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라시오 [라] Gelasius

Gelasius, 1세(?∼496). 교황(재위 : 492∼496). 로마태생(혹은 아프리카 태생이라고도 함). 교황 취임 후에 선임자인 성 펠릭스 3세의 종교정책을 계승하여 반단성론적(反單性論的) 정책을 취하였다. 또한 마니교, 펠라지우스주의와도 투쟁하고, 아카키오스(Akakios)의 시스마(교회분리, 484∼518년)에 대해서는 콘스탄티노플 및 황제에 대한 로마교황권의 우위를 주장하였다. 또한 성찬(聖餐)에 대해서는 빵과 포도주에 모든 신도가 참여해야 한다고 하였다. 다수의 저서가 있는데 그 중에는 그리스도 양성론(兩性論)을 옹호, 주장한 ≪에우티케스 및 네스토리우스 박론(駁論)≫(Adversus Eutyches et Nestorium)이 있다. 그는 이 이원론(二元論)적인 입장에서 아나스타시우스 황제에게 보낸 서한에서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를 양권론(兩權論)으로 정식화하였는데, 즉 제권(帝權)과 성권(聖權)을 구별하였고 그래서 동로마제국의 양권력을 일원화시키는 데 반대하였다. 그밖에 다수의 ≪서한집≫이 있는데 그 대부분은 아리우스주의, 펠라지우스주의, 마니교에 관한 것과 교회훈련에 관한 것들이다. ≪Decretum Gelasianum de libris recipiendis et non recipiendis≫는 그의 저서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으나, 오늘날에는 그것을 인정치 않는 사람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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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미사 [한] 祭獻∼ [관련] 성찬의 전례

한국 천주교회 초기 때부터 쓰여온 용어의 하나로서, 말씀의 전례(典禮)가 끝난 다음 계속되는 본 미사의 제일 중요한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제물의 봉헌과 축성과 영성체로 이루어지는 것이 ‘제헌미사’ 또는 ‘성찬의 전례’(liturgy of the Eucharist)라고 하며, 교회는 이 미사 부분을 최후의 만찬 때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동에 대응하도록 특히 세 단계로 배열하고 있다. 제물로서의 빵과 포도주의 봉헌은,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서 하신 것이고, 성 변화에서 봉헌물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 영성체를 통해 신자는 성(聖) 목요일에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주신 것과 동일한 그리스도의 몸을 받게 된다. 오늘날에는 성찬의 전례라고 부른다. (⇒) 성찬의 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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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경 [한] 祭獻經 [라] offertorium [영] offertory [관련] 봉헌송

가톨릭 교회의 제헌(祭獻)미사에서 사제가 면병(麪餠)과 포도주를 제단에 바칠 때 봉송하는 경문을 가리키는 옛말이다. 성찬의 전례(典禮)에서 빵과 포도주를 봉헌(奉獻)함은,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서 하신 것들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이를 ‘봉헌송’(奉獻誦)이라고 한다. (⇒) 봉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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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 [한] 祭獻 [관련] 봉헌

한국 천주교회 초기 시대부터 사용해온 용어의 하나. 동의어인 ‘봉헌’(奉獻)과 같이 쓰였는데, 그 뜻은 ‘제헌 미사’ 때 사제(司祭)가 제물을 천주께 바치는 것을 말한다. ≪한불자전≫(韓佛字典, 1880)에 따르면, ‘졔헌하다’(제헌하다)는 ① 희생을 바치다, ② 희생하여 봉헌하다, ③ 바치다의 의미로 쓰여 왔다. 그러나 이 말은 오늘날에는 바뀐말 ‘봉헌’으로 사용되고 있다. (⇒) 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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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본당 [한] 堤川本堂

원주교구 소속 본당. 현재 충북 제천시 남천동 157에 소재한 남천동 본당으로서 본당 주보는 예수 성심이다. 1940년 7월 춘천지목구 소속 용소막본당(龍召幕本堂)에서 분리, 설립되어 서울교구에 속하게 되었다. 초대(1940∼1942년) 주임신부로 박일규(朴一圭, 안드레아) 신부가 부임하여 한옥을 구입, 성당으로 사용하다가 1942년 읍부리 373번지로 이전하였고, 3대(1943∼1953년) 봉희만(奉喜萬, 안토니오) 신부 재임시인 1943년에는 천혜원[고아원]을 설립하였다. 1947년에는 남천동(南泉洞)에 성당을 신축, 이전하였고, 다시 6대(1956∼1959년) 메리놀회 소속 커피(John F. Coffey) 신부 재임시인 1956년 6월 지금의 성당을 신축하였다. 제천본당은 1958년 6월 23일 청주대목구의 설정으로 이에 편입되었고, 다시 1965년 3월 22일 원주교구의 설정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1964년에는 제천읍 내에 의림동본당이 신설됨에 따라 본당 명칭을 남천동본당으로 개칭하였다. 1970년 3월 13일 본당 관내에 성모유치원을 설립하는 한편 1974년 8월 23일에는 유치원과 수녀원 건물의 축성식을 가졌다. 1980년 8월 3일 서부동본당의 신설로 관할공소 가운데 금성공소를 제외한 장평 · 배론 · 원박공소를 이관하였는데 당시 신자수는 1,953명이었다(서부동본당은 신자수 1,427명, 공소수 7개). 1982년 6월 18일에는 본당 교육관을 축성식을 가졌고, 1983년 4월 3일에는 본당 월보 <솔산가족>을 창간하였다. 1984년 현재 주임신부는 13대(1983∼) 이병돈(李丙敦, 보스코) 신부로서 1,775명의 신자와 2개 공소를 관할하고 있는데, 역대 주임신부는 다음과 같다. 2대(1942∼1943년) 윤예원(尹禮源, 토마스) 신부, 3대 봉희만 신부, 4대(1953∼1955년) 윌시(John Walsh) 신부, 5대(1955∼1956년) 하이스(John Heisse) 신부, 6대 커피 신부, 7대(1960∼1968년) 레이(James Ray) 신부, 8대(1968∼1971년) 양대석(梁大錫, 알로이시오) 신부, 9대(1971∼1973년) 이학근(李學根, 베네딕토) 신부, 10대(1973∼1976년) 안승길(安承吉, 로벨토) 신부, 11대(1976∼1981년) 노세현(盧世賢, 마티아) 신부, 12대(1981∼1983년) 이규영(李揆榮, 마르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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