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발행한 교리서, 1964년 창설된 주교회의 ‘전국 교리교육위원회’ 산하 ‘교리서편찬 특별위원회’에서 2년여에 걸쳐 편찬, 주교회의 인준을 받아 4 · 6판 228면으로 발행되었다. 전체 4편 52과로 전체 4편 52과로 구성되어 있고, 각 과는 ‘인도귀절’, ‘본문’, ‘복습’, ‘신앙생활’, ‘성경공부’ 등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주로 1955년 독일에서 간행된 《독일어교리서》를 모델로 삼아 종래의 《성교요리문답》(聖敎要理問答)이나 《천주교요리문답》(天主敎要理問答)과 같은 암기위주의 문답형식을 지양하고 복음 선포의 노선에서 구원의 진리를 성서위주로 엮었다, 형식과 체제면에서 종래의 교리서에 비해 진보된 것이었고, 또 성서위주의 내용은 종래의 호교적인 교리서의 내용보다 일층 발전된 것이었다, 간행 이후 예비자 교육용 도서로 널리 쓰여졌다.
가톨릭공용어심의위원회 [한] ~公用語審議委員會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사용하는 모든 공용어를 알기 쉬운 현대의 말로 고치기 위해 1965년 2월 발족하여 활동했던 교회기관, 교회 안에 이러한 위원회가 설치케 된 것은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의 정신에 따라 한국 교회도 이 해부터 한국어 ‘미사’를 드리도록 하였으나 종래의 교회용어가 일반 사회용어와 현격한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용어와 유리되거나 고립되어 가는 감마저 없지 않아 취해진것이다. 이 위원회는 전국 주교위원회와 교리위원회 합동회의 결의에 따라 주교회의 인준을 거쳐 발족되었다. 동 위원회는 총무인 가톨릭대학의 백민관(白敏寬, 데오도로) 신부 등 4명의 성직자와 서울대학의 이숭녕(李崇寧) 박사 등 5명의 평신도, 도합 9명의 교회내, 학계 및 문화재 인사들로 구성되었다. 이 위원회에서 심의 결정된 용어들은 1966년 8월 간행된 미사 통상문, 가톨릭 주요기도문에 반영되고 그 후 모든 교리서와 예식서에도 채택 시행되었는데, 그 주요한 몇 가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괄호안은 종래의 용어)
△ 기도(기구, 신공, 축문, 경) △ 세례=성세(당분간 겸용) △ 고백(고해) △ 병자의 성사(종부성사) △ 혼인성사(혼배성사) △ 하느님=천주(당분간 겸용) △ 은총(성총) △ 십자가의 길(성로선공, 성로신공) △ 축일(첨례) △ 단식(대재)
가톨릭개혁 [한] ~改革 [라] Reformatio Catholica, Contrareformatio [영] Catholic Reformatio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을 전후해 가톨릭 교회가 전개한 교회개혁 운동. 종교 개혁의 출발점이자 개혁론자들이 교회에 대해 비판했던 내용인 교회생활의 세속적 타락, 종교적인 의무의 불성실한 이행, 각종 미신행위와 그로 인한 폐해 등이 종교 개혁을 촉진 시켰으며, 교회신자들이 끊임없이 교회 밖으로 이탈하게 된 요인이기도 하였다. 이에 대하여 가톨릭 교회가 교회자체의 개혁에 대한 필요성을 깨닫고 교회의 개혁만이 교회로부터 신자의 이탈을 막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어 가톨릭 개혁운동은 추진된다. 일반적으로 이 운동이 반종교개혁(counter-reformation)이라 불리고 있는 것은 19세기의 사학자 랑케(L. Ranke)와 고타인(Gothein)이 종교 개혁에 대한 반동이라는 의미에서 Gegenreformation이라 불렀기 때문이며, 가톨릭의 입장에선 파스톨이 말한 것처럼 가톨릭 교회 개혁(Catholic Reformation)이라 부른다.
가톨릭 개혁운동은 종교개혁의 반동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에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수도회에서 일어났다. 1517년경에 이미 로마의 수도회 오라토리오회에서 불붙기 시작하고, 테아치노회에 의해 극단적 청빈생활과 엄격한 사제직 수행을 통해 세속화 되어 타락한 성직자들에게 모범을 보이려는 의식적 활동이 나타난다. 1527년 로마가 점령되고 이들이 전국각지로 분산, 피신하게 됨에 따라 운동은 이탈리아 전지역으로 확산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력하게 유럽 전체에 이 운동을 확산시킨 것은 예수회의 활동이다. 교회의 혁신에 헌신적인 이들은 그리스도를 위한 군댈 로욜라에 의해 조직되었고, 종교개혁 세력에 대항하는 전위대였다. 또한 교황의 군대로서 예수회는 약화된 교황권을 강화하였고, 교육시설을 강화하여 세계 전도를 강력히 추진하였을 뿐만 아니라 트리엔트 공의회를 주도하여 가톨릭교회의 체제를 정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즉 트리엔트 공의회는 프로테스탄트들의 공격에 대응하여 가톨릭교회의 교리를 명확히 하고 도덕상의 제반 타락현상을 제거하기 위해 1545년에서 1549년까지, 1562년에서 1563년까지 2차에 걸쳐 열렸다. 공의회에서는 교리와 교회 규칙을 심의 하였고 성전(聖傳)의 범위와 권위, 원죄(原罪), 성사(聖事), 연옥(煉獄), 성인 공경 등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을 천명하혔다. 이러한 기본입장을 기초로 성직자의 교회생활을 정비하고, 혼인제도의 개혁, 신학교의 설립, 수도회의 설립, 금서의 열독 등의 일을 추진해 나갔다. 이러한 가톨릭 개혁운동은 유럽 각지로 번져 나가 마침내 폴란드와 남부 독일이 가톨릭으로 복귀하였다. (⇒) 종교개혁
[참고문헌] J. Scheuber, Kirche und Reformation, 1917 / H. Gille, Das Zeitalter der Gegenreformation, 1930 / H. Hermelink, Reformation und Gegenrefation, 1911.
