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칭 C.M. 1860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팔라우(Francisco Palau Quer) 신부에 의해 창설되었다. 가르멜 회원이었던 팔라우 신부는 1835년 혁명군에게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후 예언자 엘리야를 수도원 밖의 생활에 대한 모범으로 삼고 관상과 사목활동이라는 두 가지 뜻을 마음에 품게 되었다. 그 후 팔라우 신부는 가르멜회의 재건에 별 효과가 없자 자신을 따르는 젊은이들과 함께 교회와의 끊임없는 영적 교류 및 기도와 사목활동을 생활목표로 가르멜 전교수녀회를 창설하여, 1907년 교황 성 비오 10세로부터 인준을 받았다. 현재 21개국에서 2,000명의 가르멜 전교수녀회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1977년 8월 21일 진출하여 서울 강서구 등촌동과 경기도 부천에서 지원자 양성과 본당사목 등에 종사하고 있다. 서울본원의 지도신부는 정대식(鄭大植) 신부이며, 서울본원장 비다트(Isabel Vidart) 수녀를 포함한 5명의 종신서원자와 지원자들이 있다.
가르데이 [원] Gardeil, Ambroise
Gardeil, Ambroise(1859~1931). 도미니코회원이며 신학자. 낭시(Nancy)에서 출생하여 파리에서 선종. 1878년 프랑스 도미니코회에 입회, 1884년 황금해안에서 교수로서의 긴 생애를 시작했는데 전공은 신학방법론이었다. 1893년 코코니에(Coconnier) 신부를 도와 지를 창간하였고 도미니코화의 후학을 가르치면서 ≪신학대전≫ 전체를 두 차례 강의하였다. 당시 소속 수도회에서 첫째가는 신학자였던 그는 저작과 설교할 여유를 가지기 위하여 1911년 강단을 떠났다. 가르데이는 다음의 3부작으로 유명하다. ≪La Credibilite et l’apologetique≫(1908), ≪Le Donne revele et la theologie≫(1910), ≪La structure de l’ame et l’experience mystique≫(1926).
가니시오 [라] Canisius, Petrus
Ganisius Petrus(1521~1597). 성인. 본명 베드로. 네덜란드 출신. 예수회 신학자이며 저작가. 교회학자. 로욜라와 같이 활동한 예수회원 중 한 사람인 파베르(Peter Faber)가 마인츠에서 지도한 피정에 참가, 그 해 1543년 예수회에 입회, 독일 땅에 뿌리를 내린 첫 예수회원이 되었다. 퀼른과 마인츠에서 신학을 공부, 퀼른에 최초의 예수회 수도원을 설립, 대주교 헤르만(Herman of Wied)의 프로테스탄트적인 견해를 공격하였다. 1549년 이후로는 프로테스탄티즘에 반대하는 설교와 강연에 종사, 바이에른, 빈다, 프라하 등에 체류하였으며, 황제 페르디난트(Ferdinand) 1세에 의해 빈(Wien)교구 주교 취임을 제안받았으나 거절하였다. 로마 가톨릭과 특히 예수회의 입장에 대한 열정적인 주창자로서 다수의 교리서를 집필, 1545년의 ≪교부들≫(2권)은 그의 첫 저서인 동시에 예수회에 의해 출판된 최초의 저술이다. 213개(나중에는 222개)의 교리문답이 실려있는 ≪Summa doctrinae christianae≫(1554)는 130판(版) 이상이 출판되었다. 1556년에서 1569년까지 남독일의 관구장이 되어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 뮌헨, 인스브루크(Innsbruck)의 대학 창립과 예수회의 영향력을 폴란드로 확산시키는데 크게 기여, 무엇보다도 남부독일의 가톨릭개혁에서의 괄목할 만한 성과는 주로 그의 덕분이었다. 1925년 시성과 동시에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축일은 12월 21일.
가난 [라] paupertas [영] poverty
가난이란 물질적 결핍보다는 청빈(淸貧), 소박(素朴)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성서의 개념과 윤리신학적 개념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구약성서에 보면 부귀, 재산은 하느님의 축복이며 인간이 희망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과 함께 사회구조가 바뀌고 재화의 축적과 권력의 집중으로 사회의 불의와 부정이 생기게 되며 타인의 재산을 착취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언자들의 시대에 오면서 사회적 가난과 서민의 물질적 결핍이 권력자나 부자들의 착취와 폭정에 의해서 생기고 이웃에 대한 무자비함이 가난의 원인으로 인식되었고 이런 현상은 하느님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아모 5:11, 이사 5:8, 미가 2:1, 6:10, 예레 5:27). 따라서 가난하고 압제받는 자는 선량한 사람들이며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던 자들의 대명사가 되었다. 특히 바빌론 포로생활 이후에는 ‘가난한 이’, ‘억압받는 이’는 축복받을 의인들을 지시하는 특수한 표현이 되었다. 복음서에서는 가난이 예수님의 산상수훈(마태 5:3, 루가 6:20)과 예수님 자신의 생활이나 제자들에게 요구한 생활조건이다(마태 8:20, 10:9-10, 마르 10:21 · 28-30, 루가 9:58). 사도들도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가난하게 생활했으며 부자들에게 경고하며 자선을 베풀 것을 강조하고, 가진 바를 이웃과 나누라고 가르친다(마태 25:35-46, 야고 1:9-11, 2:1-7). 윤리신학적으로 볼 때 성서의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우선 두 가지 측면에서 가난을 이해하여야 한다. 첫째는 사회적이고 물질적 결핍의 가난으로서 인간들이 공동으로 노력하여 극복해야 할 인간조건이다. 즉 공동선을 추구하고 사회정의를 이룩하며 자선으로 가진 바를 나누어야 한다. 초기교회부터 실천하여 온 자선은 신앙인 모두의 중대한 의무이며 공동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둘째로 수덕상의 가난이다. 이는 복음삼덕(福音三德)의 하나로 스스로 선택한 가난한 생활을 의미하며 이 때에는 물질적 결핍의 관점보다는 물질적 소유욕망에서의 자유와 해방을 의미한다. 즉 스스로 취한 단순 소박한 생활모습이다. 이러한 생활모습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자의(字意)대로 실천하고자 하는 의사표시이다. 소유권의 포기로서는 현세에서의 자유로 구원을 성취한 생활, 즉 종말론적 표지이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를 볼 때 물질적 포기와 가난한 생활 자체를 덕으로 보고 그리스도인들의 기본적 생활형태로 과장 선전하여 교회의 재산소유라든지 재산관리 등을 죄악시하고 단죄한 이단자들도 많았다. 예컨대 이원론적 사상(gnostici, manichaeism), 알비파(Albigensi), 카타리파(Cathari), 발두스파(Waldensi) 등이 그들이다. 이와 같은 위험과 광신적 경향을 조정하기 위하여 교회는 중용을 지킬 것을 종용하고 특수한 수도생활로 가난을 실천하려 할 때 기본정신을 깨우쳐 주고 허락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스도 신자는 누구나 복음적 가난의 의미를 깨닫고 생활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가 가르친 행복의 첫째 조건이기 때문이다(마태 5:3, 루가 6:20). (崔昌武)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