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서울 대교구 관할 공세리(貢稅里)본당 산하의 방축리(防築里) 공소로서 설립, 1948년 온양본당으로 승격, 분리되면서 초대 멜리장(Melizan, 梅, 베드로) 신부가 부임, 첫 미사를 집전하였다. 2대 를뢰(Leleu, 盧, 베드로) 신부는 1950년 5월에 부임, 7월 18일 공산군에 의해 치명하는 비운을 겪었다. 1957년 현 위치에 신축 성당이 낙성되었고, 1958년에는 서울 대교구 관할에서 대전교구로 관할이 이관되었고, 1959년 4대 한도준(韓道俊, 마태오) 신부 때 수녀원이 설치되었다. 1957년 5대 김영환(金英煥, 마태오) 신부 때 선화유치원이 설치되고, 1965년에는 교황대사 로톨리(Rotoli) 대주교가 내방, 미사를 집전하였다. 1974년 7대 유재식(兪載植, 안셀모) 신부 때에 산하의 도고(道高)공소가 본당으로 승격, 분리되면서 그 관하에 선장(仙掌) · 신창(新昌) · 도고의 3개 면을 두게 되었다. 1976년에는 산하 둔포(屯浦)공소가 둔포본당으로 승격, 분리되었다. 현재 9대 유봉운(兪鳳雲, 야고보) 신부가 본당주임으로 사목하고 있으며, 주보는 예수성심, 신자수는 4,053명(1984년 현재), 산하 공소는 11개소이다.
온두라스 [원] Honduras
중앙아메리카 중부에 있는 공화국. 중앙아메리카에서는 니카라과 다음으로 가장 넓고 큰 영토를 가진 나라이다. 콜룸부스가 제4차 항해 때 북쪽 카리브해 연안에서 심해까지 이어지는 강한 해류에 휩쓸려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온두라스(스페인어로 ‘길다’의 뜻)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전한다. 면적 11만 2,088 km2, 인구 약 396만명(1982년 추계)이다. 16세기에 온두라스에 주교구가 설정되었고, 독립 당시에 코마야구아(Comayagua) 주교좌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성직자가 부족한 것이 이 나라에서 가장 큰 문제이다. 1964년에는 사제가 200명에도 미치지 못하였는데, 그들 중 반수 이상이 수도회 출신들이다. 가톨릭 신자 약 308만 5,000명(1982년 현재)이다.
옥포 [한] 玉浦
순교자 묘소 소재지. 동래 출신 윤경문(尹景文) · 봉문(鳳文 혹은 봉용, 베드로 혹은 요셉) 형제가 183년의 박해를 피해 웅천(熊川, 현재의 진해)에 머무르면서 전교활동을 하던 때 복음이 전해졌다. 윤봉문은 당시 붓장사를 하면서 붓대롱 속에 교리 문답서를 감추고 다니면서 전교하였다. 1888년 대구에 있던 로베르(Robert, 金) 신부가 방문, 예비자 15명에게 영세를 베풀었다. 로베르 신부가 떠난 지 1개월만에 박해가 일어나 모든 교우들이 고문을 당하였다. 윤봉문이 끝내 배교하기를 거부하자 통영판관은 대구감영에게 보고하였고, 감사는 진주에 보내 사형에 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윤봉문은 1888년 2월 22일(음) 진주감옥에서 교살(絞殺)되었다. 그 뒤 그의 유해는 진주에서 옥포로 이장되었다. 경남 거제군 장승포읍 옥포리에 위치.
옥천희 [한] 玉千禧
玉千禧(?∼1801). 순교자, 세례명 요한. 평안도 선천(宣川) 출신. 그의 입교시기는 알 수 없으나 누구보다도 열심히 신앙을 지켰고 교회일에는 늘 앞장서서 최선을 다하였다. 그는 주문모(周文謨) 신부의 심부름으로 여러 번 중국에 내왕하면서 맡은바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황사영(黃嗣永)이 박해를 받고 있는 조선 교회의 사정을 북경 주교에게 알리기 위하여 쓴 백서(帛書)를 중국을 내왕한 경험이 많고 또한 가장 믿을 수 있는 옥천희가 황심(黃沁)과 함께 가지고 가기로 약속이 되었으나 불행히도 그가 8월경에 잡히고, 이어 황심과 황사영이 잡힘으로써 모든 것이 허사가 되었다. 그는 이 일로해서 1801년 12월 10일(음 11월 5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