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의신학 [한] 敎義神學 [라] theologia dogmatica [영] dogmatic theology

1. 교의신학의 개념 : 교의신학 또는 교리신학(敎理神學)이라고 번역되는 theologia dogmatica는 조직신학(組織神學)의 분과이다. 본래 ‘dogma’ 즉 주장, 결정, 지령, 원리 등의 뜻을 가진 단어가 성서에서는 법령이라는 뜻으로(사도 17:7, 루가 2:1) 또는 믿고 실행해야 될 근본 명제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에페 2:25, 골로 2:14, 사도 16:4). 3세기까지의 교부들도 신약성서의 뜻대로 믿을 것과 지킬 것을 다 ‘도그마’라 하였다. 4세기부터는 불변하게 확정된 계시진리라는 한정된 뜻으로 사용되어 일반 교리 전반에서 구별되었다. 중세 초기의 저자들도 한정된 의미로 사용하였으나, 전성기의 스콜라 신학자들은 이 말 대신에 신조(信條, articuli fidei)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근세에 와서 다시 이 단어가 보편화되어, 트리엔트 공의회와 제1차 바티칸 공의회가 공식으로 사용하였다.

학술용어로 dogma는 하느님이 확실히 계시하셨고 우리가 믿어야 할 것으로 교회가 공인한 신앙교리를 뜻한다. 즉 하느님의 계시와 교회의 공인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채워져야 어떤 명제가 ‘도그마’로 인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믿고 지켜야 할 계시진리를 연구하는 것이 신학이라면, 본래 모든 신학은 다 교의신학이라고 할 수 있고, 사실 16세기까지는 모든 신학자가 교의신학자였다. 그러나 16세기부터 학문이 세분되는 추세 가운데서 윤리생활에 관한 지침서가 생기면서 윤리신학이라는 분과가 분화되었고, 믿을 교리에 관한 것만 따로 모아서 1634년에 갈리스도(G. Calixtus)가 theologia dogmatica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고, 이내 보편화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dogmatica[형용사]는 dogma[명사]보다 넓은 뜻으로 교리 전반을 지칭하고 있으며, 실제로 윤리부분을 제외한 교리 전반을 다루고 있다.

2. 교의신학의 내용 : 계시된 진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 상이한 체제가 가능하지만, 일반적으로 하느님 자신을 출발점으로 하여 인간 구원의 경륜을 거쳐서 궁극적으로 하느님께 돌아가는 도식으로 각 논제를 배열한다. 이 체제를 토마스는 하느님에게서 나와서(exitus a Deo) 하느님께로 돌아감(reditus ad Deum)이라고 표현하였다.

① 계시론(啓示論) : 신학의 기본전제가 되는 계시가 가능한지, 사실상 그런 계시가 주어졌는지 살피고 인간이 어떻게 그 계시를 인식하고 수용하는지, 어떤 경로로 계시가 전달되는지 연구한다.

② 신론(神論) : 계시에 나타난 하느님 자신의 모습, 그 분의 존재, 그 분의 본질과 여러 가지 속성, 그 분의 섭리적인 작용,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의 신비에 대하여 연구한다.

③ 창조론(創造論) : 하느님의 만물창조와 만물지배, 초자연계와 자연계, 인간의 현양과 타락(원죄), 천사, 인간, 물질, 악의 문제 등을 논한다.

④ 그리스도론 : 하느님의 구원의 경륜의 구체적 진전을 여러 분과에서 취급하며, 그 첫째로 구세주로 파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降生)신비와 그리스도의 생애와 업적의 의미, 그리고 그의 구속의 신비에 대하여 연구한다.

⑤ 구원론(救援論) :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이 인간에게 미치는 결과를 연구하는 것이므로 구원의 의미, 구원의 은총의 여러 가지 양상, 은총으로 인간에게 심어진 성덕인 신덕(信德), 망덕(望德), 애덕(愛德) 등을 고찰한다.

⑥ 교회론(敎會論) :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의 연장인 교회의 신비를 그의 본성과 구조에서 고찰하고, 교회의 사명과 그 사명수행에 필요한 여러 가지 직능을 고찰하고 교회의 모델인 성모 마리아와 모든 성인의 통공 교리를 연구한다.

⑦ 성사론(聖事論) : 구원의 큰 성사인 교회의 일곱 가지 성사에 대하여 총론과 각론으로 나누어 연구한다. 그리스도교 입문의 성사인 세례, 견진, 성체를 특히 중요시하고, 다른 네 가지 성사의 교의적 내용을 연구한다.

