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김교원과 강준이 설립한 초등교육기관으로 인천 박문국민학교의 전신이다. 1909년 프랑스 선교사 드뇌(Eugene Deneux) 신부가 학교장으로 취임하여 1910년 여자부를 병설하였다. 1917년 2개의 학교를 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천시 중구 답동 3번지 소재.
박마르타 [한] 朴∼
박마르타(?~1868). 순교자. 고종(高宗)의 유모. 1866년 남종삼(南鍾三)이 조정에 러시아 세력의 견제를 위한 방아책(防俄策)을 건의할 당시 대원군의 부인 부대부인 민씨(府大夫人 閔氏)의 심부름으로 궁궐과 조정의 반응을 홍봉주(洪鳳周, 토마스)에게 전해 주었다가 방아책이 무시되고 오히려 병인박해(丙寅迫害)가 일어나자 충청도 홍천(洪川)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곧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된 후, 1868년 2월 순교하였다.
박내원 [한] 朴來元
박내원(1860-1935). 공소회장. 자(字)는 용진(龍津), 세례명은 토마스. 본관은 밀양(密陽). 충청도 정산(定山) 함박실에서 영동현감(永同縣監)을 지낸 박상호(朴尙浩)의 9남매 중 6남으로 태어났다. 병인박해 중 1868년 부친과 함께 체포되어 해미현감(海美縣監)에게 재산을 약탈당한 뒤 석방되었으나 부친은 질병으로 사망하고, 자신은 해미현감의 집에 잡혀 있다가 2년 뒤 형들에 의해 구출되었다. 1879년 권 아폴리나와 결혼한 후, 1880년 황해도 장연(長淵) 배마당으로 이주, 공소회장을 맡아보면서 그해 11월 해로(海路)로 입국한 뮈텔(Mutel, 閔德孝), 리우빌(Liouville, 柳達榮) 신부를 맞아 2개월 동안 자신의 집에서 보호하며 한국어를 가르쳤다. 이 사실이 관가에 알려져 재산을 빼앗기고 경기도 연천군 남면 신암리로 이주하였다가 다시 하갓둥이를 거쳐 수원 고색동에 정착, 말년을 보냈다. 1935년 1월 26일 사망, 경기도 남곡리의 양지본당 묘지에 안장되었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2남은 박동헌(朴東憲, 마르코, 1893-1948) 신부이고 장남 원하(元夏, 필립보)의 아들이 서울교구 박희봉(朴喜奉, 이시도로) 신부이다.
바하 [원] Bach, Johann Sebastian
Bach, Johann Sebastian(1685-1750). 독일의 작곡가. 오르가니스트. 1750년 뮐하우젠의 성 브라지우스 교회 오르간 연주자가 된 뒤, 교회 칸타타 등을 작곡하여 발표하였다. 그는 또 궁정악단의 연주를 통해 이탈리아 악파의 음악을 알게 되고, 그래서 이탈리아의 협주양식(協奏樣式)이란 새로운 작곡법에도 착악, 비발디의 협주곡을 오르간이나 쳄발로로 편곡하였다. 1723년 바하는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의 지휘자에 취임하여, 죽을 때까지 27년간을 교회음악가로 살았다. 성 토마스 교회에서는 주일마다 칸타타가 연주되었고, 성 금요일에는 수난곡(受難曲)이 불려졌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의 하느님은 견고한 성이로다> 등을 포함한 140곡 이상의 교회 칸타타, <마태오 수난곡>을 포함한 몇 곡의 수난곡, <마니피캇>,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등의 많은 교회음악이 작곡되었다. 만년에는 대위법서법(對位法書法)의 극치라고도 할 수 있는 <골트베르크 변주곡(變奏曲)> 등도 작곡하였는데, 그래서 바하는 헨델, 모차르트, 베토벤 등과 더불어 최대의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그의 작품은 형식에 있어서 가장 완벽한 구성을 이루고, 정신적 내용에서도 음향(音響) 예술의 극치에 달하였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