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ulain, Augustin(1836∼1919). 프랑스의 예수회 신비신학자. 저술가. 셰르부르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죽었다. 1858년 예수회에 입회하였고, 학업을 마친 뒤 메츠(Mets), 앙제(Angers)에서 수학교사로 근무하였다. 그 뒤 5년간 파리에서 미술가동업조합 간부로 있었다. 1901년 신비신학분야의 저서 ≪기도의 은총≫(Des graces d’oraison)이 출판되자 커다란 호평을 얻어, 그의 생전에 9판을 거듭했으며 수개국어로 번역되었다. 그는 대신학자도 아니었고, 그가 묘사한 순수신비상태를 직접 체험한 것도 아니면서 이 섬세하고도 어려운 문제를 교훈적으로 논술하고 있다. 결국 이 책은 17세기 이래 대체로 소홀히 여겨져 온 신비신학에 대한 흥미를 되살리는데 기여하였다.
푼크 [원] Funk, Franz Xaver von
Funk, Franz Xaver von(1821∼1907). 교회사학자이며 교부학자. 독일 압트스크뮌트(Abtsgmund)에서 출생하여 튀빙겐에서 별세. 독일에서 교육받고 1863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864년 사제가 되었고, 튀빙겐에서 신학 전임강사를 역임(1866∼1870년), 헤펠레(C. Hefele)를 대신하여 역사와 신학을 가르치다가(1870년) 마침내 교수가 되었다(1875년). 초대교회사와 교부에 관한 학자로서, 그리고 그리스도교 고고학자로서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쳤고, 튀빙겐의 가톨릭 교수로서 37년간 학문에 정열을 쏟음으로써 그 명성을 더욱 높였다. 저서 ≪Opera Patrum Apostolicorum≫(2v., Tubingen 1878∼1881)은 제자들과 후계자들에 의하여 판을 거듭하였고 ≪Lehrbuch der Kirchengeschichte≫(1886)는 빌마이어(K. Bihlmeyer)와 튀흘러(H. Tuchle)의 현대적 연구서인 ≪교회사≫의 근간을 이루는 저서이다. 그밖에 ≪Zins und Wucher≫(1868), ≪Geschichte des Kirchliehen Zinsverbotes≫(1867)를 썼고 ≪Doctrina XII Apostolorum≫(1887), ≪Didascalia et Constitutiones Apostolorum≫(2v., 1905)을 편집하였으며 논문집 (3v., 1897∼1907)을 내었다.
푸코 [원] Foucauld, Charles de
Foucauld, Charles de(1858∼1916). 프랑스 가톨릭 선교사. 스트라스부르 태생. 첫 영성체 후, 무신앙과 방자한 정신상태에 빠졌으며, 기병소위로서 아프리카 알제리로 좌천, 1882년 중위로 퇴역, ≪모로코 탐험기≫(Reconnaissance au Maroc, 1888)를 저술하였다. 정신적 불안으로 고민하다가 1887년 가톨릭으로 복귀, 그 전의 자유분방했던 생활을 회개하고 성지순례(1888∼1889년) 후 1890년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들어갔으나, 고독한 생활을 위해 수도원을 나와서 나자렛, 예루살렘의 글라라 동정회 여자수도원에 노무자로 근무하였다. 1901년 귀국하여 사제로 서품되어, 같은 해 선교사로서 북아프리카 사하라사막의 오지(奧地) 타만라세트(Tamanrasset)로 건너가 원주민 투아레그족(族)의 언어를 공부하여 사서(辭書) 작성과 번역을 하고, 원주민을 돌보는 한편 타만라세트 근교에 수도원을 건립(1905년), 선교에 힘썼으나, 1차 세계대전 중에 암살당하였다.
그는 아프리카의 이슬람 교도들 사이에 순응적인 새로운 포교방법을 창시했으며, 그의 사망 후 2개의 푸코 포교회(the Association Charles de Foucauld 또는 the Mission de Foucauld)가 설립되어 그의 사업을 계승하고 있다. 바쟁(Rene Bazin)이 저술한 그의 전기 ≪Charles de Foucauld≫는 세계 각국어로 번역 출판되었으며, 카루즈(Michel Carrouges)의 ≪CHARLES DE FOUCAULD, explorateur mystique≫와 시스(Jean Francois Six)의 ≪Charles de Foucauld Aujourd’hui≫는 각각 ≪샤를르 드 푸코≫ 및 ≪오늘의 샤를르 드 푸코≫라는 책명으로 우리나라 번역판이 나와 있다. 그의 유지를 받들어 1939년 사하라의 투구르트(Touggourt)에서 창립된 수녀회.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는 현재 세계의 6대륙 56개국에 200여개의 분원(회원 1,300여명)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1955년 진출, 1956년 왜관(倭館)의 나환자 정착부락에 첫 ‘우애의 집’을 설립, 현재 서울 혜화동에 한국본부를 두고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역시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1933년 알제리에서 창립된 관상수도회로서 ‘예수의 작은 형제회’(Petits Freres de Jesus)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1969년에 진출했으며, 한국 본부는 서울 청량2동에 있다.
푸케 [원] Fouquet, Jean
Fouquet, Jean(1416?∼1480?). 프랑스의 화가. 투르 태생. 로마에 유학, 샤를르 7세의 궁정에 화가로 근무(1448년), 1475년 왕의 전속화가가 되었다. 그 밖의 후원자로는 슈발리에(Etienne Chevalier), 위르신의 주베날(Jouvenal des Ursins) 등이 있었다. 슈발리에, 오를레앙 공 미망인인 클레브의 마리(Marie de Cleves), 코미네의 필립(Philippe de Comines)을 위해 각각 ‘Livres d’Heures’의 채식(彩飾)을 하였다. 그의 화풍은 네덜란드풍에다 이탈리아의 모티브를 혼합해서 높은 경지를 암시한다. 대표작은 <기사 에티엔과 성 스테파노>이다.
푸에르토리코 [원] Puerto Rico
대(大) 안틸리즈(Antilles) 열도 중에서 가장 작은 최동단(最東端)에 위치한 섬으로 면적 8,897㎢, 인구 약 395만명(1982년 추계)이다. 콜룸부스의 제2차 항해 중에 발견된 것으로, 1509년에 레온(Juan Ponce de Leon)이 스페인왕의 이름으로 이 섬을 차지하였다. 이들은 주로 금광의 채굴 목적으로 체류하였으므로, 1570년에 금광이 바닥나자 스페인 출신 주민들이 이곳을 떠나기를 희망하였으나 본국 정부에서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이들이 눌러앉아 살게 되었고 결국 오늘날 이 섬나라의 조상이 되었다. 1511년 스페인령 세빌(Seville)의 감목대리구가 된 이래 많은 변천이 있었다. 가톨릭 신자는 1982년 현재 321만 9,000명이며, 267개의 본당을 거느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