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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축복 복귀의 현상

  2. 제2축복 복귀의 현상  하나님의 제2축복은 아담과 해와가 참 부모로 완성되어, 선의 자녀를 번식함으로써 선 주권의 가정과 사회와 세계를 이루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는 타락되어, 악주권에 구속된 세계를 이루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편으로 종교를 세워 역사 하심으로써, 내적인 사탄 분립에 의한 심령복귀의 섭리를 하시고, 또 한편으로는 투쟁과 전쟁으로 외적인 사탄 분립을 하심으로써, 내 외 양면에 걸친 주권 복귀의 섭리를 해 내려 오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인류역사는 내 외 양면의 사탄 분립에 의한 복귀섭리로써, 장차 참 부모 되신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자녀를 찾아 하나님의 제2축복을 복귀해 온 것이므로, 종교를 중심한 문화권의 발전 사와 국가흥망사에 의해 나타난 내 외 양면에 걸친 하나님의 주권 복귀의 현상으로 보아, 현세가 바로 말세임을 알 수 있다.  먼저 우리는 문화권 발전사가 어떻게 흘러 내려와서, 현세를 말세에로 이끌어 가고 있는가를 알아보자.  문화권 발전사에 관한 문제는 이미 여려 차례 논술한 바이지만, 하나님은 타락인간에게 성현들을 보내시어, 선을 지향하는 인간의 본심을 따라 종교를 세우게 하심으로써, 그 종교를 중심한 문화권을 일으키셨다. 그러므로 역사상에는 많은 문화권이 일어났던 것이었으나,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이것들은 서로 융합 또는 흡수되어, 현세에 이르러는 기독교를 중심한 하나의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해 가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추세는 기독교의 중심인 예수님을 중심하고 모든 민족이 같은 형제의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제2축복이 복귀되어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은, 전 인류의 참 부모를 찾아 세워 가지고, 그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이 중생하여 선의 자녀가 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본연의 대가족의 세계를 복귀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곧 기독교가 복귀섭리의 목적을 완성할 중심종교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세에 이르러는 세계가 기독교를 중심하고 하나의 문화권으로 형성되어, 인류의 참 부모 되신 예수와 성신(전편 제7장 참조)을 중심하고 모든 인간이 선의 자녀의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제2축복 복귀의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우리는 현세가 바로 말세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국가흥망사는 어떻게 주권복귀의 목적을 향하여 흘러와서, 현세를 말세로 이끌어 가고 있는가를 알아보자.  투쟁이나 전쟁을 단순히 어떠한 이해관계나 이념의 상충에서 빚어지는 결과라고 보는 것은, 하나님의 근본섭리를 모르는 데서 일어나는 잘못이다.  인류역사는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탄을 중심한 악주권으로 출발하여 죄악의 역사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남아 있는 한, 그 역사의 목적도 어디까지나 사탄을 분립하여 하나님의 선주권을 복귀하는 데 있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악주권의 세계에 전쟁도 분열도 없다면, 그 세계는 그대로 영속할 것이요, 따라서 선주권은 영원히 복귀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타락인간에게 성현들을 보내시어, 선을 세우고 종교를 일으키심으로써, 보다 선한 주권으로 하여금 보다 악한 주권을 멸하게 하시면서, 점차적으로 하늘편 주권을 복귀하시는 섭리를 해 오신 것이다. 따라서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르기 위하여는 투쟁과 전쟁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하여는 후편에서 더욱 상세히 논하겠거니와 인류역사는 탕감복귀의 섭리노정을 밟아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국한된 시간권내에서만 보면, 악이 왕성한 때도 없지 않았으나, 결국 그것은 패망하여 보다 선한 판도 내에 흡수되곤 하였다. 그러므로 전쟁으로 인한 국가의 흥망성쇠는, 선주권을 복귀하기 위한 섭리노정에서 일어나는 불가피한 결과인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가나안 7족을 멸하셨던 것이고, 사울은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아멜렉족과  그에 속한 짐승들을 전멸시키지 않았다가 엄벌을 받았던 것이다(사무엘상 15장 18 – 23절1)). 하나님은 이와 같이 직접 이민족들을 멸할 것을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선민이었던 북조 이스라엘도 악으로 돌아갈 때, 아낌없이 그들을 앗시리아에 내주시어 멸망케 하셨던 것이다(열왕기하 17장 23절2)). 하나님이 이와 같이하셨던 것은, 오직 악주권을 멸하시고 선주권을 복귀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같은 하늘편 안에서의 개인적인 투쟁은 선주권 자체를 파괴하는 결과가 되므로 악이 되지만, 선주권이 악주권을 멸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므로 이것은 선이 된다. 