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라지오와 펠라지아니즘: 스토이즘과 그리스도교-뻴라지오에 대한 아우구스티노의 응답

 

8.3 뻴라지오에 대한 아우구스티노의 응답


성 아우구스티노는 어떻게  영적 피조물들이 사랑에 의하여 조명되는가를 보여주면서 만일 그들이 그들의 창조주로부터 돌아서게 되면 그들의 단순성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 인간이 신적인 삶과 빛을 함께 나누는, 은총의 통합 원리는 단순성 안에 그 방향과 목적을 정신에 주는 무엇이다. 물론 아우구스티노는 여기서 자연과 초자연의 명확한 구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훗날 그를 해석하는 사람들을 잘못 이끌 수 있는 경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못한다. 어떻든 아우구스티노는 ‘자연적’ 선물들과 그리스교 고유의 의미로서 일컫는 그리스도의 은총 사이의 차이점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 대 사상가의 경우 그 체계는 내적 근거보다 가치가 적다. 아우구스티노는 항상 영적 피조물의 개념을 명확하게 하려는 첫 번째 존재임을 믿고자 하였다. 그가 은총의 그리스도교적 개념을 무엇으로 간주하였는지를 통하여 펠라지안들에게 어떻게 대답하였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그는 원죄와 죄에 떨어진 사람의 은총의 필요성을 다룬 그의 저서 “De peccatorum meritis et remissione” 이후로 “De spiritu et littera”라는 저서를 펴냈다. 그의 친구 Marcellinus의 질문에 대해 답을 쓰면서 이 책은 아우구스티노의 은총과 율법, 그리고 자유 의지와 은총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그의 사상을 피력하고 있다. 만일 한 인간이 선한 것을 행하려면 그는 무엇이 선인지 알아야할 뿐만 아니라 무엇이 선한 그것을 사랑해야 한다. 율법은 그 중요성을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할 수 없다. 오직 은총이 인간에게 선한 것을 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은총은 우리의 자유 의지를 치워없애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보증해준다. 은총은 오히려 우리가 정의를 살아한다는 것을 통해서 그 의지를 치유한다”.


        그 이후 작품 안에서 논쟁의 힘을 보이고 있다. 아우구스티노는 [De natura et gratia]라는 저서를 통하여 펠라지오의 [De Natura]라는 저서에 대하여 답변하고 있다. 이러한 답변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반복 인용되고 있다. “하느님은 불가능한 것을 명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분이 명령할 때 그분은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네가 하도록 주의를 기울이시고 네가 할 수 없는 것을 위하여 역시 기도하도록 하신다”. [De perfectione iustitiae hominis]라는 저서는 첼레스티노의 논문에 답변하기 위하여 쓰여진 것이다. 아우구스티노는 여기서 어떻게 죄에 떨어진 인간은 마치 가난한 절름발이가 천상에서 배려되어 있는 절름발이와 같은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미 그가 나중에 율리아노를 반대하여 사용한 매우 까다로운 논의 방법하에서 작업되었다.


        [De gestis Pelagii]는 그의 무죄선고를 받으려 했던 Diospolis 공의회에서의 펠라지오의 태도를 다루고 있다. 아우구스티노는 이 작품에 이어서 [De gratia Chiristi et peccato origianli]라는 책을 썼다. 여기서 그는 은총의 반대자들의 애매함을 언급하고 있다. 율리아노와의 논쟁은 Zosimo교황의 편지 이후 더욱 더 단조로웠다. 그러나 많은 관점으로부터 그의 사상을 설명할 기회를 주고 있다.


        율리아노는  매우 고집스러운 변증법자였다. 아우구스티노는 우리에게 말한다. 펠라지안 논쟁 장치는 건물없이 남겨진 것이라고 말한다. 율리아노는 원죄에 대한 의문에 대해 새로움의 아우구스티노를 고발한다. 그의 선임자들의 작품을 읽고 또 읽도록 강요하면서. 그는 마니케이즘으로 되 떨어진 아우구스티노를 비난한다. 그러나 이 부담은 아우구스티노에게 결혼에 관해 그가 썼던 바를 완성할 기회를 준다. 혹자는 아우구스티노가 율리아노를 거슬러 많은 작품을 끝내지 못하고 남겨두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논쟁의 과정을 철두철미하게 거치는 동안 아우구스티노는 또 다른 부담을 지녀야 했다. 도나티스타들도 아리안들도 그를 평화롭게 한 순간도 놔두지 않았다. 413년 이민족이 잠시 로마를 장악한 이후, 그는 위대한 작품 ‘하느님의 도시’를 썼다. 그는 그 작품을 426년까지 마치지 못하였다. 그는 한 순간도 설교나 글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요한 1서에 관한 주해와 요한 복음 주해는 [De gestis Pelagii](416-417)와 거의 같은 시대에 섰다. 펠라지안을 거슬러서 쓴 두 작품 사이에 아우구스티노는 작은 주제들을 다룬 많은 편지들을 썼다. 그 편지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Vitalis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혹은 로마의 부제 Sixtus에게 보낸 편지다. 그는 432년에 교황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펠라지안의 사상에 호의를 보이고 있다. 어떻든 Vitalis에게 보낸 편지에서 펠라지안을 반대하는 12가지 주장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들은 이미 새로운 논쟁을 암시하고 있다.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dictionary3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펠라지오와 펠라지아니즘: 스토이즘과 그리스도교-뻴라지오에 대한 아우구스티노의 응답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8.3 뻴라지오에 대한 아우구스티노의 응답

