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 [한] 趙綱

조강(1832∼1869). 순교자. 세례명 마태오. 충청도 진천(鎭川) 출신. 원래 그의 집안은 경기도 광주(廣州)에서 대성(大姓)을 이루고 살았는데 조부(祖父)가 남인학자(南人學者)들과 교유(交遊)하면서 천주교에 입교한 관계로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자, 교우촌을 찾아 피신한 곳이 진천 배티[栢谷里]였고 1866년까지 3대에 걸쳐 이곳에서 살았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진천에서 잡혔으나 포졸들이 한 눈을 파는 사이 도주하여 경기도 용인군 죽산 용천리(竹山 湧泉里) 마을로 피신하였는데 그 이듬해에 아내와 나이 어린 동생과 함께 다시 잡혔다. 그의 동생 조종(趙綜)은 나이가 어려 석방되었지만, 문전걸식을 하면서 3개월 동안이나 옥에 갇힌 형과 형수에게 얻어온 밥을 갖다 주었으므로, 옥리들도 감탄하여 어린 것을 잘 돌보아 주었다고 한다. 조강은 1869년 8월 27일(음) 아내와 같이 죽산에서 참수 치명하니 그의 나이 30세였고 그의 아내 서(徐)씨는 27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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젯세마니 [관련] 겟세마니

⇒ 겟세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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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라시오 [라] Gelasius

Gelasius, 1세(?∼496). 교황(재위 : 492∼496). 로마태생(혹은 아프리카 태생이라고도 함). 교황 취임 후에 선임자인 성 펠릭스 3세의 종교정책을 계승하여 반단성론적(反單性論的) 정책을 취하였다. 또한 마니교, 펠라지우스주의와도 투쟁하고, 아카키오스(Akakios)의 시스마(교회분리, 484∼518년)에 대해서는 콘스탄티노플 및 황제에 대한 로마교황권의 우위를 주장하였다. 또한 성찬(聖餐)에 대해서는 빵과 포도주에 모든 신도가 참여해야 한다고 하였다. 다수의 저서가 있는데 그 중에는 그리스도 양성론(兩性論)을 옹호, 주장한 ≪에우티케스 및 네스토리우스 박론(駁論)≫(Adversus Eutyches et Nestorium)이 있다. 그는 이 이원론(二元論)적인 입장에서 아나스타시우스 황제에게 보낸 서한에서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를 양권론(兩權論)으로 정식화하였는데, 즉 제권(帝權)과 성권(聖權)을 구별하였고 그래서 동로마제국의 양권력을 일원화시키는 데 반대하였다. 그밖에 다수의 ≪서한집≫이 있는데 그 대부분은 아리우스주의, 펠라지우스주의, 마니교에 관한 것과 교회훈련에 관한 것들이다. ≪Decretum Gelasianum de libris recipiendis et non recipiendis≫는 그의 저서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으나, 오늘날에는 그것을 인정치 않는 사람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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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미사 [한] 祭獻∼ [관련] 성찬의 전례

한국 천주교회 초기 때부터 쓰여온 용어의 하나로서, 말씀의 전례(典禮)가 끝난 다음 계속되는 본 미사의 제일 중요한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제물의 봉헌과 축성과 영성체로 이루어지는 것이 ‘제헌미사’ 또는 ‘성찬의 전례’(liturgy of the Eucharist)라고 하며, 교회는 이 미사 부분을 최후의 만찬 때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동에 대응하도록 특히 세 단계로 배열하고 있다. 제물로서의 빵과 포도주의 봉헌은,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서 하신 것이고, 성 변화에서 봉헌물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 영성체를 통해 신자는 성(聖) 목요일에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주신 것과 동일한 그리스도의 몸을 받게 된다. 오늘날에는 성찬의 전례라고 부른다. (⇒) 성찬의 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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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경 [한] 祭獻經 [라] offertorium [영] offertory [관련] 봉헌송

가톨릭 교회의 제헌(祭獻)미사에서 사제가 면병(麪餠)과 포도주를 제단에 바칠 때 봉송하는 경문을 가리키는 옛말이다. 성찬의 전례(典禮)에서 빵과 포도주를 봉헌(奉獻)함은,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서 하신 것들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이를 ‘봉헌송’(奉獻誦)이라고 한다. (⇒) 봉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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