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특전미사 [한] 土曜特典∼ [관련] 특전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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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주문 [한] 討邪奏文

1801년 신유(辛酉) 박해를 일으킨 조선정부가 신유박해의 전말과 청국인 주문모(周文謨) 신부의 처형에 대한 변명을 적어 청의 인종(仁宗)에게 보낸 일종의 진정서. 대제학 이만수(李晩秀)가 작성하였다. 1800년 7월 순조(純祖) 즉위 후 수렴청정으로 정권을 잡은 대왕대비 정순왕후(貞純王后) 김씨는 1801년 1월 11일(음) 공식으로 천주교 금압령을 내리고 이후 300여명의 천주교인을 처형했는데 그 가운데는 청국인 주문모 신부가 포함되어 있었다. 대왕대비는 청국과의 상의없이 주문모 신부를 처형했기 때문에 청국과의 마찰이 생길까 두려워 이해 10월(음) 이만수로 하여금 토사주문을 짓게 하고 10월 27일 동지사(冬至使) 겸 진주사(陳奏使) 조윤대(趙允大)를 청국에 파견, 토사주문과 황사영 백서를 고친 가백서(假帛書)를 청의 인종에게 전달하여 주문모 신부의 처형을 변명하였다. 토사주문의 내용은 조선은 개국 이래 중국에 대해 충성을 다하고, 안으로 유교를 높이 받들어 왔으나 수십년 전부터 사학(邪學)[천주교를 가리킴]이 널리 퍼지게 되어 그 폐해가 크므로 이에 사학을 엄금하고 그 주동이 되는 이승훈(李承薰), 황사영(黃嗣永)을 처형했으며, 주문모는 조선사람인 줄 알고 처형했으나 후에 청국인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이를 청국에 보고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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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교문 [한] 討邪敎文 [관련] 척사윤음

1801년 신유(辛酉)박해 때 반포된 척사윤음(斥邪綸音). 당시 대제학(大提學) 이만수(李晩秀)가 지었다. 원제목은 토역반교문(討逆頒敎文)이지만 보통 토사교문으로 불린다. (⇒) 척사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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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트서 [한] ∼書 [라] Liber Tobiae [영] Book of Tobit

제2경전에 속하는 토비트서는 유대문학의 보배로운 작품들 중의 하나이다. 당시 고대 근동지방에 널리 유포되어 있던 지혜문학 전승을 이어받음과 동시에 성서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아 저술된 토비트서는 유배시대 이후 수세기에 걸쳐 전개된 유태교의 인간적이면 종교적인 활발한 움직임을 잘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190년경의 집회서와 유사한 점들이 많고 또한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신앙과 경건한 자세를 강조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대략 기원전 200년경에 저술된 작품으로 본다.

1. 내용 : 인척관계에 있는 두 유태인 집안이 지금의 이라크와 이란 지방인 니느웨와 엑타파나에 포로로 잡혀가 거기서 생활하게 된다. 두 집안 모두 율법에 충실하면서 허물없이 살아왔는데도 불구하고 크나큰 불행을 겪는다. 동족의 시체를 몰래 매장해주었다는 이유로 첫 번째 집단의 가장인 토비트는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며 설상가상으로 장님이 된다. 또 다른 집안의 외동딸인 사라는 악령에 사로잡혀 부부관계도 맺기 전에 일곱 번씩이나 결혼에 실패한다.

토비트와 사라 이 두 사람이 기도를 들으신 하느님은 대천사 라파엘[‘하느님께서 낫게 하신다’]을 파견하여 그들을 치유하기로 결정하신다. 하느님의 이러한 계획을 알 리 없는 토비트는 단지 아들 토비아의 장래를 보장해 주기 위하여 전에 메대지방에 맡겨 두었던 돈을 찾으러 떠나도록 이들에게 명한다. 인간의 모습을 취하여 나타난 라파엘은 토비아가 마쳐야 할 여행의 길동무가 되어 모험적인 이 여행을 계속 안내하며, 끝내 친척인 사라와 결혼케 함으로써 사라를 구해 낸다. 돌아오는 길에 토비아는 라파엘의 지시를 따라 그대로 행함으로써 연로한 아버지의 눈까지 뜨게 한다. 이렇게 해서 두 집안은 모두 행복을 되찾게 되며, 라파엘은 자신의 정체를 밝힌 뒤 사라진다. 그리고서 감사의 기도와 다가올 구원에 대한 기다림 속에 이 토비트서는 그 끝을 맺는다.

