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광 [한] 後光 [라] halos [영] halo

그리스도교 예술에서 그리스도나 성인의 머리 부분을 둘러 싼 광휘. 하느님의 신성(神性)이나 거룩함, 은총, 영광, 인간의 윤리적 탁월성 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이다. 이는 그리스도 이전 시기에 영웅이나 성현이 지닌 권능과 위엄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는데 그리스도교 예술에서 이를 채용한 것이다.

후광은 이로써 나타내고자 하는 대상에 따라 세 가지 기하학적 형태로 사용되었다. 삼각형은 성삼위(聖三位), 하느님 특히 성부를 나타낼 때 사용하였고, 원형은 그리스도와 복된 동정녀 마리아와 성인에게 사용하였는데 특히 그리스도에게는 원형 안에 십자 표시를 아울러 그려 넣기도 하였다. 사각형은 생존자에게 적용하였다. 원형은 하늘을, 사각형은 땅을 상징하였다.

후광은 광배(光背, aureola)와 구별된다. 광배는 그리스 · 로마 예술에서 여러 신(神)들과 영웅들의 신성과 탁월성을 표현하였는데 이용되었으며 그리스도교 예술에서는 하느님의 신성을 상징하므로 성삼위와 그리스도에게만 사용되었으나 예외적으로 동정녀 마리아를 나타내는데 응용되었다. 형태에 있어서 후광이 인물의 머리 부분을 둘러싸고 있는데 대하여 광배는 온몸 전체를 둘러싸도록 그려져 있다. 광배의 색체는 대체로 초기예술에는 흰 색이, 르네상스 예술에는 황금빛과 푸른색으로 된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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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학교 [한] 曉星學校

1923년 무세(Mousset, 文濟萬) 신부가 해성학교 여자부를 분리하여 설립한 초등교육기관으로 효성초등학교, 효성여자중고등학교, 효성여자대학교의 모체가 된 학교다. 1925년 학제 개편에 따라 효성보통학교로, 1945년 효성국민학교로 교명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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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인쇄소 [한] 曉星印刷所

전교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대구 대교구가 설치, 운영하는 인쇄기관으로 1975년 1월 10일 설립되었다. 대구 대교구청 내에 소재하고 있으며 활판인쇄기 8절 1대, 4절 1대, 재단기 2대 등 주로 활판인쇄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대구대교구보>, 교구 내 각 단체, 본당에서 발간되는 각종 인쇄물의 인쇄를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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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여자대학교 [한] 曉星女子大學校 [영] Hyo-song Women’s University

대구 대교구 천주교회 유지 재단에서 운영하는 여자 고등교육기관. 1952년 4월 10일에 2년제 여자대학으로 설립 인가를 받아 음악과, 문학과, 가정과의 3개 학과로, 대구시 남산동 천주교회 건물을 이양받아 개교식을 거행하고, 이듬해인 1953년에는 4년제 대학으로 승격 인가를 받았으며 약학과가 새로 생겨, 1956년 봄 제1회 졸업식을 가져 38명의 여학사를 배출하였다.

1956년 11월에는 대구시 대명동의 구교사에서 대구시 남구 봉덕동 1155번지 현 교사를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이후 날로 발전을 거듭, 새로운 교사를 건축하는 한편 학칙을 변경하여 1972년에 대학원 설립인가를 받았고, 1980년 10월에는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어 문리과대학, 법경대학, 가정대학, 약학대학, 사범대학, 예술대학의 6개 단과대학과 대학원을 갖게 되었고 초대 총장에는 창설자 전석재 신부가 취임하였다. 현재 32년의 역사를 지니게 된 동대학은 그 동안 28회에 걸쳐 총 8,741명의 여학사를 배출하고 1974년에 제1회 석사학위 수여식을 가진 이래 10회에 걸쳐 272명의 석사를 배출함으로써, 총 9,013명의 여성인재를 양성하였다.

이 나라 여성들에게 천주의 어머니시며 인류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덕성을 귀감삼아 여성의 인격을 도야하고 여성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동대학은 짧은 시일 내에 종합대학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여 남한에서의 명문교로 손꼽히게 되었고, 날로 늘어나는 교세에 대비하여 캠퍼스 이전을 위해 현재 하양 캠퍼스 건설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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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 [한] 孝

유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德目)의 하나로 부모를 공경하고 섬기는 자식의 정성된 마음을 효라 한다. 효에 대한 사상은 공자, 맹자를 이은 동양의 여러 학자들에 의해 계승, 발전되어 동양 여러 나라의 지배적인 사상체계를 형성하였다. 효의 근본정신은 생명을 전수해 준 부모에 대한 보본(報本)이며, 부모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보은(報恩)으로 ≪효경≫(孝經)은 효를 다음과 같이 예시하고 있다. 즉 효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를 상하지 않게 잘 보존하여 부모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데에서 시작되고(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매일 부모를 극진히 모셔 부모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하며, 인격을 도야하여 이름을 떨침으로써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림과 동시에 부모의 이름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 그 마지막이라 하였다(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생전(生前)에 행했던 효는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도 계속된다. 생시와 같이 부모가 물려주신 신체를 잘 보존하고, 이를 후손에게 전수해 줌으로써 선조(先祖)의 생명을 보전한다. 또한 부모의 신상(神像)이 모셔져 있는 사당(祠堂)에 부모가 살아계신 때와 같이 문안드린다. 기일(忌日)이 되면 제사(祭祀)를 드린다. ‘입신양명’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효는 유교를 지배이념으로 하는 국가나 사회의 기본윤리로 숭상되었고, 효의 사상은 충(忠)의 사상으로 발전되어 유교사회를 떠받치는 정신적인 지주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한편 효를 근간으로 하는 조선사회에 전래된 천주교는 효의 문제를 둘러싸고 조선왕조와 많은 갈등을 겪었다. 당시 조선의 천주교회는 조상숭배가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한 십계명에 위배되는지 아닌지를 두고 토론을 거듭하다가 이러한 사실을 북경의 주교 구베아(Gouvea, 湯士選)에게 문의하였다. 구베아 주교는 교황 글레멘스 11세의 칙서 와 교황 베네딕토 14세의 칙서 에 근거하여 조상제사에 미신적인 요소가 내포되어 있으므로 금지함이 마땅하다는 서한을 조선 교회에 보냈다. 이에 따라 조선 교회는 조상제사를 미신행위라 하여 배척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전라도 진산(珍山)에 사는 윤지충(尹持忠)과 그의 외사촌 권상연(權尙然)이 제사를 폐하고 신주(神主)를 불살라버린 폐제훼주(廢祭毁主)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따라 천주교를 반대하던 조선의 관료들은 천주교를 “아비도 임금도 모르는 불효불충(不孝不忠)한 무리들”이라 비난하고, 천주교를 ‘무부무군’(無父無君)의 교(敎)라고 하여 박해의 주요한 구실로 삼았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부모에 대한 효도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부모를 공경하라”고 천주십계를 통하여 가르치고 있다. 다만 부모에 대한 효도, 즉 부모에 대한 사랑도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나에게 올 때 자기 부모나 형제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가 14:16)는 신약성서의 가르침은 부모를 미워하라는 말이 아니고 부모에 대한 사랑이 부모에 대한 사랑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세상만물을 비롯하여 부모님마저 창조하신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고양되지 않으면 안 됨을 나타내고 있는데 불과한 것이다.

[참고문헌] 崔奭祐神父華甲紀念 韓國敎會史論叢, 韓國敎會史硏究所, 1982 / 崔奭祐, 韓國敎會史의 採究, 韓國敎會史硏究所,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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