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사순시기 일정 안내

2026 사순시기 일정
구분요일전례시간내용비고
재의 수요일2월 18일오전 10:30 저녁 7:30재의 예식,봉헌단식과 금육, 십자가의 길단식기도:12:00~1:00
사순 제1주일2월 22일  사순시기 거룩한 식탁
사순 제2주일3월 1일모든 미사전신자 전례교육1전신자 전례 교육
 3월 4일저녁 7:301구역미사 
3월 5일저녁 7:30성체강복첫목요일
3월 6일저녁 7:30성시간첫금요일
3월 7일저녁 7:30성모신심미사첫토요일
사순 제3주일3월 8일모든 미사전신자 전례교육2해설미사
 3월 11일저녁 7:302 구역미사 
3월 13일저녁 7:303 구역미사 
사순 제4주일3월 15일모든 미사 성프란치스코의 생애와 영성
 3월 18일저녁 7:304 구역미사 
3월 19일저녁 7:30성요셉의 밤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요셉 성인 공경의 밤, 요셉회원들 참례 권고
3월 20일저녁 7:305 구역미사 
사순 제5주일3월 22일모든 미사 Stewardship과 성경인문학
 3월 25일저녁 7:306 구역미사 
3월 27일저녁 7:307 구역미사 
3월 28일10:00-11:00부활준비전신자 부활맞이 청소
주님수난성지주일3월 29일  성지가지 행렬, 수난복음
성주간 월요일3월 30일오전 10:30  
성주간 화요일3월 31일저녁 7:30  
성주간 수요일4월 1일저녁 10:30  
주님만찬 목요일4월 2일저녁 8:00세족례(12명)성체조배하가다 예식(5:00, 사전신청)구역별, 단체별 성체조배
주님수난성금요일4월 3일저녁 8:00십자가경배예절오후 3시 십자가의 길오후 7:00 봉사자 십자가의길단식과 금육
부활성야미사4월 4일저녁 8:00 구역별 부활달걀 컨테스트, 부활초 무료배부합니다.
주님부활대축일4월 5일오전 10:30 미사 후 전신자 식사

1. 매 미사 30분 전부터 십자가의 길을 바칩니다.(십자가, 초2, 기도자)

2. 사순시기 거룩한 식탁 진행합니다.

3. 성 프란치스코 영화 상영 및 링크 공유, 부활대축일 식사 때 성프란치스코 성극 공연을 합니다.

4. 구역미사는 가정에서 봉헌되며. 미사 시 구역의 말씀안에서의 친교를 위한 교육이 있습니다.

5. 사순시기를 더 기쁘게 살아가며 신앙을 성장시키고 성숙시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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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7,1-21 ;욥의 탄원 기도

욥의 탄원 기도

1. 말씀읽기: 욥기 7,1-21

인생은 고역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그 나날은 날품팔이의 나날과 같지 않은가? 그늘을 애타게 바라는 종, 삯을 고대하는 품팔이꾼과 같지 않은가? 그렇게 나도 허망한 달들을 물려받고 고통의 밤들을 나누어 받았네. 누우면 ‘언제나 일어나려나?’ 생각하지만 저녁은 깊어 가고 새벽까지 뒤척거리기만 한다네. 내 살은 구더기와 흙먼지로 뒤덮이고 내 살갗은 갈라지고 곪아 흐른다네. 나의 나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희망도 없이 사라져 가는구려.

욥의 탄원 기도

기억해 주십시오, 제 목숨이 한낱 입김일 뿐임을. 제 눈은 더 이상 행복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저를 바라보던 이의 눈은 저를 보지 못하고 당신의 눈이 저를 찾는다 하여도 저는 이미 없을 것입니다. 구름이 사라져 가 버리듯 저승으로 내려간 이는 올라오지 못합니다. 10 다시는 제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가 있던 자리도 그를 다시는 알아보지 못합니다. 11 그래서 이 몸은 입을 다물지 않겠습니다. 제 영의 곤경 속에서 토로하고 제 영혼의 쓰라림 속에서 탄식하겠습니다.

12 제가 바다입니까? 제가 용입니까? 당신께서 저에게 파수꾼을 세우시다니.

13 ‘잠자리나마 나를 위로하고 침상이나마 내 탄식을 덜어 주겠지.’ 생각하지만

14 당신께서는 꿈으로 저를 공포에 떨게 하시고 환시로 저를 소스라치게 하십니다.

