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이 시작되는 첫날로 사순 제1주일 전(前) 수요일을 말한다. 이날 교회가 미사 중에 참회의 상징으로 재의 축성과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을 행하는 데서 재의 수요일이란 이름이 생겨났다. 즉 이날에는 그 전해의 예수 수난 성지 주일에 축성한 종려나무나 다른 나뭇가지를 한곳에 모아 불에 태워 만든 재를 사제가 축성하여 신자들의 머리 위에 십자모양으로 바르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십시오”(창세 3:19), 혹은 “회심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마르 1:15). 이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영원한 삶을 구하라는 장엄한 외침인 것이다. 재의 수요일은 교황 성 그레고리오(St. Gregorius) 1세(재위 : 590∼604)에 의해 사순절의 첫날로 성립되었고, 바오로(Paulus) 6세(재위 : 1963∼1978)는 이날 전 세계교회가 단식과 금육을 지킬 것을 명하였다. 한국에서도 만21세부터 만60세까지의 신자들은 하루 한 끼 단식하며 만14세부터의 모든 신자들이 금육을 지키고 있다. (⇒) 재
재영성체 [한] 再領聖體 [라] frequens Communio [영] frequent Communion
일년에 한번 이상 하는 영성체. 첫 영성체를 한 모든 신자는 적어도 일년에 한번 영성체할 의무를 진다(교회법 920조 ①). 이 의무를 최소한도로 이행하는데 그치지 않고 여러번 자주 영성체를 함으로써 신심(信心)을 증진시키는 행위 즉 잦은 영성체를 19세기 이래 한국 천주교회에서 재영성체라 불렀다.
재속회 [한] 在俗會 [라] institutum seculare [영] secular institute
사제 혹은 평신도들이 속세에서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회헌에 따라 혼자, 가족과 함께, 혹은 경우에 따라서 형제적 공동체와 함께 세상의 일상적 조건 속에서 생활하는 수도회.
1790년 파리에서 설립된 마리아 성심의 자녀회(Institute of the Daughters of the Sacred Heart of Mary)가 그 시초였다. 이들은 1857년에 비로소 인가되었으며 공동생활과 수도복착용의 의무가 없었다. 1889년 주교 및 수도자 성성(Congregation of Bishops and Regulars)은 를 통해 이들이 고유한 의미의 수도회는 아니며 교구장 관할 하에 있는 신심단체라고 정의한 바 있으나 1947년에는 교황청에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이 단체를 연구하였으며 교황 비오(Pius) 12세는 교회헌장 를 발표하여 수도생활의 범위를 수도회나 사도직회(使徒職會, Society of Apostolic Life) 뿐만 아닌 재속회에까지 확대시켰다. 그러므로 재속회는 이 헌장에 의해 법적 인가를 받은 비교적 새로운 형태의 수도단체이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공식서원을 하지 않지만 정결, 순명, 가난의 복음적 권고를 회헌이 정하는 양식에 따라 서약한다. 그리고 반드시 ‘재속회’라는 성격을 보존해야 한다. 그리스도 왕직(王職) 선교회, 프라도회 등이 재속회에 속한다.
재속신부 [한] 在俗神父 [라] sacerdos secularis [영] secular priest [관련] 교구사제
교구사제를 이르는 말. ⇒ 교구사제
재세례파 [한] 再洗禮派 [라] anabaptistae [영] anabaptists
그리스어(ana+baptiso, 재세례)에서 유래. 4세기에는 이단자나 또는 박해 때 배교했던 성직자에 의해 세례 받은 자는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자를 지칭하였고, 보통은 16세기에 유아세례(幼兒洗禮)의 타당성을 부정하는 종교개혁의 분파를 가리킨다. 이들은 자녀가 자주적으로 성사의 중요성을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 세례를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 유아세례를 받은 이는 재세례를 통해서 비로소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성서를 강조하고 원시 그리스도교의 상태로의 복귀를 역설, 천년왕국의 임박을 믿거나 평화론자가 되기도 하였으며, 국가를 신뢰하지 않았다. 이들은 루터(M. Luther), 츠빙글리(H. Zwingli), 칼빈(J. Calvin)으로부터 모두 비난을 받았으며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쪽에서의 박해로 1만여명이 사망하였다. 재세례파의 주요 분파(分派)는 다음과 같다.
① 1521년 비텐베르크(Wittenberg)에서 출현한 뮌처(Thomas Munzer, 1490?∼1525)와 츠비카우(Zwickau)예언자들 : 구약성서에 기반을 둔 혁명사상을 지닌 뮌처는 농민전쟁(1525년)에 적극적으로 참가. ② 스위스형제단 : 1525년 취리히에서 신자 상호간의 세례를 교회의 친교의 기반으로 강조하며 무저항주의, 정치참여 금지 등을 설교, 스위스 계곡, 라이란트(Rheinland), 독일 서남부 등에 펴졌다. ③ 후터트(Hutterites) : 스위스 형제단의 일파, 후터(Jacob Hutter, ?∼1536)의 지휘 아래 모라비아(Moravia)에 재산의 공유에 기반을 둔 정착촌을 세운 공동체. ④ 호프만(Melchior Hoffmann, 1498∼1543)에게 영향을 받은 재세례파 : 주로 북서 독일 및 북부 저지대에 전파되었고 그리스도 가현설(假現說)과 같은 비정통 그리스도론과 천년지복의 희망을 가르침. ⑤ 1533∼1535년 사이 뮌스터(Munster)의 은거자들 : 성인(聖人)들의 교회를 설립하려고 했으며 좌익운동에 일부다처제, 관심이 첨가됨. ⑥ 메논파(Mennonites) : 시모니스(Menno Simonis, 1492∼1559)에 의해 네덜란드와 프리슬랜드에서 조직. 스위스 형제회와 관점이 유사하며 평화주의 및 무저항주의가 강조됨. 전세계로 퍼져 이 파의 신자는 현재 40만 명으로 추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