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부주의 [한] 無政府主義 [영] anarchism

극단적으로 정치권력과 사회적 권위를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는 사상과 그 운동. 무정부주의는 국가와 법, 감옥, 재산, 그리고 사제(司祭)도 없는 사회를 이상으로 삼는데, 요즈음은 혼란과 무질서 등을 상징하는 의미의 말로도 쓰인다. 무정부주의는 하나의 사회철학이며 정치이념으로, 그것은 개인의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내세우고 그에 대한 모든 억압적인 힘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무정부주의는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인 제논(Zenon)으로부터 자유주의자인 훔볼트(W. von Humboldt)나 밀(J.S. Mill)등의 사상에서도 발견된다.

무정부주의는 대개 다섯 가지의 특징으로 규정해 볼 수 있다. 인간은 본래 선(善)의 능력을 가진 착한 존재인데, 관습 · 제도 · 권력 따위가 타락하게 만든다. ②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로서 자발적으로 서로 협력할 때 가장 인간다워진다. 공동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며, 따라서 이러한 사회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고, 국가는 그에 반대되는 것이다. ③ 사회의 여러 제도 가운데 사유재산과 국가는 인위적인 것 중에서 으뜸이며 사람을 서로 타락시키고 착취하도록 만들었다. 모든 권위적인 요소들은 개인을 억압하는 것이다. ④ 모든 사회변화는 자생적이고 직접적이며 대중적인 기반을 둔 것이라야 하며, 이와 반대되는 모든 조직화된 운동은 권위의 조직에 의한 산물에 불과하다. ⑤ 산업문명은 생산수단의 소유형태가 어떻든지 간에 인간의 정신을 파괴한다. 기계는 인간을 지배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회든 산업문명 위에 서는 것은 인간의 내적인 힘을 누르는 것이다. 이런 사상적 요소를 가지는 무정부주의는 여러 사상가들에 의해 대표되는데, 내용이 각기 다르기는 하나, 개인의 자유와 경제생활의 유대를 모색하는 데 있어서는 매한가지이다.

고드윈(W. Godwin)은 권력과 불평등에 반대하여 자율적인 협동을 강조하였고, 재산을 도둑으로 규정한 프루동(P.J. Proudhon), 마르크스(K. Marx)에 맹렬하게 반대한 바쿠닌(M.A. Bakunin), 다윈의 적자생존 원칙에 반기를 든 코로포트킨(P.A. Kropotkin), 개인의 개성을 철저하게 주장한 슈티르너(M. Stirner), 상디칼리즘을 내건 소렐(A. Sorel)등은 모두 이 계통의 거장들이다. 모든 폭력에 반대하여 무저항주의를 내건 톨스토이(L.N. Tolstoi)는 또한 종교적인 무정부주의를 주장, 교회법적 조직은 그리스도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하여 주로 사랑에만 의존하는 무교회주의를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무정부주의는 가톨릭에서 늘 배척을 받는 사상이며, 1864년 비오 9세 교황의 실라부스(謬說表)에 의해서도 지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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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저항주의 [한] 無抵抗主義 [영] nonviolent resistance

폭력을 절대악이라 하여 세상의 악과 불의와 폭력에 대항하여 싸우는 데 있어서도 폭력의 사용을 부정하는 사상과 실천을 가리키는 말. 영어의 nonviolent resistance를 무저항주의라고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이는 타당하지 않다. 비록 폭력은 사용하지 않지만, 악에 대한 저항을 포기하는 투항주의나 패배주의가 아니라, 악을 종국에는 퇴치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폭력의 사용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비폭력주의라고 번역함이 타당하다.