15 제 영혼은 이런 고통보다는 숨이 막혀 버리기를,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16 저는 싫습니다. 제가 영원히 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를 내버려 두십시오. 제가 살날은 한낱 입김일 뿐입니다. 17 사람이 무엇이기에 당신께서는 그를 대단히 여기시고 그에게 마음을 기울이십니까? 18 아침마다 그를 살피시고 순간마다 그를 시험하십니까? 19 언제면 제게서 눈을 돌리시렵니까? 침이라도 삼키게 저를 놓아주시렵니까? 20 사람을 감시하시는 분이시여 제가 잘못했다 하여도 당신께 무슨 해를 끼칠 수 있습니까? 어찌하여 저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셨습니까? 어찌하여 제가 당신께 짐이 되었습니까? 21 어찌하여 저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저의 죄악을 그냥 넘겨 버리지 않으십니까? 제가 이제 먼지 위에 누우면 당신께서 찾으셔도 저는 이미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욥기는 혼란에 빠진 한 인간이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경건하고 부유한 욥이 한 순간에 온갖 재난 속으로 빠져 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습니다(1,1-2-13). 그런데 현인이고 의롭다고 자처하는 욥의 세 친구들(엘리파즈, 발닷, 초파르)는 서로 번갈아가며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라고 말하며, 위로가 아니라 고통을 주었습니다. 친구들로부터도 위로받지 못한 욥은 결국 주님께 탄식하며 기도하고, 결국 다시 건강과 재산과 명예, 그리고 자녀들을 얻게 됩니다.

어떤 처지에 있든지 주님을 찬미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고통 속에서 주님께 의지하고, 믿음을 고백한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욥의 탄식기도를 통해 고통 속에서 나는 어떤 기도를 주님께 바치고 있는지에 대해서 돌아봅시다.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그 나날은 날품팔이의 나날과 같지 않은가? 그늘을 애타게 바라는 종, 삯을 고대하는 품팔이꾼과 같지 않은가?

하루하루를 어렵게 일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은, 더 나아가 희망이 없는 이들은 이 말씀이 깊이 다가올 것입니다. 매일 매일 힘든 노동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없는 이들, 뙤약볕 아래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기쁨은 그늘에 들어가는 것이요, 유일한 희망은 일을 마치고 보잘 것 없는 품삯을 받아가는 것입니다.

고통 속에 있는 욥은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뙤약볕 아래에서 고역을 하고 있는 품팔이꾼의 처지에 비유를 합니다. 그 많은 재산이 사라지고, 자녀들의 죽음을 체험해야 했으며, 더 나아가 온 몸에 종기까지 얻게 된 욥에게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나도 허망한 달들을 물려받고 고통의 밤들을 나누어 받았네.

누우면 ‘언제나 일어나려나?’ 생각하지만 저녁은 깊어 가고 새벽까지 뒤척거리기만 한다네.

병자들에게 있어서 하루하루는 고통이고, 온 몸이 종기로 덮인 욥에게는 누워도 고통이요, 깨어 있어도 고통입니다. 그런데 밤의 잠은 작은 고통들을 잊게 만들어 주지만, 큰 고통은 잠 못 이루게 만들고, 더큰 고통을 느끼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병자들에게 있어서 밤은 괴로움입니다. “저녁은 깊어 가고, 새벽까지 뒤척거리기만 한다네.”라는 표현을 통해서 욥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내 살은 구더기와 흙먼지로 뒤덮이고 내 살갗은 갈라지고 곪아 흐른다네.

나의 나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희망도 없이 사라져 가는구려.

