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세 [한] 火洗 [라] baptismus desiderii [영] baptism of desire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는 자가 상등통회를 하고 성세성사를 받을 지향을 가질 때 그는 성세성사를 받기 전에 이미 의화된다는 교리. 자기 열성(熱誠)으로 자신의 죄를 씻는다 하여 화세라 부른다. 교부들이 교회의 신앙과 세례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고 한데 대하여, 중세 신학자들은 볼 수 있는 교회 영역 밖에서 은총이 인간에게 미칠 수 있는 길을 모색한 결과 화세의 교리에 도달하게 되었는데 트리엔트 공희회가 이를 채택하여 “복음이 선포된 뒤에는 다시 태어나는 세(洗)나 ‘그 지향’ 없이는 옛 아담의 상태에서 은총의 지위로 건너오지 못 한다”고 하였다. 예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말을 잘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겠고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하셨다. 은총이란 하느님 자신이며, 성부와 예수님이 찾아와 함께 사는 상태이다. 교회헌장(Lumen Gentium)은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의지를 하느님의 백성을 이루는 구성원 자격과 관련하여 규정하고 있다(16항).

오늘날 신학자들은 구원의 보편의지를 계시하신 하느님께서는 교회 내에서 뿐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구원행위를 하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희생과 승리를 통하여 하느님은 인류를 하나의 전체로서 새로운 상황에 처하게 하였고 하느님과의 화해를 지향하게 하였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화세는 교회의 볼 수 있는 영역 밖에서 인간을 구원하고 성화하시는 하느님의 광범한 행위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화세를 통하여 얻게 되는 비그리스도 교인의 구원도 믿음, 희망, 사랑을 통하여 그리스도 교인의 구원과 연속되는 선상(線上)에 있음은 그리스도가 유일한 중개자이므로 당연하다. 우리는 하느님 홀로 거룩하시며 모든 성성(聖性)은 그리스도의 업적이라고 믿는다.

자아중심적인 경향을 포기하고 이웃에게 사랑을 쏟는 자들의 마음상태는 자신에게 죽고 새 삶으로 부활한 상태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한 사람의 처지 즉 일종의 세례를 받은 자의 상태라 하겠다. 이들은 자신의 도덕적인 성취로 치부하고 자만하기보다는 자신을 초월하는 선물의 결과라고 믿으며, 자신을 과시하는 야심에서가 아니라 신앙에서 우러나온 행위이다. 이 신앙 안에 그들은 자신을 잊는 자유를 누리며 인간 존재의 불만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에 접할 수 없거나 복음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의 신앙과 세례에 관한 올바른 묘사라면 그것은 교회 안에 생동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경험적인 차원이라 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Gregory Baum, Baptism, Sacramentum Mundi, Burns & Oates,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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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기도 [한] ∼祈禱 [라] oratio jaculatoria

아무 때나 순간적으로 하느님을 생각하면서 마치 자녀가 부모에게 매달리듯 그때그때 느껴지는 정(情)과 원의(願意)대로 간단하게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 화살처럼 직통으로 하느님께 간다고 해서 ‘화살기도’란 이름이 붙었다. 예를 든다면 “예수, 마리아여!”, “하느님, 나를 도우소서”, “내 주시오, 내 천주로소이다”, “지극히 거룩한 예수 성심이여, 내 마음을 네 마음과 같게 하소서!”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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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본당 [한] 華山本堂

1897년 전라북도 익산군 망성면 화산리(全羅北道 益山郡 望城面 華山里)에 창설된 전주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예수성심. 일명 나바위[羅岩]본당이라고도 한다. 화산본당은 전라도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본당의 하나로, 1845년 10월 12일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가 서해(西海)를 통하여 귀국하여 첫 발을 내디딘 곳이다. 베르모렐(J. Vermorel, 張若瑟)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 임시로 인근의 안대동(安大洞)에 거주하며 사목하다가 곧 화산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사목을 시작, 부임초인 1899년 외교인들에게 피습을 당하는 등 외교인들의 반발로 전교에 많은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으나 1906년 성당을 짓고 이듬해 계명(啓明)학교를 개설하는 한편 본당 부근의 가옥과 토지를 매입하여 교우들에게 분배하고 인근의 부락을 교우촌으로 만들었다. 그 후 1909년 석동(石洞)본당, 1931년 군산(群山)본당, 1935년 이리(裡里)본당 등을 분할, 창설시켰다. 그 후 일제 말기의 탄압으로 계명학교가 일제에 징발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으나 광복 후 학교가 다시 개설되고 1949년 유치원과 수녀원이 설치되었으며 1954년 베르모렐 신부 공훈기념비, 1955년 김대건 신부 순교기념비 등이 건립되었다. 1957년 강당이 신축되고 극빈자를 위한 진료소가 개설되었으며, 1958년 여산(礪山)본당을 분할, 창설시켰으나 경영난으로 1965년 유치원이, 1972년 수녀원과 진료소가 각각 폐쇄되었다. 1983년 말 현재의 교세는 교우수 1,241명, 공소 3개소이고, 주임신부는 박종상(朴鍾祥, 가브리엘) 신부이다. 역대 주임신부 명단은 다음과 같다. 1대(1897∼1919년) 베르모렐, 2대(1919. 5∼1921. 10) 소세(H. Saucet, 蘇世德), 3대(1921. 10∼1922. 5) 파르트네(T. Parthenay, 朴德老), 4대(1922. 5∼1929. 6) 카닥스(J. Cadars, 姜達淳), 5대(1929. 6∼1936. 6) 이약슬(李若瑟, 요셉), 6대(1936. 6∼1938. 6) 서병익(徐丙翼, 바오로), 7대(1938. 6∼1942. 7) 김영호(金永浩, 멜키올), 8대(1942. 7∼1944. 12) 김현배(金賢培, 바르톨로메오), 9대(1944. 12∼1947. 4)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10대(1947. 4∼1948. 7) 김영구(金榮九, 베드로), 11대(1948. 7∼1954. 11) 김후상(金厚相, 바오로), 12대(1954. 11∼1955. 7) 김재덕(金在德, 아우구스티노), 13대(1955. 7∼1955. 10) 허일록(許日錄, 다테오), 14대(1955. 10∼1960. 7) 김영태(金永泰, 도미니코), 15대(1960. 7∼1962년) 이대권(李大權, 바오로), 16대(1964. 10∼1966. 3) 고경훈(高暻勳, 프란치스코), 17대(1966. 3∼1969. 4) 오기순(吳基順, 알베르토), 18대(1969. 4∼1971. 4) 김영일(金永鎰, 아우구스티노), 19대(1971. 4∼1975. 2) 송남호(宋南浩, 요셉), 20대(1975. 2∼1977. 7) 김진소(金眞召, 안드레아), 21대(1977. 7∼1982) 권영균(權永均, 안토니오), 22대(1982∼현재) 박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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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필주 [한] 洪弼周

