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한] 存在 [라] esse, ens [영] being, presence [독] Sein, Existenz

존재가 귀속시키는 것은 존재자(存在者, ens)이다. 존재는 최고의, 가장 보편적인, 여러 개념에 환원될 수 없는 개념의 내용을 표시한다. 존재의 영역은 온갖 것을 포괄하며, 특수영역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콜라학(學)에서는 ‘존재의 초월성’이라고 불렀고, 그런 뜻에서 존재는 초월적이다. 가톨릭의 입장에서 보는 존재관(存在觀)에 한정시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존재는 온갖 존재자가 귀착되고, 그것에 바탕하여 인식되는 것으로서 근원적인 개념이다. ens는 모든 실재성(reality)을 가리키는 보통 용어로서, 인간의 지성(知性)에 의하여 인식되는 갖가지 실재성에 따라서 우선 보편적인 존재(esse commune)와 ‘존재 그 자체’(ipsum esse) 곧 절대적인 존재인 하느님(신)으로 구별된다. 다시 말해, ‘ens ab alio’는 ‘타자(他者)에 의한 존재’ 곧 다른 원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 = 피조물(被造物)이며, ‘ens a se’는 ‘자존’(自存) 곧 자기에 의한 존재자, 자기의 존재의 원인 = 하느님(신)이다.

존재자는 존재자인 한에 있어 어떤 존재법칙에 따르게 마련인데, 스콜라학에서는 근본적인 존재 법칙 말고도, 모든 존재에 귀속하는 ‘초월적인 규정’으로 지칭되는 하나[一], 참[眞], 선(善)을 들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는 존재자가 통일적인 본질을 가져야 하며, ‘참’은 존재자가 지성에 의하여 인식될 수 있어야 한고, ‘선’은 존재자가 가치노력에 대상이 되어야 함을 의미하였다.

존재자의 존재의 기본적인 분류에서 첫 번째로 구별되어야 할 것은 실존(實存, Dasein, existentia)과 사존(斯存, Sosein, essentia)이며, 둘째 번으로 구별되어야 할 것은, 자존유(自存有, substantia, 實體)와 타존유(他存有, accidens, 偶有)이고, 세 번째로는 현실유(現實有, actus)와 가능유(可能有, potentia)이다. 존재자의 존재를 경험상으로 볼 때에는 네 가지의 근본적인 종류로 나누어진다. 즉 무기적(無機的) 존재, 유기적(有機的) 존재, 감성적(感性的) 존재, 정신적 곧 영적(靈的) 존재가 그것인데, 이것은 ‘존재고도’(存在高度)라고 할까, 즉 존재의 완전도(完全度)가 위에 말한 차례에 따라 차차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만 한다. 이상에서 추려내면, ‘ens in se’는 ‘자기내유’(自己內有)이며, ‘ens per se’는 ‘자기 자신에 의한 존재’ 곧 본성(本性)에 의한 존재 또는 한정될 수 없는 존재인데, 모두가 자존유 곧 실체이다. ‘ens entis’는 ‘존재의 존재’ 즉 그 자체로는 실재할 수 없고, 실체 속에서만 실재할 수 있는 것, 따라서 ‘우유’(偶有) 곧 타존유이다. 유한적인 존재의 궁극의 근거로서 무한의 영적인 존재인 하느님을 어림잡을 수 있다.

스콜라학의 용어인 ‘아날로기아 엔티스’(analogia entis)란 자연 즉 피조물과 초자연 즉 신과의 사이에는 존재적인 구별과 동시에 유비(類比)가 있다고 봄을 지칭하는 말인데, 가톨릭 신학에 있어서는 현대에 와서도 보통 이것이 기본적인 원리의 하나로 다루어지고 있다. 존재를 ‘presence’라는 말로서 해석할 때, 이는 실제로, 혹은 효과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어떤 사람 또는 어떤 자의 가까이에 있음을 가리킨다. 이 말은 어원이 되는 라틴어 prae(∼의 앞에) + ens(존재), 또는 praesens(진행되고 있는 일에 참여하는 것)에서 왔다. 실재라는 것은 대상 물건이 현실로 실체적으로 거기에 있음을 말한다. 효과적인 존재란 이 대상물의 영향이 미치는 존재를 가리키지만, 그 영향의 원인은 실제로는 다른 곳에 있다. 영적인 존재는 물리적으로는 부재일지라도, 어떤 사람의 지성과 의지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를 가리키지만, 그 영향의 원인은 실제로는 다른 곳에 있다. 영적인 존재는 물리적으로는 부재일지라도, 어떤 사람의 지성과 의지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인 것이다. 하느님(신)은 개념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들이 사물을 인식하듯이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사람이라기보다 인간성을 초월한 그 이상의 존재이다. 헬비히(Monika Hellwig)가 지적했듯이, “예수 안에서 사람들은 독특한 모양으로 하느님과 접촉하고 있고, 또 접촉하도록 초대받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접촉은 인간의 전존재(全存在)를 변화시킨다.” 사도들이 우리에게 한 이야기에 따르면, 예수의 존재 이유 때문에 예수를 만났다는 말은, 눈에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하느님과 우리가 직접으로 인격적인 대면을 하도록 초대받은 체험을 말한 것이다. 예수는 하느님과 만남의 장소이요, 예수는 곧 하느님이다.

