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칼라상시오 [라] Josephus Calasanctius

Josephus Calasanctius(1556∼1648). 성인. 축일은 8월 25일. 스페인의 사제. 스페인 아라곤(Aragon)지방의 페탈라 델라 살(Petala de la Sal)에서 태어나 이탈리아 로마에서 별세하였다. 레리다(Lerida) 및 발렌시아(Valencia)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1583년 사제로 서품, 알바라신(Albarracin) 및 레리다의 주교 고문 및 비서가 되었다. 1592년 로마로 가서 추기경 콜론나(Marc’-Antonid Colonna, ?∼1597)의 신학 고문이 되어 빈민아동의 교육과 보육사업을 담당하였다. 1597년 유럽 최초의 무료 공공학교(국민학교 과정)를 설립하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다. 그는 그들을 ‘경건한 학교’의 율수성직자(律修聖職者) 단체인 ‘피아리스트회’(Piarists)로 결집(結集)케 하였다. 1617년 피아리스트회는 교황의 공인을 받았고, 1612년에는 정식 수도회로 승격, 요셉은 ‘천주의 성모의 요셉’이란 이름으로 총회장에 임명되었다. 겸손하고 온화하며 지칠 줄 모르는 고행자(苦行者)요 대중교육가인 그에 의해 이 수도회는 이탈리아 전국으로 확장되었다. 그는 내부의 분쟁과 외부로부터의 적대감, 그 자신의 총회장직의 잠정적 정지(1643∼1646년), 동회의 단식서원을 갖는 수도회로의 제한(1669년까지) 등 여러 난관을 진정한 인내심으로써 극복하여 다른 수도회의 모범이 되게 하였다. 유해는 로마의 성 판탈레오 성당의 대제단에 안치되어 있다. 1748년 교황 베네딕도 14세에 의해 시복(諡福), 1797년 비오 6세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요셉 [라] Josephus

동정녀 마리아의 배필로 예수를 기른 아버지. 일반적으로 의인(義人)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마리아와 약혼을 하고 같이 살기 전에 잉태한 것이 드러났을 때 이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던 태도에서 드러난다(마태 1:18-20). 다윗의 가문에 속한 요셉은 마리아와 동침하지 않았으나 법적(法的)인 남편이며, 예수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었으나 아버지 요셉을 통하여 법적인 다윗의 후손(마태 15:23)이 되었고 메시아로 불릴 수 있었다(마태 22:42).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인구조사령에 따라 베들레헴에 가서 예수의 탄생을 보았고 아기 예수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집트에 피난했다가 나자렛에서 목수로 일하며 성가정(聖家庭)을 이끌어 갔다. 교회 전체의 주보로 공경받을 뿐 아니라 노동자, 가정, 동정녀, 환자, 임종하는 자의 주보이기도 하다. 교황 비오 11세는 요셉을 무신론적 공산주의와 투쟁하는 자들의 주보로 정하였고(1973년), 비오 12세는 노동자 성 요셉의 축일을 공포했으며(1973년), 요한 23세는 성 요셉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보호자라고 불렀다(1961년).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요사팟 [라] Josaphat

Josaphat(1580∼1623). 성인. 주교. 순교자. 축일은 11월12일. 원명은 Jan Kuncevyc. 폴란드의 블로지미에시(현재 소련의 블라디미르 볼린스키)에서 귀족 아들로 태어났다. 1604년 바실리오회 수도원에 들어가 1609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설교가로서의 재능과 독실한 신앙생활 때문에 빠른 승진을 하여 1617년 비테브스크의 수도원장, 이어서 리투아니아 폴로츠크의 대주교가 되었다. 그리스교회와 라틴교회의 일치, 이교자(離敎者)의 교회복귀를 위해 진력하였다. 비테브스크시를 순찰 중 교적(敎適)의 사주를 받은 이교자 폭도에게 살해되어 순교하였다. 드니에프르강에 던져진 그의 유해는 건져져서 비알라(Biala)에 안장되었다. 1643년 교황 우르바노 8세에 의해 시복(諡福), 1867년 비오 9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요리문답 [한] 要理問答 [관련] 성교요리문답

≪성교요리문답≫의 별칭. ⇒ ≪성교요리문답≫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요리강령 [한] 要理綱領

그림 교리서. 프랑스 파리의 본느 출판사(Bonne Presse)에서 간행된 원본을 한기근(韓基根) 신부가 번역하고 이를 뮈텔(Mutel, 閔德孝) 주교가 감준하여 1910년 서울의 성서활판소에서 간행되었다. 크기는 25.5cm×35cm의 4절판이고 분량은 총 140면(面)이며 장정은 양장본이다. 한기근 신부는 번역 과정에서 요리강령이라고 제목을 붙였으나 서문에서 “성교도리를 묻고 대답함과 상본으로써 풀어서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이 책이 그림교리서임을 밝히고 있다. 본문은 한 면에는 그림, 다른 한 면에는 그림에 대한 해설을 싣고 있어 모두 68폭의 그림이 실려 있는데 이를 내용별로 분류해 보면 제1편 종도신경, 제2편 성사칠적(聖事七蹟)[七聖事], 제3편 천주십계와 성교사규, 제4편 기구 · 사말 · 죄악 · 덕행 · 애긍 등으로 되어있다. 이 책은 간행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어 교우들뿐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에게까지 주문이 쇄도할 정도로 좋은 책으로 평가되었고 이후 계속 중간되면서 교우들의 신앙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