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송(1821~1866). 순교자. 세례명 프란치스코. 황해도 백천(白川) 출신. 의생(醫生). 1857년 서울로 이사와 정의배(丁義培)에게서 교리를 배워 1859년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덕보(李德甫)와 함께 이북 12개 마을에 복음을 전하여 교세 확장에 진력하였는데 1866년 병인(丙寅)박해 때 체포되어 아들 붕익(鵬翼), 처 김이뿐(金–)과 함께 체포되어 1866년 10월 22일, 45세의 나이로 양화진(楊花津)에서 순교하였다.
이윤하 [한] 李潤夏
이윤하(?~1793). 초기의 천주교인. 동정순교자(童貞殉敎者) 이순이(李順伊)의 아버지, 지봉 이수광(李睟光)의 8대손. 성호 이익(李瀷)의 문하에서 이승훈(李承薰), 김원성(金源星) 등과 수학하고 천진암 · 주어사 강학회의 일원으로 활약하였다. 1785년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이 일어났을 때 처남인 권일신(權日身) 등과 함께 형조에 압수된 성물(聖物)들을 찾아오는 등 한국 천주교회 창설을 전후로 꾸준한 활동을 하였다. 자녀는 5남매를 두었는데, 장남 이경도(李景陶)와 딸 이순이(李順伊)는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순교했고 차남 이경언(李景彦)은 1827년 전주(全州)에서 혹형(酷刑)으로 순교하였다.
이윤일 [한] 李~
이윤일(1823~1867).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회장. 세례명 요한. 일명 제헌. 충청도 홍주(洪州) 출신의 태중교우로 경상도 문경(聞慶)의 여호목골에 살며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866년 병인(丙寅)박해의 여파가 경상도 지역에까지 미치게 되어 이해 11월 가족, 마을교우 30여명과 함께 상주로 이송되었고 상주(尙州)에서 한 달에 세 번씩 석 달 동안 9차례의 혹형과 고문을 당한 후, 다시 김 회장 형제와 함께 사학(邪學)의 두목으로 지목되어 대구(大邱)감영으로 이송되었다. 1867년 1월 21일 대구 남문 밖 관덕방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이육희 [한] 李六喜
이육희(?~1802).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未詳). 순교자 유관검(柳關儉)의 처. 1801년 신유(辛酉)박해 때 시집 식구들과 함께 체포되어 1802년 1월 31일(음 1801년 12월 28일) 아들 유중성(柳重誠), 동서 신희(申喜), 이순이(李順伊) 등과 함께 전주(全州) 숲정이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이유일 [한] 李有一
이유일(?~1868). 순교자. 자는 유일(惟一), 세례명은 안토니오. 1866년 초 러시아인들이 국경을 넘어 함경도 경흥(慶興)에 나타나 통상을 요구하자 조정에서는 큰 논란이 일어났는데, 이때 신교(信敎)의 자유를 얻을 목적으로 홍봉주(洪鳳周), 남종삼(南鍾三) 등과 함께 대원군(大院君)에게 영 · 불(英佛)과 동맹을 맺어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자는 소위 방아책(防俄策)을 건의하여 처음엔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대원군과 만나기로 한 주교와의 연락지연, 중국에서의 천주교 박해소식의 전달 등 상황이 바뀌어지면서 오히려 병인박해(丙寅迫害)가 일어나자 체포되어 1868년 6월(음 5월) 포청에서 옥사(獄死), 순교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