⑧ 종말론(終末論) : 창조와 구속을 거쳐서 만물이 하느님께로 귀속되는 완결의 신비를 연구한다. 죽음, 심판, 영생, 영벌 등 인간의 운명과, 그리스도의 재림과 공심판과 우주의 완결과 하느님의 승리에 대하여 고찰한다.

위에 제시한 8개 분야는 전통적으로 교의신학의 내용을 이루는 것이지만, 신학이 발전함에 따라서 새로운 과제가 등장하게 되었고, 그 전에 교의신학 전문서에서 간단히 취급되던 것이 깊이 있게 다루어 질 필요가 생겼다. 그 중 중요한 몇 가지 분야를 지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신학적 인간학 : 창조론에서 인간의 전부를 논하기 어렵고, 특히 실존주의와 마르크시즘의 영향 하의 현대에서 인간의 주관성, 교환성, 역사성은 구세사(救世史) 안에서의 인간의 의미를 더 깊이 통찰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인간은 영혼과 육신으로 결합한 존재”라는 단순한 원리만으로 인간의 의미를 다 헤아릴 수는 없는 것이다.

② 역사신학 : 시간과 공간의 범주 안에 존재하는 사물들의 역사성을 무시하고는 실재를 파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우주와 인간의 역사 자체가 구원 신비에 대하여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좀 더 해명되어야 한다. 그래서 역사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사명도 더욱 밝혀져야 한다.

③ 지상사물(地上事物)의 신학 : 인간의 역사적 활동의 대종을 이루는 정치 · 경제 · 문화활동의 구세사적 의미가 탐구되어야 한다. 교의신학은 오랫동안 개인의 구원과 초자연계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취급하였지만, 이제 인간이 구원의 길을 가면서 취급하는 인간활동이나 물질세계의 신학적 가치를 평가해야 된다. 가정, 사회, 국가, 노동, 기술, 예술, 기타 인간 활동에 관한 윤리신학적 접근은 많이 있지만, 이런 문제에 대한 존재론적 교의신학적 접근은 아직 초보단계에 불과하다. 소위 정치신학, 해방신학, 혁명신학 등의 서투른 시도도 이런 각도에서 고민하고 있는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교의신학의 미개척 분야는 아직도 많이 있는 실정이다. (鄭夏權)

[참고문헌] Y. Congar, La foi et la theologie, Tournai 1962 / J.R. Geiselmann, Dogme in Encyclopedie de la foi, t. 1, pp364-381 / E. Schillebeeckx, Revelation et theologie, Bruxelles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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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의사 [한] 敎義史 [라] historia dogmatum [영] history of dogma

사도시대 말엽에 완성된 하느님의 계시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발전해 온 역사를 체계적으로 제시한 내용, 그 내용 중에는 성서와 성전에 계시된 교회, 신경과 교의적 정의와 교리 용어에 표현된 하느님의 말씀, 계시진리의 해석, 계시의 의미에 대한 이해의 발전, 이단의 공격에 대한 계시진리의 방어 등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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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의 [한] 敎義 [라] dogma [영] dogma

성서와 성전에 기초를 둔 믿을 교리를 의미하는 용어로서 교회가 그리스도께 받은 권한으로 신자들에게 믿으라고 가르치는 진리들이다. 이 단어는 본시 그리스도어의 ‘가르치다'(dokeo)라는 동사에서 유래되며 철학이나 법학에서 ‘가르침’, ‘율령’, ‘결의문’ 등의 의미로 사용되던 말이다. 신약성서에도 이런 뜻으로 쓰여진 예를 볼 수 있다(히브 11:23, 루가 2:1, 사도 17:7). 초대교회 교부들은 이 단어를 신앙에 대한 권위 있는 가르침, 즉 믿을 교리라는 뜻으로 썼다. 이 교리가 하느님의 계시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그 시대의 철학이나 이단(異端)의 가르침과 구별하고 교회 신앙교리의 우월성을 말하였다. 중세기에는 별로 뚜렷한 의미 없이 다른 단어들(doctrina, assertio, sententia)과 같이 쓰여졌으며 계시된 신앙진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교의라는 단어에 부여하는 뜻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가 정의(定義)한 것이다. 공의회에서 통과된 신앙에 관한 장(章)에는 “기록되었거나 전해 내려 온 하느님의 말씀으로서 교회가 엄숙한 판단으로 혹은 그 통상교도권의 행사로써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신앙진리라고 제시하는 모든 것을 거룩하고 공번된 신앙으로 믿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즉, 하나의 진리가 교의로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성서나 성전에 있는 하느님의 말씀이어야 하고 교회의 교도권이 가르치는 것이라야 하되, 이를 계시된 진리라고 가르치는 것이라야 한다. 여기서 ‘엄숙한 판단’이란 공의회의 결정 혹은 교황의 성좌(聖座)에서의 선포를 말하고, ‘통상 교도권의 행사’란 세계의 모든 주교들의 공통된 가르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가르침이 교의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교의는 역사 안에 살아 있는 교회가 한 문제에 대하여 자기 신앙의 의식(意識)을 결정적으로 표명하고 신도들에게 믿을 교리로 선언할 때 성립한다. 복음이 지니고 있는 진리를 역사 안에서 그 시대의 요구에 따라 표현하고 고백하는 것이 교의이며, 이는 교회가 그 시대의 용어와 사상을 이용하여 가르치고 표현하는 데에서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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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 [한] 敎育學 [영] pedagogy

