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의금부(義禁府)에서 중죄인을 심문한 공초기록(供招記錄). ‘추국’(推鞠)이란 의금부에서 임금의 특지(特旨)를 받고 중죄인을 심문하는 것을 말하고 ‘안’(案)은 안건(案件)으로 문서에 기록된 사건을 말한다. 추국에는 죄의 경중에 따라 친국(親鞫), 정국(庭鞠), 추국(推鞠), 삼성추국(三省推鞠) 등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공초기록을 일반적으로 추안(推案), 국안(鞠案)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 사학죄인(邪學罪人)으로 체포된 천주교인들은 중죄인으로 취급되어 많은 이들이 추국을 받았고 그 기록이 추안과 국안으로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1801년 신유(辛酉)박해 때의 <신유 사학죄인 이가환 등 추안>(辛酉邪學罪人李家煥等推案> · <신유 사학죄인 강이천 등 추안>(辛酉邪學罪人姜彛天等推案) · <신유 사학죄인 이기양 등 추안>(辛酉邪學罪人李基讓等推案) · <신유 사학죄인 김여 등 추안>(辛酉邪學罪人金鑢等推案) · <신유 사학죄인 사영 등 추안>(辛酉邪學罪人嗣永等推案) · <신유추안(辛酉推案), 1839년 기해(己亥)박해 때의 <기해 사학모반죄인 양한 진길 등 안>(己亥邪學謀叛罪人洋漢進吉等案), 그리고 1866년 병인(丙寅)박해를 전후한 ≪병인 사학죄인 종삼 봉주 등 국안≫(丙寅邪學罪人種三鳳周等鞠案) · <무진 사학죄인 재의 등 국안>(戊辰邪學罪人在誼等鞠案) · <무진 사학죄인 연승 등 국안>(戊辰邪學罪人演承等鞠案) 등이 있다.
추계소재 [한] 秋季小齋 [관련] 단식재 사계 사계의 재
사계소재(四季小齋) 중 가을에 지키던 소재로 성 십자가의 축일(9월 14일) 후의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에 지켰다. 지금은 폐지되었다. (⇒) 단식재, 사계, 사계의 재
최후의 만찬 [한] 最後∼晩餐 [라] Coena Domini [영] Last Supper
그리스도가 수난하고 죽으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같이 가진 그리스도 최후의 식사를 전통적으로 일컫는 용어이다. 이 때 그리스도는 성체성사를 세우셨다. 공관복음서들은 만찬의 준비와 제자의 배반 예언, 그리고 성체성사의 성립에 대하여 전하고 있으며(마태 26,17-29, 마르 14,12-25, 루가 22,7-38), 요한복음서는 그리스도가 제자에게 남기는 최후의 말씀들을 매우 자세히 전하고 있다. 그러나 성찬식(聖餐式)을 세우셨다는 언급은 없으며 서간성서들 가운데 2고린토 11,23-25에 성찬식에 관한 언급이 나타난다. 최후의 만찬이 이루어졌던 날이 언제인가에 관하여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서는 각각 다른 견해를 보이는 듯 하나 전통적으로는 공관복음서를 근거로 하여 과월절을 준비하기 직전, 즉 과월절이 시작하는 목요일 저녁으로 믿어져 왔다.
최형 [한] 崔炯
최형(18114∼1866).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 베드로. 일명 치장. 충청도 공주(公州)에서 태어나 서울 남문(南門) 밖에서 살았다. 14세 때 부모의 가르침과 권면으로 입교하여 형제들과 함께 열심히 수계했는데 동생 최방제(崔方濟)는 1836년 김대건(金大建) · 최양업(崔良業)과 함께 마카오에 유학하여 그 곳에서 사제수업을 받던 중 병사했고, 형 최수(崔燧)는 1866년 절두산에 참수되었으며, 큰 누이는 평생을 수정(守貞)하였다. 이러한 독실한 교우가정에서 성장한 최형은 1836년 모방(Maubant, 羅) 신부의 복사로 여러 해 동안 신부를 보필하며 전교에 힘썼다. 그 후 1839년 기해(己亥)박해 때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후로는 목수일을 하며 묵주 만드는 일과 교회서적 간행을 도왔고,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의 입국 후에는 교회서적 출판의 책임자가 되어 교회서적 출판에 크게 공헌하였다. 1866년 베르뇌 주교가 체포되면서 적발된 많은 교회서적들 때문에 체포되어 3월 9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동료 전장운(全長雲)과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諡福)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