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음악실

열녀신씨 정려기(고산 임헌회,1811〜1876)

작성자
missa
작성일
2026-02-24 07:53
조회
18
烈婦申氏女旌閭記
鼓山 任憲晦(1811〜1876)


열녀신씨 정려기
고산 임헌회(1811〜1876)

吾鄕有烈婦曰申氏女。平山人。邑吏高世鎭之妻也。申氏女。自幼性度柔順。及歸。事舅姑以孝。未幾。其夫遘疾。疾且篤。殫誠救療。衣不解帶。三年如一日。沐浴露禱。乞以身代。其夫圽。若不甚慽。惟附身之具。盡心焉。旣斂。瞰人熟睡。取其夫腰帶。自縊以死。年纔二十八。方其斂也。家人解其衣。則有小刀。藏在懷中。其定計於鮮尤可知。雖古傳所載貞婦。何以加之。今上二年辛亥。特命旌其門。烏頭赤脚。輝映閭里。於戲盛哉。噫。凡婦女之喪所天。自是生民至艱。茶毒極哀。夫孰無下從之心。但死生之於人。亦大矣。雖男子剛腸者。苟不固决烈過人者。尠能辦得。今申氏女。以女子毅然殉身。又能從容若是。是所云要吾君兮同穴之。死矢兮靡他者也。何其烈哉。何其烈哉。非但天畀民彝。亦列聖敎化。而盖世鎭孝子也。年甫成童。爲其所後母病。斫指進血。獲延數日之命。是夫之有是婦也。宜哉。此足以有補於風敎。且聖上勵俗動民之 意。亦不可不對揚。故畧記之如右。世鎭。嘗從余問字者云。

나의 고향에 신씨(申氏) 열부가 있었는데 평산(平山)인으로 아전 고세진(高世鎭)의 부인이다. 신씨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순하고 시집와서는 시부모를 효도로 섬겼다. 얼마 않 되어 그 남편이 병이 들었는데. 병이 또한 위독하였다. 병을 치료하는데 정성을 다하였다. 의복과 혁대를 벗지 못한고 3년을 하루와 같이 하였다. 목욕재개하고 이슬을 받아놓고 기도하며 자신이 대신 빌었으나, 그 남편은 사망하였다. 또한 매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어 오직 몸 갖추어 진심을 다하여 옆을 지켰다. 사망한 남편을 굽어보니 잠을 잘 잘고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의 혁 띠를 취하여 스스로 목을 매어서 자살을 하였다.

나이 겨우 28세였고 사방 사람들이 그녀를 거두었다. 집안사람들이 그의 옷으로 처리하였다. 그녀는 즉 가슴속에 작은 칼을 품고 있었다. 그는 매우 아름다운 계획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옛날부터 전하며 소재하고 있는 곧은 아내의 정조가 어찌 이와 같은가? 금상2년 신해(今上2년 辛亥 : 철종2년 1851년)에 특명으로 정려문을 내렸고. 마을의 정려가 눈부시게 빛났다. “아아, 성대하구나! ‘아아 슬프도다! 무릇 부녀자가 남편을 따라간 죽음이 스스로 백성의 삶이 지극히 어려움이 이르니 씁쓸하고 지극히 슬픔인 것이다. 무릇 누가 죽은 남편을 따라 자결할 마음이 없겠는가? 다만 생사는 사람에 달려있으니 또한 큰일 아니리오. 오직 남자가 강철 같은 마음인 자라도 다만 결심이 대단히 확고하지 않고 지나치는 사람이라면 능히 판단이 적을 것이다.

오늘날 신씨 부인은 의지가 강한 여자로써 목숨을 바치는데 또한 능히 이와 같이 태연하고 여유로움이 있었다. 이것이 이른바 나(申氏)와 그대(남편)가 죽어서도 한 무덤에 함께하겠다고 맹세한 것이다. “죽기로써 맹세하노라!.”“다른 것이 없는 것이다.”

