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교 [한] 叛敎 [관련] 배교

배교(背敎)의 옛 말. ⇒ 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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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톨릭주의 [한] 反~主義 [영] anticatholicism

로마 가톨릭 교회의 집중적이고 조직적인 권위에 반대하는 입장. 기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근대에의 움직임은 종교개혁이 가져온 결과였으므로 거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될 것이다. 세속국가(世俗國家)의 출현은 교회와 국가간의 충돌을 격화시켰다. 가톨릭 교회는 독자적인 교육시설과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인공적인 임신중절(姙娠中絶)과 결혼 도덕 등에 종교적 전통성을 굳게 지키고 타협을 불허하므로 교회의 교의에 찬성하지 않고 독자적인 견해를 관철하려는 권력자들로부터 반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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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순 [한] 朴喜順

박희순(1801~1839). 순교자.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궁녀(宮女). 세례명 루시아. 성녀 박 큰아기(朴大阿只)의 동생. 서울에서 태어나 어려서 뛰어난 미모와 재주로 인해 궁녀로 뽑혔다. 15세기경 어린 순조(純祖)의 유혹을 용기와 덕으로 물리쳐 그 명성이 세간에 널리 퍼졌었고, 30세 경 천주교를 알게 되어 입교하였다. 그 후 궁녀의 신분으로는 천주교의 봉행이 어렵게 되자 병을 칭탁하고 궁을 나와 조카의 집에 머무르면서 신앙생활에 전념하는 한편, 언니 박 큰아기와 조카의 식구들을 권면, 입교시켰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고 이해 3월말 천주교인으로 밀고되자 조카의 가족들과 함께 전경협(全敬俠)의 집으로 피신했으나, 4월 15일 전경협의 집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포청과 형조에서 혹형과 고문을 받아 다리가 부러지고 골수가 흐르는 만신창이의 몸이 되었으나 오히려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며 교우들에게 감동적인 권면의 편지를 써 보냈고, 이러한 열정적인 신앙으로 모든 유혹과 형벌과 고문을 참아 낸 후 5월 24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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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섭 [한] 朴熙攝

박희섭(1930~1981). 신용협동조합운동 지도자. 세례명 사베리오. 경남 거제(巨濟) 출신. 1956년 동국대(東國大)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농림부 장관 비서관으로 근무하다가 캐나다로 유학, 세네덱스대학 부설 코디국제연구원을 수료한 뒤 귀국하였다. 1962년부터 신용협동조합운동에 투신, 1979년까지 협동교육연구원 교수, 부원장, 원장, 한국신용협동조합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신용협동조합운동의 지도자 양성에 헌신하여 신용협동조합운동을 국내에 정착 · 보급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국제적으로 폭넓게 활동하여 68개국에서 신용협동조합운동에 대한 강사로 초청되었고 그 밖에 교황청 직속 콜우눔 인간발전심의위원, 유네스코 가톨릭교육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1981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으나 3개월 뒤 그 곳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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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후재 [한] 朴厚載

박후재(1799~1839). 순교자.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 요한. 일명 명관. 경기도 용인(龍仁)의 교우가정에서 태어났다. 1801년 신유(辛酉)박해로 부친을 여윈 후 홀어머니에게서 자랐고, 성장해서는 서울의 한강가에 살며 물장사를 하는 노모를 도와 미투리를 팔아 생활하였다. 항상 뛰어난 덕행으로 교우들의 귀감이 되었고, 36세 때 교우처녀인 박 안나와 결혼한 후로는 아내와 함께 더욱 더 열심히 수계하였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자 아내를 피신시키고 5월에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치도곤 40도를 맞아 살이 찢어지고 뼈가 드러나 피가 낭자했으나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고 오히려 함께 갇힌 교우들을 권면하고 흉악한 죄수들에게 천주교의 바른 도리를 강론하였다. 그 후 형조로 이송되어 그 곳에서도 혹형과 고문을 당했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켜 9월 3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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