비폭력주의를 내세운 사람들이나 집단들은 많지만 실제로 악의 세계에 대항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채택하여 실천한 사람으로는 간디, 마르틴 루터 킹, 돔 헬더 카마라 등이 대표적이다. 간디는 자신의 비폭력주의가 예수의 가르침과 이 가르침을 실천하려 했던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에게서 사상적인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특히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마태 26:2), “바른 뺨을 치면 왼편 뺨을 돌려대라”(마태 5:39), “원수를 사랑하라”(마태 5:44), “악한나무에서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마태 7:18),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라”(루가 6:27) 등에 사상적인 원천을 두고 있다. 간디는 악의 세력들은 언제나 사실을 왜곡시키면서 자기들에게만 유익한 신화를 만들어 민중을 기만하고 착취하는데, 이러한 악의 세력들의 허위를 꿰뚫어볼 수 있는 참된 진리를 깨달아 악의 세력들이 구축해 놓은 불의한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 방법은 비폭력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비폭력이라는 것이 수동적이거나 무행동적인 현실순응주의나 현실도피주의여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그러한 경향은 오히려 악의 세력들의 불의한 제도에 동참하여 협조해 주는 데 지나지 않음을 강조하였다. 그 근거로서 악한 제도를 통하여 군림하고 있는 악의 세력들이란 민중의 맹목적인 순종 속에서 그들의 존립기반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비폭력적인 항거가 확대되면 될수록 그 제도는 무력해지고 악의 세력들도 힘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마르틴 루터 킹 목사도 이 비폭력주의를 도입하여 흑인해방운동을 전개하였고, 라틴아메리카의 돔 헬더 카마라 대주교도 폭력을 퇴치하기 위하여 폭력을 사용한다면 폭력의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경고하면서 ‘정의 · 평화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그러나 비폭력주의에 대해 “여유 있는 자들이 희롱하는 사치품”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바야흐로 악이 온 인류에게 커다란 재앙을 내려 파멸의 구렁텅이로 끌고 가려는 악한 제도에서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 방법의 도덕성만을 논하고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 폭력 불가지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들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킬 수 있느냐”는 물음은 잘못된 질문이며 오히려 “그 방법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느냐”라고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상시의 도덕률을 비상시에도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도 역시 지배자의 불의에 공범자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2차 대전 때 나치학정에서의 본 회퍼나, 알제리 혁명전선에서의 프란츠 파농이나 미국의 흑인 해방신학자인 제임스 콘이나 제3세계의 많은 혁명가들의 반론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비폭력주의의 한계는 명백하게 구획지어진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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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염시태 [한] 無染始胎 [관련] 원죄 없는 잉태

옛 교우들이 사용하던 말로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어 원죄에 물듦이 없이 잉태되었음을 뜻한다. 현재는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란 표현으로 바뀌었다. (⇒) 원죄 없는 잉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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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 [한] 無神論 [라] Atheismus [영] Atheism

1. 무신론의 어의 : 우리말의 무신론이란 낱말은 서구어 즉 라틴어의 atheismus를 번역한 낱말이며 라틴어의 atheismus는 그리스어의 atheos로부터 유래한다.

2. 개념 및 구분 : 무신론은 유신론 즉 신의 존재를 인정치 않는 학설과 생활 태도를 총칭한다. 그러나 서구 사조에 있어서의 무신론은 특히 근세에 와서 명백해지고 체계화되었다. 이런 무신사상은 신성(神性) 혹은 신적(神的)인 것에 대한 거부이기보다는 위격적(位格的, personal)존재이며, 인간과 우주에서 구별되는 초월적인 존재, 창조주이며 섭리의 존재인 신, 인간에게 자기를 나타내고 인간은 그에게 기도하고 희생을 바쳐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신을 거부하는 사상을 말한다. 따라서 이런 무신론은 그리스도교적 신에 대한 무신사상이다. 이런 무신론은 그리스도교적 신사상이 체계적이었기 때문에 체계적 무신론으로 나타났다. 또한 여기서 실천적 무신론도 생겨났다. 기실 무신론은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띤다.

실천적 무신론은 신을 인정하지만 실천생활에는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는 생활태도를 말한다. 체계적 무신론에는 절대적 무신론과 상대적 무신론이 있다. 전자는 신의 존재도 신성(神性)의 존재도 인정치 않는다. 또한 그것은 더 세분되어 소극적 무신론과 적극적 무신론으로 구분된다. 소극적 무신론은 신과 신적인 것을 무지에 의해 조잡하게 거부하는 경우[루소(J.J. Rousseau)의 경우]와 무관심에 의해 신을 거부하는 상태[하이데거(M. Heidegger)나 크로체(B. Croce)의 경우]가 있다. 적극적인 무신론은 어떤 이유를 제시하여 신과 신적인 것을 거부하는 경우[에피쿠로스(Epikuros), 라 메트리(J. La Mettrie), 포이에르바하(L. Feuerbach), 마르크스(K.H. Marx), 니체(F. Nietzsche), 슈티르너(M. Stirner) 등의 경우]이다. 이 적극적 무신론에 전투적 무신론을 첨가할 수 있다. 이런 전투적 무신론은 마르크스주의의 무신론을 말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종교를 아편으로 규정하며 그 박멸을 주장하여 실천하기 때문에 전투적 무신론이라 한다. 상대적인 체계적 무신론은 신의 존재는 인정치 않으나 신성과 신적인 것은 인정한다. 이런 무신론에는 불가지론자(실증론자), 범신론자(스피노자), 이신론자(理神論者) 즉 자연신론자 등이 속한다. 그 밖에도 인간은 신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자신을 창조해 가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자만자족적 무신론과 인간의 자유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신을 부정해야 한다는 요청적 무신론, 신의 문제는 제기할 필요조차 없다는 무관심적 무신론, 악(불행)의 존재 때문에 신의 존재를 거부하는 무신론 등이 있다.

