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사업에 종사하는 선교사와 선교지역을 정신적 물질적으로 돕기 위해 교회가 정한 주일. 매년 10월의 끝에서 2번째 주일이 전교주일이다. 전교주일은 1822년 프랑스의 리용에서 전교회(傳敎會)가 창설된 이후 신자들에게 전교열을 고취시키고 전교회원의 모집을 위해 설정되어 1922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전교회가 교황청 사업으로 승격되면서 전 세계 교회로 확대되었다. 그 뒤 교황 비오 11세의 뒤를 이은 비오 12세, 요한 23세 등도 대대적으로 전교사업을 권장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전교사업이 중요하게 거론되어 1965년 12월 7일 <교회의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Ad Gentes)이 바오로 6세에 의해 반포되었다. 한국 교회에서는 1970년 주교회의 임시총회에서 전교주일이 들어 있는 10월을 한국 교회 고유의 ‘전교의 달’로 정하였다. 전교주일에는 세계 각 교회에서 전교사업을 위한 특별헌금이 실시되고 기도회와 모금운동이 전개된다. 특히 로마에서는 각 신학교와 수도원이 총동원되어 이날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대규모의 기도회와 모금운동이 전개된다.
전교연맹 [한] 傳敎聯盟 [영] Pontifical Missionary Union [관련] 교황청전교원조회
교황청 전교원조회 산하의 상설단체. 성직자와 수도자들에게 전교활동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촉구, 촉진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한국지부는 1969년 10월 13일∼15일에 개최되었던 주교회의에서 발족되었고, 초대 지부장에는 윤공희 대주교, 2대 지부장에는 최재선 주교, 3대 지부장은 정은규 신부가 맡고 있다. (⇒) 교황청전교원조회
전경협 [한] 全敬俠
전경협(1790∼1839).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동정녀(童貞女). 세례명 아가다. 서울의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여읜 후 혼기에 이르러 오빠가 결혼을 강요하자 이를 뿌리치고 궁에 들어가 궁녀가 되었고 궁녀생활 주 가까이 지내던 박희순(朴喜順)을 따라 입교하였다. 그 후 박희순이 자유롭게 천주교를 봉행하기 위해 궁을 떠나자 자신도 병을 칭탁하고 궁을 나와 교우들의 집에 머무르며서 오직 신앙생활에만 전념하였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자 4월 15일 자신의 처소에 피신해 있던 박희순 · 박 큰아기(朴大阿只)자매와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과 형조에서 궁녀의 신분으로 국법에서 금하는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혹형과 고문을 당해야 했으나 이겨냈고, 또 조그마한 관직에 있던 오빠가 관리를 매수하여 독사(毒死), 장사(杖死)시키려 했으나 이도 이겨냈다. 이렇게 혹독한 5개월간의 옥고를 참아 내 후 9월 26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그 후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