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음악실

충효 열부 윤씨3세에 전해오는 이야기 계유<1873년>

작성자
missa
작성일
2026-02-25 03:33
조회
23
忠孝烈尹氏三世傳 癸酉
鼓山 任憲晦(1811~1876)

尹顯立。坡平人。高麗太師文肅公瓘之後也。早有膽略。自任意氣。逮丙子。建奴犯京。同閈人皆奔竄圖生。而顯立獨慨然振腕曰。男子生世。不以此時死於國。鼠拱鳥竄於巖谷間者。何足擧論於人數乎。遂謂其子曰。汝須將母與妻子以保命也。幸而得生。吾祖之鬼不餒矣。我則已决死於吾君之事。挺身獨出。將奔問行在。中路忽遇虜兵。隻手搏戰。力不能支。爲其所俘。胡將必欲受降。以刃擬頸而不少屈。厲聲大罵曰。吾初欲爲吾君盡殲爾類。雖強弱不敵。見擒於汝。吾頭可斷。吾志不可屈。須速殺我。竟被害。同里人徐道之亦被擄。目見其事。逃還備傳云。其子煥。誠孝篤至。母病。沐浴祝天。嘗糞甜苦。父病中欲食雉肉。時淫潦連旬。草樹彌天。不可得。晝夜憂煎。求之山野。忽有雙雉自入網中。人以爲孝感所致。及聞其父殉國之報。卽欲赴虜陣。决死復讎。爲鄕鄰所力挽。莫能遂。屢至氣絶乃甦。爲伸情事於終身之喪。啜粥服衰。至於九年而歿。其妻白川趙氏。素有女士行。以其夫死日。飮藥自裁而下從。事聞。蒙孝烈雙㫌。煥四世孫相周。亦有至行。家雖貧。奉養父母。飯必稻。饌必肉。夏必絺。冬必紬。母病。露禱血指。及喪三年廬墓。官爲之蠲戶役。
西河任憲晦曰。爲臣而忠。爲子而孝。爲婦而烈。是固人所同得於天賦之性者。夫豈有豐嗇哉。但世敎衰。民不興行久矣。有一於此。猶謂之難。今尹氏一門四人。萃此三者。何其盛也。雖其家傳。有源有本。而亦豈我列聖治敎之所化耶。雙㫌之褒。可謂無憾。而獨一忠一孝不與焉。惜哉。相周五世孫豐道。老而好學。從余遊有年。其進未可量。天之報施。其在斯歟。

충효 열부 윤씨3세에 전해오는 이야기 계유<1873년>
고산 임헌회(1811~1876)
윤현립(尹顯立)은 본관이 파평(坡平), 고려태사 문숙공 윤권지(尹瓘之)의 후손이다.
일찍이 담력과 꾀가 있고 자신의 임무에는 적극적으로 임하였다. 병자년(1636년,병자호란)에 오랑캐(建奴:청나라)가 한양을 침범하여 붙잡혔는데, 같은 마을사람들은 달아나 숨어 살아남기를 꾀하였다. 그러나 윤현립(尹顯立)은 홀로 남아 분개하며 팔을 떨치며 말하길, 이때 나라를 위해 죽지 않고 쥐처럼 팔짱끼고 새처럼 바위 사이로 숨는 것이 어찌 사람의 숫자로 거론함이 만족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에 이르러 그의 아들에 말하길, 너는 모름지기 장차 어머니와 더불어 처자식의 목숨을 보존하여야 한다. 다행히 살아남아서 나의 조상의 혼이 굶주리지 않게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즉 이미 죽기를 결심하였으니 나와 그대의 일이라고 하였다. 홀로 앞장서서 나가며 장차 달려가 행재소(임금이 머무는 곳)에 나아가 여쭙고자 하였다. 길에서 갑자기 오랑캐를 만나서 치고받으며 싸웠다. 힘을 다하였으나 능히 지탱하지 못하여 그들에게 사로잡혔다.

오랑캐 장수가 필히 항복을 요구하며 칼날을 목에 들이대었으나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다. 성난 목소리로 크게 꾸짖으며 말하길, 나는 처음에 우리 임금을 위하여 너희 무리를 모조리 섬멸하려 하였다. 비록 힘이 약해서 맞서지 못하고 너에게 사로잡히게 되어 우리의 머리를 자를 수 있지만 우리의 의지는 굴하지 않는다. 모름지기 빨리 나를 죽여라! 하고, 마침내 피해(살해)되었다. 같은 마을 사람 서도지(徐道之)도 또한 사로잡혔다. 그 일을 직접 눈으로 보고 탈출하고 돌아와서 대비를 전하며 하는 말들이, 그 아들 환(煥)은 성실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모친이 병들었는데 목욕재개하고 하늘에 축원하며 일찍이 똥의 단맛 쓴맛을 보았다. 부친이 병환 중에 꿩고기를 먹고 싶다하는데 그때 큰 수해(장마)가 열흘간 연속되었고 초목이 하늘에 가득차서 얻을 수가 없었다. 밤낮으로 근심하며 마음 졸이며 산과 들에서 구하고자 하였는데 홀연 두 마리의 꿩이 스스로 그물로 들어왔다 사람은 효성이 감동하여 이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내 그 아버지가 나라를 위해 순국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곧바로 적의 진영으로 나아가 다시 원수에게 죽기를 결심하니 마을 사람들이 힘껏 만류하여 아무것도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여러 번 기절하였다가 이내 다시 살아났다. 그는 평생의 喪(죽음)에 대한 마음의 정성을 다하여 죽을 조금씩 마시며 상복을 입었다.

