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학문답 [한] 天學問答

① 조선조 후기시대의 유학자 안정복(安鼎福, 1712∼1791)이 지은 척사론서(斥邪論書). 1785년 을사추조 적발사건을 계기로 저술되었다. 안정복은 그의 저서 ≪천학문답≫에서, 천주교는 현실을 문제삼지 않고, 오로지 후세의 천당 · 지옥설을 믿어 사람으로 하여금 황당한 지경에 빠뜨리고 있으며, 천주교는 현실을 고통으로 엮어 현실사회를 금수의 세계로 생각하고 있고, 또한 천주교는 인간 자신이나 세속사를 원수로 생각하여, 결국은 부모군신(父母君臣)의 의(義)를 파멸시키고, 극기(克己)의 정신을 모르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즉 그의 비현실성, 비관주의, 비윤리성, 비사회성을 지적하였다. 또 안정복은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의 저서인 ≪천주실의≫(天主實義)의 현세론(現世論)에 대해서, 현세는 잠정적인 것이며 고뇌에 찬 세상으로 사람이 살 곳이 아니고 금수의 세상이니 그들의 말대로라면 아예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반박하였다.

② 조선조 후기의 유학자 이헌경(李獻慶, 1719∼1791)이 지은 척사론서(斥邪論書). 이헌경은 그의 저술에서 유교의 상제(上帝)는 천주교의 인격적인 천주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하면서, 천주를 흠숭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천(天)이 무성(無聲) 무취(無臭)하고, 상제가 형상이 없는 이상, 사물에 있어서는 당행지리(當行之理)가 상제요, 인심에 있어서는 천부의 성(性)이 상제이므로, 그것을 도상(圖像)으로 드러내고 집안에 설치하는 것은, 도리어 하늘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므로 서양학문이 가져오는 새로운 지식은 믿을 수 있을지언정, 천주교만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고까지 극단적인 척사론을 펴고 있다.

[참고문헌] 韓㳓劤, 天主敎의 初期傳播와 그 反響, 韓國天主敎會史論文集, 第1輯, 한국교회사연구소, 1976 / 崔奭佑, 韓國敎會史의 探究, 한국교회사 연구소.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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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학고 [한] 天學考

18세기의 실학사가(實學史家)인 안정복(安鼎福, 1712∼1791)의 저서. 이익(李瀷)의 제자로 주자학(朱子學)에 능통했던 그는, 그의 스승과 마찬가지로 일찍부터 서학 배격의 일선에 나섰다. 1785년 을사년(乙巳年)에 천주교인 김범우(金範禹) 집에서 이승훈(李承薰), 정약전(丁若詮) · 약용(若鏞) · 약종(若鍾) 3형제와 이벽(李檗), 권일신(權日身) 등이 모여, 교회집회를 가지고 있을 때, 우연히 이것이 발각되어, 김범우 등에 대한 옥사가 일어나게 됨을 계기로, 안정복은 서학을 직접 배척하기 위해서 ≪천학고≫와 ≪천학문답≫을 집필하였다. 그는 계묘 · 갑진(癸卯 · 甲辰)년간에, 젊고 재기 있는 자들이 천학이란 사학(邪學)을 창도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므로, 이제 전기(傳記)에 의거하여 ≪천학고≫를 지어서, 이 학(學)이 중국에서 들어온 지 이미 오래고, 지금에 비롯된 것이 아님을 밝히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라고 하였다.

이 책은 천주교가 어떠한 종교인가를 역사적으로 논증하여 이를 배격하기 위한 뜻에서 엮은 척사(斥邪)기록이므로 전체적으로 볼 때 천주학에 대한 반박은 피상적인 박식(博識)에 의거한 곳이 많고, 그의 논증도 이익(李瀷)이나 신후담(愼後聃)에 있어서처럼 학구적이고 논리적인 면이 부족하다. 그는 1784년 갑진년(甲辰年)에 권철신(權哲身)에게 사신을 보내어, 서학을 하는 무리가 모두 공의 친구가 아니면 제자들인데, 어찌 이를 말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같이 좇아가고 있는가 하고 실책한 다음, 그로 인해서 자초할 패가망신을 경고하였다. 또한 1786년 병오년(丙午年)에는 당시의 우상(右相)인 채제공(蔡濟恭)에게 서신을 보내어 서학을 배척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의 이러한 주장을 담은 것이 ≪천학고≫의 저술내용이다.

[참고문헌] 崔奭佑, 儒林들의 反撥과 批判, 韓國天主敎會의 歷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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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학 [한] 天學

천주학(天主學), 즉 서학(西學)이란 서양의 학문(學問) 또는 조선중엽(朝鮮中葉) 이후에 천주교를 서양학문이라는 뜻으로 이르던 말이다. 중국 명(明)나라 말기에 한역서학서 총서(叢書)로 간행된 ≪천학초함≫(天學初函), 그리고 1785년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을 계기로 저술된 안정복(安鼎福)의 ≪천학고≫(天學考)와 ≪천학문답≫(天學問答)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천학’이란 말은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서학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이 말보다 천주학, 서학, 서교 등의 용어가 더 널리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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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암강학 [한] 天眞菴講學 [관련] 주어사강학

1777년 겨울 주어사(走魚寺)에서 권철신(權哲身), 정약전(丁若銓), 이벽(李檗) 등이 모여 소위 주어사강학(走魚寺講學)을 개최한 이후 강학은 계속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러한 주어사강학의 연장선상에서 천진암에서 열렸던 강학을 천진암강학이라고 한다. 그런데 1777년 겨울 주어사에서 열린 강학에 대해 정약용(丁若鏞)의 문집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의, <녹암 권철신 묘지명>(鹿菴權哲身墓誌銘)에는 강학 장소를 천진암과 주어사로 기록하고 있어 이를 근거로 일부에선 1777년 겨울에 열렸던 강학을 주어사강학이 아닌 천진암강학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같은 ≪여유당전서≫의 <선중씨 묘지명>(先仲氏墓地銘)과 이승훈(李承薰)의 문집 ≪만천유고≫(蔓川遺稿)에는 강학 장소를 주어사로만 기록하고 있고, 또 강학에 대해 언급되어 있는 <녹암 권철신 묘지명>, <선중씨 묘지명>, 그리고 달레(Dallet)의 ≪조선천주교회사≫(Historie de l’Eglise de Coree, Paris 1874) 등 세 자료를 종합 검토해 보면 강학 장소는 분명 주어사이다. 따라서 천진암강학은 1777년 겨울에 열렸던 것이 아니라 1777년 겨울 이후, 즉 주어사강학 이후 열린 강학이다. 천진암강학이 열렸던 천진암은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우산리(京畿道 廣州郡 退村面 牛山理)에 의치해 있는데 현재 천진암성역화위원회가 조직되어 성역개발사업을 벌이고 있고 이벽, 권철신 · 권일신 형제, 이승훈, 정약종(丁若鍾)의 묘소가 이장되어있으며 가르멜 여자수도회가 진출해 있다. (⇒) 주어사강학

[참고문헌] 趙珖, 韓國 初期敎會史와 走魚寺, 司牧, 91호,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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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학문 [한] 天主學文 [관련] 천주학

천주학에 관한 저술, 신학서나 기타 저술을 말한다. (⇒) 천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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