이와 같이 사탄 분립을 위한 투쟁의 역사는, 점차적으로 땅과 재물을 세계적으로 빼앗아 하늘편 주권으로 복귀하는 데 이르렀고, 인간에 있어서도 개인으로부터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로 하늘편 기대를 넓혀, 오늘날에는 이것을 세계쩍으로 복귀하는 데 이르렀다. 이렇듯 사탄분립을 위한 섭리가 씨족주의시대에서 출발하여, 봉건주의시대와 군주주의시대를 거치어 민주주의시대로 들어오게 된 오늘날에 와서는, 이 인간세계를 하늘편 주권을 세우는 민주주의세계와, 사탄편 주권을 세우는 공산주의세계의 두 세계로 분립하여 놓았다.  이와 같이 사탄을 중심한 악주권으로써 출발한 인류 역사는, 한편으로 종교와 철학과 윤리에 의하여 선을 지향하는 인간의 창조본성이 환기됨에 따라, 점차 악주권에서 선주권을 위한 세력이 분립되어, 마침내 세계적으로 대립되는 두 주권을 형성하는데 이른 것이다. 그런데 목적이 상반되는 이 두 주권이 결코 공존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인류역사의 종말에 이르르면, 이것들은 반드시 한 점에서 교차되어, 이념을 중심하고 내적으로 상충하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군사력을 중심하고 외적으로 전쟁을 하여, 결국 사탄주권은 영원히 파멸되고, 하늘편 주권만이 영원한 하나님의 단일주권으로서 복귀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세는 선주권을 지향하는 하늘편 세계와 사탄을 중심한 악주권의 세계가 대결하여, 서로 교차되고 있는 때이므로 또한 말세인 것이다.  이와 같이 악주권에서 선주권을 분립하여 나온 인류역사는, 마치 흐르는 흙물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흙은 가라앉고 물은 위에 뜨게 되어, 나중에는 흙과 물이 완전히 분리되는 것과 같이,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악주권은 점차 쇠망의 길로 내려오고, 선주권은 융흥의 길로 올라가게 되어, 역사의 종말에 이르러 이 두 주권은 얼마동안 교차되었다가, 결국 전자는 영원히 멸망하고 후자는 하나님의 주권으로서 영원히 남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선 악 두 주권의 역사노정이 교차되는 때가 말세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 때는 아담과 해와가 타락된 장성기 완성급의 시기를 탕감복귀하는 때이므로, 마치 에덴동산의 인간시조가 어디에다 중심을 두어야 할지 모르고 혼돈되었던 것과 같이 모든 인간들도 사상의 혼돈을 일으키어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복귀섭리노정에 있어 이와 같이 말세가 되어, 선 악의 두 주권이 교차되었던 때는 여러 차례 있었다. 위에서 이미 논술한 바와 같이, 노아 때나 예수님 때도 말세여서 이 두 주권은 서로 교차되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때마다 인간이 그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여 악주권을 멸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주권분립의 섭리를 다시 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 재림기에 있어 다시 한번 두 주권의 교차가 있게 되는 것이다. 복귀섭리노정은 이렇듯 주기적으로 비슷한 나선상을 반복하면서 원형과정을 거쳐 창조목적을 지향하여 내려왔기 때문에, 역사상에는 필연적으로 동시성의 시대가 형성되었던 것이다(후편 제3장 제1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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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축복 복귀의 현상

   1. 제1축복 복귀의 현상  이미 창조원리에서 논술한 바,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에게 약속하셨던 제1축복은 바로 그들이 개성을 완성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타락인간을 개성을 완성한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해 나오신 하나님의 섭리가 그 최종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은, 아래와 같은 여러 현상으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다.  첫째로 타락인간의 심령이 복귀되어 가는 것으로 보아 그러하다. 인간이 완성되면 하나님과 완전히 심정적인 일체를 이루어, 서로 교통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함은 이미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그러므로 아담과 해와도 불완전한 상태이기는 하였지만, 하나님과 일문일답하던 단계에서 타락되어, 그의 후손은 하나님을 모르는 데까지 떨어져 버린 것이다. 이렇게 타락된 인간이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을 받게 됨에 따라 점차 그 심령이 복귀됨으로써, 말세에 이르러서는 사도행전 2장 17절1)에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 이들은 꿈을 꾸리라”고하신 말씀대로,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과 영통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세에 이르러서는 영통하는 성도들이 비 온 뒤의 죽순 같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아, 현세는 말세이기 때문에 인간이 개성을 완성하여, 하나님의 제1축복을 복귀할 수 있는 시대에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 타락인간이 본심의 자유를 복귀해 가고 있는 역사적인 귀추가 더욱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사탄의 주관 권에 들어, 본심의 자유가 구속을 받게 됨으로써,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나 현세에 이르러서는 육신의 생명을 버리고라도, 본심의 자유를 찾으려는 심정이 고조되고 있으니, 이것은 말세가 되어 개성을 완성함으로써, 타락인간이 사탄에게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제1축복을 복귀하여, 하나님 앞으로 자유로 나아갈 수 있는 시대에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타락인간의 창조본연의 가치 성이 복귀되어 가는 현상으로 보아 더욱 그러하다는 것을 알 수있다. 