하느님께서는 욥을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으로 인정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하느님께서 복을 내리셔서 그렇지, 그의 모든 소유를 없앤다면 틀림없이 하느님을 눈앞에서 저주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탄에게 욥에게만은 손대지 말라고 하시며, 그의 모든 소유를 사탄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그만큼 욥을 믿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욥의 모든 재산을 없애고, 모든 자녀를 죽게 만들었지만 욥은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하면서 결코 하느님께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사탄은 “사람이란 제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소유를 내놓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 손을 펴시어 욥의 뼈와 욥의 살을 쳐 보시면, 분명히 하느님의 눈앞에서 하느님을 저주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좋다. 그를 네 손에 넘긴다. 다만 그의 목숨만은 남겨 두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욥은 발바닥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고약한 부스럼으로 덮이게 됩니다. 욥의 아내까지도 “당신은 아직도 당신의 그 흠 없는 마음을 굳게 지키려 하나요? 하느님을 저주하고 죽어 버려요.”(욥기2,9) 라고 악담을 퍼 부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제 입술로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통은 늘 욥을 괴롭혔고, 구더기와 흙먼지로 덮여 있는 살갗은 갈라지고 곪아 흐르니, 욥에게 있어서 희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욥은 “나의 나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희망도 없이 사라져 가는구려.”라고 탄식을 합니다. 베틀의 북은 실을 매달고 왔다 갔다 하면서 옷감을 짭니다. 숙련된 기술자의 손에 쥐어진 베틀의 북은 눈에 보이지 않게 왔다 갔다 하는데, 욥의 탄식은 “그만큼 희망이 빠르게 사라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희망조차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기억해 주십시오, 제 목숨이 한낱 입김일 뿐임을. 제 눈은 더 이상 행복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욥은 하느님께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인간이 어떤 모습인지를 고백합니다. 성경에서 “기억하다”라는 단어는 주로 계약과 관련된 의미로 사용이 됩니다. 그러므로 욥은 하느님께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해 주신 약속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고, 그 약속을 지켜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나약함을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다.“한낱 입김일 뿐”이라고 고백을 하는데, 하느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입김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숨을 쉬고 말을 하며, 움직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입김이 사라진다면 결국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이렇게 나약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입김이 나에게서 사라지면 나는 결코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생명을 주시지 않으면 결코 살아날 수 없습니다.

또한 입김은 금방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추운 날, 시린 손에 입김을 불어서 손을 데우지만, 금방 차가워집니다. 입김은 그저 입김일 뿐인 것입니다. 내 입김으로는 결코 내 몸을 덥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입김으로는 결코 행복에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약한 존재이니, 하느님께서 기억해 주시지 않으면 “제 눈은 더 이상 행복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저를 바라보던 이의 눈은 저를 보지 못하고 당신의 눈이 저를 찾는다 하여도 저는 이미 없을 것입니다. 구름이 사라져 가 버리듯 저승1)으로 내려간 이는 올라오지 못합니다.

욥은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죽음으로서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진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를 바라보던 이의 눈”은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눈인데, 자신이 죽으면 하느님께서 자신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찾는다 하여도 저승에서 죽은 이들의 세계에 살고 있으니, 살아계신 하느님 앞에 올라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이 끝나가는 것을 기억해 주시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시고,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구름은 실체가 없고 허망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헛된 것에 매달리는 사람을 “뜬 구름 잡으려는 사람”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도 구름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매달릴 분은 오직 하느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이 이렇게 하느님께 탄원하며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10 다시는 제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가 있던 자리도 그를 다시는 알아보지 못합니다. 11 그래서 이 몸은 입을 다물지 않겠습니다. 제 영의 곤경 속에서 토로하고 제 영혼의 쓰라림 속에서 탄식하겠습니다.

욥이 “입을 다물지 않겠다는 것”은 자신이 처한 곤경 속에서 하느님께 탄식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통 속에서 죽으면 결코 주님을 뵐 수 없고, 자신이 살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기억 속에서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제 욥의 탄원 기도가 이어집니다. 탄식이 토로됩니다.

12 제가 바다입니까? 제가 용입니까?2) 당신께서 저에게 파수꾼을 세우시다니.

13 ‘잠자리나마 나를 위로하고 침상이나마 내 탄식을 덜어 주겠지.’ 생각하지만

14 당신께서는 꿈으로 저를 공포에 떨게 하시고 환시로 저를 소스라치게 하십니다.

욥은 왜 하느님께서 자신을 적들처럼 생각하시느냐고 탄식을 합니다. 하느님께서 이런 악몽이나 유령, 물리적인 고통들을 물리쳐 주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욥을 괴롭히는 것을 막아주시지 않았음을 탄식합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어떠한 위로나 구원도 받지 못하고 있음을 탄식하고 있습니다.

15 제 영혼은 이런 고통보다는 숨이 막혀 버리기를,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16 저는 싫습니다. 제가 영원히 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를 내버려 두십시오.3) 제가 살날은 한낱 입김일 뿐입니다.

욥은 고통 속에서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것이 낫다고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살수 있는 존재도 아닌데, 이런 고통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통 속에서 죽음을 택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고, 그렇게 행동으로 옮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너무도 괴롭기 때문에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움직일 힘만 있어도 약을 사다가 먹고 죽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내 생명은 하느님 손에 달린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인내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기도가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기도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것입니다.