가톨릭 [라] Catholicus [영] Catholic
‘일반적, 보편적’이란 뜻의 그리스어 ‘katholikos’에서 유래된 말이다. 교부시대에는 ‘보편적, 공번된’이란 뜻으로 가톨릭 섭리, 가톨릭 부활이라 했는데, 이냐시오(Ignatius)가 처음으로 가톨릭 교회라고 쓴 이래 이 용어가 널리 승인되어 니체아 신경(信經)에서 “하나요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전래된 교회”라는 표현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공번된, 보편적’이란 성 빈첸시오(St. Vincentius Lerinensis)가 지적했듯이 “모든 사람이 모든 시대에 모든 장소에서 믿어 온 것”을 의미한다. 교회가 보편적이기 위해서는 교회가 가르치는 신앙이 마땅히 타당해야 했으므로 이단과 대결하는 과정에서 신앙의 정통성을 의미하는 말로, 즉 정통한 신앙을 전하는 교회의 가르침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또 사도로부터 전래되었다는 의미에서 개신교와 구별되는 로마 교황청 중심의 교회를 의미하는 말로, 이 교회에 소속된 신자를 뜻하는 말로 사용된다. 한국에서는 천주교가 전래된 이래 서학(西學), 천주학(天主學), 천주교(天主敎), 카톨릭교 등으로 혼용되어 오다가 주교회의에서 ‘천주교 또는 가톨릭교’를 선택 공인하여 ≪가톨릭 지도서≫(Directorium, 1932년 간행)에 규정함으로써 공식명칭이 되었다.
가톨리시즘 [라] Catholicismus [영] Catholicism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계시되고 세상 끝까지 존속토록 정해진 역사적 현실로서의 로마 가톨릭교회의 믿음,전례(전례), 도덕. 이 말은 구령(구령)과 성화(성화)를 위해 믿고 실천해야 되는 가톨릭 교회의 모든 가르침을 포함한다. 이 가르침과 전례, 실천의 모든 것이 가톨릭(보편적인 것)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것이 전 인류를 위하고 모든 시대를 위한 것이며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인간생활의 모든 상황에 알맞은 것이기 때문이다.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 개신교 사상)이라는 말에 대하는 말로서 가톨릭 교회의 외부적인 여러 활동(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적 활동)을 가리켜서 사용되기도 한다.
가톨릭 교회는 신학적으로 말할 때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며, 산 유기체이기 때문에 그 생명력은 여러 방면으로 발동된다. 예를 들어 그 신앙생활의 예술적 표현으로서 그림 · 조각 · 건축 · 음악의 숭고한 아름다움은 유럽 예술사에서 고대예술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문학에서도 여러 나라에서 가툴릭 문학이라는 장르를 이루고 있을 정도이다. 교회는 또한 도덕의 기준을 순수하게 보전하고 이를 실천토록 그리스도로부터 위탁되었으므로 교회는 인간의 사회생활이나 국가생활에 관해서도 그것이 종교와 도덕과 관련되는 한 지도할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이 때문에 교회는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에 관해서도 때때로 지침을 제시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교황의 회칙(回勅)이다. 정치에 있어서는 국가를 그저 불가피한 악(惡)이니까 그것에 참고 순종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고 자연법(自然法)적인 건지에서 그 존재를 인정하나 국권남용(國權濫用)의 전체주의적(全體主義的)인 운용을 제한하려 한다. 경제에 있어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어느 것도 긍정치 않고 제3의 길로서 직분적(職分的) 사회질서의 테두리 안에서 경제질 공동선(共同善)을 실현키 위한 경제 질서를 건설하고자 노력한다. 또한 사회문제에 있어서는 인간의 사회성을 인정하여 사회는 인간 완성을 위해 불가결한 것이기는 하나 결국은 인간 인격의 완성에 봉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인격주의(人格主義, personalism)의 입장을 취하며, 문화에 대해서는 각 문화영역의 상대적인 자율성은 인정하되 그것을 구령(救靈)이라는 최고의 종교 목적에 통합시키는 완전 휴머니즘(integral humanism)의 입장에 선다. 이리하여 가톨리시즘은 하나의 사상체계로서 세계사조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접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