인간의 창조본연의 가치를 횡적으로 보면 누구나 동등하기 때문에, 그 가치가 그다지 귀중한 것 같이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을 중심하고 종적으로 보면, 각 개성은 가장 존귀한 천주 적인 가치를 제각기 띠고 있는 것이다(전편 제7장 제1절).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이러한 가치를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현세에 이르러 민주주의사상이 고조됨에 따라 인간이 노예 해방, 흑인 해방, 약소민족 해방 등을 주장하며, 인권옹호와 남녀평등과 만민평등을 부르짖음으로써, 창조본연의 개성의 가치를 최고도로 추구하는 데 이르렀으니, 이것은 바로 말세가 다 되어 타락 인간이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제1축복을 복귀할 수 있는 시대에로 들어가고 있음을 실증하는 것이다.  넷째로 타락인간의 본성의 사람이 복귀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성한 세계는 완성한 사람 하나 모양의 세계로서, 그 세계의 인간은 모두 하나님과 종적으로 일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인간 상호간에 있어서도 횡적으로 일체를 이루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계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써 종횡으로 얽히어 한 몸같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종적인 사랑이 끊어졌기 때문에 인간들 사이의 횡적인 사랑도 따라서 끊어지게 되어, 인류역사는 투쟁으로써 엮어져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현세에 이르러서는 박애주의 사상이 고조되면서 인간이 점점 그 본성애를 찾아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현세는 하나님의 제1축복을 복귀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하고 개성을 완성할 수 있는 말세에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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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와 현세

   제4절 말세와 현세  예수님께서 장차 있을 베드로의 죽음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에, 이 말씀을 듣고 있던 베드로가 요한은 어떻게 될 것인 가고 질문하였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가 무슨 상관이냐”(요한복음 21장 18 – 22절)고 대답하셨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들은 사도들은 모두 ‘요한’의 생전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마태복음 10장 23절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스라엘’의 모든 동리를 다 다니지 못하여 인자가 오리라”고하셨고, 마태복음 16장 28절에는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말씀들에 의하여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러했거니와,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성도들은 저마다 자기 당대에 예수님이 오실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말세라는 절박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말세에 대한 근본 뜻을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복귀섭리의 목적으로 세우고 이루어 나오시던 3대 축복이 복귀되어 가는 현상으로 보아, 현세가 바로 말세임을 입증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마태복음 24장 32절)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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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의 징조에 관한 성구

