의해서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창세기 제1장의 창조기록은 고대의 세계상(世界像)에 입각하고 있어서 교훈적이다. 종교적으로 특수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선민의식, 역사적 사건 및 변천에 대한 그들의 관심, 고대에 있어서의 기억의 충실, 그리고 조상들에 대한 묘사에서 그들의 장점뿐 아니라, 그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벌받은 원인인 그들의 결함은 물론 죄악까지도 빠짐없이 언급한 점, 그리고 이야기 속에 결문(缺文)이 있는 점 등은 모두 본질적으로 조상들의 이야기가 신빙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실제로 그 당시의 역사적 배경 및 법률관계가 창세기의 서술과 일치한다는 것은 동방연구가 증명하고 있다. 기원전 2000년경 팔레스티나는 아람인(人)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것(창세 14), 아브라함이란 인명(人名)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이집트의 풍습은 요셉 이야기 속에서 정확히 묘사되어 있다. 기원전 1900년경의 것인 이집트의 기념비에는 이주한 셈인(人)이 묘사되어 있다. 그러니까 창세기 기술 속에 어떤 잘못이 발견된다면, 그것은 후에 제2의 전승이 부가된 것이라고 설명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결정적인 점에서 사실과 일치되어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B. Vawter, A Path through Genesis, New York 1956 / A. Clamer, La Genese, Priot-Clamer Bible, Paris 1953 / M. Noth, Uberlieferungsgeschichte des Pentateuch, Stuttgart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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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미사 [한] 唱~ [라] Missa cantata [영] chanted Mass(High Mass)

사제가 부제나 차부제 없이 성가대와 함께 미사 고유문 뿐만 아니라 파견 선포까지 노래로 하는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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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본당 [한] 昌寧本堂

경남 창녕군 창령읍 송현동 222번지 소재 마산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성모 무염시태. 1911년 경주 최씨 가문인 최징씨가 대구지방을 자주 왕래하면서 드망즈(Demange, 安世華) 주교와 친교를 맺어 복음을 받아들이고 창녕 환곡[고리실]에 옮겨 살며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뒤 끊임없이 교회 형성을 위한 활동을 하던 중 1929년 창령읍 교하동 박덕구(알퐁소) 노인 집에서 공소를 차리고 마산의 베르몽(Jules Bermond, 睦世榮) 신부가 처음으로 성사를 집행하였다. 당시 권평식(요셉)이 공소회장식을 맡고 전교 활동에 진력하였다. 4년 후인 1933년 대구의 드망즈 주교, 윤 신부, 베르몽 신부 등의 지원과 신자들의 헌신적인 협조로 대지 59평을 매입하여 공소를 세우고 공소회장에는 김시우(시몬)가 선임되었다. 그 뒤 대구 교구청의 지원으로 현 주소지의 개인 저택을 매입했으며 1949년 8월 8일 함안 가양본당에서 분리, 창령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초대 본당 주임으로 안달원(安達遠, 베드로) 신부가 부임하게 되었다.

초대 안달원 신부 이래 많은 사제와 신자들이 복음 전파와 지역사회 발전에 힘쓴 결과 현 12대 신정목(愼貞穆, 우르바노) 신부에 이르기까지 유치원, 수녀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성모병원을 경영하고 있다. 3개의 공소를 관할하고 있으며 1983년 현재 신자수는 1,148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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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예절 [한] 懺悔禮節 [영] rite of repentance

죄의 고백을 위해서나 생활 개선을 위해서 신자들이 공동으로 참회하는 예절. 범죄는 자신을 멸망시킬 뿐 아니라 하느님께 모욕을 끼치고 교회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고백성사는 본질상 인격적, 사회적, 교회론적 차원을 지니며 그 효과는 죄인과 하느님과 교회간에 화해를 시키는 것이다(교회헌장 10 참조). 이 화해를 가져오는 핵심이 되는 것이 참회이다. 그러므로 이는 개인적인 행이라기보다 오히려 공동체적인 행위이다 참회는 또한 묵은 사람에 대한 승리이며 그 결과로 범죄행위와 범죄습성을 모두 제거해야할 뿐 아니라 우리의 품성과 행위를 온전히 새롭게 변형시켜야 한다. “일어나 내 아버지께로 돌아가리라”(루가 15:18). 참회예절은 참회의 공동체적인 명을 실천하고 생활 개선적인 이념을 구현하며 성사로서의 고백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 예절을 “성사적 고백과 사죄와 같은 것으로 혼동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성사적 일괄사죄에 관한 사목규정 10). 만일 예절 중에 개별고백을 하였다면 그 사제에게서 개별사죄를 받아야 한다.