어찌 그녀가 열녀가 아니겠는가? 어찌 그녀가 열녀가 아니겠는가?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 주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이며, 또한 선왕의 교화이다. 그리고 세진(高世鎭)은 뛰어난 효자이다. 나이 15세에 모친이 병이 들었는데, 손가락을 잘라서 피를 드려서 몇 일간의 생명이 연장하게 하였으니 이는 남편이요 부인이다.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풍속과 교화에 충분히 도움이 되는 것이다. 또한 성상(임금)이 풍속을 장려하고 백성을 감동시키려는 뜻이며, 또한 받들어 드러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이와 같이 대략적으로 기록한다. 고세진(高世鎭)을, 일찍이 글을 배우는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였다


◯ 鼓山 任憲晦(임헌회1811~1876)
본관은 풍천으로 천안 직산면 산음리에서 출생하였다. 자는 명로·중명, 호는 고산· 전재· 희양재. 아버지는 천모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로 익화의 딸이다. 1836년(헌종 2) 감시 초시에 합격했으나 복시에서 떨어지자 송치규를 찾아가 학문에 전념했다. 1839년 김매순(金邁淳)·홍석주(洪奭周)·홍직필 등을 찾아갔으며, 1842년 홍직필의 제자가 되었다. 1858년(철종 9) 조두순의 천거로 효릉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이듬해 다시 활인서별제 등의 벼슬이 주어졌으나 모두 사양했다. 1861년 경연관에 뽑혔으나 역시 나가지 않았다. 1862년 김평묵(金平默)과 서신으로 성리설에 관해 논쟁을 했다. 1864년(고종 1) 장령·집의·장악원정 등에 제수되었고, 이듬해 호조참의가 되었다. 이때 만동묘의 제향을 없애라는 왕명이 내려지자 거듭 부당함을 상소하여 다시 제향하게 했다. 죽은 뒤 윤용선의 주청으로 내부대신에 추증되었다. 연기 숭덕사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경이다.

<번역 :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박 수 환>
【번역참고자료】
殫誠(탄성) : 정성을 다함
旣斂(기렴) : 염습을 마침
瞰(감) : 굽어보다
熟睡(숙면) 잠을 잘 자다.
自縊(자액) 스스로 목을 매다
懷中(회중) :가슴속에
鮮尤(선우) : 매우고운
烏頭赤脚(오두적각) : 정녀각을 은유
輝映(휘영) : 눈부시게 비치다. 빛나다
閭里(여리) : 마을 문
於戲(어희) : “아하, 아!
盛哉(어희성재) : 성대하구나!
噫(희) : ‘아 슬프도다!
所天(소천) : 남편지칭 , 하늘의 남편을 따라갔다
下從(하종) : 죽은 남편의 뒤를 따라 아내가 자결함
夫孰(부숙) : 무릇 누가 〜하겠는가?
尠(선) : 적다.
毅然(의연) : 의지가 강함
殉身(순신) : 목숨을 바쳤다
從容(종용) : 차분하다.
矢(시) : 화살 / 맹세하다(誓와 통용되는 경우가 있음)
死矢兮(사시혜) : “죽기로써 맹세하노라.”
靡他者也(미타자야) : 다른 것이 없다.
天畀(천계) : 하늘에서 내려주는 것
民彝(민이) : 사람이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
年甫(년보) : 한해의 시작
成童(성동) : 열다섯 살이 된 사내아이
斫指(작지) : 손을 베다. 손을 자르다














헌종 14년 1848년 01월 07일 (음) 충청좌도 암행어사 이승수(李升洙)의 별단에 의하여 신씨열려 처리의견 보고, 그 후 철종2년 1851년 신씨 정려명정이 이루어짐
---생략 -- 아산(牙山)의 고 양인(良人) 고세진(高世鎭)의 처 신소사(申召史)의 정열(貞烈)에 관한 일이고, 그 하나는 보은(報恩) 유학(幼學) 구문호(具文鎬)의 재행(才行)에 관한 일입니다. 전례에 근거하여 각 해조에서 품처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위와 같이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모두 윤허한다고 답하였다. <비변사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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