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교황대사관 [한] 駐韓敎皇大使館 [영] Apostolic Nunciature in Korea

서울시 종로구 궁정동 2번지 교황대사관은 교황대사가 상주하며 각종 집무를 집행하는 것으로 1966년에 설치되었다. 그 전에는 교황청에서 파견한 사절이나 공사(公使)가 외교업무를 관장하였다. 1919년부터는 일본 교황사절이 한국 교회의 교황사절을 겸임하였고, 1947년 7월 메리놀회 번(Patrick J. Byrne, 方) 주교가 교황사절로 임명되면서 이때부터 한국 교회도 고유한 교황사절을 갖게 된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번 주교가 납북됨으로써 한동안 일본 교황사절이 한국 교황사절을 겸임하였고 1953년에서야 제2대 교황사절로 춘천지목구장 퀸란(Quinlan, 具) 주교가 임명되었다. 1957년 3대 교황사절에는 람베르티니(Egano R. Lambertini) 주교, 1960년 제4대 교황사절엔 주디체(Antonio del Giudice) 대주교가 각각 임명되었다. 1963년 교황청과 한국정부가 공사급 외교사절을 파견하기로 합의하면서 주디체 대주교는 공사로 승격하였다.

한편 1966년 교황 바오로 6세가 교황서한을 통하여 “한국에 교황대사를 파견한다”고 발표함으로써 교황대사관이 설립되었고 주디체 공사는 대사로 승격되었다. 그의 후임으로는 제2대 로톨리(Hippolito Rotoli) 대주교가 1967년에 제3대 도세나(Luigi Dossena) 대주교가 1973년에, 제4대 안젤로니(Luciano Angeloni) 대주교가 1978년에, 제5대 몬테리시(Francesco Monterisi) 대주교가 1982년 각각 임명되었다.

[참고문헌] 崔奭祐 編者, 敎皇 그는 누구인가,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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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품천사 [한] 主品天使 [관련] 천사

⇒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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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주의 [한] 主知主義 [영] intellectualism [독] Intellektualismus [프] intellectualisme

인간의 마음은 지(知), 정(情), 의(意)로 이루어진다고 말해지는데 이 가운데 지의 측면, 즉 이성(理性), 지성(知性), 오성(悟性)으로 불리는 지(知)의 기능을 다른 감정이나 의지의 기능보다도 상위에 두는 입장을 주지주의라 부르고, 감정을 상위에 두는 주정주의(主情主義), 의지를 상위에 두는 주의주의(主意主義)의 상대적 개념으로 사용된다. ① 인식론에서 주지주의는 이성론(理性論)으로 나타난다. 보편타당한 진리의 인식은 경험에서 독립된 이성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하여 선천적(a priori)으로 자명한 근본 원리에서 논리적으로 추출된 것만이 확실한 인식이라고 인정한다. 수학을 확실한 인식모델로 삼으며, 영원불변의 생득관념(生得觀念)을 인정한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칸트, 헤겔 등이 대표적이다. ② 심리학에서는 독일의 심리학자 헤르바르트(Johann Friedrich Herbart)에 의해서 주장되었다. 그는 경험적 개념에 포함된 많은 모순을 제거하여 경험의 배후에 있는 변치 않는 실재(das Reale)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여 심리적인 현상을 지적 요소로 설명하려 하였다. ③ 윤리학에서는 감정을 억제하고 냉정한 이성적 통찰을 통해 의지를 규정한다는 입장으로 나타났다. 이 입장은 삶을 있는 그대로의 의지와 감정의 움직임으로 보는 비합리적 사고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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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군징 [한] 主制羣徵

한역 서학서(漢譯西學書). 독일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Adam Schall, 湯若望, 1591∼1666)의 저서로 1629년 북경(北京)에서 상 · 하 2권으로 간행되었다. 상권에서는 자연계(自然界)의 모든 피조물과 자연계의 현상(現象) 속에 나타나는 천주(天主)의 모습과 그 섭리(攝理)에 대해 설명하고 이어 하권에서는 인간(人間)을 주제로 인간정신의 한계와 영혼의 불멸성 및 기적(奇蹟)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7세기 중엽에 조선에 전래되어 많이 읽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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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용 [한] 朱在用

주재용(1894∼1975). 신부. 제2대 전주(全州) 교구장, 제4대 대구(大邱) 교구장. 세례명 바오로. 경남 거제군 거제면 교황리에서 출생.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1914년 대구교구에서 성 유스티노신학교를 설립하자 성 유스티노신학교에 편입하여 1918년 제1회 졸업생으로 졸업과 함께 사제로 서품되었고 서품 후 경남 함양본당 주임신부, 1922년 성 유스티노신학교 교수를 거쳐 1942년 전주교구장, 1946년 대구교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8년 대구교구장직을 사임하고 춘천교구 양덕원본당 주임신부로 사목하면서 교회사 연구에 몰두, 1958년 ≪선유(先儒)의 천주사상(天主思想)과 제사문제(祭祀問題)≫를 저술하였고 1959년 춘천교구장 퀸란(Quinlan, 한국명 具仁蘭) 주교의 요청으로 당시 춘천에 있던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 수련원 지도신부로 부임, 수련자들의 영적지도 외에 수련자들에게 교리 · 교회사 · 성서 · 수덕론 · 전례 · 라틴어 등을 강의했으며 1966년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 수련원이 서울로 이전되자 남아 있는 자원자와 청원자들을 돌보다가 1968년 은퇴한 후로 춘천에 머무르면서 교회사 연구에만 몰두, ≪한국 가톨릭사의 옹위(擁衛)≫(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0), ≪배론성지≫(가톨릭출판사, 1975) 등을 저술하였다.

1975년 11월 1일 춘천 까리타스수녀회 사제관에서 사망, 유해는 대구 남산동에 있는 대구 대교구 성직자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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