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딧서 [한] ∼書

제2경전에 속하는 유딧서는 토비트서나 에스텔서와 마찬가지로 특정인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서, 위태로운 사태에 직면해서 하느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는가를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1. 저자와 저작연대 : 유딧서의 원저자가 정확하게 누구인지는 모르나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로 본 작품을 저술했음이 거의 확실하다. 그러나 기원전 2세기 말엽 또는 그 이후에 어떤 희랍인 편역자가 이 원본을 기초로 해서 그에 충실하게 직역 또는 임의대로 의역하면서 희랍어로 된 번역본을 우리에게 넘겨 준 것으로 본다.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 원본에 관한 한 희랍인들의 박해에 대항하여 싸운 마카베오 형제들의 반란시대에 완성되었음이 분명하다. 느부갓네살만을 온 누리의 유일한 신으로 받들어 섬길 것을 강요하는 장면(3:8, 6:2)은, 다니엘이 불경한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누스를 겨냥해서 던진 말씀들(다니 11:36-37)과 잘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마도 좀 더 오래된 옛 설화들을 인용하면서 종교와 율법과 성전에 관해 위협을 받고 있는 자기 동족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주고 싶었을 것이다. 우상숭배로 당신을 저버리지 않는 한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극도의 위험 속에서도 당신 백성을 외면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원수들의 계획을 꺾어 버리신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선포하고 싶었을 것이다. 유딧[‘유태인 여자’라는 뜻의 히브리어]이라는 명칭은 이제 외국 박해자들을 대항하여 싸우도록 불림을 받는 국가의 상징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2. 교훈서로서의 유딧서 : 유딧서는 역사서도 역사소설도 아니다. 단지 사실일 수 있는 핵심적 요소가 구약성서 이곳저곳에 산재한 설화들로 부연된 채 자유롭게 다루어진 일종의 교훈서다. 저자는 이스라엘 역사 속의 여러 사건들, 예를 들어 다말의 속임수(창세 38장), 에훗에 의한 에글론 암살사건(판관 4-5장), 다윗과 골리앗의 결투(1사무 17장), 다윗과 아비가일(1사무 25장) 등의 사건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당대의 사실적인 사건 줄거리 위에 앞서 언급한 사화들을 인용, 부연하면서 자유롭게 본 작품을 저술해 냈다고 결론지을 수 있으나, 이 모든 것은 결국 독자들에게 하나의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3. 정경성(正經性) : 성서 정경화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원후 95년경 얌니아(Jamnia, 지금의 Yabne)에 모인 유태교 랍비들은 유딧서를 정경목록에서 제외시켰다. 이런 이유로 초대 교회 역시 몇몇 다른 성서들과 함께 유딧서를 경전으로 받아들이는 데 상당히 고심했으나. 가톨릭 작가들은 물론 유딧서의 성신 감도성에 대해 신학적인 이의를 제기했던 사람들까지도 이를 이미 폭넓게 인용하고 있었다. 결국 405년 성 인노첸시오 1세 교황은 유딧서와 그 밖의 모든 저서를 경전으로 인정했으며, 그 뒤 1442년 피렌체 공의회, 1546년 트리엔트 공의회 그리고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를 재천명하였다.

비록 신약성서가 유딧서를 직접 인용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초대 교회 신자들이 본 유딧서를 널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몇 가지 표현양식들을 밝혀 볼 수는 있다. 유딧 1:11과 루가 20:11, 유딧 8:6과 루가 2:27, 유딧 13:18과 루가 1:42, 유딧 13:19과 마태 26:13.

4. 메시지 : 유딧서에서 유다 백성에게 구원을 전달해 준 중심신물은 평범한 유태인 여인이다. 이 여인은 모든 백성들이 실의에 잠겨 있을 때도 좌절하지 않고서, 베툴리아를 방어하고 있는 장군들을 우선 안심시킨 뒤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우어 준다. 그리고서 장군들의 도움 없이 묘안을 구상, 이를 실천에 옮겨 끝내 외적을 격퇴시킨다. 유딧서에서 우리는 구약성서 이곳저곳에 나타나는 여권신장주의를 훨씬 뛰어 넘는 남녀동권주의를 발견할 수 있다.

유딧의 속임수는 엄격하게 말해서 덕행의 한 표지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급 윤리행위에도 속하지 못한다. 그러나 구약성서 설화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이에 관한 여러 실례들과 비교해 볼 때, 모든 것이 유딧에게 전적으로 유리하다. 그 한 예로 판관기 4장의 야엘과 비교해 보자. 유딧은 정당방위를 위한 전투에서 유다 국가와 종교를 위태롭게 하는 적장을 살해했으나, 야엘은 자신의 남편이 하소르의 왕이며 시스라의 주인인 야빈과 화해상태에 있었음에도, 또한 자신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스라를 살해했기 때문이다(판관 4:17-22). 유딧은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자신의 아름다운 용모로 유혹하려 애쓰지 않았으며, 오직 조심스럽고 품위있게 행동했을 뿐이다. 강직하고 순결한 이 여인에게 절호의 기회를 선사했던 사람은 바로 적장 그 자신이었으며, 하느님의 도우심이 보장되는 동시에 자신을 자제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 엄격한 기도생활 덕분에 유딧은 이와 같은 위태롭고도 중대한 순간을 잘 극복하여 유다 백성을 구출할 수 있었다.