[참고문헌] E. Przywara, Analogia entis I, Freiburg 1932 / N. Hartmann, Zur Grumdlegung der Ontologie, Berun 1935 / J.B. Lotz, Sein und Wert I, Paderborn 1938 / A. Guggenberger, Der Menschengeist und das Sein, 1942 / J. Maritain, Sept lecons sur l’etre, Paris 1933; A Preface to Metaphysics: Seven Lectures on Being, New York 1945 / T.C. O’Brien, Metaphysics and the Existence of God, Washington 1960 / B. Montagnes, La Doctrine de l’analogie de l’etre d’apres saint Thomas d’Aquin, Louvain 1963 / Monika Hellwig, who is Jesus Christ?, What are the Theologians Saying?, Ohio 1970 / John A. Hardon, S.J., Catholic Dictionary, Now York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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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서 [한] 趙∼

조화서(1815∼1866).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 베드로. 최양업(崔良業) 신부의 복사(服事). 성인 조윤호의 아버지. 경기도 수원(水原)에서 태어났다. 1839년 기해(己亥)박해로 부친 조 안드레아가 순교하자 충청도 신창으로 이주하여 한 막달레나와 결혼, 아들 윤호를 두었고 이 때 최양업 신부의 복사로 신부를 보필하였다. 그 후 1864년 다시 전주의 성지동으로 이사했고 얼마 후에 아내가 사망하자 김 수산나와 재혼하였다. 1866년 병인(丙寅)박해가 지방으로 확산되어 이해 12월 5일 성지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이명서, 정원지, 아들 윤호와 함께 체포되었다. 옥에서 아들에게 “네 마음이 변할까 염려된다. 관장 앞에서 진리대로 말하여라” 하고 격려했고 이에 아들 윤호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버님께서도 조심하십시오”라고 대답하였다. 이렇듯 아들과 함께 순교를 각오하고 6, 7차의 신문을 당했는데, 후손이 끊어지는 것을 염려하는 체하며 배교를 권유하는 관장의 유혹을 여러 번 받았다. 그러나 모든 유혹과 형벌을 이겨내고 12월 13일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성지동과 대성동에서 체포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아들 윤호는 10일 후인 23일 같은 장소에서 순교함으로써 3대가 순교하는 영광을 얻었다.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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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증 [한] 趙喆增

조철증(1827∼1868). 문신. 천주교인. 자는 치양(稚壤), 본관은 풍양(豊壤). 서울에서 조능하(趙能夏)의 아들로 출생. 1859년 증광문과 병과(增廣文科丙科)에 급제, 주서(注書)를 거쳐 사간원 정언(正言)을 역임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로 프랑스 선교사들과 많은 교우들이 처형당하자 장치선(張致善), 최인서(崔仁瑞) 등과 함께 박해상황을 중국의 선교사들에게 알리고 조선에 남아 있는 프랑스 선교사들을 탈출시키려는 계획에 참여, 페롱(Ferron) 신부의 구원 요청을 위해 중국으로 가는 최인서, 지자익(池子益) 등을 재정적으로 후원했고 리델(Ridel, 李福明) 신부의 피신과 상해(上海)로의 탈출을 도왔으며 조정에 있으면서 천주교박해를 완화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1868년 오페르트(Oppert)의 남연군 묘 도굴사건 직후 체포돼 김계교(金季釗)·장치선 등의 자백으로 4월 19일 의정부에서 월해초구죄(越海招寇罪)로 체포령이 떨어졌으나 당시 규장각 검서관(檢書官)이던 조카 조유선(趙猷善)이 미리 체포령 소식을 알려주자 체포되기 전에 단양(丹陽)에서 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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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 [한] 組織神學 [영] systematic theology [독] Systematische Theologie

조직신학이라는 용어는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학문적으로 체계화, 조직화한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조직신학이라는 특정분과 학문이 있는 것이 아니고, 기초신학, 교의신학, 윤리신학 등 분과들을 포함하는 분류용(分類用)개념이다. 실천신학에 대조되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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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증이 [한] 趙曾伊

趙曾伊(1782∼1839).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 바르바라. 성인 남이관(南履灌)의 처. 경기도 이천(利川)의 양반 교우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16세 때 남이관과 결혼했고 1801년 신유(辛酉)박해가 일어나 친정아버지와 시부모가 순교하고 남편이 경상도 단성(丹城)으로 유배되자 친정인 이천에 내려가 10여년을 고생하며 살았다. 그 후 30세경 다시 상경하여 먼 친척이 되는 정하상(丁夏祥)을 도와 선교사 영입에 필요한 자금마련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1832년 남편이 유배에서 풀려나자 남편과 함께 이듬해 입국한 유방제(劉方濟) 신부를 보필하고 공소(公所)를 세우는 등 교회와 교우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였다. 그 뒤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자 남편을 친정으로 피신시키고 어린 딸과 함께 집을 지키고 있다가 7월에 체포되었다. 포청과 형조에서 남편 남이관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관헌들에게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했으나 끝까지 함구하고 신앙을 지켜 12월 29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비오 11세에 의하여 복자위에 올랐고, 그 후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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