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교회와 모국교회, 교포교회간의 상호 유대 강화를 목적으로 1978년 4월 7일 발족된 기구. 해외교포들에 대한 사목활동의 중요성을 인정한 주교회의는 1971년 윤공희 대주교를 교포사목 담당주교로 선정, 그 업무를 관장하게 해 오다가 1978년 박정일 주교를 담당주교로 하여 정식기구로 발족시킨 것이다. 1980년 12월 8일에는 교포사목후원회가 발족되었고, 1981년 1월 동 사목부는 회보 <해외한인교회>를 창설하였다. 그 해 가을 주교총회는 이향신자사목부와 해외교포사목부의 통합필요성을 인정하고, 이를 통합시켜 이주사목위원회로 개편하였다. ⇒ 이주사목위원회
해양사목 [한] 海洋司牧 [라] opus apostolatus maris [영] apostleship of sea
특수사목의 한 분야로 바다에서 활동하는 선원들과 그 가족들을 사목대상으로 하며, 그들의 생활에서 발생하는 고독과 불안을 그리스도의 복음 속에서 극복하게 하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라 살도록 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 선원들은 바다에서의 생활과 가정생활이라는 이중생활로 말미암아 가족과 친지를 떠나 사나운 바다와 싸우며 고독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선원들을 바다로 떠나보낸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고독과 불안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교회가 이들의 고통에 눈 돌린 것은 최근의 일이다. 1920년 영국의 글라스고(Glasgow)에서 평신도들이 선원들의 영적 관리를 목적으로 국제적인 단체를 창설하였다. 이 단체는 선원들을 위해 기도하고, 선행(善行)을 행하는 데, 1922년 글라스고 대주교 메킨토시(Mackintosh)의 제청에 의해 교황 비오 11세는 이 단체를 축복하고, 승인서한을 보냈다. 그 후 세계 여러 항구도시의 성당이 선원센터로 지정되어 해양사목을 담당하였고, 1952년 사도적 헌장 에 의해 로마에 총본부가 설립되었다. 1957년 교황 비오 12세는 이 조직에 필요한 일련의 법령, 회칙 및 운동지침을 발표하였고, 1961년 교황 요한 23세는 해양사목 전속사제들에게 특수한 보완기능들을 부여하기도 하였다. 그 뒤 20여년이 지나 1981년 현재에는 전세계 400여개 항구에 전속사제가 배치되게 되었고, 150개 이상의 센터나 클럽이 설치되었다. 이들 전속사제는 해마다 지역별로 만나 서로 문제점을 교환, 검토하며, 5년마다 세계대회를 갖는다. 한국에서의 해양사목은 1970년에 시작되어 사목신부를 시간제로 배치하였고, ‘바다의 별’이라는 단체를 구성하였으며. 1979년에는 메리놀회 파이퍼(Darid Pfeiffer, 한국명 파명권) 신부를 부산의 해양사목 전속사제로 임명 하였다.
해성학교 [한] 海星學校
① 전주교구에서 설립, 운영하던 초등교육기관으로 현 성심여자중고등학교의 전신이다. 이 학교의 역사는 프랑스 선교사 보두네(Xaverius Baudounet, 尹沙勿) 신부가 1891년 설립한 여교당(女敎堂)에서 시작된다. 이 여교당은 갑오경장(1894년) 이후 문을 닫았고, 1920년 라크루(Marcellus Lacrouts, 具) 신부가 여교당의 자리에다 해성학원을 설립하였다. 이 해성학원은 1938년 인가를 받아 6년제 보통학교가 되었고, 교명을 해성학교로 변경하였다. 1945년 광복 직전 일제의 잔혹한 탄압으로 폐교된 해성학교는 1948년 성심여자중학교로 새로이 출발하였다. 1952년 고등학교를 병설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북 전주시 교동 208번지 소재.
② 대구교구에 설립, 운영하던 초등교육기관으로 성립학교라고도 불렸다. 1899년 로베르(Robert, 金保錄) 신부가 설립하였고, 1908년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아 해성학교라는 정식명칭을 가지기 전까지는 주로 해성재(海星齋)라고 불렀다. 1910년 여자부를, 1912년 고등과를 병설하여, 여자부는 그 뒤 계속 발전하여 1925년 효성학교로 분리, 독립하였으나, 고등과는 2년 뒤인 1914년 폐지되었다. 1930년대에 폐교되었다.
③ 황해도 황주본당에서 설립, 운영하던 초등교육기관. 1902년 황주본당의 초대 주임 한기근(韓基根) 신부가 성당 부근에 초가집을 지어 시작하였다. 1910년경 폐교되었다.