    성 아우구스티노는 어떻게  영적 피조물들이 사랑에 의하여 조명되는가를 보여주면서 만일 그들이 그들의 창조주로부터 돌아서게 되면 그들의 단순성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 인간이 신적인 삶과 빛을 함께 나누는, 은총의 통합 원리는 단순성 안에 그 방향과 목적을 정신에 주는 무엇이다. 물론 아우구스티노는 여기서 자연과 초자연의 명확한 구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훗날 그를 해석하는 사람들을 잘못 이끌 수 있는 경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못한다. 어떻든 아우구스티노는 ‘자연적’ 선물들과 그리스교 고유의 의미로서 일컫는 그리스도의 은총 사이의 차이점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 대 사상가의 경우 그 체계는 내적 근거보다 가치가 적다. 아우구스티노는 항상 영적 피조물의 개념을 명확하게 하려는 첫 번째 존재임을 믿고자 하였다. 그가 은총의 그리스도교적 개념을 무엇으로 간주하였는지를 통하여 펠라지안들에게 어떻게 대답하였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그는 원죄와 죄에 떨어진 사람의 은총의 필요성을 다룬 그의 저서 “De peccatorum meritis et remissione” 이후로 “De spiritu et littera”라는 저서를 펴냈다. 그의 친구 Marcellinus의 질문에 대해 답을 쓰면서 이 책은 아우구스티노의 은총과 율법, 그리고 자유 의지와 은총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그의 사상을 피력하고 있다. 만일 한 인간이 선한 것을 행하려면 그는 무엇이 선인지 알아야할 뿐만 아니라 무엇이 선한 그것을 사랑해야 한다. 율법은 그 중요성을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할 수 없다. 오직 은총이 인간에게 선한 것을 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은총은 우리의 자유 의지를 치워없애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보증해준다. 은총은 오히려 우리가 정의를 살아한다는 것을 통해서 그 의지를 치유한다”.

            그 이후 작품 안에서 논쟁의 힘을 보이고 있다. 아우구스티노는 [De natura et gratia]라는 저서를 통하여 펠라지오의 [De Natura]라는 저서에 대하여 답변하고 있다. 이러한 답변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반복 인용되고 있다. “하느님은 불가능한 것을 명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분이 명령할 때 그분은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네가 하도록 주의를 기울이시고 네가 할 수 없는 것을 위하여 역시 기도하도록 하신다”. [De perfectione iustitiae hominis]라는 저서는 첼레스티노의 논문에 답변하기 위하여 쓰여진 것이다. 아우구스티노는 여기서 어떻게 죄에 떨어진 인간은 마치 가난한 절름발이가 천상에서 배려되어 있는 절름발이와 같은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미 그가 나중에 율리아노를 반대하여 사용한 매우 까다로운 논의 방법하에서 작업되었다.

            [De gestis Pelagii]는 그의 무죄선고를 받으려 했던 Diospolis 공의회에서의 펠라지오의 태도를 다루고 있다. 아우구스티노는 이 작품에 이어서 [De gratia Chiristi et peccato origianli]라는 책을 썼다. 여기서 그는 은총의 반대자들의 애매함을 언급하고 있다. 율리아노와의 논쟁은 Zosimo교황의 편지 이후 더욱 더 단조로웠다. 그러나 많은 관점으로부터 그의 사상을 설명할 기회를 주고 있다.

            율리아노는  매우 고집스러운 변증법자였다. 아우구스티노는 우리에게 말한다. 펠라지안 논쟁 장치는 건물없이 남겨진 것이라고 말한다. 율리아노는 원죄에 대한 의문에 대해 새로움의 아우구스티노를 고발한다. 그의 선임자들의 작품을 읽고 또 읽도록 강요하면서. 그는 마니케이즘으로 되 떨어진 아우구스티노를 비난한다. 그러나 이 부담은 아우구스티노에게 결혼에 관해 그가 썼던 바를 완성할 기회를 준다. 혹자는 아우구스티노가 율리아노를 거슬러 많은 작품을 끝내지 못하고 남겨두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논쟁의 과정을 철두철미하게 거치는 동안 아우구스티노는 또 다른 부담을 지녀야 했다. 도나티스타들도 아리안들도 그를 평화롭게 한 순간도 놔두지 않았다. 413년 이민족이 잠시 로마를 장악한 이후, 그는 위대한 작품 ‘하느님의 도시’를 썼다. 그는 그 작품을 426년까지 마치지 못하였다. 그는 한 순간도 설교나 글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요한 1서에 관한 주해와 요한 복음 주해는 [De gestis Pelagii](416-417)와 거의 같은 시대에 섰다. 펠라지안을 거슬러서 쓴 두 작품 사이에 아우구스티노는 작은 주제들을 다룬 많은 편지들을 썼다. 그 편지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Vitalis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혹은 로마의 부제 Sixtus에게 보낸 편지다. 그는 432년에 교황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펠라지안의 사상에 호의를 보이고 있다. 어떻든 Vitalis에게 보낸 편지에서 펠라지안을 반대하는 12가지 주장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들은 이미 새로운 논쟁을 암시하고 있다.

guest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