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8년 8명의 프랑스 기사들이 예루살렘을 수호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창립한 수도회. 명칭은 이들이 수도회를 솔로몬 성전에서 창립하였기 때문에 붙여졌다. 기사수도회로서는 최초의 수도회이자 가장 강력한 수도회였다. 복장은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백색 망토를 걸치고 다닌 것이 특징 창립 후 10년만에 공인되면서 교황 직속 수도회가 되었다. 베네딕토회의 규칙을 회칙으로 채택했고, 청빈. 정결, 순명의 3가지 서원 외에 용감한 십자군의 병사로서 하느님을 위해 싸울 것을 서원하였다, 두려움을 모르는 전사(戰士)로서, 신심 깊은 수도자로서 모범을 보여준 성전기사수도회 회원들의 명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이에 따라 많은 지원자들이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십자군 원정이 끝난 뒤 프랑스에 정착하였으나 프랑스 국왕 필립 4세와의 불화로 1291년 수도원을 키프로스로 옮겼다. 1307년 이후 국왕은 이들을 비방하면서 2,000명 가량의 회원들을 체포하여 이단과 음란죄로 고발하였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였다. 국왕은 잔인한 고문으로 이들의 자백을 받아내었다. 1312년 국왕의 요구에 따라 교황 글레멘스 5세는 비엔 공의회에서 다수의 의사를 무시하고 성전기사수도회의 폐쇄를 결정하였다. 1314년 국왕은 수도회 총장 야고보를 이단자로 몰아 파리에서 화형시켰다.
성지2 [한] 聖枝 [라] palma [영] palm [관련] 예수수난성지주일
보통 종려나무나 올리브나무의 가지로 승리를 상징한다. 성지는 로마 박해 때의 많은 성인(聖人)들을 상징하여 로마 지하묘지(카타콤바) 내의 순교자들의 무덤을 표시하기도 한다. 또한 성지는 최후 심판을 묘사함에 있어서 최후 승리를 상징한다(묵시 7:9). 특히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때 백성들은 승리와 존경의 표시로 겉옷을 길 위에 깔고 성지를 흔들며 예수를 환영했었다(요한 12:12-14, 마르 11:8, 마태 21:8). (⇒) 예수수난성지주일
성지1 [한] 聖地 [라] terra sancta [영] holy land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의 배경이 된 장소. ‘성지’라는 용어는 초기 교부 시대 이후의 그리스도교 문헌들에 종종 기록되어 있으나 중세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성주본당 [한] 星州本堂
경북 성주군 성주읍 경산 2동에 소재하고 있는 대구 대교구 관할 본당이다. 1890년 이 곳 산막골(성주읍 성산 3동)에 주필학(야고버)이 칠곡 낙산성당에서 세례를 받아 선교를 시작하여 1917년 4월에 자기 사재를 털어 산막골에 공소를 건립하여 그 당시 프랑스 신부인 투르뇌(Victor Tourneux)신부의 지도를 받았다. 투르뇌 신부는 190 3년 입국하여 전남 목포,
나주 노안지방에 전교하다가 1911년 경북 가실(낙산) 본당으로 부임한 분이다. 투르뇌 신부의 헌신적인 활동과 교우들의 열성으로 신자수는 급증하여 6.25 동란이 나던 해인 1950년 3월 19일 본당으로 승격하였고 김재석(요셉) 신부가 첫 주임신부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 후 왕묵도 신부 등 역대 6명의 신부가 본당을 이끌어 오고 있으며 성모회 등 단체가 조직되어 있다. 현재 성주읍과 선남면. 용암면, 원항면, 대가면 등 4개 면에 9개 공소를 관할하고 있으며 1983년 말 현재 신자수는 3,599명(남 1,553명, 여 2,046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