3. 역사적 내용적 고찰 : 무신론의 규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무신론의 범주도 달라진다. 전통적 그리스도교 신관에 근거한다면 불교 · 유교 등을 비롯하여 자연주의, 범신론, 불가지론, 실증주의, 실용주의 사상 등등이 다 무신론의 범주에 들 것이다. 그러나 신관을 더 폭 넓게 본다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또 시대적 양상 여하에 따라 무신론의 양태가 달리 나타나기도 한다. 여기에 무신론의 모호성과 난점이 있다.

아래에서 우리는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무신사상 몇을 간추려 소개한다. 그리스나 로마시기 그리고 중세에는 넓은 의미로 무신론적 색채를 띤 사상들이 있기는 하였으나 체계적이며 명시적 무신론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근세에 이르러 무신론의 적극적 양태는 프랑스의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데카르트(R. Descartes)의 사상에서 특징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명석 판명한 이념을 추구하여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명제를 정립한다. 이렇게 그는 진리의 근거를 자명성과 사고하는 주체의 사유에서 인정하였다. 이런 내재(內在)에로의 사고 특히 cogito는 그 후 3세기라는 긴 도정을 거치며 합리론, 경험론, 관념론, 유물론, 현상론, 실존주의 등을 거치는 동안 가지가지의 무신사상온 산출하기에 이른다. 그러므로 데카르트의 학설은 그의 세계의 기계론적 인식 때문에 무신론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그의 학설에 따르면 모든 자연적 현상은 물질과 운동과 그 법칙에 의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처음으로 명시적 무신론을 주장한 사람은 퍼에르 베일이었다. 또 이런 사상적 흐름은 이신론(理神論)과 경험론에도 영향을 미쳤다. 영국경험론은 실체에 대해 불가지론 내지는 거부의 입장을 취하며 물질계에 지각하고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가정하기에 이른다. 이런 사상의 흐름은 프랑스의 계몽주의 작가 볼테르(Voltaire)와 영국의 자유사상가 존 톨난드같은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물질적 질료에 생기를 인정하여 물질적 질료에 자체 충족성을 인정하게끔 시대 사조를 이끌어 갔다. 이런 사고는 계몽주의 시기의 무신론의 핵심이었다.

18세기의 무신론은 요청적 무신론의 형태를 띠며 이런 무신론은 돌박(P.H. D’Holbach) 등에 의해 체계적으로 그리고 아주 명시적으로 표현되었다. 돌박은 무신론자를 인류에게 해로운 환상과 망상적 존재를 파괴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돌박은 유물론적 체계를 형성하며 모든 것을 원자와 원자의 운동에 환원시켰다. 신사상은 무익하고 해로운 가설에 불과하다. 돌박은 무신론을 인간 행복의 기초로 생각한다. 라 메트리는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원리를 인간에게 적용하여 인간의 영양생활, 감각생활, 더 나아가서는 심리생활 등 인간의 전 생활을 신경계통에서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독일 계몽주의는 초자연주의를 반대하는데, 즉 관찰할 수 있는 우주를 넘는 존재에 대한 믿음을 반대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이러한 주의는 자연의 자족성만을 인정하였다. 선험적 흑은 비판적 관념론의 창시자인 칸트도 계몽주의적으로 생각하여 신의 존재는 순수이성에 의해서는 증명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신은 실천적인 면 즉 윤리적인 면에서 요청되는 것이다. 무신론적 사상은 18세기에 와서 더욱 완전하게 표현되었다. 이런 흐름은 결국 근세사상을 인간중심주의에로 이끌어 갔다. 포르베륵은 종교를 갖는다는 것을 마치 정당한 윤리적 세계가 가능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야코비(C.G. Jacobi)는 무신론자라는 비난에서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 무신론을 17세기의 합리론자인 스피노자(B. de Spinoza)에게서 영향을 받은 학설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는 피히테(J.G. Fichte)와 셸링(F.W.J. von Schelling)도 무신론자로 비난하였다. 그것은 셸링이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아 신의 개념을 세계의 절대적 산출성과 신성한 근원적 힘으로서의 자연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스피노자의 심대한 영향은 19세기의 대 관념론자인 헤겔(G.F.W. Hegel)에게 핵심적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헤겔의 사상에는 벌써 무신론의 두 요소가 내재해 있었다. 첫째는 종교와 종교적 진리의 속성을 순수개념 즉 철학과 비교하여 보다 낮은 표상이나 과정에 귀속시킨 것이고 둘째는 자연과 역사의 양태에 신의 내재를 이루어 놓은 것이었다. 신은 세계에 있는 모든 것의 나타남에 자기를 제시한다. 따라서 세계 없이 신은 신이 아닌 것이다.