2. 역사성 : 본 설화는 기원전 734∼612년 이스라엘과 아시리아 양국에 공통된 역사 속에 나타나는 사건, 인물, 장소, 시기 등에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얼핏 보기에 완벽한 하나의 역사소설이라는 느낌을 준다(1, 14장). 1:1-2절에 의하면 토비트와 그의 집안은 납달리 지파와 함께 포로로 잡혀 갔다고 한다. 이 시기는 아시리아왕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이스라엘왕 베가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진격하여 이스라엘 북부 지방을 점령했던 733년경일 것이다(1열왕 15:19). 그러나 토비트서를 그 내용만 보고서 이 시대와 관련된 작품으로 보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 설화에 나오는 자료들을 비교 분석해 볼 때, 저자는 자신이 언급하고 있는 왕들을 그저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서술하고 있는 지방들을 실지로 여행해 본 적이 없었던 사람임을 쉽게 결론지을 수 있다. 납달리 지파를 아시리아로 강제 이주시킨 왕은 1:2절이 말하고 있는 바와는 달리 살마네셀이 아니라 선왕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기원전 745~727)였으며, 1:15절에 의하면 산헤립(기원전 704∼681)이 살마네셀의 왕위를 계승한 것처럼 보이나 산헤립의 선왕은 살마네셀이 아니라 사르곤 2세(기원전 722∼705)였다. 또한 엑바타나에서 라게스까지 가려면 이틀이 걸린다고 하나(5:6), 실지로는 그 보다 훨씬 더 걸린다. 따라서 저자가 자신의 작품을 기원전 8세기 또는 7세기의 작품인양 그려 내고 있는 것은 저자의 권위와 작품의 역사성을 부여하고자 함과 동시에, 이 나라 저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는 동포들에게 종교적 교훈을 주고자 하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

3. 메시지 ① 하느님의 섭리와 천사들 : 문제는 과연 하느님께서 시련 중에 있는 당신 백성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시는가 아닌가 하는 데 있지 않고, 그 관심이 시련들을 통해서 어떻게 펼쳐져 나가는가 하는데 있다. 따라서 토비트와 사라의 기도가 영광의 하느님 앞에 당도하여, 하느님께서 마침내 그 기도를 들어 주시기로 결정하셨다는 대목(3:16-17)과 라파엘 대천사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대목(12:11-15)이 본 설화의 양극을 이루게 된다.

토비트서에서 하느님의 계획을 실현에 옮기는 이는 천사다. 토비트서는 유배시대 동안 특별히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아 선보이기 시작한 천사들의 역할이 점차 어떠한 방법으로 발전되어 나왔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천사들의 수효는 점점 더 증가하고 이런 저런 이름들이 붙여지며 점차 특수한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그러나 구약성서 어느 곳에서도 토비트서에서처럼 그렇게 인간적인 천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에서, 토비트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행위로 말미암아 인간의 자유를 손상치 않으신다는 신학을 최초로 보여준 작품이 된다.

② 가정과 결혼 : 가정은 한 나라의 정신적 유산이 전승되는 유일한 보고(寶庫)다(1:8, 4:19, 14:3 · 8-9). 따라서 가족간의 친밀감을 돈독케 하는 모든 덕행들, 특별히 부모에 대한 존경심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1:8, 3:10 · 15, 4:3-4, 6:15, 14:12-13). 한 가정이 형성되는 결정적인 순간은 결혼이며, 이를 통해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집안의 앞날이 약속되기도 한다. 이방 민족과의 통혼(通婚) 위험성을 다분히 안고 있던 유배민들에게 있어서 결혼에 대한 가치관은 그만큼 숭고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사실로써 우리는 결혼이 왜 토비트가 아들 토비아에게 내린 행동규범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4:12-13), 더 나아가 토비트서 전체의 중심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③ 자선사업 : 한 집안이 세세대대로 전승시켜야 할 유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그분의 계명에 충실하는 일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멀리 떨어져 있고 그 곳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다는 이 현실이 오히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개인적인 의무를 더욱 충실히 수행하도록 종용하게 되었을 것이다. 토비트의 이웃이 아직은 친척 또는 동족으로만 구성되어 있다하더라도(1:3 · 16 · 17, 2:2), 유태인이라면 누구나 상부상조(1:17, 2:2 · 10, 4:16), 정당한 보수지급 (4:14, 5:3 · 7 · 10 · 15, 12:1), 죽은 이들을 묻어 주는 일(1:17-18, 2:3-8) 등의 의무에 충실해야 하나, 이 모든 의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선과 기도이다. 공동체의 일치를 위한 최선의 방법인 자선행위(1:16, 4:7-8 · 16, 14:8-9)는 또한 하느님 은혜에 보답하는 행위이다. 자선을 베푸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는 보배로운 행위이며 동시에 속죄의 제물,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물이 될 수 있다(4:9-11, 14:8-11). 한편 기도는 하느님께만 오로지 충실한 의인들의 신뢰행위이며, 격식에 따른 의무감에서라기보다는 언제든지 하느님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갖추기 위한 기본자세이다(4:19). 실망(3:1-6 · 11-15), 불안(8:5-8), 기쁨(8:15-17) 등 갖가지 상황 속에서 올려지는 이 기도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3:11) 그분께 감사를 드리는 데 그 근본 목적이 있으니,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모든 일은 올바르며, 그분이 보여주시는 길은 참되고 성실하기 때문이다(3:2).

