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원] Platon

Platon(기원전 429?~347).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 형이상학의 수립자. 아테네의 명문에서 태어나 젊었을 때는 정치에 뜻을 두었으나 소크라테스의 처형을 계기로 암울한 아테네 정계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재에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아테네의 근교에 학원 아카데메이아(Akademeia)를 열고 각지의 청년들을 모아 80세까지 연구와 교육의 생활에 전념하였다.

생전에 간행된 약 30편에 이르는 그의 저작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제1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종의 희곡작품으로 여러 가지 논점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담겨 있으므로≪대화편≫이라고 불리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바로 ≪대화편≫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집필한 연대에 따라 ① 소크라테스를 중심으로 하여 주로 “덕이란 무엇인가”란 논점에 대해 정돈한 전기 ≪대화편≫.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메논>,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라케스>, <카르미디스> 등. ② 영혼을 불멸에 관한 장려한 신화(mythos)로 꾸며지고 문학작품으로도 가장 원숙한 중기의 ≪대화편≫. <파이돈>, <파이도르스>, <향연>, <국가> 등. ③ 철학의 논리적인 방법에 관심이 기울여지고, 혼과 이데아(idea)설이 소크라테스의 모습과 함께 사라져 가는 후기의 ≪대화편≫. <파르메니디스>, <소피스트>, <정치가>, <법률> 등으로 나눠진다. 플라톤의 철학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이다. 전기에서 중기에 이르는 대부분의 저작이 소크라테스의 추억을 담고 있으며, 소크라테스에 의해 주장된 철학을 변호하고 찬양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철학이란 중요한 것을 깨달음으로써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이었다. ‘무지(無知)의 지(知)’ 속에서 정돈된 아포리아(aporia) 상태를 통하여 근원으로부터의 물음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 철학이다. 아포리아에 수렴되고 그 속에서 머무르기 위해 문답을 하는데 이것이 다이알렉티케(dialektike)다. 플라톤은 영육이원론(靈肉二元論)의 입장에서 영혼을 이성적 · 비이성적 두 부분으로 나누고, 이성적 영혼은 육체에서 분리 독립되어 있으며 그 불멸성을 주장하였다. 육체의 감각에 의해 인식되는 이 세상의 사물은 생성 변화하는 것으로 참된 실재는 아니고, 실재는 보편적인 것이고, 영혼의 눈인 이성으로 사고되어진다. 이 순수사고의 대상이 이데아이다. 이데아와 사물과의 관계, 즉 영지계(英知界)와 감각계(感覺界)의 관계는 실물과 그림자, 원형(原型)과 모상(模像)의 관계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은 이데아세계에 의한 것이다. 이 세계의 육체에 잠시 머무르고 있는 영혼은 미래의 고향인 이데아세계를 동경한다. 철학을 하는 사람의 임무는 대화를 통해서 이데아세계의 구조를 인식하고 그에 따라 현실을 이상의 이데아세계에 가깝게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러한 영혼관과 이데아설은 당시 데모크리토스의 유물론에 대립하는 거대한 관념론 철학을 창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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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쳇 [라] Placet

“그것이 호감을 준다. 마음에 든다”는 뜻을 지닌 라틴어이며, 어느 판단이나 인가가 교회의 가르침이나 재치권에 어긋나지 않음을 나타내는 상황에 적용된다. 일반적으로 세계 공의회에서 어느 의안에 찬성의 뜻을 표명할 때, 논쟁점에 대하여 성청이 결정을 내릴 때 이 용어를 사용하여 의사표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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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티니콜라 [원] Petitnicolas, Michel Alexandre