   2. 말세의 징조에 관한 성구  이미 위에서 논한 바대로, 많은 기독교 신도들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말세에는 천지에 이변이 일어나며, 인간사회에도 현대인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변이 생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인류역사가 하나님의 창조본연의 세계를 복귀해 가는 섭리역사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말세의 징조는 실제에 있어서 그 문자대로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말세에 관한 성서의 모든 기록은 각각 무엇을 상징한 것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1) 하늘과 땅을 멸하고(베드로후서 3장 12절, 창세기 6장 13절)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심(요한계시록 21장 1절, 베드로후서 3장 13절, 이사야 66절 22절)  창세기 6장 13절을 보면 노아 때도 말세가 되어 땅을 멸한다고 하셨지만, 사실상 멸하지는 않으셨다. 전도서 1장 4절에 “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라고 하신 말씀이나, 시편 78편 69절에 “그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으며”라고 하신 말씀을 보더라도, 땅은 영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이 영원하시니, 그의 대상도 영원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대상으로 창조된 땅도 영원한 것이 아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사탄으로 말미암아 파멸되어 없어질 세계를 창조하시고 기뻐하셨을 리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말씀은 무엇을 비유하신 것인가 ?  한 국가를 멸한다는 것은 그의 주권을 멸한다는 것을 의미함이요, 또 새 나라를 건설한다는 것은(요한계시록 21장 1절) 새 주권의 나라를 세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과 땅을 멸한다는 것은 그를 주관하고 있는 사탄주권을 멸한다는 뜻이요, 또 하늘과 새 땅을 세운다는 것은 예수님을 중심한 하나님 주권하의 새로운 천지를 복귀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2, 하늘과 땅을 불로써 심판하심(베드로후서 3장 12절)  베드로후서 3장 12절을 보면 말세에는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진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말라기 4장 1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 때도 그가 심판 주로 오셔서(요한복음 5장 22절, 요한복음 9장 39절) 불로써 심판하신다고 예언되어 있고, 또 누가복음 12장 49절에는 예수님이 불을 땅에 던지러 오셨다는 말씀도 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예수님이 불로써 심판하신 아무 흔적도 우리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무엇을 비유하신 것임에 틀림없다. 야고보서 3장 6절에 “혀는 곧 불이요”라고 한 말씀에 의하여, 불 심판은 곧 혀의 심판이요, 혀의 심판은 곧 말씀심판을 의미하는 것이니, 불 심판은 곧 ‘말씀’심판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말씀’심판에 관한 성구의 예를 찾아보자. 요한복음 12장 48절에는, 예수님을 저버리고 그의 말씀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예수님이 하신 그 ‘말씀’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고 하였으며, 데살로니가후서 2장 8절에는,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 즉 말씀으로 그를 죽이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사야 11장 4절에서는, 그 입의 막대기(혀)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말씀)으로 악인을 죽이 리라고도 말씀하였으며, 요한복음 5장 24절을 보면 예수님이 자기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다고 하신 말씀이 있다. 이와 같이 불 심판은 곧 ‘말씀’심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말씀’으로 심판하시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 요한복음 1장 3절에 인간은 ‘말씀’으로 창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인간 시조가 ‘말씀’의 실체로서 ‘말씀’의 목적을 완수해야 할 것이었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타락되어 ‘말씀’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또다시 ‘말씀’에 의하여, 타락인간을 재창조하심으로써 ‘말씀’의 목적을 이루려 하셨으니, 이것이 곧 진리(성서)에 의한 복귀섭리인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또 ‘말씀’ 완성 자로 재림하셔서, 스스로 ‘말씀’심판의 기준이 됨으로써, 모든 인류가 어느 정도 ‘말씀’의 목적을 이루었는가를 심판하시는 것이다.  이렇듯 복귀섭리의 목적이 ‘말씀’의 목적을 이루려는데 있으므로, 그 목적을 위한 심판도 ‘말씀’으로 그의 기준을 세워 행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누가복음 12장 49절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라고 씌어 있는 바,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의 실체로 오셔서(요한복음 1장 14절) 생명의 ‘말씀’을 이미 선포하셨으나, 유대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보시고 한탄하여 하신 말씀이다.    3. 무덤에서 시체가 일어남(마태복음 27장 52절,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  마태복음 27장 52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에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것은 썩어 버린 그들의 육신이 다시 일어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전편 제5장 제2절 3). 