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롱고바르디(Longobardi, 중국명 龍華民, 1559∼1654)와 중국인 학자 서광계(徐光啓)가 ≪숭정역서≫(崇禎歷書)의 보간(補刊)을 위해 공동저술한 책으로 1645년 북경에서 전8권으로 간행되었고, 그 후 청대(淸代)에 와서 샬(Schall, 중국명 湯若望)에 의해 ≪숭정역서≫가 ≪신법산서≫(新法算書)로 제호가 바뀌며 재편집될 때 ≪신법산서≫의 서수(序首)를 이루게 되었다. 내용은 서양역법의 연혁과 역법의 편수(編修)를 다룬 것으로, 간행 직후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이익(李瀷)을 비롯하여 많은 실학자들에게 읽혀졌고 서양역법(西洋曆法)에 관심을 자아내게 하였다.
층하경 [한] 層下經 [라] preces ante gradum altaris
미사 집전 사제가 미사성제를 봉헌하기 위하여 제대의 층계를 오르기 직전에 드리는 기도. 이는 원래 교황의 장엄미사 입당 행렬이 제대 앞에 이르렀을 때 바치던 기도였으며, 프랑크 왕국에서는 제대까지 걸어오는 동안 이 기도를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 1차 대전 후의 전례 쇄신을 거치면서 다양하게 봉송되었다. 층하경의 내용은 시편 43장과 고백의 기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깨끗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제대에 나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기도이다. 집전 사제와 미사 복사가 라틴어로, 회중은 남녀 교우로 나누어 모국어로 교송하였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른 전례개혁으로 인하여 층하경의 내용 중 시편 43장이 삭제되고 고백의 기도만이 잔존하여 오늘날 미사 개회식의 공동 참회기도를 이루고 있다.
층계송 [한] 層階誦 [라] graduale [영] gradual [관련] 미사
제1독서 후의 그 독서에 대한 응답이다. 계단(gradus) 위에서 노래했기 때문에 층계송이라고 불려진다. 층계송은 미사전례 가운데 가장 오래된 성가로서 모든 전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로 시편으로 이뤄진다. 원래 층계송은 시편 한편을 선창자가 노래하면 모인 사람들이 후렴으로 응답송을 부른다. (⇒) 미사
츠빈글리 [원] Zwingli, Huedreich (Ulrich)
Zwingli, Huedreich (Ulrich)(1484∼1531). 스위스의 종교 개혁가. 토겐부르쿠의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 성직자인 숙부로부터 교육을 받았고, 인문주의자 하인리히 뵐플린(Heinrich Wolfflin)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그 뒤 인문주의자들과 교제하면서 스콜라신학에 대한 흥미를 상실하고, 인문주의적 사고방식을 신학의 영역에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1506년 수사학 학위를 받았고, 그 뒤 10여년을 교회에 재직, 이 기간 동안 그는 신학과 인문학을 깊게 공부했으며 교부학과 그 중에서 특히 예로니모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1519년 취리히로 옮겨간 뒤 페스트에 걸려 간신히 목숨을 건지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그는 종교개혁에 소명의식을 느끼고 교회의 개혁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이게 된다.
1522년 안나 마이아와 결혼했으며, 1523년 ‘67개 논제’를 제출하여 논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취리히는 프로테스탄트의 도시로 출발하게 되었다. 1531년 그는 카펠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츠빈글리는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아 성서를 개인의 행위와 국가의 윤리 및 교회의 실천을 통제하는 신적 율법으로 파악했으며 따라서 개혁운동의 범위를 국가와 정부까지 포함시켰다. 즉 그는 일종의 신권정치의 이상에 따른 것이다. 그의 신론(神論)을 그리스도론이나 인간론적인 것은 아니고 하느님 중심이었다. 하느님의 절대 주권을 내세웠고, 그에 대한 논쟁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론에서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통일성을 인정하면서도 너무 뚜렷하게 구별했기 때문에 네스토리우스주의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뒷날 성체성사의 교리에 대한 논쟁으로 루터와 결별하였다. 츠빈글리의 교회론은 가시적 교회와 불(不)가시적 교회를 구분하여 가시적 교회를 불가시적 교회의 예비적 조직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