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본당 [한] 曾坪本堂

주보로 ‘치명자의 모후’를 모시는 이 본당은 1919년 장호원본당(오늘의 감곡)에서 분할되어, 처음에는 충북 괴산군 소수면 고마리(叩馬里)에 성당을 짓고, 1920년 윤의병(尹義炳, 바오로) 신부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창설되었다. 고마리에 12년 동안 주재하면서, 윤 신부는 1921년에 사제관을 신축하고, 1923년 숭애의숙학교를 설립하였으며, 1927년에는 수녀원까지 지었다.

그러나 ‘고마리본당’은 지리적으로 부적당한 위치였으므로 1936년 4월에 폐지되어 공소로 되고, 그 대신 증평본당이 신설되어 정원진(鄭元鎭, 루가) 신부가 초대 본당신부로 부임하였다. 그는 1937년 괴산군 증평읍 장동(槐山郡 曾坪邑 莊洞)에 30평의 한식 초가성당을 세웠는데, 이곳은 읍내 증평역에서 동쪽으로 약 1㎞ 떨어진 높은 지대이고, 당시 신자총수는 1,092명이었다. 정원진 신부가 1941년 6월까지 전교한 뒤, 심재덕(沈載德, 마르코) 신부가 잠시 부임하였다가 1941년 11월에 떠난 뒤, 일제는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그 발악의 여파로 이 본당도 약 4년간 공백기를 겪었다.

1945년 광복을 맞으면서 김유룡(金裕龍, 필립보) 신부가 부임하여 다시 교회를 일으켜 1948년 3월까지 사목하고, 그 후임인 이태준(李泰俊, 야고보) 신부가 1950년 5월까지 전교하였는데 6.25동란을 당하여 약 4년간 충주 야현본당의 공소로 되기도 하였다. 1955년 8월 15일 메리놀회 주노(M. Zunno, 朱) 신부를 맞아 다시 본당으로 부활하였고 이듬해에 숙원이던 현대 고딕식 100평의 성당을 지어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이어 사제관과 수녀원도 짓고, 메리놀회 수녀원 분원이 설치되어 수녀 3명이 파견되었다. 1958년 청주교구로 편입되고, 그 해 12월에는 교세의 확장으로 괴산본당을 분할, 독립시켰다. 1962년에 강당도 지었다. 1983년말 현재 이 본당은 코스타(Carl A. Costa, 吉) 신부가 주임을 맡고 있으며 신자총수 2,610명에 4개의 공소를 관할하고 있다. 그 동안 증평본당의 주임을 맡았던 신부는 다음과 같다. 심 마르코, 김유룡, 이태준, 주노, 커피(J. Coffey, 高), 고필, 킨(A. Keane, 김인선), 몬튜어(A. Montuor, 문금산), 굴레(D. Goulet, 구재국), 이중권(李仲權, 마태오), 곽동철(郭東喆, 요한) 신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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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성관 [한] 證聖官 [라] promotor fidei [영] promotor of the faith [관련] 악마의 변호인

교회의 법정에서 봉사하는 성직자, 혹은 소송절차에서 공익을 도모하는 교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검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시성 · 시복절차에서는 악마의 변호인이라 불리나 임무의 실질은 오히려 하느님의 변호인 혹은 교회의 변호인으로서의 역할이다. (⇒) 악마의 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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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자 [한] 證據者 [라] confessor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신앙고백함으로써 의연한 신앙의 자세를 견지한 사람들을 증거자라 한다. 증거자에 대한 개념은 시대에 따라 약간씩 변해왔다. 초대 교회시대에는 순교자와 증거자의 개념이 명백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즉 이교도의 재판관 앞에서 신앙을 고백하다 순교를 당한 사람들을 순교자라 불렀고, 신앙고백 때문에 고문과 투옥 등 온갖 박해를 받긴 했지만 순교를 면한 사람들을 증거자라 불렀다. 박해가 끝난 4세기 후부터는 수도생활을 통한 수덕(修德)에 세인들의 관심이 집중됨에 따라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증거자라고 불렀다. 그 뒤 어느 때부터인지 정확하지 않으나 모든 성인들을 증거자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성 금요일에는 증거자를 기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천주교의 선교 초기에 많은 숫자의 순교자와 함께 증거자가 나왔는데 특히 신앙 때문에 옥고를 당하는 사람들을 증거자로 호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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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가리야의 노래 [라] Benedictus [관련] 찬가

즈가리야(Zechariah)가 자기 아들 세례자 요한의 탄생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는 노래(루가 1:68-79). 9세기부터 성무일도(聖務日禱)에 삽입되었다. (⇒)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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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가리야서 [한] ∼書 [라] Prophetia Zachariae [영] Book of Zacharia

