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덕 [한] 鐸德

신부(神父)를 지칭하는 옛 말. 원뜻은 덕(德)을 행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탁(司鐸), 서사(西士), 신사(神士) 등과 함께 신부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었다. 현재는 별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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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케 [원] Taquet, Emile

Taquet, Emile(1873∼1952). 신부. 파리 외방전교회원, 대구교구 선교사. 한국명 엄택기(嚴宅基). 프랑스 루르드에서 출생. 1897년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이해 10월 28일 사제서품을 받은 뒤 이듬해 1월 한국에 입국하였다. 입국 후 경남 부산을 중심으로 밀양 · 김해 · 진주 · 거제 · 마산 등지에서 전교했고, 1902년부터 1916년까지는 제주도와 전라남도의 목포 · 무안 · 장성 · 영광 · 함평 · 해남 · 완도 등지에서 전교하였다. 그 뒤 1922년 대구 성 유스티노신학교 교수로 임명되었고, 이어 1931년 교장으로 임명되어 1940년 은퇴할 때까지 대구교구 사제 양성을 위해 헌신하였다. 1940년 고령(高齡)으로 은퇴하여 대구교구 주교관에서 휴양하던 중 1952년 1월 25일 사망, 대구교구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는 한국에서 식물의 수집과 연구로 식물학계에 업적을 남겼다. 한국의 남쪽의 도서, 특히 제주도에서 식물을 수집하여 유럽박물관으로 보냈는데 그 중에서 제주도의 왕벚꽃 등은 유명하다(Dryopteris Taqueti, Diplazium Taqu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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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너 [원] Theiner, Augustin

Theiner, Augustin(1804∼1874). 역사학자이며 교회법학자. 폴란드 브로클로(Wroclaw)에서 출생. 안톤(Johann Anton)의 영향으로 가톨릭교회를 떠났으나 라므네(H. Lamennais)와 라이사흐(K.A. von Reisach) 추기경의 친분으로 인하여 회개하고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와 비오 9세로부터 역사학 연구성과를 인정받아 바티칸 고문서관(Vatican Archives)에서 근무하게 되었으며(1850년) 마침내 그 관장이 되었다(1855년). 그의 저서들 중 ≪Geschichte des Pontifikats Clemens XIV≫(Paris 1853)는 교황 비오 9세의 지시에 의해 저술한 것이며 여기서 예수회를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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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시아노 [라] Tatianus

Tatianus(110∼?). 그리스도교 호교론자이며 영지주의자. 시리아 동부에서 출생. 150년경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니시미티스에서 로마로 이주한 뒤에 개종하여 순교자 유스티노(Justinus)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유스티노와 함께 이교도의 오전(誤傳)에 대항하여 복음서의 원전을 옹호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인들에게 고함≫에서 유스티노와 대조적인 입장을 보였는데, 유스티노는 그리스의 학문과 문화에 경의를 표하는 반면 타시아노는 이교도의 철학에 대해 경멸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172년 그는 로마 교회와 관계를 끊고 시리아로 돌아와 후에 ‘절제파’(Encratites)라고 불린 단체를 설립하였다. 그가 쓴 ≪Diatessaron≫은 매우 유명하여 15세기까지 시리아 교회의 기도서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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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벨라 [원] Tabella

서울 용산 신학교에서 한국인 성직자를 대상으로 1912년부터 대략 1937년까지 라틴어로 간행한 월간잡지. 완전한 제호는 <예수성심의 타벨라>(Tabella SS. Cordis Jesu)로서 우리말로는 ‘예수 성심지(聖心誌)’란 뜻이다. 처음에는 17cm×22cm 크기의 16면 혹은 20면의 등사판으로 발행되다가 1921년에 가서야 인쇄본이 간행되었는데, 그것은 홍콩에 있는 파리 외방전교회 나자렛인쇄소에서 인쇄를 해 주었기 때문이다. 수록된 내용으로는 로마소식, 세계교회소식, 서울교구와 대구교구의 소식, 신학교의 소식을 싣는 소식란과 이단 반박의 역사, 토론, 강론지침, 과학란 등의 학문란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그 폐간 연도를 1937년경으로 보는 것은, 한국교회사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는 1937년 6월호를 폐간호로 본 때문이지만 확실하지는 않고, 용산신학교에서 1935년부터 부록(Supplementum)이란 명칭으로 복간하였는데, 이는 홍콩에서 편집되고 간행되는 <타벨라>에 싫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본다. 10∼15면 정도로 발간되던 이것 역시 언제 폐간되었는지 정확하지 않다. 이 잡지는 무엇보다도 일정(日政)시대의 공백기를 메울 수 있는 교회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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