포이에르바하는 헤겔좌파에 속하며 적극적 무신론의 창조자였다. 그는 모든 인식의 근원을 감각적 직접성에서 설명한다. 신의 인식은 인간이 자기 자실의 본질을 무한화한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본질을 무한화하여 종교의 대상으로 삼는다. 종교는 논리적이거나 존재론적 실재를 갖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심리적 실재성을 가질 뿐이며 환상적인 것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한 것이다. 인간은 환상으로 신을 창조한 것이다. 포이에르바하의 신관은 “사람이 사람에게 신이다”로 표현된다.

이제 우리는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사적 유물론적 무신론을 요약 제시코자 한다. 포이에르바하의 인간학적 무신론은 정적(靜的)인 감각주의에 국한되어 있었으며 종교와 신의 개념의 발생 설명은 아직 관념적이며 순전히 심리적이었다. 이와는 달리 마르크스주의는 순전히 물질적 구성체로서의 인간에 주목한다. 또 종교를 물질적 조건과 사회적 실재의 기초 위에서 고찰한다. 포이에르바하는 헤겔과 별로 다르지 않게 종교를 의식의 내면성에서 설명함으로써 종교를 완전히 제거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은 종교의 기원과 사고 일반의 기원을 사회적 관계 혹은 자본주의의 경제적 압력에서 고찰한다. 즉 사고 일반은 역사적 산물이며 사고 형태의 다양화는 사적 특수 조건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이다. 기실 종교는 인간의 생산 활동의 발전과정에 있어 보다 낮은 단계에 역사적으로 제약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종교는 원(原)사회의 형태를 지닌다. 그러나 종교도 착취시대의 시작과 더불어 새로운 기능을 갖게 된다. 즉 종교는 사회적 착취의 다양한 형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의 방패역할을 한다. 이 관점이야말로 마르크스주의가 종교정책의 기본으로 삼고 있는 종교박멸의 핵심적 요인이다. 종교는 인간 본질의 환상적 실현이며 인간 본질은 종교 안에서 어떠한 실재도 갖지 못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종교적 소외는 사회적 성격을 띠는 것으로 생각한다. 종교는 불행으로 눌린 피조물의 탄식이며 마음없는 세계의 심정이며 정신없는 시대의 정신인 것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인민의 환상적 행복인 종교의 탄압은 참된 행복의 요청이다. 종교의 비판은 법의 비판, 신학의 비판, 정치의 비판 등이 된다. 이런 비판의 결과를 인간해방이라고 한다. 결국 종교는 생산관계의 한 현상 즉 상충구조의 한 현상에 불과하다.

니체는 현실 세계를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와 같이 끊임없는 생성으로 생각하며 거기에는 어떠한 정지적 존재자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 생성은 자체의 더 큰 진화를 향해가는 삶이며 힘에의 의지로 생각된다. 이런 경향의 형이상학적 목적은 초인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런 상태는 다시 원상(火)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며 또 다시 같은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이런 반복은 끝없이 계속된다고 생각하므로 그는 영겁회귀설을 성립시킨다. 사물은 영원성을 갖는다. 니체는 신의 부재를 이론적으로 논증코자 하지 않는다. 기실 신존재 신념은 가장 유해하며 인간의 생명력에 치명적인 작용을 한다. 신의 비존재는 인간생명의 요청이다. 신신앙은 자연의 가치 부정을 말하며 또 이런 신앙은 생명의 적이다. 신사상은 인간의 절대적 독립성에 위배된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표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르트르(J.P. Sartre)는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제창한다. 사르트르 철학에 있어서 자유는 코기토(Cogito)의 존재를 선행하며 그 존재에 기초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무신론적이며 인간 존재는 신을 거부하는 본연의 자유에 성립된다. 사르트르는 다음과 같이 신의 문제를 생자한다.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나는 내가 자유롭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는 자기 존재의 무화로서 자기를 실현한다. 무화로서의 근본적 혹은 본래적 자유는 신을 배제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신은 자체의 기초가 되는 존재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각기의 인간 존재는 자기 자신의 대자를 ‘즉자(卽自) – 대자(對自)’로 하려는 직접적 기도인 것이다. … 모든 인간 존재는 그가 존재에 근거를 갖기 위해 또 동시에 그 자신의 근거인 것으로 인해 우연성에서 탈출하는 즉자 즉 종교에서는 신이라고 부르는 자기원인자(ens causa sui)를 구성하기 위해 자기를 잃어버린다는 점에서 한 수난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수난은 그리스도의 수난의 역(逆)이다. 그러나 신의 관념은 모순된 것이며 우리는 우리를 무익하게 잃어버린다. 인간은 무익한 한 수난이다.” 그러므로 사르트르는 자기 무신론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짓는다. “실존주의란 일관된 무신론적 입장에서 모든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실존주의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로 무신론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신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아무런 변화도 없다는 것을 선언한다. … 우리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의 존재의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며 또 신의 존재의 유효한 증명이 있을지라도 아무것도 인간을 인간 자신에서 구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시켜야 한다.”