④ 1908년 미리내본당에서 설립, 운영하던 초등교육기관.
⑤ 평양교구 진남포본당에서 설립, 운영하던 초등교육기관. 1921년 설립된 해성학원에서 그 역사가 시작된다. 1차 대전의 발발로 주임신부가 본국으로 소환되는 바람에 한 때 교육이 중단되기도 하였다. 1930년 스위니(Sweeney, 徐) 신부가 이제까지 산발적으로 실시하여 오던 교육사업을 정리하고 사립학교의 인가를 받아 4년제 보통학교로 출발하였다. 1935년 6년제로 개편하여 계속 발전하다가 일제말기 공립학교로 흡수되었다.
⑥ 연길교구 삼원봉본당에서 운영하던 초등교육기관. 1904년 라리보(Adrianus Larribeau, 元) 신부가 설립한 화룡서숙(和龍書塾)에서 시작되었다. 1905년 덕흥서숙(德興書塾)으로, 1911년 덕흥학교로 교명을 바꿨고, 1919년 6년제 보통학교인 해성학교로 개편되었다. 왕심학교라고도 불렀다.
⑦ 황해도 연평도본당이 설립, 운영하던 초등교육기관. 전덕규(全德奎) 등이 교육회를 결성, 신문화 운동의 일환으로 1922년 설립하였다. 1935년 폐교되었다.
⑧ 그 밖에 천주교에서는 만주땅의 팔도구(八道溝, 1921년), 차조구(茶條溝, 1928년), 훈춘(琿春, 1929년), 합마당(蛤蟆塘, 1930년), 두도구(頭道溝, 1931년), 명월구(明月溝, 1931년), 연길상시(延吉上市, 1931년)등지에 해성학교라는 이름의 학교를 설립, 운영하고 있었다.
해성재 [한] 海星齋
대구교구가 최초로 설립한 교육기관. 대구본당 주임신부인 로베르(Robert, 金保祿) 신부가 1899년에 십자가성당의 부속건물로 건립한 서당. 해성재는 1908년 4월 이후 성립학교(聖立學校) 교사(校舍)로 사용되었다. 그 동안 해성재는 해성체육단, 청년회, 성모회 등 단체의 회관으로, 교우들의 집회소로 그 역할이 컸다.
해석학 [독] Hermeneutik [한] 解釋學 [영] hermeneutics
정신과학의 대상이나 역사적 현상을 학문적으로 이해하는 방법과 이론을 다루는 학문을 말한다.
고대 그리스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성행한 문헌학의 방법이었는데 르네상스시대에 이르러 고대문서의 해석기술로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그 뒤 실라이에르마허(F.E.D Schleiermacher)에 의해 ‘이해의 기술론’(技術論)이라 불렀고, 그의 제자 벡(Augut Boeckh)은 해석학을 “문서에 정착되어 있는 삶의 표현을 이해하는 기술론”이라 정의하고, 문자로 표현된 문서나 문학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주어진 모든 인간정신 산물을 체험의 표현으로 보아, 해석학은 삶과 세계를 해석하고, 인간의 모든 것을 해석하는 것을 의미하는 학문으로 확대시켰다. 그에 의하면, 인간정신의 산물은 하나하나가 모두 개성이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 체험에는 근본적으로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표현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보편타당한 해석의 방법 및 규칙, 논리의 학문으로서 해석학을 제창하고 그것을 정신과학과 역사학의 기초적 방법으로 채택하였다. 딜타이의 영향을 받은 하이데거는 그의 존재론을 현존재(現存在)에 속하는 존재의 의미를 밝히는 해석학이라고 규정하였다.
칼 바르트(Karl Barth)는 변증법을 신학에 도입, ≪로마서강해(講解)≫(Der Romerbrief)를 내놓아 성서해석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고, 딜타이와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은 불트만은 성서의 내용과 형식을 분리하여 고대의 세계관의 껍질을 뒤집어 쓴 신화적 표현방식을 벗겨 내고 복음이 주는 내용, 즉 중심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는 비신화화론(非神話化論)을 주장하였다. 그는 이어서 기록으로서의 역사와 사건으로서의 역사를 구별하고 기록만으로는 역사의 주체와의 관계가 별로 없고, 사건으로 일어나야 비로소 현실성과 의미를 지닌다고 하였다. 해석학은 이제 언어의 학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나의 단어나 문장이 지닌 의미에 대한 해석의 차원을 넘어 그것이 어떤 사회의 배경에서 표현되고, 표현될 수밖에 없었던가의 문제를 해석학은 추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