④ 이스라엘 성조들과 옛 예언자들의 삶 : 토비트서의 전체적 분위기는 이스라엘 성조시대의 그것과 같다. 그 옛날 성조 이사악과 야곱의 경우처럼 토비아 역시 여행 중에 자신의 아내를 찾아 얻는다. 다른 이유에서이기는 하나 이스라엘 성조들의 부인들처럼 사라 역시 자식 없는 여인으로 나타나며, 마므레에서의 아브라함처럼 토비트도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의 방문을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장면들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사건묘사 비교를 통해서도 상호간에 상당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만남(토비 7:3-4과 창세 29:4-6), 솟구치는 사랑 (토비 6:19과 창세 24:67), 결혼 성립(토비 7:12-13과 창세 24:33 · 50-51) 등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미세한 점까지도 거의 다 창세기를 빌어 묘사하고 있다. 성조들의 유배생활 역시 유배민들을 통해 지속되며(4:12 참조),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섭리는 그 옛날 성조들에게 있어서처럼 극히 적은 유태인들을 위해서도 계속 작용하며, ‘아브라함의 땅’으로 다시 돌아가는 날이 오기까지 그분의 약속은 세세대대로 전승되어 나간다(14:7).

또한 토비트는 자신과 귀양생활을 하고 있는 모든 동족들의 운명을 옛 예언자들의 정신에 비추어 읽어 나가고 있다. 나탄의 예언을 빌어 예루살렘과 유다왕에 대한 애타는 추억을 서술하고 있으며(1:4), 이국땅에서 외롭게 감수해야만 하는 온갖 불행을 범죄한 이스라엘을 향해 아모스가 선포했던 징벌로 이해하고 있다(2:6). 당분간 앞날은 암담하게만 보이기에 혹자는 토비트의 실명(失明)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그러나 여기 토비아가 있지 않은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어나갈 토비트의 아들 토비아를 통해서 하느님은 그의 눈, 영혼과 육신의 눈을 뜨게 하신다. 이제 토비트 자신이 예언자가 되어 모든 나라를 향해 회개를 호소함과 동시에 구원을 선포한다(13장). (金建泰)

[참고문헌] La Bible de Jerusslem (BJ), 5 edition, Cerf, Paris 1978 / H. Cazelles, Introduction critique a l’Ancien Testament, Desclee, Paris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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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즘 [영] Thomism

토미즘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에 의하여 세워진 철학과 신학의 체계이다. 또한 14세기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토마스의 학설이나 그의 근본사상을 척도로 삼아 발전시켜 나아가는 철학과 신학의 체계나 학파를 토미즘이라고 한다. 여기에서는 전자의 의미로 토미즘에 관하여 서술하기로 한다.

1. 토미즘의 배경 : 토미즘이 탄생하게 된 데는 물론 성 토마스 아퀴나스 자신의 노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새로운 체계의 탄생을 위한 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그의 스승인 알베르토 마뉴스(Albertus Magnus)가 크게 기여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스승인 알베르토와 제자인 토마스의 이름은 그들의 위대한 저작들 속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으로 함께 남아 있을 것이다. 알베르토와 토마스의 견해 사이에는 많은 접촉점이 있으나 그들은 각자 서로 다른 천재성을 지니고 있었다. 토마스의 견해는 알베르토의 그것보다 더 비판적이었다. 알베르토에 비하여 토마스는 자신이 다루는 소재를 완전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질서정연하게 정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토마스의 문제는 간결하고 분석적이며 종합적이다.