유딧서에서 우리는 엄격한 율법정신을 찾아 볼 수 없다. 신앙심 깊은 과부 유딧의 단식행위는 슬픔과 회개에 대한 자발적인 표현이었을 뿐 율법을 준수하기 위한 행위는 아니었으며, 더구나 유딧은 축제일에 그 단식행위를 임의로 중단하였다(8:6). 자식이 없었던 유딧은 신명기 25:5-10절이 명하는 수혼제(嫂婚制)[자식이 없었던 형수와 결혼하는 제도]를 따르지 않았으며(16:22-25), 이방인 암몬 사람 아키오르를 율법이 금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신명 23:4, 민수 13:1-3) 유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14:10). 이와 같은 사실은 율법준수라는 이유로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만을 보호하려는 정신을 뛰어 넘어, 모든 이가 유일하신 하느님께서 다가 갈 수 있다는 좀 더 진취적인 사상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끝으로, 구약성서의 영원한 수수께끼라고 볼 수 있는 고통은 이제 백성전체 또는 개개인의 범죄를 질책하는 응벌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 백성의 마음을 시험해 보기 위해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시련 또는 그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고된 학과목으로 받아들여진다(8:25-27). 과거와는 달리 유다 백성 중 우상숭배를 일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8:18-20), 이 점에 관한 한 유딧은 확신을 갖고 있었다. 포위된 유다 백성이 감수해야 할 시련은 하느님의 분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좀 더 고귀한 덕행을 쌓도록 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과정으로 새롭게 이해된다(8:21-24). 따라서 유다 백성은 하느님께서 선사하시는 이 시련을 당연히 받아들여 극복해야만 한다(8:25). (金建泰)

[참고문헌] La Traduction Oecumenique de la Bible, TOB, Cerf, Paris 1973 / W. Harrington, Record of the Promise(The Old Testament), The Priory Press, Chicago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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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철 [한] 劉∼

유대철(1826~1839). 성인(聖人). 세례명 베드로. 성인 유진길(劉進吉)의 아들. 축일은 9월 20일. 서울의 유명한 역관(譯官)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친의 모범을 따라 입교하여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고, 천주교에 대해 적대적인 모친과 누나에게 끊임없이 괴로움을 당했으나 그 때마다 항상 어머니와 누나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였다.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자 많은 교우들이 영웅적으로 순교하고 또 부친도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순교를 결심하고 자수, 포청에서 14세의 어린 나이로는 견디기 힘든 혹형과 고문을 이겨냈다. 허벅지의 살을 뜯어내며 “이래도 천주교를 믿겠느냐?” 하고 으름장을 놓는 형리에게 “믿고 말고요. 그렇게 한다고 제가 하느님을 버릴 줄 아세요?”라고 대답했고 화가 난 형리가 다시 시뻘건 숯덩이를 입에 넣으려 하자 “자요” 하고 입을 크게 벌려 형리를 놀라게 하였다. 포청에서 총 14차의 형벌과 100여대의 매, 그리고 40도의 치도곤을 맞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항상 만족스럽고 평화로운 표정을 띠었다. 10월 31일 포청옥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 후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이어 방한(訪韓)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위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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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한] ∼敎 [관련] 유태교

⇒ 유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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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영 [한] 柳達榮 [관련] 리우빌

리우빌(Liouville) 신부의 한국명. ⇒ 리우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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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편지 [라] Epistola Catholica Beati Judae Apostoli [영] Letter of Jude

1, 필자문제, 수신인, 집필연대 : 필자는 자신을 주님의 형제로 소개하고 있으나(마르 6:3, 마태 13:55 참조) 오늘날 신약학계에서는 유다서를 가명작품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로 주님의 형제들이 생존하고 있었을 때 이런 ‘비라’ 같은 회람서한이 씌어질 수 없었다는 점, 또한 ‘성도들에게 오직 한 번 맡겨진 믿음’(3절, 20절)이라든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예언한 말씀’(17절) 같은 표현을 사용할 수 없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사실 이런 표현들은 오래 전의 일에 언급하는 말들이다. 아마 후대의 어느 열심한 유대계 그리스도인이 이미 교회의 유산으로 고정화된 신앙을 옹호하려고 본서를 썼을 것으로 추론되고 있다. 수신인은 필자가 아는 일부 지역교회, 심중팔구 팔레스티나 본토 밖의 헬레니즘 문화권에서 살고 있었던 이방계 신도들로 짐작된다. 집필연대는 서기 100년경으로 추정되고 있다(가명작품에 대해서는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 둘째 편지와 디도에게 보낸 편지>항 참조).

2. 내용과 목적 : 먼저 신도들이 ‘맡겨진 믿음’을 위해 이단자들(방탕한 생활을 하던 영지주의자들)에 대항해서 싸우도록 격려할 목적으로 본서를 썼다고 집필 동기를 밝힌다(3-4절). 이어서 구약의 예화를 들며(5-7절) 이단자들이 에녹의 예언대로 반드시 심판을 받고 멸망하리라고 확언한다(8-16절). 그리고 이런 이단자들의 출현을 미리 예고했던 사도들의 말씀을 상기시키며(17-19절) 믿음과 사랑과 희망을 간직하라고 권고한다(20-21절). 끝으로 이단자들의 죄는 미워하되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도 힘쓸 것을 당부하고(22-23절) 영광송으로 서간의 끝을 맺는다(24-25절). 필자는 구약성서의 고사와 유태교의 묵시문학(에녹서) 및 전설을 많이 원용하고 있다. 베드로의 둘째 편지 2장에는 이 유다의 편지의 내용이 거의 그대로 인용되어 있다. (金允柱)

[참고문헌] 장 엘마로 역주, 유다서, 200주년 신약성서 12, 분도출판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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