돌아가신 후 9년에 이르러 그의 처 배천 조씨(白川 趙氏)는 소박한 여자로서의 덕행이 있었다. 그는 남편이 죽는 날, 음독 자결하고 남편을 따라갔다. 이러한 소문 듣고 효자와 열녀의 정문을 받았다. 윤환(尹煥)4세손 윤상주(尹相周)도 또한 지극한 행실이 있었다. 가정은 비록 가난했지만. 부모를 봉양했는데. 식사는 필히 쌀밥을. 반찬은 고기를. 여름에는 가는 칡베를, 겨울에는 명주를 입혀드렸다. 모친이 병드니 이슬을 받아 기도하고 손가락의 피를 내어 드렸다. 이내 3년 동안 여막으로 묘를 지켰다. 관청에서는 집의 역(役)을 면제하여 주었다.

서하 임헌회(西河 任憲晦)는 말한다.
신하는 나라에 충성하여야 하고, 아들은 부모에게 효도하여야 하고, 부인은 열부가 되어야한다. 이것은 사람에게 본래부터 천성이 부여되어 모두가 갖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사람이 어찌 넉넉하면서 인색할 수 있겠는가? 다만 세상의 가르침이 쇠퇴하지고 백성들이 오래도록 행동하지 않았단 말인가? 이에 하나가 있다면 여전히 그것이 어렵다고 한다. 지금 윤씨 집안에는 네 사람이 있다. 이 세 사람이 합치면 어찌 그것이 왕성하지 않겠는가?

비록 그 집안으로 전해오는 것이라 하더라도 근원과 뿌리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어찌 이것이 역대 성인이 다스리고 가르친 바에 의해 감화된 것이 아니겠는가? 효성과 충절을 함께 지닌 것에 대한 칭찬은 아쉬움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오직 한 가지 충성과 한 가지 효는 여기에 함께하지 않는다.

아, 안타깝구나! 윤상주(尹相周) 5세손(五世孫) 윤풍도(尹豐道)는 늙어서도 학문을 좋아하며 여러 해 동안 유람하며 나를 따랐다. 그가 나가는 것을 헤아릴 수 없다. 하늘이 내리는 보답이 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일까? <鼓山集>


◯ 鼓山 任憲晦(임헌회1811~1876)
본관은 풍천으로 천안 직산면 산음리에서 출생하였다. 자는 명로·중명, 호는 고산· 전재· 희양재. 아버지는 천모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로 익화의 딸이다. 1836년(헌종 2) 감시 초시에 합격했으나 복시에서 떨어지자 송치규를 찾아가 학문에 전념했다. 1839년 김매순(金邁淳)·홍석주(洪奭周)·홍직필 등을 찾아갔으며, 1842년 홍직필의 제자가 되었다. 1858년(철종 9) 조두순의 천거로 효릉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이듬해 다시 활인서별제 등의 벼슬이 주어졌으나 모두 사양했다. 1861년 경연관에 뽑혔으나 역시 나가지 않았다. 1862년 김평묵(金平默)과 서신으로 성리설에 관해 논쟁을 했다. 1864년(고종 1) 장령·집의·장악원정 등에 제수되었고, 이듬해 호조참의가 되었다. 이때 만동묘의 제향을 없애라는 왕명이 내려지자 거듭 부당함을 상소하여 다시 제향하게 했다. 죽은 뒤 윤용선의 주청으로 내부대신에 추증되었다. 연기 숭덕사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경이다.

【기록의 배경】
충효 열부 윤씨3세에 전해오는 이야기는 고산 임헌회(任憲晦) 자신의 제자 윤풍도(尹豐道)의 선대(先代)에 대한 전해오는 이야기를 고산집(鼓山集)에 남겨놓은 것이다.



<번역 :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박 수 환>

【번역 참고자료】
建奴(건노) : 청나라 오랑캐
振腕(진완) : 팔을 떨치다.
鼠(서) : 쥐
拱(공) : 팔짱끼다.
挺身(정신) : 앞장서다
虜兵(노병) : 오랑캐
搏戰(박전) : 육박전, 치고받으며 싸움
擬頸(의경) : 목에 들이대다
厲聲(여성) : 성난 목소리
大罵(대매) : 크게 꾸짖다
盡殲(진멸) : 모두 섬멸하다
不敵(부적) : 맞서지 못함
擒(금) : 사로잡다. 잡히다.
擄(도) : 사로잡다. 노략질하다
甜苦(첨고) : 단맛 쓴맛. 달고 쓴맛
淫潦(음료) : 큰 수해,
憂煎(우전) : 근심하며 마음 졸이다.
甦(소) : 소생하다. 다시 살아나다
啜粥(절죽) : 죽을 홀짝이다. 啜-조금씩 마시다.
服衰(복쇠) : 상복을 입다
自裁(자재) : 자결하다. 자살하다
蒙(몽) : 받다. 입다.
絺(치) : 가는 칡베
紬(주) : 명주
蠲(견) : 면제해주다. 덜어주다
衰(쇠) : 약해지다
無憾(무한) : 아쉬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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