홍필주(1773∼1801). 순교자. 주문모(周文謨) 신부의 복사(服事). 아명은 문갑(文甲), 세례명은 필립보. 지영(芝榮)의 아들. 충청도 덕산(德山)에서 출생. 계모(繼母) 강완숙(姜完淑, 골룸바)의 권면으로 입교한 뒤 계모를 따라 상경, 주문모 신부의 복사를 하며 계모와 함께 주문모 신부를 보살폈다. 1801년 신유(辛酉)박해가 일어나자 그 해 3월 체포되어 포청과 형조에서의 배교를 강요하는 형벌과 고문을 이겨 내고 사형을 선고받아 10월 4일(음 8월 27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斬首)형으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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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본당 [한] 洪川本堂

소재지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희망 5리. 주보는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1906년 홍천면 결운리(決雲里)에 강원도 횡성군 풍수원(豊水院)본당 소속의 공소(公所)가 설립된 후 몇 해 만에 송정리(松亭里, 現 花村面 松亭里)에 공소가 설립되었는데 두 공소 신자들은 옹기업을 주로 하고 있었다. 1923년 6월 송정공소가 본당으로 승격, 초대 본당주임으로 황정수(黃貞秀, 요셉) 신부가 부임, 당시 신자가정은 24가구였다. 1925년 6월 2대 김(金, 루수) 신부가 부임, 현 성당터를 매입하여 성당건물을 신축하였다. 1936년 3대 심재덕(沈載德, 마르코) 신부가 본당을 송정리에서 홍천으로 옮겼다. 4대 김영식(金永植, 베드로) 신부를 거쳐 1938년 5대부터 아일랜드의 성 골룸바노회 소속의 넬리간(Neligan, 干) 신부(∼1942년), 6대 게라티(Geraghty, 池) 신부(1942∼1945년), 7대 매긴(Maginn, 陳) 신부(1945. 8. 15∼1947년), 8대 크로스비(P. Crosbie, 趙) 신부(1947∼1950. 6. 29)가 본당을 맡았다. 1950년 6.25 동란이 일어나자 크로스비 신부는 퀸란(Quinlan, 具) 주교와 함께 북한 공산군에 강제납북되어 3년간 수용소에서 고초를 겪은 후 본국에 강제송환되었다. 1954년 8월 크로스비 신부는 다시 한국에 들어와 그해 8월 10대 주임으로 홍천본당에 부임, 당시 결운, 송정, 내촌면(乃村面)의 물걸리(物傑里) 3개 공소이던 것을 15개 공소로 늘리고, 12동의 공소강당을 신축하는 등 교세확장에 크게 힘썼다. 크로스비 신부는 1961년 7월에 일단 전임했다가 1962년 10월까지 이번에는 12대 주임으로 부임했으며, 그 당시 본당의 교세는 3,713명을 헤아렸다. 1972년에 부임한 14대 주임 김정식(도마) 신부는 1976년 8월 화촌면의 성산(城山)공소를 본당으로 승격 분리시키면서, 성산본당 관할 구역으로 송정, 두촌면(斗村面)의 철정(喆亭), 역내(驛內), 두촌, 장남(長南), 내촌면 등의 공소가 흡수되고, 홍천본당 관할로는 홍천읍, 결운공소, 동면(東面)공소만이 남게 되었다. 1982년 16대 주임 이정행(요한) 신부가 부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 바오로 수녀회원들이 상주하고 있으며, 신자수는 2,075명(1984년 현재), 공소는 2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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