만일 영계에 머물러 있던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성서의 문자 그대로 무덤에서 살아 나와 성에 있는 많은 사람에게 보였다면,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고 있었을 것이므로 반드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증거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때 이미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셨을지라도, 그들의 증언을 듣고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었을 것인가 ? 그리고 그렇듯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육신을 쓰고 무덤에서 다시 일어났다면, 그 후의 그들의 행적에 관한 기사가 반드시 성서에 남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성서에는 그들에 관한 아무런 기사도 달리 씌어 있지 않다.  그러면 무덤에서 살아 나온 것은 무엇이었던가 ? 그것은 마치 ‘모세’와 ‘엘리야’의 영인 체가 변화산상에서 예수님 앞에 나타났었던 것처럼(마태복음 17장 3절), 구약시대의 영인들이 재림 부활을 위하여, 지상에 재림한 것을 영안으로 보고(전편 제5장 제2절 3) 기록한 말씀이다.  그러면 무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열려진 낙원에서 보면,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머물러 있던 영형 체급 영인의 세계는 보다 어둠의 세계이기 때문에, 그 곳을 가리켜 무덤이라고 하였다. 구약시대의 영인들은 모두 이 영계에 머물러 있다가 지상성도들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4. 지상인간들이 끌어 올리워 공중에서 주를 영접함(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공중은 공간적인 하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대개 성서에 있어서 땅은 타락된 악주권의 세계를 의미하고, 하늘은 죄가 없는 선 주권의 세계를 의미한다. 이것은 어디든지 계신 하나님은 땅에도 아니 계시는 곳이 없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태복음 6장 9절)라고 하셨고, 예수님은 땅에서 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요한복음 3장 13절)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사탄주권을 물리치시고, 지상천국을 복귀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선 주권의 세계에서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5.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짐(마태복음 24장 29절)  창세기 37장 9절 이하를 보면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한번째인 ‘요셉’이 꿈을 꾸었는데, 그 내용에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요셉’이 커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을 때, 과연 이 꿈대로 그 부모와 형제들이 가서 엎드려 절을 하였다.  이 성경 말씀을 보면 해와 달은 부모를 상징했고, 별들은 자녀들을 상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기독론에서 논술한 바와 같이, 예수와 성신은 ‘아담’과 ‘해와’대신 인류를 중생해 주실 참부모로 오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해와 달은 예수와 성신을 상징하고, 별들은 자녀된 성도들을 상징한 것이다. 성서에서 예수님을 참 빛으로 비유한 것은(요한복음 1장 9절), 그가 ‘말씀’으로 육신을 이루신 분으로 오셔서(요한복음 1장 14절) 진리의 빛을 발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말하는 햇빛은 예수님이 주신 말씀의 빛을 이름이며, 달빛은 진리의 신으로 오신 성신(요한복음 16장 13절)의 빛을 이름이다. 그러므로 해와 달이 빛을 잃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성신에 의한 신약의 말씀이 빛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신약의 ‘말씀’이 빛을 잃게 될 것인가 ? 마치 예수님과 성신이 어셔서 구약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신약의 말씀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구약의 말씀이 빛을 잃게 되었던 것과 같이,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신약의 말씀을 이루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기 위한(요한계시록 21장 1절) 새 말씀을 주시게 되면(본장 제 5절 1 참조), 초림 때에 주셨던 신약의 말씀은 그 빛을 잃게 될 것이다. 여기에 ‘말씀’이 그 빛을 잃는다는 것은 새 시대가 옴으로 말미암아, 그 말씀의 사명기간이 지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별들이 떨어진다는 것은 말세에 있어서의 성도들이 모두 실족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메시아’의 강림은 열망해 오던 유대교 지도자들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반대하다가 전부 떨어진 것 같이, 예수님의 재림을 열망하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그 날에 실족하게 됨으로써, 그와 같이 떨어지게 될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후편 제6장 제2절 2 참조).  