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9월 17일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개설한 주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기관. 서울 신문로(新門路)의 전세건물에서 초대원장 프란치스코 회원 안토니(Anthony V. Vandesande) 신부가 취임하면서 강의가 시작되었고, 1965년 10월 17일 서울 정동(貞洞)에 현 건물을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1년에 한 번 가을학기에 등록하여 2년 과정을 수료토록 하다가 1970년 6월에는 1년을 3학기로 나누고 매학기에 재등록을 할 수 있게 하였다. 아울러 1967년 9월에는 가톨릭 선교사뿐만 아니라 다른 교파의 선교사들도 수강할 수 있게 하였다. 한국 교회의 발전으로 외국 선교사들의 숫자가 줄어들게 됨에 따라 직장인이나 가정주부들을 위한 미니코스로서 오후반과 저녁반을 신설하였다. 명도원 자체에서 개발한 한국어 교재는 현재 세계 103개국 대학의 한국어과정(韓國語課程)에 보급되어 있다.
면천 [한] 沔川
한국 초기 교회의 사적지. 지금의 충청남도 당진군 면천면에 속하는 지역으로, 면천의 역사상 최초의 지방명은 ‘혜군’이었다. 그 후 신라가 백제를 정복하면서 ‘혜성’이라 고쳤고, 고려 현종 9년(1018년)부터는 ‘운주’(運州)라 불렸고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는 지금의 면천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조선조 정조 때의 일이다. ‘내포(內浦) 지방의 사도’라고 불리는 이존창(李存昌)의 포교활동으로 다른 지방보다 신자수가 훨씬 많았다. 성 김대건(金大建)의 증조부였던 김진후(金震厚)도 면천 군수를 지낼 당시 이존창으로부터 전교를 받아 교우가 되었다. 병인박해(1866년) 때 송 모니카와 장일심의 큰삼촌 등이 순교하였고, 현재 면천군 성상리에 있는 면천 초등학교는 옛날 순교자들이 잡혀가 모진 고문을 받고 순교하였던 옥터와 동헌이 있던 곳이다.
면속구 [한] 免屬區 [라] Abbatia nullius, Praelatura nullius
지역교회에 예속되지 않고 교황청에 직속되어, 대수도원장 혹은 고위 성직자가 교구장에 준하는 재치권을 행사하는 자치지역(自治地域). 면속 수도원구와 면속 고위성직자구로 구분된다. 면속 수도원구의 기원은 역사상 이름 있는 수도회의 원장이 9-10세기까지 그의 수도자뿐 아니라 수도회 소속 성당의 평신도들도 사목한 관습에 있다. 이에 교구장의 예속을 벗어난 독립된 재치권이 인정되기에 이르렀고, 11-12세기부터는 교황의 추인을 받게 되었다. 한편 면속 고위성직자구는 재속(在俗) 참의회가 면속 수도원구와 비슷한 특전을 받아 발전된 것이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승인되었다. 오늘날 면속 수도원구는 수도회의 선교활동에 의하여, 면속 고위성직자구는 신자 수효가 적거나 정치적 이유로 인한 임시조치로 각각 설립될 수 있으며 설립 허가는 교황청에 유보되어 있다. 1976년 교황 바오로 6세는 특별한 경우 외에는 면속 수도원구의 신설을 불허하며, 역사적 중요성을 갖는 약간의 면속 수도원구를 제외하고는 현존하는 것도 폐지할 것을 선언하였다. 면속구는 적어도 3개의 본당이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특별법이 적용된다. 면속구장은 다소의 제한이 있으나 교구장 주교가 갖는 권한과 의무를 가지며 주교 예식서를 사용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40년 1월 12일에 덕원 면속 수도원구가 설립되었고 이를 오늘에 이르기까지 존속시킴으로써 침묵의 교회를 위하여 특별한 배려를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