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일. 모든 성인의 날(11월 1일)의 이튿날로서, 세상을 떠난 모든 신자들의 영혼을 기억한다(일요일과 겹치는 경우는 11월 3일에 지낸다). 998년 일 년에 한 번씩 위령의 날을 지키도록 명령한 클뤼니수도원의 오딜로(Odilo)의 영향으로 보편화되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사제들은 이날 3번의 미사를 바칠 수 있도록 허가되었는데, 이러한 특권은 위령의 날과 성탄절에만 부여되었다.
위령성월 [한] 慰靈聖月
가톨릭 교회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달. 한국 교회는 위령의 날(11월 2일)과 연관시켜 11월을 위령성월로 정해 놓았다. 이달에 신자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나 친지(親知)의 영혼, 특히 연옥(煉獄)영혼들을 위해 기도와 희생을 바쳤는데 이는 영원한 삶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위그노파 [한] ~派 [영] Huguenots [독] Hugenotten [프] Huguenots
종교 개혁기인 16~17세기의 프랑스 프로테스탄트들을 가리키며, 이들은 칼빈의 영향을 받아 1559년 파리에서 종교회의를 개최하고 그곳에서 칼빈이 기초한 갈리아신조(Confessio Gallicana)를 채택하였으며, 급기야 위그노전쟁(1562~1598년)까지 일으켰다. 이들이 위그노파라고 불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하나는 이들이 중세의 유령적인 존재로 알려진 위고(Hugo)왕의 문전에서 모였기 때문이라는 설이고, 이보다 좀 더 설득력을 가지는 설은 이들을 지도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위그(B. Hugues)였기 때문에 이들을 위그노파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들 위그노들이 1598년 낭트칙령에 의해 자유를 얻었지만 1685년 루이 14세가 칙령을 무효화시킨 이후 많은 위그노파들은 영국, 네덜란드, 북아메리카, 남아프리카 등지로 망명하였다.
위그노전쟁 [한] ~戰爭
1562~1598년 사이 프랑스의 위그노파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종교전쟁과 내란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1559년 파리 종교회의를 거치면서 출범한 위그노파는 수명의 귀족들을 개종시키면서 1560년대에 이르러 귀족들의 싸움에 휩쓸려 들어가게 되자 1562년 전쟁이 발발하였다. 30여년에 걸쳐 전개된 전투는 가혹하고 잔인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바르톨로메오의 밤(1572년)에 일어난 대학살은 세계사상 가장 무서운 범죄중의 하나였다. 전쟁은 위그노파의 지도자인 앙리 4세가 국왕으로 취임하면서 발표한 낭트 칙령(1598년)으로 종식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