듀이(J. Dewey)는 신개념을 원망(願望)과 행동에로 인간을 촉구하는 이상적 목적의 개념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듀이는 초월적 인격적 존재로서의 신을 인정치 않는다. 신은 재래 종교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존재론적 실체가 아니다. 신은 여러 가지 양태의 이상적 가치의 통일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이런 통일은 사유와 상상의 작용이 행위에 수반하여 생기는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사유와 사상에 관련된다. 결국 듀이에 있어서도 재래의 신관념은 인간사유의 산물이다.

구조주의는 그 자체로서는 유신, 무신 중 어느 한 쪽의 필연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구조주의의 대표적 사상가들이 대부분 좌익사상가들이기 때문에 구조주의는 무신적 성격을 띤다.

4. 무신론과 유신론 : 이 문제는 인간이 이 지구상에 사고하는 존재로 나타난 이래 인류사고의 구원(久遠)의 문제이다. 근세를 거쳐 오늘의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신론의 문제는 변증법적 과정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유신론의 부정으로서 강력한 이론적 정의적(情意的) 무신론의 대두, 그리고 현금에 이르러서는 무신론의 부정 혹은 전통적 유신론과 헌대무신론의 종합으로서의 새로운 신론이 시도되고 있다. 이것은 데카르트 이후 줄곧 초월에서 내재로 치닫던 인류사고가 경험현상론, 의식현상론, 감각론, 유물론, 실존사상 등을 거쳐 내재 – 초월의 사상에로, 존재론에로의 방향전환과 길을 같이한다. 철학적 사고가 그럴 뿐만 아니라 과학과 종교의 관계도 이런 맥락에서 재정립되는 과정을 걷고 있다. 지난 어느 시기에 과학은 종교를 부정하는 학문으로 또 종교는 과학을 적대시하는 입장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였지만, 오늘에 이르러는 오히려 가치문제, 인간의 한계문제, 윤리문제, 존재론 문제 등등 새로운 학문적 요청을 위시하여 과학자체의 한계문제 즉 과학의 발전이 질병을 몰아내어 인간생명을 연장시키고 안락한 삶을 제공하며 인간에게 시공을 주름잡는 환상적 미래를 약속하는 등 인간문화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 과학기술의 무궤도한 발전은 인류멸망의 핵공포와 자연질서의 혼란을 야기시켜 자연의 전면적 파멸의 위기를 물고 왔기 때문에 과학과 종교는 서로를 요청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한 인간의 삶 안에서 종교와 과학이 제 자리를 잡고 상호보충하여 인간완성에 기여해야 할 필요에 몰리고 있다. 또 신학계에서도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신론과 이런 신론의 부정으로서의 현대무신론이 출현하였고 이런 무신사상의 영향으로 사신신학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에는 이런 사상들과 전통신론과의 종합으로서의 새로운 신론이 시도되기에 이르렀다. (鄭義采)

[참고문헌] Encyclopedia of Religion and Ethics, II, 1928 / Reallexikon fur Antike und Christentum, I, 1950 / Sacramentum Mundi, I, 1964 / Encyclopedia filosofica, I, 1968 / Encyclopedia Britanica(by C. Fabro, Atheism), I, 1974 / T.J.J. Altizer and W. Hamilton, Radical Theology and the Death of God, 1966 / E. Bloch, Atheismus im Christentum, 1968 / L. Koch, Humanistischer Atheismus, 1971 / J.B. Lotz, Atheismus kritisch betrachtet, 1971 / J. Kigl, Atheismus als theologsches Problem, 1977 / Gotthold Hasenhuttl, Einfuhrung in die Gotteslehre, 1980(심상태 역, 1983) / 정의채, 存在의 根據問題, 1981 / 정의채 외, 現代無神論,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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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신앙 [한] 巫俗信仰