누가복음 18장 8절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으나”하신 말씀이나, 마태복음 7장 23절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그가 잘 믿는 성도들을 보시고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책망하시면서, “떠나가라”고 배척하게 될 것으로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와 같이 끝날의 성도들이 불신으로 실족하게 될 것을 아시고 경고하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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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

     제3절 말세      1. 말세의 의의  하나님이 인간조상에게 허락하셨던 3대 축복은 그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중심하고 이루어지지 않고, 사탄을 중심하고 비원리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위에서 논술하였다. 그런데 악으로 시작된 인류역사는 실상 하나님의 복귀섭리 역사이기 때문에, 사탄주권의 죄악세계는 메시아의 강림을 전환점으로 하여, 하나님을 중심하고 3대 축복을 이룬 선주권의 세계로 바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탄주권의 죄악세계가 하나님 주권의 창조이상세계에로 교체되는 시대를 말세라고 한다. 따라서 말세는 지상지옥이 지상천국으로 바뀌어지는 때를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는 지금까지 기독교 신도들이 믿어온대로의 천변지이가 일어나는 공포의 때가 아니고, 창세이후 유구한 역사노정을 통하여 인류가 유일한 소망으로 바라고 나왔던 기쁨의 한 날이 실현되는 때인 것이다. 상세한 것은 후편 제1장으로 미루거니와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한 이래, 죄악세계를 청산하고 창조본연의 선의 세계를 복귀하시려는 섭리를 여러 차례 하셨다. 그러나 그때마다 인간이 그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여,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곤 하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말세가 여러 번 있었던 것 같은 사실을 우리는 성서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1) 노아 때도 말세였다.  창세기 6장 13절의 기록을 보면 노아 때도 말세였기 때문에, 끝날 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어찌하여 노아 때가 말세였던가 ? 하나님은 인간시조가 타락함으로써 시작된 사탄을 중심한 타락세계를, 1600년의 죄악 사를 일기로 하여 홍수심판으로 멸하시고, 하나님만을 신봉하는 노아가정을 세우심으로써, 그 믿음의 터 위에 하나님주권의 이상세계를 복귀하려 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노아 때가 말세였던 것이다(후편 제1장 제2절 참조). 그러나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의 타락행위로 인하여, 그들이 인간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창세기 9장 22절).    2) 예수 때도 말세였다.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려는 뜻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은 절대적이어서 변할 수 없기 때문에(전편 제6장), 노아를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하나님은 다시 다른 선지자들을 부르시어 믿음의 터를 닦으시고, 그 터 위에 예수님을 보내심으로써, 사탄을 중심한 죄악의 세계를 멸하시고 하나님을 중심한 이상세계를 복귀하려 하셨다. 따라서 예수님 때도 말세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스스로 심판 주로 오셨다고 말씀하셨고(요한복음 5장 22절), 그 때도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말라기 4장 1절)이라고 예언되어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창조이상세계를 복귀하려고 오셨던 것이었으나, 유대인들이 그를 불신함으로써 인간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뜻도 이루어지지 않고 재림 때에로 다시 연장되었다.    3) 예수의 재림 때도 말세다.  유대 민족의 불신을 당하게 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써 영적인 구원만을 이루셨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재림하신 후에야 영 육 아울러 구원섭리의 목적을 완수하여(전편 제4장 제1절 4) 지상천국을 복귀하시게 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 때도 또한 말세인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재림 때)에도 그러하리라”(누가복음 17장 26절)고 말씀하셨고, 그가 재림하실 때도 말세가 되어 천지에 이변이 일어날 것으로 말씀하셨던 것이다(마태복음 24장 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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