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원] Algeria

서북 아프리카의 독립 공화국으로 튀니지, 리비아, 니제르, 말리, 모리타니아, 스페인령 사하라, 모로코, 지중해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면적 238만 1,741㎢에 인구 2,029만명(1982년 추계)이며, 수도는 알지에(Algier)이다. 알제리는 1962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다. 알제라가 독립하고 나자 유럽계 주민들이 대량 귀국길에 오르게 되었는데 18개월 동안에 80만명의 가톨릭 신자가 알제리를 떠났다.

알제리는 원래 베르베르(Berber)족이 세운 나라로서 해안에 초기 페니키아인들의 정착지가 있었으며,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서 누미디아(Numidia) 또는 마우레타니아 체사레아(Mauretania Caesarea)라는 이름으로 번창하기 전에는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았다. 알제리 원주민들은 6세기까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8세기 초 아랍인들에 의해 무력으로 정복당하고는, 이슬람교를 받아들였다. 주교가 다스리는 그리스도 공동체는 로마와 유대를 가진 채 1150년경까지 지속되었다. 1982년 현재 4개 교구, 82개 본당에 가톨릭 신자는 6만 4,000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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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비파 [한] ∼派 [라] Albigenses [영] Albigensianism

카타리(Cathari)이단[10세기중반, 불가리아]의 추종자. 무역로를 따라 이동하여 발칸반도, 북부 이탈리아, 남부 프랑스에서 세력을 떨쳤으며 1145∼1155년 사이에 툴루즈(Toulouse) 지방의 알비(Albi)에 전파되어 세상에 크게 퍼졌다. 교리는 마니교적 이원론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그리스도교의 신은 영적인 것만을 창조하였으며 반신(反神)인 악마는 신에게 반기를 든 인간을 물질 속에 가두었으므로 영혼의 구원은 물질로부터의 해방, 즉 물질의 유혹으로부터의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획득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들은 물질적인 것들을 사용하는 가톨릭 미사나 성사를 거부하였으며 공중 앞에서의 성서낭독과 해설(주로 신약성서), 공개적 고백의식(apparelhamentum), 의식적 회식(agape), 통과의례(通過儀禮, consolamentum)[사람이 평생 동안 겪는 갖가지 의례나 습속 등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 등을 중요시하였는데 특히 통과의례를 통해 일반신자는 ‘완전한 자'(Katharoi 또는 Cathari)가 되었다. 이들은 신자들의 존경을 받는 동시에 당시의 사치스러운 사제나 수도자들과는 대조적으로 금욕적인 여러 계율들을 지켜야만 하였다.

이들 이단에 맞서 교회가 이단심문제도를 만들었으며, 한편 알비파의 융성은 탁발수도회 발달의 계기가 되었다. 또한 알비파에 대한 십자군운동이 프랑스의 최종적 통일을 도왔다(루이 8세). 카타리파의 정치적 세력은 1245년 몽세귀르(Montsegur)의 함락으로 인해 크게 타격 받았으며 14세기말에는 완전히 소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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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라] Albertus, Magnus

Albertus, Magnus(1200?∼1280). 성인. 축일 11월 15일. 스콜라학자이며 도미니코 회원이고 박학했기 때문에 ‘대(大)알베르토’라고 지칭되었다. 독일 슈바벤 지방의 라우잉겐에서 볼슈테드 백(伯)의 아들로 태어나 이탈리아의 파도바 및 프랑스의 파리에서 공부하였다. 그 뒤 힐데스하임(Hildesheim), 라티스본 및 쾰른 등을 거쳐 1245년부터 파리에서 강의, 1248년에는 다시 쾰른으로 돌아와 도미니코회의 ‘스투디움 제네랄레’(Studium generale)를 조직하였고 1254년부터 1257년까지 독일의 지방주교를 지냈다. 1256년 교황 알렉산데르(Alexander) 4세의 요청으로 아베로이즘(Averroism)[어떤 명제는 철학적으로 진실이라 해도, 신학적으로는 잘못일 수도 있다는 설]을 반박하는 책 ≪De unitate intellectus contra Averroem≫을 썼다. 1260년에는 라티스본의 주교로 임명되었지만, 저작에 전념하기 위해 사임하였다. 1274년 리용(Lyons) 공의회에 참석, 1277년에는 파리에서 제자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교리를 옹호하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rationes seminales’를 신봉하는 아우구스티노 학파의 저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방대한 지식을 가진 다작가(多作家)였다. 또한 아퀴나스에 앞서 그의 철학과 신학을 종합하는 업적에 전초(前礎)를 놓았으나 아퀴나스의 저작에서 보이는 유기적인 통일성이 부족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미완성), ≪피조물에 관한 대전≫(Summa de Creaturis)이 있다. 단테는 그를 아퀴나스와 함께 ‘예지자’(spiriti sapienti)로 불렀다. 1931년 비오(Pius) 11세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교회학자(Doctor ecclesiae)로 공포되었다. 이보다 앞선 1893년 빈곤한 가톨릭 학생의 후원을 목적으로 ‘알베르토 마뉴스회'(Albertus-Magnus-Verein)가 창립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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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원] Albania

발칸반도에 위치하고 있는 공산권 국가.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및 아드리아해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면적은 2만8,748㎢, 총 인구는 286만명(1982년 추계)이다. 알바니아에 처음 그리스도교가 들어온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르디카(Sardica) 공의회(343~344년) 이전일 것으로 추정된다. 알바니아는 로마로부터 라틴 전례를, 그리스로부터는 비잔틴 전례를 받아들였으며 660년경 슬라브족의 침입으로 인해 알바니아 교회사에 공백이 생겼다. 11세기 이후에는 대집단이 남부로 이동하여 그리스에 정착하였으며 그 곳에서 이들은 비잔틴 전례를 지키고 동방이교를 신봉하게 되었다. 한편 북 알바니아에서는 가톨릭신앙과 라틴 전례가 지켜졌다.

15세기에 터키족이 침입하여 1912년까지 알바니아를 점령하였는데 이 기간에 많은 알바니아인들이 회교로 개종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개종은 표면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고 대부분의 알바니아인들은 세례, 성인공경, 순례 등의 그리스도교 전통을 지키고 있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알바니아가 오스트리아의 보호를 받게 되자 회교의 영향력은 점차 감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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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쿠시오 [라] allocutio [영] allocution

훈시, 연설, 담화 등의 뜻을 지닌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이며 교회 내에서는 다음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① 추기경 회의에서 교황이 추기경들에게 하는 장엄한 연설. ② 레지오 마리에의 신심운동을 펴는 각급단체가 회의를 열 때, 그 회의에서 각 단체의 지도 신부가 단원들에게 하는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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