17 사람이 무엇이기에 당신께서는 그를 대단히 여기시고 그에게 마음을 기울이십니까? 18 아침마다 그를 살피시고 순간마다 그를 시험하십니까? 19 언제면 제게서 눈을 돌리시렵니까? 침이라도 삼키게 저를 놓아주시렵니까?

이것은 시편의 말씀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8,5) 이 시편에서는 인간을 돌보시는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고 있지만, 욥은 이 말씀을 통해서 제발 자신을 그냥 놓아 달라고, 죽게 해 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욥을 그냥 내버려 두신다면 “침이라도 삼킬 수 있을 텐데”, 하느님께서 욥을 붙잡고 계시니 오로지 고통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20 사람을 감시하시는 분이시여 제가 잘못했다 하여도 당신께 무슨 해를 끼칠 수 있습니까? 어찌하여 저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셨습니까? 어찌하여 제가 당신께 짐이 되었습니까?

욥은 탄원기도를 바치며 하느님께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하면서 결코 하느님께 죄를 짓지 않으려 했지만, 하느님께 탄원기도를 바치며 하느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감시하시는 분”으로, “욥을 과녁으로 삼으신 분”, “욥을 짐으로 생각하시는 분”으로 고백하며 하느님께 탄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감시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시어 당신의 크신 사랑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과녁으로 삼으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짐으로 생각하시는 분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고도 아까워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21 어찌하여 저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저의 죄악을 그냥 넘겨 버리지 않으십니까? 제가 이제 먼지 위에 누우면 당신께서 찾으셔도 저는 이미 없을 것입니다.4)

욥은 하느님께 자신의 처지를 알리며 용서를 청합니다. 자신이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이유는 자신이 잘못을 했기 때문에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하여 저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십니까?”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니 자신을 살려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제 먼지 위에 누우면 당신께서 찾으셔도 저는 이미 없을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시고, 살려주신다면 주님께서 자신을 볼 수 있고, 찾을 수 있으며, 욥도 주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어떤 처지에 있든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들입니다. 주님께 매달리는 이라면 누구나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희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인은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희망으로 살아가는 이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 또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희망을 결코 꺾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고통 속에서도 나는 주님께 희망을 두고,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고 있습니까? 그렇게 고통 속에서도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평소의 나의 신앙생활은 어떠해야 할까요?

② 내가 주님을 찬미할 때는 언제이고, 주님께 불평과 불만을 드릴 때는 언제입니까? 욥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점은 무엇입니까?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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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역대기36,11-23 ; 치드키야의 유다 통치

치드키야의 유다 통치

1. 말씀읽기: 2역대기36,11-23

11 치드키야는 스물한 살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열한 해 동안 다스렸다.

12 치드키야는 주 자기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 예언자 앞에서 자신을 낮추지 않았다. 13 또한 하느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게 한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에게 반역하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돌아가는 대신에 제 목을 뻣뻣하게 하고 마음을 굳게 하였다. 14 모든 지도 사제와 백성도 이방인들의 온갖 역겨운 짓을 따라 주님을 크게 배신하고, 주님께서 친히 예루살렘에서 성별하신 주님의 집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15 주 그들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당신의 처소를 불쌍히 여기셨으므로, 당신의 사자들을 줄곧 그들에게 보내셨다. 16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사자들을 조롱하고 그분의 말씀을 무시하였으며, 그분의 예언자들을 비웃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주님의 진노가 당신 백성을 향하여 타올라 구제할 길이 없게 되었다.

유다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

17 그리하여 그분께서 칼데아인들의 임금을 그들에게 올려 보내시어, 그들 성소의 집에서 젊은이들을 칼로 쳐 죽이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젊은이도 처녀도, 나이 든 이도 노약한 이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고 모두 그 임금의 손에 넘기셨다. 18 칼데아 임금은 하느님 집의 크고 작은 모든 기물과 주님 집의 보물과 임금과 대신들의 보물을 모조리 바빌론으로 가져갔다. 19 그들은 하느님의 집을 불태우고 예루살렘의 성벽을 허물었으며, 궁들을 모두 불에 태우고 값진 기물을 모조리 파괴하였다.

