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집 [한] 講論集 [관련] 설교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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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대 [한] 講論臺 [라] ambo [영] ambo

초세기 그리스도교회에서 강론을 하고 성서를 낭독하며 공지사항을 전달하기 위하여 회중석(會衆席)에 층계를 만들어 높이 세운 단(壇). 후기에 와서 두 개의 강론대 또는 독서대를 제대 양편에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오른편의 강론대에서 복음성서를, 왼편의 그것에서 서간경을 봉독하였다. 오늘날에는 하나의 강론대 또는 독서대를 두어 모든 말씀의 전례를 봉해하는 지역도 있으나, 현재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성당 내 회중석에 독서대를 재대 옆에 강론대를 각각 설치하여 독서대에서 전례 해설자 기타 보조자가 미사고유문 중 제1독서와 제2독서를 하고 전례를 해설하며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한편 복음성서의 봉독과 강론은 사제가 강론대 앞에서 이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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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한] 講論 [라] homilia [영] homily [관련] 설교

설교를 뜻하는 한국 천주교의 고유용어.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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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영 [한] 姜道永

강도영(1863~1929). 서울교구신부. 세례명 마르코. 서울출생. 고모 강마리아의 권면으로 입교(入敎)한 뒤 한문을 공부하던 중 블랑(Blanc, 白主三) 주교에 의해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1883년 4명의 신학생과 함께 페낭신학교로 유학하였다가 1892년 귀국, 새로 설립된 용산(龍山) 예수성심신학교에서 학업을 마친 뒤 1896년 4월 26일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의 주례로 약현성당(지금의 중림동성당)에서 강성삼(姜聖三, 라우렌시오), 정규하(鄭圭夏, 레오)와 함께 사제로 서품, 그 해 6월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된 미리내의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 선종할 때까지 34년간을 그곳에서 사목(司牧)하였다. 부임 당시 안성(安城) 일대에는 동학혁명군, 의병(義兵)들이 많이 몰려 있었고, 또 1896년의 민비시해사건과 이에 이어 발생한 아관파천 등으로 매우 불안한 상황이었으나 선교에 전념, 한때 안성, 양성(陽城), 용인(龍仁), 진위(振威), 수원(水原), 이천(利川) 등지까지 관할하였다. 또한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와 페레올(Ferreol, 高) 주교가 묻혀있는 산을 기증받아 교회묘지를 조성하고 1928년 김대건 신부 묘소옆에 기념경당을 설립하는 한편 외교인들에게는 양잠과 농업기술을 가르치는 등 교우, 외교인을 가리지 않고 헌신적으로 사목하였다. 1929년 3월 12일 공소 순방길에서 걸린 열병으로 인해 67세로 선종, 34년 동안 성직생활의 전부를 바친 미리내에 안장되었다.선종 후 장례미사에는 800여명의 교우를 비롯하여 안성군수를 포함한 100여명의 외교인들이 참석하였으며 외교인들은 강성삼 신부의 공덕(功德)을 기리는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를 건립하려 하였으나 교우들의 권고로 중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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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계본당 [한] 江界本堂

1933년 평북 강계군 강계읍 동부동(東部洞)에 창설되어 1947년 폐쇄된 평양교구소속 본당. 강계군과 희천군(熙川郡) 일대를 관할하며 만포(滿浦), 별하(別河), 전천(前川), 개고(价古) 등의 공소를 두었다. 강계지방은 1926년 메리놀회의 캐시디(Cassidy,姜) 신부에 의해 처음으로 복음이 전래된 후 1931년 제2대 평양교구장 모리스(Morris, 睦) 신부가 파견한 전교회장 이병모(李炳模)의 열성적인 전교로 인해 교세가 신장되어 1933년 본당으로 창설되었고, 초대 주임신부로 메리놀회의 듀피(Duffy, 都) 신부가 부임, 성당을 건축하고 학교를 개설하는 한편 교세 확장에 주력하여 강계 인근에 만포, 별하, 전천, 개고 등의 공소를 창설하고 1937년에는 빈민아동 교육기관인 소화학원(小化學院)을 개설하였다. 그러나 1938년 6월 듀피 신부가 신리본당으로 전임되자 강계본당은 중강진본당 관할로 되었고 1942년 의주본당 관할, 1943년 기림리본당 관할로 되었었다가 1944년 4월 홍도근(洪道根) 신부가 2대 주임신부로 부임함으로써 본당으로 재출발하게 되었다. 그 후 해방이 되고 북한 공산정권의 교회 탄압이 가중되는 가운데 1946년 9월 4대 주임으로 부임한 한도준(韓道俊) 신부는 이듬해 3월 소화유치원을 개설하고 본당 발전에 힘을 기울였으나 1949년 1월 한도준 신부의 후임으로 부임한 5대 주임 석원섭(石元燮) 신부가 부임 6개월 만인 1949년 7월 8일 강계정치보위 부원들에게 체포되고 이튿날 성당과 사제관 및 부속건물이 몰수됨으로써 강계본당은 침묵의 본당이 되었다.

본당 내의 신심단체로 부인들의 모임인 부인회, 미혼여성들의 모임인 성체회가 있었고 본당 운영의 사업체로는 소화학원과 소화유치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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