이 용어는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지만, 우선 정규적 가르침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함이 옳다. 넓게는 교수의 방법과 이론들의 수세기에 걸치는 범위, 그리고 한 문명이 다른 문명으로 바뀌어 가는 변천과 진보의 역사를 포용할 정도이며, 좁게는 특수한 원리들의 체계화와 이런 체계화에 대한 연구, 다시 말해서 사고(thought)가 과학적인 정신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지는 경우를 말한다. 완전한 교육학적 이론은, 위와 같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인간의 삶, 가치에 대한 철학이 대부분을 포함하는 것이어서, 미국 등 영어사용권의 여러 나라에서는 교육학이란 용어를, 보다 포괄적인 말인 ‘교육’(education)이란 말로 대치하여, 금세기에 크게 증가된 여러 대학들의 교육학부의 관심이 교과과정 계획, 학생지도와 각 단계별 학교들의 조직과 운영, 제반 분야에까지 파급되고 있다. 그러나 이 항목에서는 인습적이고 제한된 뜻으로서의 교수방법을 뜻하는 교육학 발전의 역사를, 그것도 가톨릭적인 교육학에 국한해서 다음에 간추렸다.

예언자들과 서기관들은 이스라엘의 교사들이며, 구약은 그들이 쓴 글을 집대성한 것이므로, 의식적이건 암시적이건 간에 자연히 교육이론과 교육학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교육은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사명으로 여겨졌고(비교, 신명 4:7), 모든 교사들의 원형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가르친 거룩한 스승 곧 야훼 그 자신이었다(출애 4:12). 즉 모세는 “이스라엘은 들어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를 듣고 지켜라. 야훼께서 나에게 내리신 법규와 규정들을 그대로 너희에게 가르쳐 주었다”(신명 4:5)라고 하였다. 이렇듯 교육과정은 하느님의 허락과 권위를 소유하는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도교적 교육학의 중심문제였던 그리스도교의 교육사상이 고대문명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뒤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내놓은 원리 “은총은 자연을 전체로 삼으며 이를 파괴하지 않는다”(Gratia supponit naturam, non tollit)에 좇아서 해결되자 고대문화의 연속성이 확보됨으로써 광대한 범위에 걸친 사업이 이룩되었다. 교육에 흥미를 지녔던 철학자들은 기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교수방법을 지시해 줄 보편적인 학습 패턴을 발견하려는 꿈을 때때로 지녀왔다. 듀이(John Dewey, 1859~1952)는 결실이 있게 하는 모든 사고는 많은 선택의 가능성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문제상황으로부터 발생한다고 믿었다. 듀이보다 1세기 이전 사람인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는 행위학습(learning by doing)이 강제적이기보다는 흥미를 통해 동기를 유발시키는 듀이와 비슷한 교육학을 주장하였다. 루소의 《에밀》(Emile, ou Traite de I’Education)에서 전형적인 예를 든다면, 말치레(verbalism)와 책을 통한 학습을 배격하는 가정교사는 에밀에게 그로 하여금 숲에서 길을 잃게 하고, 그런 다음, 나무 그림자의 방향을 관찰하여 길을 찾아내도록 하게 하는 방법을 통해 천문학의 원리들 가운데 그 일부를 가르친다.

