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카 [원] Francesca, Piero della

Francesca, Piero della(1416~1492). 이탈리아의 움브리아파 화가. 원명은 Piero de’i Franceschi. 토스카나 지방의 보르고산세폴크로 태생. 구두 제작공의 아들로 태어나 청년기에 피렌체로 가서 베네치아노(Domenico Veneziano)에게 사사(師事), 1442년부터 직업화가로서 (보르고산세폴크로 읍사무소) 등을 제작하였다. 그의 후원자로는 우르비노의 몬테펠트로(Montefeltro)가(家), 리미니의 말라테스타(Malatesta)가, 페라라의 에스텐시(Estensi)가, 로마의 니콜라오 5세 교황 등이었다. 우르비노에서는 라파엘(Raphael)의 부친인 화가 산티(Giovanni Santi)와 교제를 맺었다.

그의 초상화작품의 걸작은 우르비노 공(公), 페데리고 다 몬테펠트로(Federico da Montefeltro), 스포르차(Battista Sforza, 1496, 피렌체의 우피치 박물관) 등을 그린 것들이었다. 그의 절정기 작품으로는 Tempio Malatestiano의 프레스코 벽화(1451, 리미니), <유카리스트의 성직수임>(1469, 밀라노의 브레라 화랑) 등인데, 특히 <성 십자가의 전설>(1452, 아레초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 벽화)은 그의 최대걸작으로 손꼽힌다.

그의 작품은 초기의 제단화(祭壇畵) <자애로운 성모와 성자들>에서부터 만년의 <그리스도 강탄>에 이르기까지 항상 독자적인 높은 풍격을 보여주었고, 원근법(遠近法)의 자유로운 구사, 색채의 조화, 빛의 처리, 당당하고 위엄이 넘치는 인물 등, 고아하고 불후(不朽)한 독자적 양식을 확립하였다. 또한 당시 일류의 미술이론가로서 알려졌으며, 주요 저서로 ≪원근법론≫(De Prospetiva pingendi)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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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젤린 [원] Franzelin, Johannes Baptist

Franzelin, Johannes Baptist(1816~1886). 추기경이며 신학자. 오스트리아 티롤의 알다인에서 출생. 이탈리아 볼차노(Bolzano)에서 프란치스코대학을 졸업한 뒤 예수회에 입회(1834년). 신학을 공부하려고 로마에 갔으나(1848년) 이탈리아 혁명 때문에 로마를 떠나 루뱅대학교에 가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사제가 되었다(1849년). 로마의 그레고리오대학교와 독일대학에서 강의를 맡은 뒤 그레고리오대학교의 교의신학 교수로(1858년) 있으면서 거의 신학의 전과정에 걸쳐 저서를 펴냈다. 그중 중요한 것은 ≪De Sacramentis in genere≫(1868), ≪De Eucharistiae Sacramento et Sacrificio≫(1868), ≪De Deo Uno≫(1870), ≪De Divina Traditione et Scriptura≫(1870), ≪De Verbo Incarnato≫(1870) 등이다.

그는 강의를 통하여 신학의 전분야를 다루어 종합함으로써 명확한 방향을 정위(定位)하고자 하였고 강의 외에 로마 각 성청의 참사로서 활약하였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헌장(Dei Filius)을 기초하였고, 교황 비오 9세에 의하여 추기경으로 선임되었다(1876.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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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잠 [원] Francis Jammes [관련] 잠

⇒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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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도수녀회 [한] ∼修女會 [영] Sisters of Prado

1860년 12월 슈브리에(Chevrier) 신부에 의해 프랑스에서 창설된 수녀회. 1975년 한국 진출.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음 전파와 가난한 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근본정신으로 하는 이 수녀회는, 1975년 서울에 진출, 서울 가리봉동에 본원을 설치하여 새로운 지원자를 양성하는 한편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일하며 교리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1980년에 서울 문래2동에 첫 분원을 설치하고 테레즈(Therese) 수녀를 중심으로 4명의 회원들이 1983년 12월 말 현재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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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 안젤리코 [원] Fra Angelico, Giovanni

Fra Angelico, Giovanni(1378∼1455). 이탈리아의 저명한 화가. 피에졸레의 프라 지오바니(Fra Giovanni da Fiesole)라고도 부른다. 속명(俗名)은 구이도(Guido) 혹은 구이돌리노(Guidolino)라고도 하였다.

피렌체의 근교인 비키오에서 태어났다. 20세 때 성 피에졸레의 성 도미니코 수도원에 들어가 수사가 되었으며 이어 포리뇨로, 그 후에는 코르토나로 갔다가 1418년 피에졸레로 돌아왔다. 1436년부터 피렌체에서 활동(산 마르코 수도원), 1445년에는 로마로 초청되었다.

그의 그림은 종교적인 내면성을 표현하는데 그지없이 정교했으며 세밀화를 방불케 하는 수법을 사용하였다. 그의 필력의 근원에는 중세의 종교성에 있으며 조트와 그의 계승자의 벽화를 모범으로 삼았다. 음악을 연주하는 아름다운 천사에 둘러싸인 유명한 <아마상인(亞麻商人)의 성모상>(1433)은 중세적인 기반 위에 서서 그린 그림이지만, 성호의 특징은 이미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산 마르코 수도원 대제단의 성모상은 그 이상으로 훨씬 분방하게 보인다. 그의 최대 걸작인 <마리아의 대관>은 산 마르코 수도원에 있으며, 가장 유명한 공심판(公審判)의 여러 그림은 산 마르코 수도원 및 베를린 박물관 등에 있다. 피렌체의 수집품에서 빠진 모든 그림은 오늘날 산 마르코 수도원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곳에 있는 벽화는 이 수도원을 다른 모든 수도원 중에서 가장 신성한 것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이 수도원 복도에는 그가 그린, 그리스도에게 인사하는 2명의 도미니코 수도사가 있으며 회의실에는 수도회의 17명의 성인에 둘러싸인 숭고한 책형(磔刑)의 큰 그림(미완성)과 또한 작은 개인방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의 그림이 있다.

1447년 오르비에토(Orvieto)의 대성당에 천사의 합창단에 둘러싸인 그리스도와 예언자의 합창단을 그렸으며, 로마에서는 1447∼1470년에 바티칸의 니콜라오 소성당을, 성 스테파노와 성 라우렌시오의 생애와 죽음에서 취재한 갖가지 장면을 가지고 장식하였다. 그는 성품이 본래 겸손하고 너그러워 사람들부터 칭송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소득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또한 기도를 드리고 난 후가 아니면 결코 붓을 들지 않았다고 전하고 있다. 도미니코회에서는 일찍부터 복자로서 존경을 받았으며 1904년 동회 총회는 그에 대해 존경의 공인을 교황청에 요청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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