20 그리고 칼데아 임금은 칼을 피하여 살아남은 자들을 바빌론으로 유배시켜, 그와 그 자손들의 종이 되게 하였는데, 이는 페르시아 제국이 통치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21 그리하여 주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이 땅은 밀린 안식년을 다 갚을 때까지 줄곧 황폐해진 채 안식년을 지내며 일흔 해를 채울 것이다.”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칙령

22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 제일년이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리하여 키루스는 온 나라에 어명을 내리고 칙서도 반포하였다. 23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이렇게 선포한다. 주 하늘의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당신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나는 너희 가운데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에게는 누구나 주 그들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그들을 올라가게 하여라.”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즈는 스물세 살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석 달 동안 다스렸습니다(기원전 609년). 그런데 이집트 임금이 그를 예루살렘에서 물러나게 하고, 그 나라에 은 백 탈렌트와 금 한 탈렌트를 배상금으로 바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조공은 이미 폐허가 되어 버린 왕국에서는 큰 액수였습니다.그리고 이집트 임금은 여호아하즈의 형제인 엘야킴을 유다와 예루살렘의 임금으로 세우고, 그의 이름을 여호야킴으로 바꾸게 하였습니다.1) 그런 다음에 느코는 그의 형제인 여호아하즈를 잡아 이집트로 데려갔고, 여호야킴은 스물다섯 살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열한 해 동안 다스렸습니다(기원전 609-598). 그는 주 자기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습니다.그때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올라와서 그를 청동 사슬로 묶어 바빌론으로 끌고 갑니다. 네부카드네자르는 주님의 집 기물들도 일부 바빌론으로 가져가 바빌론에 있는 자기 궁전에 두었습니다. 여호야킴의 아들 여호야킨2)은 여덟 살3)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석 달 열흘 동안 다스렸지만, 그는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해가 바뀔 때에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군대를 보내어 주님 집의 값진 기물들과 함께 여호야킨을 바빌론으로 데려가 버렸고, 그의 삼촌 치드키야를 유다와 예루살렘의 임금으로 세웠습니다.

11 치드키야는 스물한 살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열한 해 동안 다스렸다. 12 치드키야는 주 자기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 예언자 앞에서 자신을 낮추지 않았다. 13 또한 하느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게 한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에게 반역하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돌아가는 대신에 제 목을 뻣뻣하게 하고 마음을 굳게 하였다.

치드키야(기원전 597-587년)는 스물한 살에 임금이 되어 11년 동안 예루살렘을 다르시면서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예례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 앞에서 자신을 낮추지 않았다.”는 것은 예레미야 예언자가 전하는 메시지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 목을 뻣뻣하게 하고, 마음을 굳게 하였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예레미야 예언자는 바빌론의 침공을 하느님의 벌이라고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거짓 예언자들은 자신들을 “남아있는 자”라고 여겼으며, 그래서 벌을 받을 만큼 받았으니, 싸우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치드키야는 거짓 예언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참된 예언자인 예레미야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14 모든 지도 사제와 백성도 이방인들의 온갖 역겨운 짓을 따라 주님을 크게 배신하고, 주님께서 친히 예루살렘에서 성별하신 주님의 집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하느님께서 네부카드네자르로 하여금 예루살렘의 침공을 허락하셨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역겨운 짓을 한다는 것은 우상을 숭배하며, 하느님께 의지하지 않고, 하느님만을 참된 임금으로 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외국 군대에 의지하고, 외교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에게 처한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하느님을 섬기는 것 보다는 우상숭배와 외교적 노력에 더 힘을 쏟았고, 이것은 하느님 보시기에 역겨운 짓이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지도하고 이끌어야 할 사제들도 “이방인들의 온갖 역겨운 짓을 따라” 주님을 크게 배신하고, 성전을 부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백성들이 하느님을 섬기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하느님의 진노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공동체를 이끄는 이들이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자기 자신을 섬기거나 세상을 섬기게 되면, 그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집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이끄는 이들이 하느님만을 섬길 때, 공동체 구성원들은 자연스럽게 하느님을 섬기게 됩니다.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 옆에 있는 이들의 운명도 바뀌게 됨을 꼭 기억합시다.