무속신앙은 일반적으로 동북아시아 일대에 퍼져 있는 종교현상의 하나이다. 사제(司祭)인 샤먼(shaman)과, 그에 의하여 집전되는 제의(祭儀)와, 그 제의를 요청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이 무속신앙은 특히 사제와 제의 참여자들의 탈자적 경험(ecstasy)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탈자적 경험은 초월적인 존재나 효과의 합일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그 합일을 통하여 터득되는 새로운 인식과 정서적 안정, 그리고 현실적인 기대의 충족 등으로 살아간다. 우리나라에 무속신앙이 자리 잡은 역사적 기원을 분명하게 고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무속신앙이 우리 민족의 고유한 종교적 심성을 결정한 근원적인 종교경험이었으리라는 사실은 여러 측면에서 확인되고 있다. 역사적 사료에서 나타난 고대 제의의 제반 특성에 무속신앙이라고 유추되어질 수 있다는 점, 민족지적(民族誌的) 발견들에 의하면 현존하는 무속신앙이 아득한 연원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들이 그 예일 수 있다. 따라서 무속신앙은 첫째 한국인의 본래적인 종교경험이고, 둘째 그렇기 때문에 무속신앙은 한국인의 종교심성을 결정하는 기층종교라고 하는 이해가 대체로 지배적이다.

그러면 무속신앙은 어떠한 신령체계를 가지고 있는가? 무속신앙은 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다. 자연신계통, 인신계통, 그리고 기타신 계통으로 분류해 보면 봉안된 신들 중의 많은 수가 자연신계통에 속하고 있다. 이를 다시 가신(家神), 동신(洞神), 자연현상의 질서를 나타내는 신, 사령신(死靈神), 무속시조신, 인간의 생명현상과 관련된 신, 외래종교의 신 등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여러 신들은 무속신앙 속에서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그 신들은 인간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특정한 직능 또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 둘째, 각 신들은 그의 고유한 속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따라서 신간의 위계나 정리된 신통기(神統記)를 찾아볼 수 없다. 셋째, 신들은 형이상학적 가치나 이념으로 성화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을 능가하는 초월적 힘 또는 영역(靈力)으로 인지될 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신관(神觀)과의 관련에서 보면 무속신앙은 바로 그 힘과 인간과의 관계구조의 상황적 전승적 표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무속신앙은 인간이 신에 의하여 창조된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인간은 그 출현과 소멸, 그 어간에서의 삶의 현실이 ‘자연스러움’으로 설명될 수 있는 그러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늙음도 죽음도 자연스러운 것인 한 그것을 삶의 한 모습으로 여긴다. 또한 인간은 결코 개별적인 존재일 수가 없다. 혈연을 축으로 한 가족 및 지역 공동체내의 관계적 실존을 살아가는 개체이다. 따라서 무속신앙은 인간이란 자연 속에서 태어나 가족을 이루어 살다가 죽는 존재, 그리고 살아 있을 동안 자연스럽게, 곧 고생하거나 불행하지 않게 살다가 불의의 죽음을 죽지 않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죽고, 죽은 후에도 살아 있는 자와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유지하거나 끊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존재라고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속 신앙에는 현존재로서의 인간이 있을 뿐 해탈이라든가 부활이라든가 하는 현존재의 초극(超克)이나 부정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무속신앙의 우주는 하늘 · 땅 · 사람으로 이어지는 종적(縱的)인 삼층구조를 이루고 있지도 않고, 존재와 무(無)로 대립되는 양극적인 세계도 아니며, 차안과 피안이 평면적으로 전개되는 수평적 구조도 아니고, 그것이 단절되어 중첩된 이중적 구조의 우주도 아니다. 무속신앙은 뮈토스(Mythos)를 축으로 하여 하늘과 땅과 사람, 자연과 인간, 개인과 집단, 현세와 내세,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이 선회하는 단일체제의 우주를 지닌다. 현존재로서의 인간과 상보적인 것으로 무속신앙은 영혼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 영혼은 크게 나누면 생령(生靈) 사령(死靈)으로 나눌 수 있다. 생령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잠재적 가능성이지만 사령은 육신을 이탈한 것, 무형의 전지자적(全知者的) 속성을 지닌 것, 불멸하는 것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같은 사령은 조령(祖靈)과 원귀(寃鬼)로 나누어지면서 각기 선악의 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령은 살아 있는 사람과의 제의적 관계에서 그 기능을 바꿀 수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신관, 인간관, 우주관, 영혼관을 지니고 있는 무속신앙의 구원관은 어떠한 것인가? 무속신앙이 구원을 필요로 하는 삶의 정황으로 전제하는 것은 원한이나 살이 ‘맺히고 낀’ 상태, 부정이나 동티가 ‘타거나 난’ 상태, 그리고 옴이나 귀신이 ‘붙은’ 상태들이다. 이러한 원인의 결과는 불의의 부자연스러운 죽음들, 질병, 가난, 천하게 됨, 자손없음, 천재, 화재, 수재, 심지어는 관재(官災), 구설수 등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러한 삶의 정황에서 벗어나는 것, 곧 이를 신은 ‘내리고’, 귀신을 ‘쫓고’, 재앙을 ‘막아’ 풀어 가는 것이 구원이다.

