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사체(死體)를 표현한 예술작품 전반에 적용되는 표현. 어원은 라틴어 pietas(의무, 겸허, 효애)이다. 통례적으로 성모 마리아상이 포함된다. 13세기 독일에서 발달되어 문예부흥기 이탈리아에서 절정에 달하였다. 피에타를 표현한 거장으로는 벨리니(Bellini), 보티첼리(S. Botticelli), 카라밧조(M. da Caravaggio), 뒤러(A. Durer), 안젤리코(F.G. Angelico), 무릴료(B.E. Murillo), 라파엘로(Raffaelo Sanzio), 루벤스(P.P. Rubens), 티티안(Titian), 반 다이크(Van Dyck) 등이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피에타 상(像)이다.
피악수선가 [한] 避惡修善歌 [관련] 천주가사
대표적 천주가사(天主歌辭)의 하나. 1850~1860년에 작사되었고 저작자는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내용 · 문체 · 구성 등이 최양업(崔良業) 신부 저작의 천주가사들과 유사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저작자는 최양업 신부로 추정된다. 4 · 4조(調)의 기본운율에 총 344행(行)으로 구성되어 있고 내용은 제목 그대로 악(惡)을 피하고 선(善)을 닦음을 주제로 하고 있다. 대부분의 천주가사들이 교우들을 대상으로 작사된 것에 비해 이 가사는 예비자들을 대상으로 작사된 것이 그 특징이다. 이 가사는 1850~1860년대의 천주가사집인 ≪사주구령가≫(事主救靈歌) 속에 <사향가>(思鄕歌), <삼세대의>(三世大意) 등과 함께 수록도어 있다. (⇒) 천주가사
피숑 [원] Pichon, Leon
Pichon, Leon(1893~1945). 신부, 피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한국명 송세흥(宋世興). 프랑스에서 출생. 파리 외방전교회를 졸업한 뒤 1921년 11월 28일 사제서품을 받고, 이듬해 1워 24일 선교사로 한국에 입국하였다. 입국 후 충남 공세리(貢稅里), 강원도 이천(伊川) 등지에서 사목하다가 1927년 용인 예수성심신학교 교수로 전입되었고, 이어 명동본당, 경기도 덕정리(德亭里)본당 주임신부를 역임하였다.
평소 한국 천주교회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프랑스의 각 도서관과 한국내의 천주교회사 자료를 수입, 연구하여 1933년부터 1936년까지 <가톨릭 청년>지(誌)에 11편의 논문(論文)을 발표하였고 1938년 김대건(金大建) 신부의 서한 16통과 김대건 신부의 연보 · 전기 등을 수록한 ≪조선성교사료≫(朝鮮聖敎史料, Pro Corea Documenta)를 편찬, 간행하였다. 그러나 교회사연구의 완성을 맺지 못하고 1945년 2월 덕정리본당 관내의 공소순방 중 병을 얻어 2월 25일 명동 성모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유해는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주요 저술로는 <조선가톨릭사의 편영(片影)>(가톨릭청년, 제1권 제5호~제2권 제4호, 1933년 10월호~1934년 4월호), <조선가톨릭사 부록>(가톨릭청년 제2권 제6호, 1934년 6월호), <복자 안드레아 김대건의 약력>(가톨릭청년 제2권 제7호, 1934년 7월호, <조선 가톨릭교회 은인 소(蘇) 주교>(가톨릭청년 제3권 제9~10월호, 1935년 9~10월호), <정다산(丁茶山)의 신앙여부>(가톨릭청년 제3권 제11호, 1935년 11월호), <나신부 서간수편(羅神父書簡數篇)>(가톨릭청년 제4권 제1호, 1936년 1월호), <나신부의 입선경로(入鮮經路)>(가톨릭청년 제4권 제2호, 1936년 2월호), <정다산(丁茶山)과 조선가톨릭 초창기>(가톨릭청년 제4권 제4호, 1936년 4월호), <고(高)주교 관리시대의 조선가톨릭>(가톨릭청년 제4권 제7~9호, 1936년 7~9월호), <이(李)신부 · 장(張)주교 관리시대의 조선가톨릭>(가톨릭청년 제4권 제11호, 1936년 11월호), <장(張)주교 관리시대의 조선가톨릭>(가톨릭청년 제4권 제12호, 1936년 12월호)과 ≪조선성교사료≫(Pro Corea Documenta, 서울교구, 1938)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