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즘 [영] humanism [독] Humanismus

휴머니즘이라는 말은 ‘인간성’을 의미하는 라틴어 humanitas에서 유래되었고, 다시 이 말은 ‘인간’이라는 homo에서 파생되었다. 어원에 비추어 인간과 인간성을 존중하여, 인간을 억압하고 구속함으로써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모든 장애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사상을 휴머니즘이라 부를 수 있겠다. 그러나 휴머니즘이란 말은 사용하는 사람과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휴머니즘이란 말을 최초로 사용한 인문주의자들, 즉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에라스무스 등은 중세적인 교회의 권위와 신(神)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그리스, 로마의 세계관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존귀함을 확인하고 옹호하는 것이라 하고, 이것을 휴머니즘이라고 불렀다. 이후 17∼18세기의 시민혁명기에 이르면 봉건적인 신분질서를 타파하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구현하자고 외친 시민사상가들이 나타나 자신들의 사상을 휴머니즘이라 불렀다. 그 뒤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발전되면서 사회의 계급적 대립, 인간의 기계화, 인간의 자기 소외, 공황과 실업에 의한 사회적 불안에서 인간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사회주의자들이 나타나 자신들의 사상을 휴머니즘이라 불렀다. 그 중 특히 포이에르바하는 자기의 유물론적 세계관이야말로 진정한 휴머니즘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비해 실존주의자들은 주체성의 확립이 휴머니즘에 이르는 길임을 강조하고 실존주의를 휴머니즘이라고 지칭하였다. 이렇게 다종다양한 휴머니즘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고전적인 의미로부터 이어 내려온 휴머니즘의 정신적인 전통을 계승하여 냉전의 이데올로기로부터 발생할지도 모를 핵전쟁의 참화에서 인류의 미래를 구원하는 현대적인 의미의 휴머니즘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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훠꼴라레 [관련] 포콜라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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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춘본당 [한] 琿春本堂

1924년 만주 간도성 훈춘현 훈춘시(滿洲 間島省 琿春縣 琿春市)에 창설되어 1946년 폐쇄된 연길교구 소속본당. 주보는 성녀 소화 데레사. 훈춘지역은 1905년경 복음이 전파되어 1907년 이 지역의 주민 13명이 원산본당의 브레(Bret, 白) 신부에게 영세한 후 교우촌을 건설, 삼원본당 주임 라리보(Larribeau, 元亭根) 신부와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신부의 순방을 받았고, 1909년 다시 100여명의 영세자가 생기게 되어 7개의 공소가 개설되었다. 그 후 1920년 함경도와 간도 지방이 오틸리엔 베네딕토회의 포교지가 됨에 따라 1923년 베네딕토회의 퀴겔겐(C. Kugelgen, 具) 신부와 로트(L. Roth, 洪) 신부가 훈춘현 육도포에 본당을 창설하고, 이어 1924년 퀴겔겐 신부가 훈춘시에 본당을 분리시키고 자신이 주임신부로 사목하였다. 1929년 되르플러(E. Dorfler, 鄭)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 1932년 마적과 공산군의 습격으로 폐쇄된 육도포본당까지 관할하면서 1934년 성당, 사제관을 증축하고 올리베타노 베네딕토수녀회 분원을 설치하는 한편 진료소, 해성학교, 야학 등을 개설하여 교세는 급격히 신장하였다. 그 후 시미트(C. Schmid, 金) 신부가 3대 주임으로 부임하고 이어 되르플러 신부가 다시 4대 주임으로 부임했으나 1946년 만주를 점령한 소련군에게 성당과 부속 교회재산을 몰수당함으로써 본당은 폐쇄되었다. 본당이 가장 발전했던 1936년의 교세는 교우수 1,244명, 공소 22개소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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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국 [한] 後進國 [관련] 개발도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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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암동본당 [한] 厚岩洞本堂

서울 대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예수성심. 중림동본당 관할이던 후암동일대는 1949년 3월 신자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하여 성당건립기성회가 조직되면서 공소가 되었고, 이어 8월 15일 사가(私家)를 개조한 성당이 마련되어 9월에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초대 주임으로 임화길(林和吉, 안드레아) 신부가 부임, 신자수가 증가하자 동자동에 사가를 매입하여 본당을 이전하였다. 6.25동란으로 본당이 폐허가 된 후 1953년 10월 김효신(金孝臣, 마티아) 신부가 3대 주임으로 부임, 본당재건운동을 벌여 이듬해 성당을 신축하는 한편 해방동본당을 분할, 독립시켰다. 1954년 4대 주임 방유룡(方有龍, 레오) 신부가 부임, 이듬해 본당을 후암동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고 복자수녀회 분원을 설치함과 동시에 복자유치원을 개원하였다. 그 후 1964년 새 성당이 신축되고, 본당에 파견된 수녀회도 복자수녀회에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로 교체되었다. 한편 신심단체로1956년 성모성심부녀회, 1958년 레지오 마리애, 1959년 중 · 고등부학생회, 1964년 빈첸시오회와 성가대, 1967년 까리따스회 등이 발족되었고, 1969년에는 본당 사목위원회가 창립되었으며 1971년 9대 주임으로 이문근(李文根, 요한) 신부가 부임하면서 평신도사도직 활동은 더욱 더 활발해져 군종후원회가 발족되고 꾸르실료운동이 전개되었다. 또한 1974년 불우청소년을 위한 야간학교, 1975년 신용협동조합과 노인학교 등도 개설되어 사회사업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현재 주임신부는 김윤상(金允相, 베네딕토) 신부이고 신자수는 1984년 현재 3,684명이며, 현주소는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 38의 4이다.

역대 주임신부 명단과 재임기간은 다음과 같다. 1대 임화길(1949.9∼12월), 2대 신인균(申麟均, 요셉, 1950. 1∼1953. 9), 3대 김효신(1953. 10∼1954. 3), 4대 방유룡(1954. 4∼1955. 2), 5대 임종구(林鍾求, 바오로, 1955. 3∼1957. 7), 6대 윤병희(尹炳熙, 바오로, 1957. 8∼1960. 4), 7대 이영식(李永植, 베드로, 1957. 9∼1960. 3), 8대 장대익(張大翼, 루도비코, 1963. 1∼1971. 5), 9대 이문근(1971. 6∼1974. 3), 10대 박성종(朴成鍾, 프란치스코, 1974. 4∼1979. 5), 11대 김정진(金正鎭, 바오로, 1979. 6∼1983. 4), 12대 김윤상(金允相 1983. 5∼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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