그의 분석력과 종합력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토마스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유산으로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였다. 알베르토와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철학을 그리스도교의 철학과 신학에 이끌어 들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알베르토는 그의 열정으로서 이니셔티브를 취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나 불완전하고 임시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토마스는 알베르토의 작업을 계속 추진시켜 나아가 걸작을 완성시켜 놓았다고 할 수 있다. 또 토마스에 있어서 철학의 논리적 형이상학적 기초는 알베르토에 있어서보다는 더 아리스토텔레스적이다. 토마스는 완전한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식의 전체를 통일해야 된다고 생각하였다. 철학에 있어서 토마스는 이성의 자율성을 강조한다. 결론을 이끌어 내고 그것을 옹호하기 위하여 토마스는 권위보다는 경험이나 이성에 호소하는 방식을 취하여 자신의 저작을 이루어 놓았다. 그리하여 경험적인 세계를 사유의 기초와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신학에 있어서 토마스는 계시의 자율성을 선포하고 있다. 자연질서와 초자연 질서가 그 동일한 근원으로서 진리인 신 자체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이 양자 사이에 갈등이 있을 수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는 자연과 초자연, 신앙과 이성을 조화, 종합시키려고 노력한 것이다. 13세기의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학파와는 달리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장 중요한 기본학설을 그의 인식론과 형이상학에 수용하고 있다. 인간은 활동적인 지성의 자발적인 힘으로써 감관에서 제1개념들을 끄집어내어 신의 특별한 도움이 없이 그것들의 도움으로 제1의 기본명제에 대한 확실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형상학은 존재의 유비(analogia entis)에 근거하고 있다. 가능태(potentia)와 현실태(actus)의 이론을 토마스는 형상(forma)과 질료(materia)에 응용할 뿐만 아니라 피조물의 존재에 있어서 본질(essentia)과 현존(existentia)의 관계에도 적용시키는데, 이때에 존재의 제한은 본질의 가능성 속에 근거하고 있다. 개별화(individuation)의 원리가 되는 것은 시공적으로 규정된 질료이다. 불멸하는 정신영혼은 육체의 유일한 본질형상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고유한 본질의 원리인 정신영혼과 질료로 이루어진다. 인간은 보다 더 확실한 지식, 증명할 수 있는 지식으로써 피조물로부터 시작하여 신에게로까지 도달하게 되며, 신은 제1의 원동자(原動者), 최고의 원인, 절대적이고 필연적인 존재이며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유(有, esse subsistens), 순수 현실태(actus purus)이면 모든 질서와 목적성의 원리가 된다. 신개념의 이러한 특징들은 오로지 유비적인 것이다.

인간의 목표는 영원한 행복이고 이것은 피안적인 삶 속에서 하느님을 봄으로써 이루어진다. 인식론에 있어서 토마스는 의지에 대한 이성의 우위를 주장하고 있다. 윤리와 사회이론에서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덕론(德論)을 그리스도교적, 아우구스티노적 태도와 연결시키고 있다. 또한 그는 스토아(Stoa)적 신, 플라톤적 사상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덕은 피조물적 존재와 그 목표방향의 표현으로서 신적인 법의지에 상응하는 이성질서를 엄수하는 것이다. 인간적인 충동성은 스토아철학에서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부부와 사유재산은 근본적으로 국가법률의 자의(恣意)에 의존하고 있지 않다. 공동선(bonum commune)을 목표로 하고 있는 국가공동체는 자연적 인륜질서의 표현이다. 그 권위는 교회로부터 유래하지 않고 자연적 인륜법에 근거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달리 토마스는 아우구스티노와 함께 인간이 현세적인 의미에서 정치적인 존재만은 아니라고 한다. 인간은 또한 교회의 지체로서 현세를 초월하는 피안적 질서로 향해져 있다는 것이다.