가톨릭적인 교육학은 19, 20세기에 와서도 그 주요임무로 맡은 것이, 교육에 있어서 교회가 지닌 독자적인 여러 가치와 그때그때의 문화의 근본적 요구와를 잘 결합 · 조화시키는 일이었다. 그 주요 사상의 골자를 보면, 교육의 궁극 목적은 인간이 천주님 속에 자리 잡는다는 것, 이 목적은 성총의 힘을 빌어서만이 달성되며, 지상에는 인간이 소유하는 불멸의 영혼보다 더 높은 가치는 존재하지 않고, 영혼은 그 구령(救靈)과 완성을 위하여, 영혼의 본질에 필연적인 공동체 즉 가족 · 단체 · 국가 및 교회에 관계하며 이 공동체의식과 영혼의 내적인 만남은, 영혼의 가장 깊은 중핵에 접근했을 때만이 그 기초를 갖게 된다는 것, 이리하여 구세주는 역사의 중점(中點)에 섬과 동시에, 모든 교육자의 절대적인 모범이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20세기 과학기술은 전통적인 학습방법들을 본질적으로 변형시킴이 없이 학습방법의 기교들의 다양화를 이루어 놓았고, 또 교육학의 개척자들은 대부분 어린이들에 대한 교수에 주력을 기울여왔다. 왜냐하면 이들 어린이에 대한 교수가 그 자체로서 더욱 어려움은 물론, 몰지각하고 또는 화석화된 교육절차에 예속될 위험이 더 크기 때문이었다. 16, 17세기에 예수회 회원들이나 모라비아파 감독 코메니우스(Comenius, 1592~1670)와 같은 교육개혁자들은 통속적이고 야만적인 교육학을 개탄하여 호레이스(Horace)의 교사인 절굿공이 오르빌리우스(Orbilius)의 가장 매력없는 특질들만 골라서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코메니우스는 당시의 라틴어 문법학교를 ‘정신적인 살인집단’이라고 불렀지만, 매질하지 않고 가르치는 것이 일반화되기는 그보다 수세기가 더 지난 뒤였다.

가톨릭적인 교육학과 직접 관련되는 윤리교육 문제, 성교육학 문제에 대하여는 주로 프랑스에서 강조되고 있으며, 종교교육학 문제는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각기 연구되고 있다. 특히 교육학에 관련된 흥미 있는 새 경향은 의학과 교육과의 협동인데, 이는 프랑스와 독일에서 이론적인 성과를 거두어 교육학 및 의학의 한계문제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에까지 발전되어 왔다. 이에 대한 논문에, 미뇽(A. Mignon)의 , 봉(H. Bon)의 , (Lyon 1936)등이 있다. 가톨릭적인 교육학 이외의 학계에서 이따금 파생되는 현상의 하나로서, 교육심리학적인 연구의 발달로 말미암아 교육학 전체를 아무 연관이 없는 세부적인 교육생활의 심리학, 예컨대 아동학(兒童學, Paedologie)으로 몰고 갈 염려가 많다.

그러나 오늘날의 가톨릭 교육학은, 교육에 객관적인 가치와 표준을 부여하지 못하는 심리주의에 대하여, 모든 교육의 궁극적인 통일과 확실성을 줄 수 있는 규범에 대한 믿음을 수립해 나가므로, 이 교육학의 참된 의의는 학적 업적에서 찾기보다는 이 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오이켄(Rudolf Eucken)의 말처럼 “그리스도교는 위대한 과거뿐만이 아니라, 또한 위대한 미래를 갖는 것이다.”

[참고문헌] Comepius, The school of Infancy / Rousseau, Emile / Herbert, The science of Education / Dewey, The Child and Curriculum; The School and Society / Fr. Schneider, Bildungskrafte im Katholizismus der Welt, Freiburg 1936 / Gottler, Geschichte der Padagogik Grundlinien, 1935 / Philippe Aries, Centuries of Childhood: A Social History of Family life,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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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철학 [한] 敎育哲學 [영] philosophy of education

1. 의의 : 교육이란 인간의 사회화(社會化) 과정이다. 이러한 교육의 목표가 기초하고 있는 이론과 그 이론을 뒷받침하는 윤리, 교육이론의 심리학적 사회학적 측면을 설명하는 형이상학 등을 총괄하여 교육철학이라고 한다.

2. 연혁과 내용 : ① 그리스 시대 –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사물의 본성에 대한 고찰이 활발하였다. 즉 자연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원자(原子)사상이나, 4원소설, 피타고라스의 수(數) 중심 사상 등이 나왔다. 그러다가 개인주의가 고개를 들면서 쾌락설이 주장되었으며, 프로타고라스 등을 중심한 소피스트가 등장하여 선 · 악의 구별조차 편의적으로 해석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하여 소크라테스는 논리의 혼란과 독단으로부터 참다운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목표임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플라톤(기원전 427~347)은 서양 교육철학에 있어서의 원조(原祖)라 할 수 있다. 그의 교육이론은 《국가론》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사회조직의 최고의 형태를 국가로 보고 시민은 그 국가 내에서 세 가지의 다른 직분을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분담하게 되며, 그 직분에 따라서 교육할 것을 주장하였다.