이사야 예언서와 마찬가지로 즈가리야 예언서 역시 한 사람의 동일한 작품으로 볼 수 없다. 즈가리야서 제1부(1-8장)는 예언자 즈라리야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작품이나, 제2부(9-14장)는 즈가리야보다 훨씬 후대의 어떤 작가 – 일반적으로 제2 즈가리야라고 칭한다 – 가 집필한 작품으로 본다. 따라서 우리는 본 즈가리야서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제1부 : 1-8장] 1. 예언자 즈가리야 : 이또의 손자로 소개되는 즈가리야는 예언자 하깨와 동시대 인물로서, 기원전 520년 8월 또는 9월부터(1:1) 518년 11월까지(7:1) 활동했던 예언자다. 하깨가 종교적인 이상(理想)을 불러일으키는 데 헌신했다면(하깨 1:14), 즈가리야는 성실성에 대한 호소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약속을 통해서 이 이상을 실현시키는데 최선을 다한 예언자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성전의 역할을 그처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단식문제에 대한 답변 장면(7:1-3, 8:18-19), ‘거룩한 땅’과 성성(聖性)에 대한 깊은 관심(2:16, 5:1-4.5-11) 등으로 미루어 즈가리야의 신분이 사제였음이 거의 확실하며(느헤 12:16 참조), 또한 옛 예언자들의 정신적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1:3-6, 7:4-14, 8:16-17).

2. 내용 : 1인칭 일기체로써 8개의 현시(顯示)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즈가리야서 제1부는 본 현시들을 당대의 사건들과 연결시켜 주는 복합 신탁(神託)으로 양분된다. 신탁 모음집으로 볼 수 있는 2:10-17절은 이제 유배민들이,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현시(2:1-9)에 명시된 새로운 조건들을 갖춘 그 도시를 다시 맞이하도록 호소하고 있다. 제3장 중 3, 8, 9절은 대사제 여호수아에게 특권을 부여한 데 뒤이어(3:1-7 · 9)그에게 내린 특별 언약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4:6a-10b는 새 공동체의 지도자들에 관한 현시(4장 전체) 안에 삽입된 부분으로서 집정관 즈루파벨에게 용기를 주는 말씀을 담고 있다.

균형 있게 짜여진 본 작품의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현시들은 메시아적 재건을 위한 준비단계를 제시해 주고 있으며, 한가운데 자리 잡은 두 현시들은 새로운 공동체의 통치체제에 관계되며, 나머지 세 현시들은 궁극적인 재건을 위한 조건들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러나 지 중 네 번째 현시가 문학적이면서도 신학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뒤이어 나오는 다섯 번째 현시가 ‘기름부어 성별한 두 사람’을 동등하게 평가하고 있는 반면에 네 번째 현시에서는 사제에게 보다 우월한 자리를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다윗 왕가의 즈루빠벨이 그 자취를 감춘 뒤 부상하게 된 사제직의 중요성을 잘 대변해 주고 있는 부분으로서 뒤에 삽입된 현시로밖에 볼 수 없다. 6:9-14절에서도 원래 면류관은 즈루빠벨을 위하여 마련되었던 것이 아닌가?

3. 메시지 ① 신의론(神義論) : 즈가리야는 하느님께서 이전과는 달리 어떠한 방법으로 인간 역사 안에 개입하시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유배시대 이전에 하느님은 말씀 또는 당신 친히 나타나시는 현시들을 통하여 예언자들과 통교하셨다. 그분은 거룩하시고 초월적인 분이시며 동시에 사건의 흐름을 몸소 주관하시는 분이셨다. 그러나 즈가리야의 하느님은 이 지상과는 좀 멀어지신 분으로 보인다. 현시를 통하여 말씀하신다 해도 더 이상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신다. 그분의 뜻을 설명하는 직책을 맡은 이는 천사이며, 그분의 계획을 실현하는 이도 천사 또는 기사와 같은 중재자들이다. 이러한 현상은 하느님 개념에 대한 영성화(靈性化) 작업의 일면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고도 볼 수 있으나, 그보다는 좀 더 실존적인 체험 즉 “하느님은 부재 중이시다”라는 체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유배 중의 시련과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만 했던 유태인들은 아직도 하느님께 자신들의 운명 속에 존재하시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경우 신앙은, 부정할 수 없는 공백을 충족시키거나 또는 천상세계와 시련 속의 인간들을 접근시킬 수 있는 매개체들을 배가하면서 이에 답을 보냈을 것이다.

② 메시아론(論) : 즈가리야는 물질적인 가난과 좌절로 수동적인 체념상태에 빠진 이스라엘 공동체에 새로운 희망을 고취시킨다. 성전재건이라든가 종교의식에 대한 질서정립은 바로 구원을 고대하는 구체적인 표시이다. 메시아 시대는 이러한 노력의 대가로 펼쳐질 것이며, 이에 모든 나라들이 합류할 것이다(2:15, 8:20-23). 이 구원은 눈앞에 다가왔으며, 즈루빠벨이 이 메시아시대를 개막할 사람으로 간주된다(6:9-14). 그러나 즈루빠벨과 동등한 자격으로 함께 일해 나갈 제2의 인물인 대사제 여호수아가 등장함으로써(4:14, 6:13) 이제 이 두 인물이 이끌어 나갈 쌍두정치체제(雙頭政治體制)에 대한 기대가 새롭게 떠오른다. 결국 즈루빠벨이 사리진 뒤 이에 대한 기대 역시 변화하여 사제라는 인물 속에 메시아적 희망은 새로운 모습으로 구약성서에 자주 나타나며(예레 33:14-16)[유배시대 이후 작품], 신약의 히브리서는 이 희망이 그리스도 안에 완성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히브 3장).