15 주 그들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당신의 처소를 불쌍히 여기셨으므로, 당신의 사자들을 줄곧 그들에게 보내셨다. 16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사자들을 조롱하고 그분의 말씀을 무시하였으며, 그분의 예언자들을 비웃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주님의 진노가 당신 백성을 향하여 타올라 구제할 길이 없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우상을 숭배하고, 하느님을 섬기지 않는 백성을 위하여 예언자들을 보내셨지만 백성들은 하느님의 예언자들을 비웃었습니다. 오히려 거짓말쟁이로 만들며, 조롱하고 박해하였습니다. 이렇게 “구제할 길이 없게” 백성들은 하느님의 진노를 끌어당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구제할 길 없게”딱딱한 마음을 가진 이들은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마음이 완고하여 자기 하고 싶은 것만을 행하며, 자신이 드러나는 곳만을 찾습니다. 내 것을 내 놓을 기회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 기회를 피하고, 나에게 해당되는 권고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해당된다고 생각하고 무시합니다. 내가 만일 이렇게 살아간다면 나는 “구제할 길 없게” 나 자신을 멸망의 늪으로 던져 버림을 알아야 합니다. 나에게 쓴 소리를 하고, 내 모습을 보게 하는 이들이 바로 멸망의 늪에 빠진 나에게 밧줄을 던져 주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밧줄을 꼭 잡아서 구원에로 나아가야 합니다.

유다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

17 그리하여 그분께서 칼데아인들의 임금을 그들에게 올려 보내시어, 그들 성소의 집에서 젊은이들을 칼로 쳐 죽이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젊은이도 처녀도, 나이 든 이도 노약한 이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고 모두 그 임금의 손에 넘기셨다.

하느님께서는 우상숭배에 빠져있고, 하느님을 섬기지 않는 유다의 백성들을 칼데아인들(바빌론인들)의 손에 넘기십니다. 결국 성전이 파괴되고, 젊은이들은 칼에 맞아 죽었으며, 유배지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느님께로 향하지 않고 세상에로 향하게 된다면 나는 멸망에로 넘겨지게 됩니다. 매일 매일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만을 보는 이들은 결국 재물만을 바라보게 되고, 재물만을 찾는 이들은 일만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멸망에로 넘겨지게 됩니다. 그러나 매일 매일 하느님을 찾는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기쁘게 하면서도 하느님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의로운 삶을 통하여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의로운 이들을 하느님께서는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18 칼데아 임금은 하느님 집의 크고 작은 모든 기물과 주님 집의 보물과 임금과 대신들의 보물을 모조리 바빌론으로 가져갔다. 19 그들은 하느님의 집을 불태우고 예루살렘의 성벽을 허물었으며, 궁들을 모두 불에 태우고 값진 기물을 모조리 파괴하였다. 20 그리고 칼데아 임금은 칼을 피하여 살아남은 자들을 바빌론으로 유배시켜, 그와 그 자손들의 종이 되게 하였는데, 이는 페르시아 제국이 통치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이방인들의 손에 성전이 파괴되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그 이유는 당신 백성이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지 않고, 오히려 역겨운 짓을 했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하느님께서 머무시면서 백성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곳인데, 백성들은 성전에서 하느님께 기도하지 않았고, 오히려 역겨운 짓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든 성전에, 그것도 인간이 부정하게 만든 성전에 하느님께서는 머무실 수 없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부정한 곳에 머물지도 않으시며, 부정한 이들의 청을 들어주시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파괴되는 것이 다시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며, 백성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에 성전의 파괴를 허락하시고, 백성들의 유배를 허락하셨습니다.

내가 머무는 성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하느님을 참되게 섬기고, 내가 기도하는 성전에서 오로지 하느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성전이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 반대로 성전에 있을 때, 성전은 나로 인해‘시장통’이나 ‘불결한 곳’이 되고, 비신자들은 성전에서 경건함을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21 그리하여 주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이 땅은 밀린 안식년을 다 갚을 때까지 줄곧 황폐해진 채 안식년을 지내며 일흔 해를 채울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고통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땅은 밀린 안식년을 다 갚을 때까지, 줄곧 황폐해진 채 안식년을 지내며 일흔 해를 채울 것이다.”라는 말씀을 이루십니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았고, 동족에게 베풀어야 할 의무를 다 하지 않았기에 그 벌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 안식년과 희년 ◁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백성들이 지켜야 할 율법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식년을 제정하셨는데, 매 7일 마다 노동을 중단하고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매 7년마다 땅을 갈고 경작하는 것을 쉬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땅에서 저절로 자라난 소산물에 대해서는 동족이든 타민족이든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안식년의 규정은  49년이 끝나는 때에도 지켜졌습니다. 50년째 되는 해를 히브리인들은 희년(Jobel)이라고 불렀습니다. 희년에는 노예들은 해방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또 이때는 동족으로서 사형에 처해질 죄를 범한 사람들도 사형을 당하지 않고 노예로 전략되는 벌을 받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또 안식년에는 채무자들은 빚을 면제받았습니다.