2. 신학과 철학의 종합 : 토마스에 있어서 신학과 철학의 종합은 기본적으로 신학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종합을 이해하려면 토마스가 특별히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서두(I, q. 1)에서 기술하고 있는 바를 살펴보아야 한다. 토마스가 중요시하고 있는 것은 주관적 신앙이 아니라 성서에 담겨 있는 ‘거룩한 가르침’의 객관적 내용과 신앙고백의 내용들이다. 이 내용들은 하느님의 계시를 통하여 알려진 것이다. 계시에는 인간의 구원에 필수적인 내용들이 내포되어 있고 인간의 이성은 계시를 불확실한 정도로만 이해할 수 있다. 계시는 부분적으로는 특별한 ‘초자연적’ 지식을 중개하고 자연적 인식의 확실성을 중개해 준다. 토마스는 이러한 ‘거룩한 가르침’을 거리낌 없이 학문이라고 한다. 표면상으로 볼 때 신학은 그 원리의 확실한 통찰을 결여하고 있으므로 비학문적으로 보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앙개조(箇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마스에 의하면 신학 이외의 학문, 예컨대 광학(光學)에 있어서 그 원리들이 다른 상위의 학문(예컨대 수학)에 의하여 뒷받침되고 있듯이 신학도 신과 성인들의 지식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러한 지식속에 있는 신앙의 명제들은 확실한 진리인 것이다. 계시는 객관적으로 이러한 의존관계를 중개해 주고 있다(제2항).

계시는 어느 내용이 신학적으로 취급될 수 있고 신학이 하나의 학문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계시 가능한 것’(revelabilia)도 신학에 속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능성은 사실로써 계시된 것뿐만 아니라 이것을 토대로 하여 새로이, 깊이 인식할 수 있는, 구원에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는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학은 다른 학문의 인식이나 사회적 규범들이 구원을 위해 중요한 내용을 내포하고 있는지 없는지를 계시에 의하여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제3항). 신학자가 이러 저러한 사실의 명제만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불충분한 것이다. 신학에서도 이성적 사회적인 파악, 내용적 근거 제시, 참된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살피는 통찰이 요구된다. 캔터베리의 안셀모(Anselmus, ?∼1109) 이래로 신앙의 지성(intellectus fidei)이 신학의 목표로서 유효한 것이고 학문으로서 신학의 의미에 부합하는 것이다.

토마스에 있어서 이러한 의미의 목표는 신앙과 지식이 서로 배척하는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는 이론속에 나타나고 있다. 원래적인 의미에서 이미 ‘알려진 것’은 동시에 ‘믿어질 수 없다’(II-II, 1, 5). 여기에서 지식은 신앙을 배척한다. ‘지식’이란 분명한 원리를 근거로 하는 관찰 혹은 통찰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지식이란 자연이성이 확실히 도달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서 지칭되고 있다. 그러므로 신학에서 본래적으로 학문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인간의 작품 즉 자연이성의 업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원리적으로 통찰할 수 없는 신앙의 내용에서 신학분야의 한계점이 그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으로 신학은 인간 노고의 영역에 속하며 그 원리들이 타당한 한에 있어서 비신자도 거기에 참여하고 종사할 수 있다(제6항). 왜냐하면 신학의 지식도 인간의 이성과 관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성은 계시와 은총에 선행하는 것으로서 전제가 된다는 말이다. 토마스는 신학과 철학의 조화 내지는 종합을 꾀함에 있어 늘 신학의 우위와 독립성을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신학의 안정성은 전적으로 계시에 근거하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적 이해의 나약성으로 말미암아 신을 직관하지 못하므로 결국 신학은 철학과 연관을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때에 신학은 철학적 논증을 사용하게 되어 철학을 ‘시녀’로서 맞아들이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 철학이 그 자립성과 권리를 상실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용적으로 신학에 종속되는 철학은 별 쓸모가 없다. 토마스에 의하면 신학은 한 가지 점에 있어서 특별히 철학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즉 철학으로 하여금 ‘계시 가능한 것’으로 관심을 돌리게 한다는 것이다. 이론적 학문의 기초 이외에 실천이성의 영역이 있음을 인정한다면, 이성이 신의 인식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 출발점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토마스에 의하면 이성 속에는 ‘자연욕구’(desiderium naturale)가 작용하고 있어 인간적 사유의 제한을 넘어 자신의 능력을 충만시키는 대상을 진실로 볼 경우에 비로소 안식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교도 대전≫(Summa Contra Gentiles)의 긴 부분(III., c. 25-50)에서 토마스는 철학자의 사유가 위에 말한 역동성에 상응하지 못하여 좌절하게 되고 침체에 빠지게 됨을 지적하고 있다. 마침내는 신앙이 비로소 사유를 불안과 궁핍에서 해방시켜 결말지어 준다는 것이다.

