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임 [한] 許∼

허임(1795∼1840).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바오로. 독실한 교우가정에서 태어났다. 기해(己亥)박해가 한창 치열하던 1839년 8월경에 체포되었는데, 체포될 때의 신분이 훈련도감(訓鍊都監)의 병정이라 포청에서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하였다. 포청에서 혹형을 처음엔 잘 참아 냈으나 하루는 혹형을 이겨내지 못하고 배교하였다. 그러나 곧 배교를 취소했고, 형리가 배교 취소의 표시로 인분(人糞) 한 사발을 마시라고 하자 아무 거리낌 없이 인분을 받아 마셨다. 그 뒤 여러 달 동안 포청옥에서 치도곤 130도 이상을 맞는 혹형과 고문을 당하였으나 한결같은 신앙으로 이를 이겨내고 1840년 1월 30일 포청에서 옥사(獄死),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이름은 달레의 기록에 ‘He Heim-i’로 나와 있어 많은 이들이 ‘허혐’ 또는 ‘허협’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원사료인 다블뤼 주교의 <비망기>에는 ‘He-im’으로 되어있다. 따라서 그의 이름은 ‘허임’으로 표기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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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인백 [한] 許仁伯 [관련] 진목정

허인백(1821∼1868). 순교자. 세례명 야고보. 김해 허씨의 후예로 김해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황사국(黃士國)에게 교리를 배워 1846년경 25세의 나이에 영세, 입교했다고 전한다.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언양을 거쳐 죽령(竹嶺)[대나무고개] 산골의 교우마을에 숨어들었다가 그 곳에서 이양등(李陽登, 베드로) 회장, 김종륜(金宗倫, 루가) 등과 만났다. 이들 3사람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가족들을 데리고 더 깊은 산 속을 헤매다가 경주땅 산내(현재 경북 월성군 산내면)에 있는 소래동 단수골이란 석굴(石窟)을 발견, 그 곳을 피난처로 삼고 목기(木器)를 만들어 팔며 신앙생활을 계속해 나갔다. 1868년 5월 ‘덕산묘지 도굴사건’의 여파로 전국적인 박해가 있었고, 이들 셋은 이 때 경주아문의 포졸들에게 잡혔다. 경주아문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으며 배교를 강요당하다가 8월 울산감영으로 이송되어 이틀 뒤인 8월 14일(음 7월 28일) 장대벌 형장에서 효수되었다. 이들의 유해는 허인백의 부인 조애에 의해 수습되어 사형장 근처의 다리 밑에 가매장되었다. 그 뒤 신앙의 자유가 인정되면서 3인의 유해는 월성군 산내면 진목정 안산에 합장되었고, 1932년 5월 29일 대구 감천리 공원묘지로 이장, 1962년 10월 25일 석곽에 모서져 공원묘지 산 위에 있는 성모석상 앞으로 옮겨졌다가 1974년 10월 신천동 복자성당 구내로 이장되었다. (⇒) 진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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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조당 [한] 許願阻擋 [관련] 혼인장애

무효장애 중의 하나. 성별(聖別)된 생활의 수도회에서 종신공개정결서원을 한 남녀 수도자들에게 혼인을 금하는 교회법적인 조건. (⇒) 혼인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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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 [한] 許願 [관련] 서원

서원의 옛 말. ⇒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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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주의 [독] Nihilismus [영] nihilism

이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투르게네프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1861). 그는 기성의 질서와 가치를 부정하는 주인공을 니힐리스트라고 불렀다. 니힐리즘이란 원래 무(無)를 의미하는 라틴어 nihil에서 유래된다. 여기서 ‘무’란 존재에 대한 비존재란 의미는 아니고 세계와 생존의 의미와 관련된 가치의식이다. 가치의식에 의해 생존은 의미를 부여받게 되고 인생의 목표를 세우게 되는데, 니힐리즘이란 삶의 가치의식을 상실한 채, 이전의 낡은 가치는 붕괴하고 새로운 가치는 아직 정립되지 않은 전환기 상태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니체는 이러한 전환기에서 새로운 가치는 기존의 가치체계에서 그 근거였던 신의 죽음에 의해서 나타난다고 보고, 당시의 니힐리즘은 커다란 세계사적 전환에 직면한 인간의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였다. 니체는 낡은 가치의 붕괴에 의한 무의미한 생존과 무의미한 상태에서 생기는 도피적 형태를 수동적 니힐리즘, 장래 새로운 가치의 창출을 위해 기성체계에 반항하는 파괴적 형태를 능동적 니힐리즘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니힐리즘이 가치의식과 결부되어 하나의 적극적 자기주장을 펼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때, 이것은 이미 니힐리즘을 극복한 것이 된다.

니힐리즘의 극복은 니힐리즘을 배태하고 있는 현대 인간 · 사회 · 문화 · 경제 · 정치의 근본조건에 대한 성찰을 통하여 새로운 가치를 정립시킬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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