또한 희년에는 땅을 원래의 소유자에게 돌려주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자유(liberty)4)라는 뜻의 희년이 돌아오면 땅을 판 사람과 산 사람들이 만나서 땅에서 얻은 소산물과 지출한 경비를 계산합니다. 그런데 수익이 지출보다 많은 경우에는 땅을 판 사람이 땅을 다시 찾게 됩니다. 그러나 지출이 수익보다 많은 경우엔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 차액을 지불해야 하고, 수익과 지출이 같은 경우에는 현 소유자가 전 소유자에게 땅을 되돌려 주어야 했습니다.

집의 경우에는 1년 안에 집값을 지불하게 된다면 집을 산 사람은 판 사람에게 집을 양도해야 하지만 1년이 지난 경우에는 집을 산 사람에게 집을 소유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이렇듯,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을 섬기기에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며, 서로의 권리를 존중해 주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벌은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많은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많은 벌을 쌓아 놓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 이 벌을 달게 받아 죄를 씻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할 수 있는 이들을 지금 하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겠습니까? 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알고 있을 때,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을 합시다.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칙령

22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 제일년이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리하여 키루스는 온 나라에 어명을 내리고 칙서도 반포하였다.

키루스 기원전 539년 가을에 바빌론을 정복하고 바빌론의 임금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키루스 제일년”은 키루스의 바빌론 통치 첫 해로서 기원전 538년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시어 칙서를 반포하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우연”이나 “재수가 좋아서”라는 말을 종종합니다. 그러나 우연은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해 주시는 것입니다. 키루스의 칙령도 우연히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끄셨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은 하느님께서 이끌고 계심을 꼭 기억합시다. 그리고 감사합시다.

23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이렇게 선포한다. 주 하늘의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당신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나는 너희 가운데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에게는 누구나 주 그들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그들을 올라가게 하여라.”

하느님께서는 키루스를 통하여 당신 백성에게 해방을 선포하십니다. 키루스는 다음의 것을 선포합니다. ① 주 하늘의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② 유다의 예루살렘에 하느님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③ 하느님 백성에 속한 이들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하여라.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맡겨 주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하느님 백성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돌아가서 다시 하느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잘못을 용서하십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역겨운 짓”을 하면 당연히 그것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죄에는 반드시 벌이 따라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 죄를 기워 갚을 때, 하느님께서는 나의 그 고통과 정성을 보시고, 나의 회심을 보시고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보시기에 역겨운 짓을 멈추고, 하느님 보시기에 기쁜 짓들을 많이 해 봅시다. 그렇게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하느님께서 기쁘게 나에게 복을 베푸실 수 있도록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갑시다.

3. 나눔 및 묵상

① 나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내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총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또한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깨닫게 된 것들은 무엇이 있습니까?

② “하느님 보시기에 기쁜 짓”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리고 내 주위에 그렇게 살아가는 형제자매들의 예쁜 짓을 칭찬해 봅시다.

4. 실천사항

①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기.

②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에게 온전히 순명하고,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기.

③ 내가 회개했다는 증거 3가지 만들어 보이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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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기 [한] 敎皇旗 [라] vexillum papale [영] Papal flag

바티칸 시국(市國)의 국기. 하얀색과 노란색이 세로로 똑같이 나눠져 있고, 하얀색 부분에 교황관(삼중관)과 십자가가 달린 열쇠 등이 그려져 있으며 이탈리아어로 “바티칸시국‘(Stato della Citta del Vaticano)이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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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교령집 [한] 敎皇敎令集 [라] decretalia [영] decretals

일반적으로 규율문제에 관하여 교황이 하달하는 결정을 교황 교령이라 하고, 이를 모은 책이 교황 교령집이다. 교황 교령은 규율문제에 관하여 결정의 요구가 있을 때 회답을 하거나 교황 자의로 결정하며 일반적으로 서한형식을 취한다. 교황 교령집의 예로는 교황 보니파시오 8세(재위 : 1235~1303)에 의하여 집대성된 교령집(Liber Sextus Decretalium)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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