따라서 무속신앙에서의 구원은 현실적인 삶의 정상적인 자연스러움을 그 최선의 상태에서 누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부유함, 귀하게 됨, 많은 자손을 거느림, 가운(家運)의 번창, 몸의 건강, 수명 장수, 자손들에 의하여 위무받을 수 있는 사령, 영계에의 천도가 자연스러울 수 있는 일 등이다. 달리 표현하면 구원에의 희구는 기복(祈福)으로 나타나고, 그 복은 현실적인 육체적 실존에 바탕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신앙체계는 제의를 통하여 구체화된다. 무속신앙은 그 제의인 굿을 통하여 종교현상으로 현존하게 되는 것이다.

굿은 기능적으로 분류된다. 그렇게 분화된 굿은 지역에 따라 명칭이 다를 수 있으나 목적에 의하여 분류하면 대체로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부르는 굿, 사령굿, 그리고 무당을 위한 신 굿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굿은 다시 정기적인 것, 수시적인 것들로 분류해볼 수도 있고

가제(家祭)와 동제(洞祭)로 나눌 수도 있다.

기주(祈主)의 요청을 무속신앙의 사제인 무당이 받아들여 집전함으로써 굿은 이루어진다. 따라서 무당은 굿의 집전자이면서 무속신앙 전체의 관리자인 사제이다. 무당은 본래 여자 무(巫)에게만 사용되는 이름이었으나 무속신앙 사제의 일반적 호칭이 되어가고 있다. 여무(女巫)에 대하여 남무(男巫)는 박수라 부른다. 이 이외에도 심방 · 만신 · 당골 등의 호칭이 있다. 무당이 되기 위해서는 내림굿을 치러야 한다. 이렇게 무당이 된 경우, 이를 강신무(降神巫)라 부른다. 일반적으로 강신을 위한 굿을 치르게 되는 것은 그 후보자가 무병(巫病)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독특한 질병을 앓기 때문이다. 무병은 굿을 통해 치유되는 종교체험이라는 점에서 다른 정신질환과 구별된다. 무당이 되면 그는 무의 기능을 학습하게 되고, 영력(靈力)을 지니게 되며, 특정한 신을 몸주로 모시게 되고, 굿을 관장하고 집전하게 된다. 그러나 강신체험이 없이도 무당이 되는 경우가 있다. 흔히 당골 또는 단골로 호칭되는 이러한 세습무(世襲巫)는, 강신무가 중북부 지역의 현상인데 비해 남부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무당은 혈통에 의한 무권(巫權)을 세습할 뿐만 아니라 사제의 관할권(管轄圈)도 세습한다. 이 외에도 제주도의 심방, 남부 지역의 명두는 각기 강신무나 세습무의 일부 특징들을 혼합하고 있어 또 다른 유형의 사제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굿이라는 제의의 진행을 거리라 한다. 그러므로 굿거리는 제차(祭次)를 이르는 것이다. 거리의 수와 종류는 굿 규모의 크기에 따라 융통성 있게 바뀐다. 그러나 신을 청하는 과정, 신을 접대하고 즐겁게 하는 과정, 신을 보내는 과정 등이 기본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주의 소청에 대한 신의 응답인 공수, 그것을 전하는 인간의 대행자이면서 신의 대행자인 무당의 탈자적 경험, 실을 위무하기 위한 노래와 춤, 제의적 신성성을 서술하는 무가(巫歌)의 음송 등이 연출되고, 명도 · 방울 · 오방장기 · 삼지창 · 무의(巫衣) 등의 무구(巫具)와 제상, 음식, 무신도(巫神圖) 등의 장식이 이용된다. 사령제인 지노귀 굿의 경우에는 사자회귀(死者回歸)의 극적인 연출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때에도 사령의 역할은 무당이 담당한다.