3. 진리의 문제 : 서양 중세에 있어서 진리에 관한 근본문제는 판단진리와 존재자와의 관계이고, 인간적 사유와 관계하며 신 속에 그 최종근거를 가지는 이른바 존재의 진리의 해명이었다. 진리를 존재자의 존재 규정으로서 특징지은 것은 아비첸나(Avicenna, 980∼1037)이다. 아비첸나는 신의 존재양식을 최고 존재자로서 규정하며, 이때에 존재는 바로 그의 본질이므로 필연적으로 실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본질이 순수진리이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는 토마스의 견해에 있어서 인식은 판단과 함께 완성된다. 판단이란 개념들을 결합시키고 분리시키는 지성(intellectus componenes vel dividens)이다.

어떤 사태가 현실적으로 결합되어 있거나 분리되어 있는 대로 한 판단이 본질의 개념들을 결합시키거나 분리시킨다면 그것은 진실된 것이다. 판단 성질인 이러한 진리 속에 원래적 의미의 진리가 있다는 것이다(≪신학대전≫ I, 16, 14, 2). 왜냐하면 “진리란, 있는 것을 있다 하고 없는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이므로 진리를 토마스는 다음과 같이 짧게 정의하고 있다. “진리는 사물과 지성 사이의 일치이다”(veritas est adaequatio rei et intellectus, ≪신학대전≫ I, 16. 1). 토마스는 감각지각의 진리와 본질개념의 진리를 가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감각과 정신은 그 대상 자체로부터 적접적으로 인식의 내용을 전달받기 때문이다(≪신학대전≫ I, 17, 3).

4. 존재의 문제 : 존재(esse)란, 그것을 통하여 어떤 존재자(ens)가 있는 그러한 완전성이다. 존재는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존재자는 존재를 소유하거나 존재자이기 때문에 무(無)와 구별된다. 토마스에 의하면, 존재는 무에 모순되는 개념이다. 여기에서 무는, 헤겔(Hegel)이나 하이데거(Heidegger)에 있어서와는 달리 단지 존재의 결핍으로 이해될 뿐이다. 존재는 현실태의 상태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모든 완전성의 무한한 충만 혹은 모든 있는 것, 있을 수 있는 것의 무한한 충만을 의미한다(≪신학대전≫ I, q. 4a lad 3; q. 4a 2). 우리가 만나는 현실적인 것은, 그것이 존재를 가지고 있거나 자신의 본질의 정도에 따라 존재에 참여(participatio)하는 한에 있어서 존재자인 것이다. 토마스에 있어서 존재는 가능태에 기초해 있는 현실태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완전한 자(inter omnia perfectissimum)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완전성은 이 완전성이나 존재의 현실태에 포함되어 있다(≪신학대전≫ I. 4, 2).

그리하여 존재는 모든 다른 완전성을 자신 안에 일치시켜 지니고 있으며 다른 모든 완전성 중에서 최초의 것이고 근원적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존재를 토마스는 ‘존재의 현실태’ (≪신학대전≫ I, 3. 4ad 2) 혹은 ‘존재자체’(ipsum esse)라고 부른다. 존재자가 존재에 참여한다는 토마스의 사상의 근저에는 신 플라톤 철학의 ‘참여’ 개념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토마스에 있어서 가장 적합한 신의 이름은 ‘거기 있는 자’(≪신학대전≫ I, 13, 11)로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신은 … 그의 존재이다”(I, 3, 4c). 즉 존재가 바로 신의 본질이다. 이것은 “나는 곧 나다”(출애 3:14)라고 한 신의 이름을 존재론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토마스의 존재론은 질송(Gilson)이 말한 바와 같이 결국 ‘출애굽기 형이상학’으로 환원된다. (朴鐘大)

[참고문헌] Walter Brugger, Philosophisches Worterbuch, Freibung, Basel, Wien 1967 / Wilhelm Keilbach, Einubung ins philosophische Denken, Munchen 1960 / De Uries. Lotz, Philosophie im Grundriss, Wurzburg 1969 / Sacramentum Mundi, Theologisches Lexikon fur die Praxis, Band 3, 4. / H. Fries(Hrsg), Handbuch theologischer Grundbegriffe, Band 4, Munchen 1962 / Emerich Coreth, Metaphysik als Aufgabe, Innsbruck 1958 / Rudolf Gumppenberg, Sein und Auslegung, Bonn 1971 / James Hastings; (ed), Encyclopaedia of Religion and Ethics, Edinburgh, New York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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