참회예절은 그 이념을 살려 다양하게 행할 수 있으나 주된 부분들은 말씀의 전례, 양심성찰, 개별고백과 개별사죄 혹은 합동사죄, 감사의 기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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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 [한] 懺悔 [영] repentance

참회의 일반적인 의미는 과거의 범죄사실을 기억하고 현재 죄의 상태에 있음을 느끼는 인식적 요소와 죄를 지었음을 슬퍼하고 죄가 사(赦)해지기를 원하면서 죄를 혐오하는 의지적 요소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참회는 죄악의 상태에서 벗어남을 목적으로 하므로 구세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테르툴리아노 등 교부들의 저서에서 참회에 대한 가르침을 볼 수 있다.

참회는 한 인간이 개인적인 죄의 용서를 받아 의화(義化)되는 경우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관하여 역사적으로 문제되었다.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의 행위와 교회의 대표자인 사제의 사죄 및 통회, 고백, 보속을 하는 참회자의 행위가 필요한데, 이 3자의 행위 중 죄의 용서라는 효과를 가져오는 실질적인 요건은 어는 행위인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참회자의 행위는 성사의 재료(materia)요 사제의 사죄는 형상(forma)인데, 양자는 동등하게 죄의 용서를 가져오는 유효한 원인작용을 이룬다. 전체과정에서 최종적인 원인작용은 하느님께 속하므로 성사적 표시를 도구적(道具的) 원인작용의 행사라 한다. 한편 성사를 받으려는 뜻(in voto)을 겸한 상등통회(contritio)를 한 참회자는 고해성사의 예식을 받기 전에 죄의 사함을 받았음을 인정하였다. 성사는 예식 자체에 국한되는 개념이 아니라 발전해 가는 상태로 보아야 하므로 참회자의 첫 행위에서 성사가 시작되어 성사 예식 자체에서 절정에 달한다는 것이다. 참회자가 하등통회(attritio)의 태도를 가지고 성사를 받을 경우에는 성사 자체가 은총을 내리기 전에 참회자로 하여금 상등통회의 태도를 갖게 함으로써 죄사함을 받고 의화된다. 이것이 토마스의 견해이며 이 입장을 상등통회주의(contritionismus)라 한다.

고백성사와 관련하여 상등통회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것은 8세기부터 12세기 초엽까지 스콜라주의 이전 학자와 초기 스콜라주의 학자에 의해서였으나 상등통회와 대비하여 하등통회라는 말을 쓰면서 양자의 구별을 처음으로 뚜렷이 한 사람은 릴의 알란(Alan of Lille, 1202년)이었다. 그에 따르면, 상등통회와 하등통회의 구별 기준은 참회가 하느님 중심적인 사랑에 의하여 형성되었느냐 아니냐, 그리고 죄와의 결별이 완전하냐 불완전하냐 하는 점에 있는데 토마스도 대체로 이 구별을 따랐다.

위와 같은 토마스의 견해에 대하여 둔스 스코투스(1308년)와 그 후계자들은 의화를 위한 두 가지 수단을 주장했는데, 성사 밖에서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하등통회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죄의 사함을 얻기에 부족한 하등통회의 태도를 가진 참회자는 성사 내에서 성사의 은총이 그 부족을 보충함으로써 죄의 용서를 얻으며 의화된 뒤에도 하등통회의 태도는 그대로 남는다. 왜냐하면 하느님과 교회는 함께 성사에 효력을 갖기 때문에 참회자에게 요구되는 준비가 경감되며 이는 하느님의 자비의 표시일 뿐 아니라 성사의 실익(實益)이 이 점에 있다고 한다. 이 입장을 하등통회주의(attritionismus)라 한다. 한편 오캄 등 유명론자들은 심리적 동기를 기준으로 형벌이 두려워 뉘우치는 것을 하등통회,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뉘우치는 것을 상등통회라 하였다.

트리엔튼 공의회는 상등통회와 하등통회의 구별을 가톨릭 교리로 인정하는 한편 두 학파의 관점을 모두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였다. 그 이후 양 학파는 평화롭게 공존해 온 셈이다. 토마스는 의화의 한 가지 방법만을 강조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전례적 생활과 정신적 생활의 일치를 보였고 참회자의 행위와 사제의 사죄를 대립시키지 않고 조화시킴으로써 고해성사 신학에 주요한 공헌을 한 반면, 스코투스적 관점의 과장된 표현은 마술주의의 위험과 인간의 일상생활과 전례적 생활의 분리에로 이끌어 간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참고문헌] 유봉준, 참회와 화해, 司牧, 54호 / T.A. Porter, Repentance, New Catholic Encyclopedia vol.12, McGraw-Hill,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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