② 중세시대 – 성 아우구스티노(354~430)는 2분법을 사용하여 인간을 영혼과 육체를 가진 존재로 보고, 인간이 살고 있는 공간을 원죄 이전의 상태와 타락한 상태로, 지상의 속국(俗國)과 천국으로 나누어 인간의 교육의 목표는 회개와 개종에 있다고 보았다. 교육의 초기 단계에는 플라톤의 교육 과정을 본떠 7개 인문학과로 하고, 고등단계에서는 철학과 신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보았다.

③ 근대 – 존 로크(1632~1704)는 그의 《교육론》(Some thoughts concerning education)에서 교육의 목적은 사회 공동체의 행동을 증진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장 자크 루소(1712~1778)의 교육 사상은 그의 유명한 저서 《에밀》(Emile)에 잘 나타나 있다. 루소는 인간의 본성이 원래 천진무구하나 가족이 형성되고 개인이 사유재산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불평등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탐욕과 이기심이 횡행하고 부자의 재산을 빈자(貧者)의 탐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정부를 세우고 법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이런 환경에서 개인이 어떻게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교육방법은 피교육자의 관찰과 자발적 학습, 강건한 육체와 정신적 안정이 중요시되었으며, 욕망을 버리고 전원(田園)생활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외계의 격변으로부터 보존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페스탈로치(1746~1827)는 루소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고 교육을 사회개혁의 수단으로 생각하였으며 구라파와 미국에 ‘보통교육’ 사상을 보급하였다. 칸트(1724~1804)는 교육의 궁극 목표는 인간완성을 통한 세계평화의 달성에 있다고 보았다.

존 듀이(1859~1952)는 20세기의 교육철학자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의 교육철학은 경험주의 · 실험주의 · 실용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인간은 환경에 따라서 좌우되고, 그러한 환경에 따라서 경험의 내용도 달라지게 마련이므로 환경을 개선해야 하며, 그러한 환경으로서 학교시설을 대단히 중요시하였다. 아동을 학교교육에 적극 참여케 하여야 하며,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생활을 체득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야말로 지금까지의 어떤 제도보다 인간이 사는 환경으로서 훌륭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3. 가톨릭의 교육관 : 제2차 바티칸 공의회(公議會)에서 채택된 <그리스도교 교육 선언>(Gravissimum educationis)에 나타나 있는 가톨릭의 교육관은 다음과 같다. 오늘날 현대사회가 복잡화하고 대중전달수단의 발달로 말미암아 참다운 그리스도적 사랑에 기초를 둔 전인교육이 필요함에 특히 유의하고 인간은 민족, 신분, 연령의 차이를 불문하고 다 존엄한 인격의 소유자로서 교육에 관하여 균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재확인하고 발달된 심리학, 교육학, 교수학(敎授學)의 진보를 활용하여 지 · 덕 · 체가 조화 있게 발전될 수 있도록 청소년을 교육시킬 필요를 강조한다. 가톨릭 교회는 최초의 교육기관으로서 가정교육을 중요시하며, 따라서 부모는 하느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과 신심으로 가득 찬 가정환경을 조성하여 그들의 자녀들에게 이러한 덕행(德行)을 가르칠 것을 권고한다. 또한 교회는 사회의 각종 교육기관과 긴밀히 협조하여 그리스도의 사랑과 신심을 전파하도록 노력한다. 가톨릭 교회는 학교교육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신자는 지역사회의 학교 교육이 원활히 운영되도록 협조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또한 덕성을 갖춘 교사를 많이 양성하도록 협력하여야 한다. 비(非)가톨릭 학교에서는 교우간의 사도적 활동을 통하여 구원의 교리가 전파되도록 해야 하며 현대사회의 다원성을 고려하고 종교의 자유를 수호하면서 모든 학교에서의 교육이 도덕적 종교적 원리에 따라 시행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또한 가톨릭계 학교에서는 학교 내에 자유와 사랑과 복음적 정신으로 충만한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조직되고, 교과과정이 편성되어야 하며, 발전하는 사회에 대하여 개방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 교사는 일반적인 지식과 종교적인 지식을 겸비해야 하며, 교사는 교사 상호간 및 학생과 교사 간에 사랑과 사도적 정신으로 연결되어 유일한 스승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참고문헌] The Encyclopaedia of Philosophy, vol. 5-6, MaCmillan and free press, 1980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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