굿의 구조에서 유념해야 할 것은 초월적인 존재인 신과, 그의 대리자 또는 인간과 신과의 중개자인 무당과, 구원에의 희구를 구체화해 줄 것을 요청하는 기주와, 이러한 세 요소들이 역동적으로 작용하는 제의현장에 참여하고 있는 관중들의 상호관계이다. 굿에서의 신의 기능은 자발적이거나 적극적이 못된다. 그는 “불려지고”, “놀려지고”, “보내진다.” 그러나 인간에게 필요한 신 자신이 신성으로 여겨지지는 않지만 신과의 만남은 외경(畏敬)의 분위기를 낳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종교적 계율이 절대적 권위를 통하여 규범화되지는 않는다. 무당은 굿의 진행 속에서 신격(神格)의 구체화로 기능한다. 탈자적 경험은 그 구체화의 징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신과의 관련에서 언급한다면 신은 무당 개인의 신비적 경험을 통하여 비로소 기능할 수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기주의 희구를 수렴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무당은 완전한 중개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그 중보적(仲保的) 성격이 일상성 속에서는 지속되지 않는다. 기주와 무당과의 관계는 당골판에서 조차 상황적 필요에 따라 생길 수도 있고, 없어질 수도 있다. 제의 관람자인 굿판 참여자와의 관계에서 보면 굿은 그들과 아무런 직접적인 관련을 갖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굿에서 기능하는 신이나 그 사제인 무당이나 이웃이기도 한 기주의 무속신앙의 현실은 하나의 연희적(演戱的)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당의 신적 권위에 대한 상징적 공감과 기주의 실존적 조건에 대한 상징적 공감은 굿의 현장을 종교적 정서의 자리로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무속신앙의 공동체는 제장공동체(祭場共同體)라 이름할 수 있다. 그 굿판, 곧 제장은 그 굿판의 끝남과 아울러 해체되지만 상징적 공감대의 지속은 그러한 제장의 벌림을 상황적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요청할 수 있는 것으로 지속해 가고 있는 것이다.

무속신앙의 또 다른 공동체로 단골판을 들 수 있다. 세습무를 축으로 한 이 단골조직은 흔히 어느 특정한 무당의 신봉자가 그 무당에게 명다리(명건, 명교)를 바침으로써 그 관계가 성립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 무당에게 속하게 되어 필요할 때 그 무당을 찾아간다, 혹은 하나의 무당이 일정한 지역 안에 있는 무속신앙자들의 사제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두 요소가 중첩되어 이루어지는 무속신앙 공동체를 앞의 제장공동체와 구별하여 제역공동체(祭域共同體)라고 할 수 있다. 무속신앙은 아득한 옛적부터 우리 민족의 삶의 물음에 대한 해답으로 기능해 온 종교적 상징체계이다. 그것은 이원적 사고나 그러한 구조에서 비롯하는 현실부정적이고 탈속적인 가치를 강요하지 않는다. 신성이라든가 초월이라든가 궁극성이라든가 하는 종교적 가치보다는 지금 이곳에서의 인간을 위한 ‘힘의’ 활용, 그것을 위한 ‘힘’의 위무, ‘힘’의 횡포로부터의 벗어남을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자연스럽게’ 누리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무속신앙은 그 종교적 정조(情操)의 진지성과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자기통찰의 결여, 정신적 가치보다는 감각적이고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우선하는 일, 현실적 복락을 누리기 위한 무분별한 목적지향적 태도, 힘에 대한 아부나 힘에 의한 수탈의 가능성, 넓은 의미에서의 사회의 의식이나 역사의식의 결여 등을 낳기도 한다.

무속신앙은 한국의 역사 과정에서 각 왕조의 종교 정책에 의해서 영향을 맡아왔을 뿐만 아니라, 유교 · 도교 등에 의하여 영향을 주고 받아왔다. 때로는 배척되고 또 때로는 이용당하기도 하고 보호를 받기도 하면서 무속신앙은 유교와 불교에서 제의의 구성에 커다란 영향을 입고 있다. 지노귀굿의 거리나 동제에 스민 유교적 특성, 굿거리 전체에 깃들인 불교적 요소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도교는 무신(巫神)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세기 후반에 그리스도교 선교가 시작된 이래, 그리스도교는 어느 다른 종교보다도 강력하게 무속신앙에 대하여 부정적이고도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무속신앙은 미신으로 단정되었고 무당과 그 신봉자는 마귀로 간주되었다. 일본의 식민지 정책도 무속신앙을 혹독하게 박해하였다. 굿의 거리가 모두 행해지지 않는다던가 은밀하게 굿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때의 사정을 설명해 주고 있다. 1945년 이후에도 무속신앙에 대한 일반적인 태도에는 아무런 근원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무속신앙은 부정되어야 할 그릇된 전통으로 여겨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속신앙은 그 기본구조를 상실하지 않은 채 전승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속 신앙적 사유는 불교, 유교, 그리스도교 등의 신앙유형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무속신앙 자체에 대한 관심과 현대의 사회변동에서 어떻게 무속신앙이 전승될 것인가를 우리는 아울러 주목해야 할 것이다. (鄭鎭弘)

[참고문헌] 김태곤, 한국무속연구, 집문당, 1980 / 김열규, 한국신화와 무속연구, 일조각, 1977 / 김인회, 한국인의 가치관 – 무속과 교육철학, 문음사, 1979 / 서대석, 한국무가의 연구, 문학사상사, 1980 / 유동식, 한국무교의 역사와 구조, 연대출판부, 1975 / 장병길, 한국고유신앙 연구, 서울대 동아문화연구소, 1970 / 최길성, 한국무속의 연구, 아세아문화사,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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