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의 제헌(祭獻)미사에서 사제가 면병(麪餠)과 포도주를 제단에 바칠 때 봉송하는 경문을 가리키는 옛말이다. 성찬의 전례(典禮)에서 빵과 포도주를 봉헌(奉獻)함은,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서 하신 것들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이를 ‘봉헌송’(奉獻誦)이라고 한다. (⇒) 봉헌송
제헌 [한] 祭獻 [관련] 봉헌
한국 천주교회 초기 시대부터 사용해온 용어의 하나. 동의어인 ‘봉헌’(奉獻)과 같이 쓰였는데, 그 뜻은 ‘제헌 미사’ 때 사제(司祭)가 제물을 천주께 바치는 것을 말한다. ≪한불자전≫(韓佛字典, 1880)에 따르면, ‘졔헌하다’(제헌하다)는 ① 희생을 바치다, ② 희생하여 봉헌하다, ③ 바치다의 의미로 쓰여 왔다. 그러나 이 말은 오늘날에는 바뀐말 ‘봉헌’으로 사용되고 있다. (⇒) 봉헌
제천본당 [한] 堤川本堂
원주교구 소속 본당. 현재 충북 제천시 남천동 157에 소재한 남천동 본당으로서 본당 주보는 예수 성심이다. 1940년 7월 춘천지목구 소속 용소막본당(龍召幕本堂)에서 분리, 설립되어 서울교구에 속하게 되었다. 초대(1940∼1942년) 주임신부로 박일규(朴一圭, 안드레아) 신부가 부임하여 한옥을 구입, 성당으로 사용하다가 1942년 읍부리 373번지로 이전하였고, 3대(1943∼1953년) 봉희만(奉喜萬, 안토니오) 신부 재임시인 1943년에는 천혜원[고아원]을 설립하였다. 1947년에는 남천동(南泉洞)에 성당을 신축, 이전하였고, 다시 6대(1956∼1959년) 메리놀회 소속 커피(John F. Coffey) 신부 재임시인 1956년 6월 지금의 성당을 신축하였다. 제천본당은 1958년 6월 23일 청주대목구의 설정으로 이에 편입되었고, 다시 1965년 3월 22일 원주교구의 설정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1964년에는 제천읍 내에 의림동본당이 신설됨에 따라 본당 명칭을 남천동본당으로 개칭하였다. 1970년 3월 13일 본당 관내에 성모유치원을 설립하는 한편 1974년 8월 23일에는 유치원과 수녀원 건물의 축성식을 가졌다. 1980년 8월 3일 서부동본당의 신설로 관할공소 가운데 금성공소를 제외한 장평 · 배론 · 원박공소를 이관하였는데 당시 신자수는 1,953명이었다(서부동본당은 신자수 1,427명, 공소수 7개). 1982년 6월 18일에는 본당 교육관을 축성식을 가졌고, 1983년 4월 3일에는 본당 월보 <솔산가족>을 창간하였다. 1984년 현재 주임신부는 13대(1983∼) 이병돈(李丙敦, 보스코) 신부로서 1,775명의 신자와 2개 공소를 관할하고 있는데, 역대 주임신부는 다음과 같다. 2대(1942∼1943년) 윤예원(尹禮源, 토마스) 신부, 3대 봉희만 신부, 4대(1953∼1955년) 윌시(John Walsh) 신부, 5대(1955∼1956년) 하이스(John Heisse) 신부, 6대 커피 신부, 7대(1960∼1968년) 레이(James Ray) 신부, 8대(1968∼1971년) 양대석(梁大錫, 알로이시오) 신부, 9대(1971∼1973년) 이학근(李學根, 베네딕토) 신부, 10대(1973∼1976년) 안승길(安承吉, 로벨토) 신부, 11대(1976∼1981년) 노세현(盧世賢, 마티아) 신부, 12대(1981∼1983년) 이규영(李揆榮, 마르코) 신부.
제주중앙본당 [한] 濟州中央本堂 [관련] 제주본당
제주교구 주교좌본당. 원 명칭은 제주본당이었으나 1969년 제주중앙본당으로 바뀌었다. ⇒ 제주본당
제주본당 [한] 濟州本堂
1889년 제주읍(현 제주시)에 창설된 본당. 현재의 명칭은 제주중앙본당이며 제주교구 주교좌본당. 주보는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제주도는 1856년 베드로 펠릭스라는 한 사공에 의해 처음으로 복음이 전파되었다. 베드로 펠릭스는 풍랑으로 표류하던 중 구조되어 홍콩에서 한국인 신학생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한 후 고향인 제주도에 돌아와 친척과 이웃을 중심으로 전교, 곧 교우공동체를 만들었다. 이 공동체는 1866년 병인(丙寅)박해로 산산이 흩어지게 되었으나 그 후로 다시 교우들이 생기기 시작하여 1899년 페이네(C. Peynet, 裵嘉錄) 신부와 김원영(金元永,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제주읍에 부임, 제주본당을 창설하게 되었다. 1909년 페이네 신부가 전임되고, 후임에 라크루(Lacrouts, 具瑪瑟) 신부가 부임하여 성당을 마련했고, 이어 이듬해에는 서홍리(西烘里)본당[서귀포본당의 전신]이 신설되어 무세(G. Mousset, 文濟萬) 신부와 김원영 신부가 그 지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1901년 제주도 교난사건으로 성당이 파괴되고 대부분의 교우가 학살당하는 등 본당은 폐허가 되었으나 라크루 신부의 노력으로 재건되었고, 1909년에는 신성(晨星)학교를 개설, 교육사업을 전개하였다. 1915년 본당의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라크루 신부가 전임하고 후임으로 김양홍(金洋洪, 스테파노) 신부가 부임했으나 김 신부도 이듬해에 전임되어 제주본당은 목포본당에서 관리하게 되었고, 1924년 이필경(李弼景, 안드레아) 신부가 부임하면서 본당으로 재출발하였다. 1926년 최덕홍(崔德弘, 요한) 신부가 부임, 1930년 건평 130여평의 성당을 신축했고, 1933년 에이레의 성 골룸바노 외방선교회가 한국에 진출하여 제주도와 전라남도 지방을 관할하게 되자 이후 골룸바노회 신부들이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그 후 일제말기 교회탄압과 6.25동란으로 본당 발전은 잠시 정체되었으나 6.25동란 직후부터 다시 발전하기 시작, 성당이 증축되었고, 1955년 샤르트르 성 바오로수녀회 분원이 설치되었으며, 1969년 현재의 성당이 신축됨과 동시에 본당명이 제주중앙본당으로 바뀌었다. 1971년 제주도가 지목구로 설정되고 전(前)광주교구장 헨리(Henry, 玄海) 대주교가 초대 지목구장에 임명되자 주교좌본당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83년말 현재 교세는 교우수 3,638명, 공소 3개소이며, 카리타스수녀회 분원이 설치되어 본당사목을 돕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