Petitnicolas, Michel Alexandre(1828~1899). 순교자.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한국성(韓國姓)은 박(朴). 1828년 8월 21일 프랑스 생 디에(Saint Die) 교구의 코앵시(Coinches)에서 출생. 샤텔 쉬르 모젤의 소신학교를 거쳐 생 디에 교구의 대신학교에서 수학하던 중, 1850년 1월 20일, 차부제(次副祭)로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했으나 그해 10월 병 때문에 외방전교회를 나와 1852년 생 디에 교구 소속으로 사제 서품을 받고 라블린본당 보좌신부로 1년 동안 사목하였다. 그러나 1853년 6월 다시 외방전교회에 들어가 인도, 홍콩 등지에서 포교하다가 1856년 3월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 푸르티에(Pourtie, 申) 신부와 함께 한국에 입국, 충청도지방에서 사목하였고 1862년부터는 배론신학교의 교수로 재직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로 신학교 교장 푸르티에 신부와 함께 배론에서 체포되어 이 해 3월 11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당하여 순교하였다. 유해는 순교 직후 교우들에 의해 왜고개에 안장되었다가 1899년 용한 예수성심신학교로 이장되었고 1900년 다시 명동대성당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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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와넬 [원] Poisnel, Victor Louis

Poisnel, Victor Louis(1855~1925). 파리 외방전교회원, 서울교구 부주교. 한국명 박도행(朴道行). 프랑스 노르망디(Normandie) 지방에서 태어났다. 소신학교와 대신학교를 거쳐 1879년 6월 29일에 사제서품을 받고 1880년 8월 18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들어가 1881년 8월 3일 한국으로 떠났다. 곧장 한국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일본 나가사끼(長崎)에 기착한 그는, 때마침 한국에서 추방당한 리델(Ridel) 주교를 만나 그의 병간호를 하다가 병이 악화된 리델 주교를 본국으로 송환시키기 위해 그를 따라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싱가포르에서 프랑스로 돌아가는 젊은 신부를 만나 주교를 그에게 맡기고 나가사끼로 돌아온 그는 곧 드게트(Deguette) 신부를 따라 한국에 잠입하였다.

첫 포교지도 황해도와 평안도를 맡게 되었으나, 얼마 안 되어 뮈텔(Mutel) 신부가 본국으로 돌아가자 그의 후임으로 조선교구의 경리일을 맡아 보게 되면서부터 장차 교회 발전에 대비하기 위해, 기회를 포착하여 토지를 매입하는 일에 착수했는데 그의 이러한 선견지명과 끈질긴 추진력으로 오늘의 명동대성당을 지을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였다. 그는 종현(오늘의 명동) 주임신부로 있을 때 종현(鐘峴) 대성당의 건축을 맡아보던 코스트(Coste) 신부가 선종하자, 건축관계도 맡아 보아 오늘날 누구나가 감탄하는 대성당을 완공시켰다. 그래서 그 뒤 30년 동안 모든 성당과 기타 부속건물을 지을 때에는 반드시 그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었다. 1917년부터 부주교를 겸임하였고, 1925년 12월 26일 70세를 일기로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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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실리아누스파 [영] Priscillians [한] ~派

4세기 스페인에서 발생한 이단(異端)으로 대표자는 프리실리아누스이다. 원래 평신도였던 프리실리아누스는 인스탄티우스(Instantius, 385년 면직) 주교에 의해 주교로 서품되었고, 살비아누스(Salvianus) 주교에 의해 아빌라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당시 스페인으로 흘러들어온 그노시스주의와 마니교를 받아 들여 독자적인 교리를 만들어 내어 그가 사목을 담당하는 지방에 그의 교리를 폈으며, 황제 막시무스에 의해 체포되어 마술사라는 죄목으로 화형을 당하였다.

프리실리아누스파는 양태론(樣態論, Modalist)적 입장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人性)을 부정하였으며, 천사는 하느님에게서 유출(流出, emamations)된 존재로 파악하였다. 또 악마는 모든 악의 근원으로 악마에게서 육체가 생겨났고, 죄를 범한 영혼은 벌을 받아 육체와 결합하게 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하여 육신의 부활을 부정하였다. 결혼은 악(惡)으로 배척되었고 자유연애는 허용되었다.

이들의 사상은 여러 차례의 단죄(斷罪)에도 불구하고 스페인과 프랑스 남부지역으로 퍼져나갔고, 그리스도 양자설(養子設), 알비파(派) 등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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