[제2부 : 9-14장] 1. 내용 : 즈가리야서 제2부를 균형 있게 양분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서 구원사업이 이중작업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볼 수 있다.

① 희망과 환멸(9:1-11:17) : 본 작품 속에서 저자는 하느님의 결정적 개입을 선포하고 있다. 정복된 이웃 백성들은 정화된 다음 신자 공동체에 통합될 것이며(9:1-8), 이어서 이상적인 나라를 건설할 임금 – 메시아가 나타날 것이다(9:9-10). 또한 수많은 전쟁을 통하여 흩어져 있던 모든 백성들이 다시금 모일 것이다(9:11-17, 10:3-11:3). 이런 준비과정을 거친 뒤 이제 목자로서 등장하는 메시아는 자신의 계획을 실현시키려 하나, 양떼들과 우두머리들의 종교적 타락으로 이 착한 목자는 버림을 받아 파렴치한 양떼들을 무자비하게 잡아 죽이는 악동(惡童)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게 된다(11:4-17).

② 재건(12:1-14:21) : 회복 가망성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그 때에 ‘가슴이 찔린 자’의 희생제물은 새로운 정신을 불러일으킨다. 외적들에게 넘겨진 이스라엘 백성은 새로운 정신으로 무장되며(12:1-13:1), 한편 정화사업은 계속 추진, 계약 경신으로 그 끝을 보게 된다(13:2-9). 이제 구원은 온 세상에 두루 퍼져, 모든 백성은 주님의 나라를 고백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합치해야 한다. 즈가리야서 14장이 비교적 후기 작품에 속한다 하더라도 전 즈가리야서에 대한 훌륭한 결론 부분인 것만은 확실하다.

2. 메시지 : 제2 즈가리야서의 최대 관심사는 메시아와 그의 시대에 관한 것이다. 하느님 친히 메시아로 등장하는 부분과 어떤 특정 인물이 메시아로 등장하는 부분과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① 인간적인 메시아가 없는 종말론적인 메시아론 : 9:1-8, 11-17, 10:3-11:4, 14장에 잘 나타나 있으며 이사야 묵시록(이사 24-27)의 그것과 유사한 메시아론이다. 하느님 친히 메시아로 등장하며, 모든 구원사업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그분 한 분뿐이시다. 그분은 우선 원수들을 물리치신 다음 모든 백성들을 불러 모으신다. 이방인들 역시 제식에 관한 사항을 준수하고(9:7), 종교 예배행위에 관한 율법에 오로지 순종함으로써(14:16-19) 유다 공동체에 합류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② 종말론적인 인간 메시아론 : 하느님 한 분께만 유보된 이러한 메시아상을 또한 어떤 한 특정인물 속에서도 발견된다. 9:9-10절의 임금 – 메시아는 우선 다윗과 솔로몬을 연상케 하나, 예언자들의 사상을 따라 ‘가난한 자와 의로운 자’를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메시아는 따라서 ‘주님의 가난한 자들’(스바 2:3, 이사 49:13, 57:15, 시편 22:27 등)에 대한 종교적 이상형으로서의 메시아다. 다음 11:4-17절과 13:7-9절에 나타나는 착한 목자는 그저 일반적인 명칭으로 보이나, 에제 34:11-22 · 31절이 말하는 바와 같이 하느님 자신과 밀접하게 관련된 명칭이다. ‘가슴이 찔린 자’를 예시하고 있는 착한 목자는 버림을 받아 제거될 것이나, 그의 희생(13:7)은 계약을 새롭게 체결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13:9). 끝으로 ‘가슴 찔린 자’(12:9-14)는 이사 53장의 ‘고통받는 종’의 모습과 일치하며, 그의 희생은 회개(12:10)와 정화(13:1)의 원천이 될 것이다. 다윗과 그의 가문을 상기시키면서(12:7-8 · 10 · 12, 13:1) 옛 왕조와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표명하기는 하나, 메시아 시대의 영광보다는 구원의 원천인 실패와 좌절을 우선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제2 즈가리야의 메시아에 대한 깊은 관심은 다음 세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따라서 신약의 복음사기들이 예수라는 인물과 그의 역할을 묘사하는데 본 작품을 그처럼 폭넓게 인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당연한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마태 21:4-5과 요한 12:15, 마르 14:27과 마태 26:31, 마태 27:9-10과 요한 19:37). (金建泰)

[참고문헌] Th. Chary, O.F.M., Aggee-Zacharie-Malachie, coll. Sources Bibliques, Gabalda, Paris 1969 / La Traduction Oecumenique de la Bible TOB, Cerf, Paris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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